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명소 탐방기3(덕구계곡)
탐방일자:2017. 8. 26일(토)
탐방장소:경북울진 덕구계곡
동행 :경동고동문 김종화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가 지나자 여름 내내 맹위를 떨쳤던 더위도 조금씩 사그라지어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해졌습니다. 이 여름의 마지막 나들이인 경북울진의 덕구계곡 탐방 길이 내내 여유로웠던 것은 시간이 넉넉한 데다 계절의 정확한 변화로 전혀 더위가 느껴지지 않아서였습니다. 고교동창들과 함께 나선 명산100산 산행은 이번에는 경상북도 울진에 소재한 해발999m의 응봉산에서 이루어졌습니다. 9년 전 덕구온천을 출발해 이 산 정상을 올랐다가 건너편의 덕풍계곡으로 하산한 일이 있어, 이번에는 산을 오르는 대신 그때 들르지 못한 덕구계곡을 탐방했습니다. 덕구계곡이란 응봉산에서 발원해 동해로 흘러드는 부구천(副邱川)의 상류로 전장이 3.1Km되는 계곡입니다. 전체 길이가 16km인 부국천의 1/5이 채 못 되는 길지 않은 계곡에 노상에서 약알카리성 온천수가 자연 용출되는 덕구원천 원탕, 여러 개의 돌개구멍으로 이루어진 용소폭포와 산행을 마치고 피로를 풀 수 있는 온천관광호텔 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다리(橋梁, Bridge)란 물을 건너거나 또는 한 편의 높은 곳에서 다른 편의 높은 곳으로 건너다닐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을 이르며, 한편과 다른 편 사이에는 그 아래가 물이 흐르거나 낭떠러지여서 그냥은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곳에 놓습니다. 다리의 본원적 기능이 안전한 건넘에 있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이 기능을 만족시키는 전통적 다리로 나무다리와 돌다리가 있었습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지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등의 속담에서 외나무다리와 징검다리의 오랜 역사를 읽을 수 있습니다. 요즘의 다리는 안전한 건넘의 기능에 더해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다리어야 좋은 다리라 할 수 있습니다.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두 곳을 연결하는 본원적 기능만큼 중시되는 것은 주변 환경과 잘 어울려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느냐의 미적 가치입니다. 이번에 덕구계곡을 탐방하면서 비록 확 줄여 만들기는 했지만, 10개국의 이름 난 여러 다리를 직접 보고나자 덕구계곡이야말로 어디에 내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는 훌륭한 다리박물관(Bridge Musium)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서울에서 덕구온천까지는 뫼산산악회의 버스로 이동했습니다. 아침 6시40분에 교대역을 출발한 버스가 대관령을 넘어 10시40분에 덕구온천에 도착했습니다. 이번 나들이를 주관한 뫼산산악회에서 덕구온천-응봉산정상-덕구계곡-덕구온천의 산행코스를 설명하면서 17시가 되면 버스는 무조건 출발할 것이니 반드시 그 안에 돌아와 승차해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서두르면 시간을 맞추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응봉산 정상에서 덕구계곡으로 내려가는 하산 길이 된비알 길이어서 시간에 쫓겨 하산하다가는 무릎에 무리가 가는 것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그리되면 앞으로 내내 산행에 문제가 될 수 있겠다 싶어 과감히 정상등정을 포기하고 덕구계곡만 왕복했습니다. 마침 김종화동문이 저와 함께 덕구계곡으로 가겠다고 나서 둘이서 걸어 올랐습니다.
오전 10시45분 덕구계곡 탐방을 시작했습니다. 덕구온천관광호텔에서 서쪽으로 3-4분 가량 옮겨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덕구계곡 초입에 이르렀습니다. 계곡을 가로질러 놓은 ‘1교량’은 금문교입니다. 금문교(Golden Gate Bridge)는 1937년 미국서부의 샌프란시스코만 위에 놓은 현수교(懸垂橋)로 그 전장이 2,825m에 이릅니다. 현수교란 양쪽 언덕에 줄이나 쇠사슬을 건너지르고 거기에 의지하여 매달아 놓은 다리로 출렁다리가 이에 속합니다. 재작년 봄에 큰아들과 차로 한번 건넌 적이 있어 눈에 익은 금문교를 여기 골짜기에서 다시 보자 안개 속에 숨어버린 미국의 금문교가 떠올랐습니다. 다리 길이를 10여 미터로 줄여 미니아처(miniature)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현수교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습니다.
