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지맥·분맥·단맥/춘천분지산줄기

춘천분지순환등반로 종주기3(원창고개-대룡산-느랏재)

시인마뇽 2017. 6. 9. 13:50

                                                춘천분지순환등반로 종주기3

                                                                               (대룡산)


 

                                              *종주구간:원창고개-대룡산-느랏재

                                              *산행일자:2017. 6. 8()

                                              *산높이 :대룡산899m, 수리봉645m

                                              *소재지 :강원 춘천

                                              *산행코스:원창고개-수리산-대룡산-갑둔이고개-느랏재(터널앞)

                                              *산행시간:958-1822(8시간24)

                                              *동행      :나홀로




 

   6월이면 순국선열에 대한 추모의 염()이 더해지는 것은 현충일과 6.25전쟁일이 이 달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발발한 625일 당일에 춘천을 점령하고 그 여세를 몰아 수원방면으로 진출하여 국군 주력을 포위하려던 북한군의 남침계획은 국군 6사단을 중심으로 애국시민, 학생, 경찰이 하나 되어 구축한 저항선을 뚫지 못해 무산됐습니다. 북한군은 병력 6,600여명과 전차18대를 잃고 627일에야 춘천에 진입했는데, 온창일은 그의 저서 <<한민족전쟁사>>에 춘천의 원창고개에서 치른 전투를 아래와 같이 적었습니다.


     “627일 오전 소양강 도하에 실패한 북한군은 이날 오후 12사단 병력과 전차로 증강된 2사단을 투입하여 춘천을 탈취하기 위한 대대적인 공격을 가해왔다. 춘천의 7연대는, 19연대의 병력이 홍천지역의 큰말고개의 방어에 전용되어 병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잘 싸웠으나, 소양강 유지선을 방어할 수 없었다. -중략- . 공격 당일 25일내로 춘천을 점령하려던 북한군은 27일 저녁에야 춘천에 진입하였다. 공격속도가 늦어져 초조해진 북한 2군단은 28일에도 원창고개와 큰말고개에서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중략- . 춘천의 남쪽 원창고개를 방어하고 있던 7연대 2대대도, 원창고개가 횡격실(橫隔室)이고 방어전면이 급경사를 이루고 있는 지형적인 이점을 충분히 활용하여 28일 오후에 전개된 북한군 21연대의 공격을 격퇴하였다.” 

 

