춘천분지순환등반로 종주기2
(금병산)
*종주구간:김유정역-금병산-원창고개
*산행일자:2017. 5. 25일(목)
*산높이 :금병산652m
*소재지 :강원 춘천
*산행코스:김유정역-서릉사거리-금병산-동봉-원창고개
*산행시간:13시42분-17시57분(4시간15분)
*동행 :나홀로
제가 여기 금병산(錦屛山)을 오르자고 처음으로 마음먹은 것은 일제강점기에 이 산 아래 실레마을에서 태어난 소설가 김유정(金裕貞, 1908-1937)의 많은 작품이 이 산을 배경으로 하여 지어졌다는 것을 알고 나서였습니다. 30세를 다 채우지 못하고 요절한 김유정이 이 산을 오르내리며 “봄봄”과 “동백꽃” 등의 주옥같은 단편소설을 구상하고 다듬었겠다는 생각이 들어 작년에 김유정문학촌을 탐방했고 뒤이어 금병산을 올랐습니다. 산 속의 ‘실레이야기 길’을 걸으면서 떠올린 소설 “만무방”은 그 스토리가 소작료와 빌린 것을 갚고 나면 수확을 해보았자 수중에 벼 한 톨도 남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동생이 자기가 농사지은 벼를 남몰래 베어내다가 망나니 형에게 들킨다는 것으로 김유정 특유의 서글픈 해학이 잘 드러난 작품입니다.
금병산이 제게 유독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소설가 김유정 때문만은 아닙니다. 제가 태어난 경기도 파주에도 같은 이름의 금병산이 있어 더욱 친근감이 듭니다. 소설가 전상국은 그의 저서 “전상국의 춘천산 이야기”에서 “비단 금(錦), 병풍 병(屛), 금병산은 춘천 시내 정남쪽에서 길게 병풍을 두른 모습으로 솟아 있다”고 했습니다. 제가 졸업한 초등학교의 교가에도 나오는 금병산은 조선조의 영조임금께서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영조 임금께서 '동이'로 더 많이 알려진 생모 최숙빈의 묘가 자리한 소령원의 뒷산에 올랐다가 신하들에 북쪽으로 보이는 산의 이름을 물었다고 합니다. 바위산으로 마치 바람에 나뭇잎이 다 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하여 풍락산(風落山)으로 불린다는 답변을 듣고 영조임금은 금으로 병풍을 친 것 같다하여 금병산(金屛山)이라 고쳐부르라고 명했다 합니다. 두 산 모두 병풍을 친 것 같다 함은 다르지 않는데 무엇으로 병풍을 만들었느냐에 따라 錦과 金이 갈리는 것 같습니다. 비싸기로야 金이 더하겠지만 아름답기로는 錦이 단연 앞서듯이, 금으로 병풍을 친 제 고향의 金屛山이 그 자태의 아름다움이나 푸근함에서 비단으로 병풍을 친 여기 錦屛山에 한참 못 미친다는 것은 이름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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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시42분 김유정역을 출발했습니다. 김유정 역사를 나서 맞는 땡볕은 자못 따가웠지만, 아직은 아스팔트 도로에서 열기를 내뿜지 않아 그다지 덥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상가를 지나 다다른 등산안내도 앞에서 작년 7월에 걸어 올랐던 오른 쪽 길로 가는 대신 이번에는 아주 좁은 천변을 따라가는 왼쪽 길로 들어섰습니다. 마을을 지나 다리를 건너고 몇 분 더 걸어 길 건너 왼쪽의 “금병산2.7Km/1시간20분"의 안내판 앞에서 산길로 올라섰습니다. 가파른 통나무 계단 길을 걸어 오르다 앙증맞은 청개구리 새끼를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묘지 앞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을 따라 걸으며 조금씩 고도를 높여갔습니다. 길이 넓게 잘 나있는데다 경사도 급하지 않고 그새 자란 나뭇잎들로 그늘져 지난 주 드름산을 오를 때보다 훨씬 덜 더웠습니다.