금문교를 건너 다시 만난 ‘2교량’은 서강대교(西江大橋)입니다. 금문교를 건너 덕구계곡을 오른 쪽에 끼고 오르는 등산로는 온천손님이 많이 다녀서인지 길이 잘 나있었습니다. 오른 쪽 계곡에 은밀하게 자리한 진초록의 소(沼)가 이 계곡의 그윽함을 일러주는 듯 했습니다. 서강대교는 서울의 한강을 건너는 다리로 1999년에 건설된 전장 1,320m의 아치교(Arch橋)입니다. 아치교란 구조물의 자체가 아치로 만들어진 다리로 무지개다리가 바로 아치교입니다. ‘1교량’인 금문교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아취형의 곡선미가 살아 있어 볼 만 했습니다. 한강의 서강대교는 선홍색으로 도색되어 눈에 확 들어왔는데 여기 서강대교는 페인트칠을 하지 않아 화사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덕구계곡에 놓인 ‘3교량’인 노르망디교(Normandy Bridge)는 사장교(斜張橋)입니다. 사장교란 양쪽에 높이 세운 버팀 기둥에서 비스듬히 드리운 쇠줄로 다리 위의 도리를 지탱하게 된 다리를 말하며, 물의 흐름이 빠르고 수심이 깊은 곳에 놓습니다. 노르망디교는 1995년 프랑스에서 노르망디 만 위에 세운 다리로 1999년 일본의 Tataro교가 세워지기까지는 세계제일의 사장교였다 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장교는 1984년 진도의 울돌목 위에 세워진 진도대교입니다. 서강대교에서 노르망디교로 이어지는 계곡은 비교적 경사가 급해 급류도 몇 곳 보였습니다. 일제말기 비행기 연료로 사용하고자 송진(松津)을 채취하느라 나무 허리의 껍질을 벗겨낸 소나무 몇 그루를 보았습니다. 이런 소나무를 주왕산에서 본 적도 있어 일제말 나무껍질을 벗겨 송진을 채취한 것은 전국적으로 행해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호주의 하버교(Harbor Bridge)는 이 계곡의 '4교량'입니다. 1935년 호주의 시드니에 세워진 이 다리는 길이가 503m인 트러스아치교(Trussed Arch橋)입니다. 구조물에 가해지는 힘을 분산시키는 대표적인 방법으로 기본단위인 삼각형을 그물모양으로 짜서 하중을 지탱하는 트러스구조와 누르는 힘을 옆으로 분산시켜 하중을 줄이는 아치구조가 있다 합니다. 트러스아치교는 아치의 가로보인 아치리브(Arch Rib)가 트러스형태로 이루어진 아치교량을 일컫습니다. 참고로 트러스(truss)란 지붕이나 교량을 버티기 위해 떠받치는 구조물을 이릅니다. 하버교 다리 바로 위에 자리한 선녀탕은 용소골에서 수백년 기다린 이무기가 매봉여신의 도움으로 용으로 승천한 후 용소골로 내려와 용유대에서 선녀와 가무를 즐기다가 목욕을 했다하여 이름 지어졌다고 안내판에 적혀 있었습니다.
‘5교량’인 크네이교(Knee Bridge)는 독일의 뒤셀도르프에 설치된 사장교입니다. 1950년에 세워진 이 다리는 연장이 260m에 지나지 않는 비교적 작은 다리입니다. 하버교에서 크네이교로 오르는 길에 이 계곡 최고의 명소인 용소폭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용소골이무기와 마덕구이무기가 서로 먼저 용이 되어 승천하려고 수백년을 기다려왔지만 승천하지 못하여 안절부절하다가 매봉여신의 도움으로 승천하여 용이 되었다는 전설이 서려 있는 용소폭포는 기암괴석사이로 폭포수가 용트림하여 낙수하여 거울같이 맑은 물이 고여 생겼다 합니다. 용소폭포 바로 아래 마당소도 용소폭포에 질세라 그럴 듯한 전설을 갖고 있습니다. 매봉여신이 용으로부터 온천수를 선물로 받고난 후 용소골 이무기와 선녀들에게 마음껏 놀 수 있는 자리를 선물로 내놓은 곳이 마당소라 합니다. 이 전설의 절정은 마당소의 깊이와 관련된 것입니다. 옛 사람들은 마당소의 수심이 하도 깊어 명주실 한 꾸리를 풀어 넣었더니 실 끝이 약 4키로 떨어진 산 너머 미덕구계곡으로 나왔다는 것입니다. 크네이교에서 내려다본 용소폭포는 과연 전설이 서릴 만한 비경이었습니다. 돌개구멍이라 불리는 크고 작은 포토 홀이 여럿 보였는데 이런 포토홀은 응봉산 북쪽 건너편의 덕풍계곡에서도 많이 보았습니다. 응봉산의 계곡은 화강편마암을 기반으로 안산암질 암맥과 큰 돌개구멍이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라 합니다. 마그마가 기반암에 생성된 절리를 따라 주입된 후 굳은 여기 덕구계곡의 암맥은 주변의 암석에 비해 약해서 쉽게 부서져 암맥에 있던 자리가 움푹 패게 되는데 이 팬 자리가 바로 돌개구멍인 것입니다. 협곡 안을 흐르는 계곡 물이 돌개구멍을 휘돌아 떨어져 용소를 만들고 용소 아래 넓은 소에는 여러 마리의 물고기들이 유유 작작 유영하고 있었습니다.