   그때 우리 국군이 북한군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해 그들이 계획대로 우리국군의 주력부대를 포위하는 데 성공했다면 대한민국은 일찌감치 패망해버려 UN이 손을 써보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제가 오늘 원창고개에서 꿈길 같은 춘천분지순환등반로 종주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춘천전투에서 잘 버텨준 우리 국군과 춘천시민들의 덕분이라 생각하며, 감사의 뜻을 올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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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 958분 원창고개를 출발했습니다. 대학원수업이 휴강인데도 아침 일찍 집을 나선 것은 하루를 온전히 춘천분지 순환등반로를 종주하고 싶어서였습니다. 남춘천역에서 원창고개까지 택시로 이동했습니다. 원창고개 버스정류장을 출발해 동쪽으로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따라 땡볕 길을 걸었습니다. 마을이 거의 끝나는 지점에 이르러 수리봉1.5Km"의 표지목이 세워진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5-6분 쯤 걸어 도착한 나지막한 고개에서 오른 쪽 능선을 따라 올라가면서 고개 너머로 내려가는 한 할머니에 눈길을 준 것은 내려가는 길도 많이 힘들어하는 할머니의 뒷모습에서 몇 년 후의 저를 보아서였습니다. 경사가 가파르지 않고 그늘이 진데다 전날 내린 비로 공기가 삽상해 오를 만 했습니다. 수리봉 0.5Km 전방의 능선에서 50대쯤으로 보이는 남자 분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1120분 해발645m의 수리봉에 올랐습니다. 한 남자분과 인사를 나눈 능선삼거리에서 왼쪽으로 5m 가량 걸어 올라선 수리봉 정상을 지켜온 것은 표지석과 데크 전망대였습니다. 데크전망대에서 북서쪽으로 한 눈에 잡히는 춘천시내를 조망하면서 제가 다니는 강원대도 찾아보았습니다. 전망대에서 조금 내려가 원창고개3.1Km/임도1.4Km/조망점0.7Km”의 능선삼거리에서 잠시 머뭇거리다 조망점의 직진 길을 버리고 왼쪽아래 임도길로 내려섰는데 집에 와서 확인해보니 직진 길은 응봉으로 이어지는 길이었습니다. 때마침 올라오는 두 분의 아주머니에게서 땡볕의 군사도로를 피해갈 수 있는 시원한 산길을 안내받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를 안 것은 얼마 후 시멘트로 포장된 땡볕 길 군사도로에서 내뿜는 열기를 감지하고 나서였습니다. 내리막길은 그리 길지 않았고 대룡산으로 이어지는 숲길은 가히 환상적이었습니다. 좁지 않은 포근한 흙길을 가운데 두고 좌사면의 낙엽송과 우사면의 잣나무는 자웅을 겨루듯 높이 솟아 하늘을 가렸습니다. 그늘진 길을 걸으며 모처럼 산림욕을 마음껏 즐기고나자 이런 좋은 산을 가까이 둔 춘천시민들이 참으로 부럽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1214분 군사도로를 건너 산길로 올라섰습니다. 잣나무 숲길과 체력단련장을 차례로 지나 능선 오거리에 도착했습니다. 두 아주머니들이 가르쳐준 대로 사암리에서 녹두봉 군사기지로 이어지는 시멘트 군사도로를 건너 산길로 들어서자 길이 좁아져 오솔길을 걷는 기분이었습니다. 오름 길에 부부로 보이는 두 젊은이를 만나 다시 한 번 대룡산 정상으로 가는 길을 확인했습니다. 한참을 걸어올라 해발600m쯤 되는 곳에서 짐을 풀고 떡을 꺼내들면서 20분가량 편히 쉬었습니다. 쉬는 시간이 길었던지 가야할 길을 깜박 잊고 4-5분을 진행하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나침판을 꺼내보니 대룡산 정상은 동쪽에 자리하고 있는데 서쪽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길을 잘 못 들었다 싶어 가던 길을 멈추고 다시 점심식사를 한 곳으로 돌아가서야 제가 올라온 길로 내려갔다 온 것을 알았습니다. 비알 길의 경사가 심하지는 않았지만 계속 오르는 길이어서 등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1434분 대룡산 정상인 해발899m의 깃대봉에 올라섰습니다. 잠시 넋을 놓아 알바를 하는 바람에 10분가량 늦어졌지만 40분여 오름길은 검은등뻐꾸기가 함께 해주어 힘들지 않았습니다. 검은등뻐꾸기가 우는 소리를 홀딱벗고로 들은 사람이 많았던지 흔히들 이 새를 홀딱벗고새라고 부른다는데 다른 나라 사람들에는 이렇게 들릴 리가 만무하고 보면 소리를 흉내 낸 의성어도 그 나라 언어를 떼놓고는 지을 수 없나봅니다. 산속의 오솔길은 군사기지가 들어선 녹두봉을 얼마 앞둔 지점에서 끝이 나 다시 나타난 군사도로를 따라 왼쪽으로 진행했습니다. 구름이 해를 가려 땡볕을 피할 수 있는 것만도 다행이다 했는데 바람까지 시원하게 불어 2.1Km의 군사도로가 지겹지 않았습니다. 깃대봉 바로 아래 철쭉 밭에서 오른 쪽 능선으로 올라가 정상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흐릿하게 보이는 산들이 어느 산인 줄 짐작이 가는 것은 정남쪽의 용문산(?) 하나뿐이었습니다. 분명 동쪽 어느 쯤에 자리하고 있을 텐데 끝내 찾지 못한 가리산은 깃대봉에서 조금 내려가 가락재를 거쳐 가리산을 지나는 춘천지맥길을 확인하는 것으로 가름했습니다. 북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제1활공장이 깃대봉보다 훨씬 전망이 좋았던 것은 사방이 탁 트여서였는데, 남쪽 먼발치로 대룡산 제2봉인 녹두봉이 전신을 드러내보여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1627분 갑둔이재를 지났습니다. 깃대봉에서 갑둔이재까지는 4주전 대룡산을 오를 때 한 번 걸었던 길이어서 반갑고 긴장감도 풀렸습니다. 1활공장에서 갑둔이재를 향하여 내려가다가 제2활공장 길로 들어섰습니다. 이내 군사도로로 내려섰고 이 길에서 0.2Km 벗어난 제2활공장을 들르지 않고 넓은 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오른 쪽 거두리로 가는 산길로 들어서 다시 군사도로를 벗어났습니다. 3-4분 걸어 만난 삼거리에서부터는 다시 지난번에 걸은 길로 땡볕의 군사도로에서 느낄 수 없는 삽상함과 한가로움이 저를 붙잡아 삼거리 바로 아래 통나무 의자에서 10분여 쉬어갔습니다. 갑둔이재에 도착한 시각이 1627분으로 종주산행을 여기서 접고 거두리로 바로 하산하기에는 이르다 싶었습니다. 표지목을 보고 갑둔이재에서 느랏재까지 거리가 3.5Km 밖에 안 된다는 것을 확인하자 내친 김에 느랏재까지 진행해보다는 욕심이 동했습니다. 갑둔이재에서 해발고도를 100m가량 높여 다다른 능선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가는 명봉 길을 버리고 느랏재로 가는 오른 쪽 능선 길로 진행했습니다.