14시29분 체력단련장이 자리한 서릉사거리를 지났습니다. “금병산2.7Km/1시간20분"의 들머리에서 고도를 200m 가량 높여 서릉사거리에 이르기까지 27분이 걸렸습니다. 소설가 김유정이 걸었던 ‘실레이야기길’과 정상 행(行) 능선길이 만나는 서릉사거리에 세워진 운동기구를 보고 한 세기만 빨리 설치했다면, 그래서 김유정이 이곳에서 체력을 단련했다면 요절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레이야기 길이 좌우로 갈리는 서릉사거리에서 정상까지는 작년 7월에 한 번 올랐던 적이 있어 오름 길과 숲이 눈에 익었습니다. 송전탑을 더 가서 내려선 안부사거리에서 처음으로 배낭을 내려놓고 10분여 마음 편히 쉬면서 연초록 향연을 준비한 5월에 감사했습니다. 어인 일인지 계절의 향연에 초대된 새들이 몇 마리 되지 않아 산새들의 코러스를 듣지 못했지만 당장이라도 소나기를 불러올 것 같은 바람이 자리를 함께 해 5월의 향연이 초라하지 않았습니다.
16시 정각 해발652M의 금병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정상으로 이어지는 단조로운 외길을 걸으며 지난 번 올랐던 드름산을 카메라에 담고자 했으나 나뭇잎에 가려 그리하지 못했습니다. 왼쪽아래 북사면이 거의 수직에 가까운 낭떠러지인 능선길이 한 동안 계속되어 지형도를 꺼내보니 과연 등고선이 빽빽하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참나무 숲과 소나무 숲을 번갈아 지나며 아주 짧은 암릉 길을 오르기도 했습니다. 해발 550m대에 이르자 편안한 길은 끝이 났고 정상까지 비알 길이 계속됐습니다. 20분간 해발고도를 100m가량 높여 도착한 정상의 데크 전망대는 땡볕을 가릴 그늘이 없어 오래 있지 못했습니다. 두 주전에 오른 북동쪽의 대룡산이 첫눈에 들어왔습니다. 산줄기를 따라 왼쪽으로 옮겨간 제 눈길이 멈춘 곳은 북쪽 용화산의 바위봉우리였습니다. 왼쪽 멀리로 대성산과 복계산을 지나는 한북정맥의 준수한 산줄기가 희미하게 보였고 서쪽 강 건너에 자리한 몽가북계의 산줄기는 저를 부르는 듯 했습니다.
17시11분 해발565M의 동봉을 올랐습니다. 금병산 정상 바로 아래 “원창고개 2.57Km/김유정문학촌 3.81Km"의 표지목이 가리키는 대로 왼쪽으로 확 꺾이는 원창고개 길로 내려섰습니다. 경사가 급한 계단 길은 그다지 길지 않았고, 하산 길은 이내 평탄한 길로 바뀌었습니다. 정상에서 0.5Km 내려가 데크 전망대에 이르자 지난 주 오른 드름산과 바로 뒤의 삼악산이 모습을 드러내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삼악산 뒤로 흐릿하게 화악산의 군사기지가 보였고 그 왼쪽으로 높게 솟은 봉우리는 경기도 가평의 명지산 같았습니다. 오후에 소나기가 내린다는 예보를 뒤늦게 듣고 춘천시내 슈퍼에서 일회용 우비를 사가지고 왔는데 비를 몰고 올 듯한 거친 바람소리가 잦아들어 산속이 고요했습니다. 오른 쪽 우회 길을 버리고 가파른 길을 걸어 올라선 봉우리가 해발565m의 동봉인줄은 나뭇가지에 걸어놓은 비닐명찰을 보고 알았습니다.