크네이교 다음의 ‘6교량’은 스위스의 고속도로상에 건설된 모토웨이교(Motorway Bridge)입니다. 이 다리는 길이가 120m밖에 안 되는 아치교로 상부 아치가 쌍둥이형상을 하고 있다 합니다. 모토웨이교를 지난 지 얼마 안 되어 다다른 '7교량'은 스페인의 세빌레 엑스포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워진 알라밀로교(Alamillo Bridge)입니다. 알라밀로교를 건너 조금 올라 물빛이 검은색을 띄는 소를 보았습니다. 이제껏 보아온 계곡물이 투명해 보인 것과 달리 검붉은 색을 띄는 것은 “물이 더러워서가 아니고 42.4도의 온천수가 1년 내내 흐르므로 침전된 낙엽들이 더운 물에 데워져서” 그렇다는 것을 “아름다운 5060”카페에 실린 응봉산 산행기를 읽고 알았습니다.
처음으로 나무다리를 건넜습니다. ‘8교량’인 취향교(醉香橋)는 조선조의 고종임금이 왕후를 위하여 경복궁 안에 연못 향원정을 파서 그 안에 인공섬을 조성한 후 이 섬과 연결하고자 1873년 개설한 길이 32m의 목제다리입니다. 난간이 홍적색으로 채색된 취향교를 건넌 후 몇 걸음 걷지 않아 ‘9교량’인 국보 제23호로 지정된 청운대(靑雲臺)와 백운대(白雲臺)에 발을 들였습니다. 앞서 건넜던 8개의 다리가 모두 계곡을 가로질러 그 위에 놓았는데 청운대와 백운대는 오름 길에 계단식으로 놓았습니다. 경주의 불국사를 찾아가면 본전의 석축 앞에 계단을 다리형식으로 만든 특이한 구조의 다리를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이 사바세계로 내려가고자 만든 이 두 다리를 옮겨놓은 것인데 본전 건물도 같이 옮겨 놓지 못해 실물과는 많이 동떨어져 보였습니다. 신라 경덕왕 10년인 751년에 세워졌으니 덕구계곡에 초대된 13개의 다리 중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라 하겠습니다.
이 계곡의 ‘10교량’인 트리니티교(Trinity Foot Bridge)를 건너며 동행한 친구가 트리니티(Trinity)란 삼위일체를 뜻하는 것으로 성공회에서 자주 쓰는 용어라면서, 이 다리는 아마도 영국이 놓은 다리일 것이라고 말했는데, 과연 이 다리는 영국이 놓은 사장교였습니다. 1995년 잉글랜드 맨체스터주 세퍼드의 푸트 강(Foot River)을 가로질러 놓은 트리니티교는 인도교로 램프상으로 보행위치에 따라 3가지의 광경을 볼 수 있다 하여 이름이 붙여진 것 같습니다. 트리니티교를 지나 시멘트로 된 원탁테이블이 세워진 간이쉼터에 도착한 시각은 덕구호텔 출발 1시간32분 후인 12시17분이었습니다. 덕구호텔과의 고도차가 100여m정도 밖에 나지 않을 정도로 경사가 완만해 시간 반을 걸어 올라왔어도 힘든 줄 전혀 몰랐습니다. 벤치에 앉아 잠시 숨을 돌린 후 다시 일어나 계곡 오름을 이어갔습니다.