 

   1822분 느랏재터널 앞 56번 도로변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명봉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진행하다 왼쪽으로 제법 경사진 계단 길을 따라 내려갔습니다. 얼마 안 걸어 만난 송전탑의 개활지에서 깃대봉에서 찾지 못한 가리산의 우뚝 솟은 거암들을 조망했습니다. 가보지 않은 산을 몇 십리 밖에서 보고서 바로 그 산이라고 단정하지 못하는 것은 산 역시 아는 만큼 보여서인데 조선 사대부들이 그들의 유산기에 몇 백리 밖의 산들을 이름을 대며 보인다고 적어놓은 것은 아무래도 과장인 듯싶습니다. 갑둔이재에서 한 시간 가량 걸어 다다른 무명봉에서 잠시 쉬면서 실로 오랜만에 거풍을 즐겼습니다. 바지를 내리고 사타구니에 바람을 쐬는 거풍은 저처럼 홀로 산행하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보너스인데 이번 산행의 또 하나 보너스는 산딸기를 따먹은 것입니다. “송전탑0.3Km/대룡산5.8Km/느랏재0.8Km"이 세워진 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내려가 넓은 임도로 내려섰습니다. 오른 쪽 아래로 임도 따라 내려가 56번 도로 앞 간이음식점 앞에 이르자 길 건너로 버스정류장이 있고 왼쪽 위로 느랏재터널이 보였습니다. 버스는 2030분에 지난다고 해 택시를 불러놓고 맥주를 사마셨습니다. 득달같이 달려온 택시에 몸을 실고 느랏재를 넘어 춘천역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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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들어 처음으로 8시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산길을 걸었습니다. 두 주전에는 하산 길에 무릎이 새큰거려 걱정했는데, 이번에는 무릎보호대를 차고 걸어서인지 어떤 통증도 느껴지지 않아 참으로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이번 산행이 힘들지 않은 데는 몇 가지 까닭이 있습니다. 첫째 오르내린 산길이 환상적일 만큼 훌륭했습니다. 1시간가량 걸은 군사도로도 좋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른 산길이 걷기에 정말 좋았습니다. 잣나무 숲과 낙엽송림이 일품이었고 길가에 핀 야생화들도 이름은 까먹었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만큼 저와는 친숙한 산식구들이었습니다. 둘째는 시간이 넉넉해 서두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릎이 받는 충격량은 제 몸무게와 걸음걸이의 속도의 곱에 비례합니다. 시간 여유가 없다 싶으면 자연 서두르게 되어 무릎에 무리가 갈 수 있는데, 이번에는 아침부터 산행을 시작한데다 시간이 빡빡하면 갑둔이고개에서 종주산행을 마칠 뜻이어서 서두를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걸었습니다. 이 산을 지켜준 춘천시민들과 제게 건각을 주신 부모님이 고마웠습니다. 산행 내내 저를 지켜봤을 먼 곳의 집사람에게는 이 좋은 길을 혼자 걸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긴 거리의 종주산행을 말끔하게 끝냈다는 자부심으로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는 며칠이 걸릴 것입니다. 애써 가라앉힐 뜻이 없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