17시58분 원창고개에서 춘천분지순환등반로의 2구간 종주를 마쳤습니다. 동봉에서 내려가 우회길과 만나고 한참 동안 더 걸어 “원창고개 0.83Km"지점 갈림 길에서 왼쪽으로 내려갔습니다. 경사가 급한 길을 내려가면서 오른 쪽 무릎에 가볍게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해 이러다가 중도에 종주산행을 그만두어야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었습니다. 차들이 지나는 소리가 가깝게 들렸고 이내 오른 쪽으로 시야가 탁 트인 개활지를 지났습니다. 능선 길 옆 ‘다인이네 집’을 지나 다시 숲길로 들어섰다가 조금 후 고가도로 밑을 지나는 5번도로로 다가갔습니다. 해발330m의 원창고개에서 오른 쪽으로 조금 내려가 5번 도로를 건너 길 건너 버스 정류장 옆에 세워진 “수리봉3.3Km”의 표지목을 보고 다음 구간의 들머리를 확인했습니다. 땀에 젖은 윗옷을 갈아입고 20분가량 기다려 춘천시내로 들어가는 시내버스에 오르는 것으로 2구간 종주를 마무리 하면서 다음 주에 오를 대룡산 구간을 머리 속에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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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으로 병풍을 친 것 같은 금병산(錦屛山)은 그 산세도 이름만큼 수려합니다만, 錦屛의 한자를 뜻풀이 하고나서야 이 산이 이름값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는 산 이름이 하나하나의 글자가 언어의 음과 상관없이 일정한 뜻을 나타내는 표의문자인 한자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현존하는 산 이름은 거의 다가 한자로 표기되고 있습니다. 이제껏 제가 오른 694개의 산중에서 그 이름이 순 한글로 된 산은 10개를 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 많은 산들이 처음부터 한자이름으로 불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산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아야 했던 사람들 대부분은 글을 모르는 백성들이어서 한문으로 이름을 지어 부르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기에 하는 말입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나오는 수많은 지명이 모두 한자로 되어 있습니다만, 그 지명의 상당수는 소리를 단순히 한자로 옮겨 놓은 것이어서 훈독을 해서는 의미가 와 닿지 않습니다. 우리 고유의 지명이 한자로 바뀐 것은 삼국이 통일되고도 몇 십 년이 지난 경덕왕 때부터로 알고 있습니다. 삼국의 통일로 국토는 합쳐졌지만 언어까지 통일 된 것이 아니기에 경덕왕이 한자로 지명을 고쳐 통일시키고자 한 것은 불가피했을 것입니다. 그 후로도 지명은 수없이 바뀌었지만 일제에 의한 지명정비처럼 한자표기가 더욱 강화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기에 ‘신촌(新村)’이 ‘새말’을 몰아낸 것입니다.
강원도 평창과 강릉을 경계짓는 고루포기산은 일제가 한자이름을 찾지 못해 가타가나로 옮겨놓은 덕분에 해방 후 고유의 산 이름이 그대로 불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덴불데기산, 돌박지산, 구름산이 더할 수 없이 소중한 것은 한자의 공세에도 굴하지 않고 잘 견디어 옛 이름을 온전하게 보존해와서입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주에 오른 드름산도 보기와는 달리 꽤 강인한 산인가 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삼악산(三嶽山)과 금병산(錦屛山)의 틈바구니에서 순 한글이름을 지켜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뒤늦게 ‘드름’의 의미를 찾아보았지만 끝내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뜻은 잘 몰라도 드름산은 토박이 우리말이어서 이름만 들어도 정겹고 살갑게 다가옵니다.
도수희교수는 그의 저서 “한국지명 신연구”에서 지명은 수효가 가장 많고 사용빈도 또한 가장 높다고 했습니다. 김부식이 “삼국사기”에 여러 지면을 할애하여 지명을 적어놓은 덕분에 우리 국어연구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기가 좀더 수월했을 것입니다. 제가 자주 드름산을 돌아본 것은 금병산과 대비되는 살가운 우리 고유의 지명 때문이었습니다. 다음 구간부터는 한자이름의 산봉우리들에 옛 이름을 물어볼 뜻입니다. 이 산들이 “삼국사기”를 뒤적이며 준비한 답을 제게 말해줄 것 같아서입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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