계곡에서 벗어나 산길을 걷다가 계곡과 나란한 방향으로 설치한 데크 길을 걸어 ‘11교량’인 일본의 도모에가와교(Domoegawa Bridge)를 건넜습니다. 혹시 이 계곡에 이 많은 다리를 놓은 것이 한국전쟁 참전국에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서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확인한 것은 도모에가와교를 보고나서였습니다. 1996년 일본 사이타마현의 치치부시에 건설된 이 다리는 길이 100m의 아치교로 일본교량의 특징적 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합니다. 이 다리에서 멀지 않은 정자는 점심을 들고 있는 사람들로 꽉 찼습니다. 조금 더 올라가 만난 ‘12교량’은 중국의 장제이교(Jiaqngjiehe Bridge)입니다. 1995년 중국귀주성의 귀주에 놓은 이 다리는 트러스교로 그 연장이 330m입니다. 다리 상판에서 계곡하단까지의 거리가 약461m에 이르는 중국최대의 협곡에 설치된 장제이교를 옮겨 건설한 이 다리를 계곡 상류에 놓아 계곡 밑바닥이 별로 깊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12개의 다리를 지나 원탕에 도착하자 온천수가 분수되어 솟아올랐습니다. 원탕의 온천수는 온도가 섭씨 42도나 되며 일 년 내내 쉬지 않고 용출된다 합니다. 여기 온천수가 송수관을 통해 저 아래 온천장으로 공급된다하니 여기서 발을 담그고 쉬어가면 하산해서 굳이 온천장을 들르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습니다. 계곡 건너 산신각 아래 공터에서 점심 식사를 한 후 계곡의 냉수와 원탕의 원천수를 오가며 탁족을 즐기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이제 충분히 쉬었다 했는데 응봉산 정상을 오른 뫼산산악회의 선두들이 앞을 지나가 그만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올라온 길로 되 내려가는 길이 서두르지 않아도 빠른 것은 웬만한 것은 올라올 때 다 눈여겨 보아서입니다. 정자를 지나 효자샘 샘터에서 받아먹은 물은 온천물이 아니어서 차디찼습니다. 두 나무의 줄기가 5-6m높이에서 이어진 연리지는 떨어진 거리가 너무 가까워 자세히 보고서야 연리지인 것을 알았습니다. ‘1교량’인 금문교를 건너 산림감시초소에 다다랐는데도 정상을 올라간 고교동문들이 보이지 않아 기다렸다가 같이 귀경버스에 올랐습니다.
집에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면서 덕풍계곡의 마지막 다리인 ‘13교량’을 들르지 않고 그냥 내려온 것을 알았습니다. 정상을 오른 친구가 하산 길에 찍은 것을 밴드에 올려 여기에 옮겨 적습니다. 이 계곡 마지막 다리인 ‘13교량’은 원탕에서 더 올라가야 이를 수 있는 1890년에 건설된 영국의 포스교(Forth Railway Bridge)입니다. 연장 2,530m의 트러스교인 이 다리는 건설 당시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철의 괴물이라고 비난도 받기도 했다는데 여기 포스교는 사진으로 보아 목제다리인 것 같았습니다.
오지의 계곡에 다른 나라 다리를 끌어온 것이 과연 잘한 일인가는 논쟁의 여지가 있기는 합니다만, 제게는 아이디어가 참으로 신선해 보였습니다. 계곡을 걸으며 글로벌한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좋았고 앞으로 각국의 다리들이 생산해낼 이런 저런 전설들이 기대됐습니다.
십 수 년 전 파리에서 세느강을 배를 타고 유람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세느강 위에 놓인 여러 다리들을 보고 세느강이야 말로 세계 최고의 다리박물관이다 했습니다. 그 많은 다리들이 제각기 다른 양식으로 축조되어 외관은 각기 달랐지만 하나같이 아름다웠습니다. 강변의 건물도 한강처럼 아파트만 도열해 있는 것이 아니고 시대를 달리하는 다양한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세워져 세느강과 잘 어울렸습니다. 시인 아폴리네르가 “미라보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우리네 사랑도 흘러내린다”고 노래할 수 있었던 것은 세느강의 다리박물관 덕분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덕구계곡이 다리박물관으로써 명성을 얻으려면 아폴리네르 같은 시인을 만나야 합니다. 여기 다리들의 주인나라 시인들을 초대해 백일장이라도 열어보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면서 탐방기를 맺습니다.
*위 글 작성에 각 다리 앞에 세워진 안내문을 전적으로 참고했습니다.
<탐방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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