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II.시인마뇽의 명소탐방/국내명소 탐방기

80.실학명소 탐방기4(남양주실학박물관)

시인마뇽 2018. 4. 7. 01:41

                                                 실학명소 탐방기4(실학박물관)

 

                                         *탐방일자:2017. 10. 20()

                                         *탐방지   :경기도 남양주시 소재 실학박물관

                                         *동행      :나홀로

 

 

 

 

 

 

 

  제가 남양주의 실학박물관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 아닙니다. 2011년 여름 방송대 국문과 학우들과 함께 탐방했고, 작년 여름 다산 정약용선생의 생가를 탐방할 때도 들렀습니다. 첫 번째 탐방 때는 전시실을 둘러보는 것으로 그쳤지만, 두 번째 탐방 때는 탐방기 작성에 긴요한 사진도 충분히 찍었습니다. 그럼에도 또 다시 이 박물관을 찾은 것은 앞서 다녀온 두 번의 탐방만으로는 조선시대 실학을 개괄하는 탐방기를 쓰기가 어려워서였습니다.

 

   저는 이제까지 3편의 실학명소탐방기를 쓰면서 제 나름 실학을 공부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덕분에 성호 이익선생, 다산 정약용선생과 추사 김정희 선생의 생애와 이분들이 추구한 실학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이 탐방기들은 개별적이고 각론적인 것들로 실학 전체를 묶어 다룬 것은 아닙니다. 실학 전체를 개괄하는 탐방기를 쓰고 싶어 이번에 다시 남양주의 실학박물관을 다시 찾아갔습니다.

 

   실학박물관 탐방에 앞서 박물관에서 2-3m 가량 떨어진 실학생태공원부터 둘러보았습니다. 실학생태공원을 먼저 들른 것은 그리하지 않으면 이번에도 시간에 쫓겨 들르지 못하고 그냥 돌아갈까 염려해서였습니다. 실학생태공원이 자리한 마재마을은 두물머리 남단의 강변 마을로 1762년 다산 정약용선생이 태어난 곳입니다. 택시기사분의 전언에 따르면 저 아래 팔당에 댐을 막기 전에는 강변에 하얀 모래가 많았다 합니다. 강변에 조성한 생태공원은 이름 그대로 생태공원이어서인지 인공적인 구축물이나 조형물이 별로 없었고, 전망대 등 몇 안 되는 그것들도 결코 주변 경관에 잘 어울려 눈에 거슬리지 않았습니다. 늦가을 아침 햇살이 살가울 만큼 쌀쌀한 기운이 강변의 생태공원을 휘감고 있어 공원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강 속에 드리운 산들의 그림자가 정겹게 느껴지는 것은 그 산들을 벌써 올라보아서일 것입니다. 어느새 세를 다한 이 가을의 뒷모습을 지켜보노라니 흐르는 것은 강물만이 아니고 세월도 있음을 새삼 느꼈습니다. 태백산의 검룡소에서 발원한 한강이 금강산에서 시작된 북한강의 물을 받아 비로소 한줄기가 되는 곳이 바로 여기 두물머리입니다. 팔당에 댐을 만들기 전에도 이곳의 수량은 어느 곳보다 풍부했을 것입니다. 다산 선생이 이곳에서 태어나 15년을 살았고 또 유배를 마친 후에도 18년을 살았기에 우리나라 강줄기에 관한 최고의 저서인 대동수경을 지어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실학박물관탐방은 12시반경부터 시작됐습니다. 양옥으로 지어진 2층 건물의 실학박물관에는 1층에 기획전시실과 2층에 3개의 상설전시실 등 모두 4개의 전시실이 있습니다. 1층의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경계 없는 사유, 홍대용 2017”은 나중에 보기로 하고, 바로 2층으로 올라가 상설전시장부터 둘러보았습니다. 이번의 전시실 관람은 책 읽듯이 했습니다. 저는 일단 책을 잡고나면 속독으로 책 내용의 대강을 파악한 후, 필요하면 재독, 삼독을 해 필요한 내용들을 제 것으로 만들어 오곤 했는데, 여기 전시실 관람도 1차로 제1, 2, 3 전시실 모두를 휘 둘러본 후, 다시 한 번 돌면서 차분히 살펴보았습니다.

 

   실학(實學)이란 본래 유학자들이 스스로의 학문인 유학(儒學)을 허학(虛學)이라고 비판한 도교나 불교와 구별하기 위하여 사용해온 말이라 합니다. 조선후기에 이르러 주자학의 비판 극복을 추구한 학자들이 학문적 지침을 실학이라 했는데 오늘날 실학은 후자를 이릅니다.

 

   제1전시실의 주제는 실학의 형성입니다. ‘개혁의 전개’, ‘조선사회의 변화’, ‘서양문물의 전래실학의 탄생등을 소주제로 한 전시물이 진열된 제1전시실을 둘러봄으로써 실학형성의 대강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학계에서는 대체로 실학적 학풍의 선구로 이수광(李睟光, 1563-1629)지봉유설(芝峯類說)을 뽑습니다. 마테오리치의 천주실의와 세계50여국의 기후, 풍속 및 역사가 소개된 지봉유설(芝峯類說)은 중국 밖의 세계에 대한 인식 등 실학의 선구적 세계인식을 잘 보여주는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는 저서입니다. 17세기 후반 반계수록(磻溪隧錄)을 저술한 유형(柳馨遠, 1622-1673)에 의해 실학은 더욱 공고화됩니다.반계수록(磻溪隧錄)은 삼대 왕정의 원리를 이 땅에 살려내어 조선후기의 모순에 가득찬 현실을 근원적으로 개혁한 것으로써 국가체제를 새롭게 편성하려는 변법론이었다고 한국 실학의 종합고찰은 적고 있습니다.

 

   16세기 중엽에서 17세기 중에 조선이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 것은 서양의 새로운 문명이 흘러들어오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의 큰 전쟁을 치른 때문이라고 박물관의 전시자료는 말합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한 조선 정부의 대응은 일련의 개혁조치로, 그중 대표적인 것이 대동법입니다. 대동법이란 각 고을의 지역 특산품을 바치는 공물제도를 폐하고 토지면적에 따라 단일품목인 쌀로 징수하는 제도입니다. 대동법의 시행으로 부호들의 부담이 늘어나고 농민의 부담이 줄었으며 아울러 상품화폐경제가 발전합니다. 조선후기의 변화와 개혁으로 학문의 대상이 도덕으로부터 현실문제로 옮겨가면서 태동한 것이 바로 실학입니다. 1전시실에 주요 전시물로 진열된 화폐 상평통보, 시계 자명종, 유형원의 저서 반계수록등을 살펴보면서 실학의 태동 현장에 서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2전시실의 주제는 실학의 전개입니다. 2전시실은 2층 상설전시장의 중심 되는 전시실로, 이 방에 경세치용파’, ‘이용후생파’, ‘실사구시파’, ‘조선학’, ‘근대로의 가교’, ‘중국의 고증학과 일본의 고학등을 소주제로 한 다양한 전시물이 전시되어 있어 한참 동안 머무르며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18세기 실학의 전개과정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은 학파의 형성입니다. 실학을 이끈 학파로는 경세치용파, 이용후생파, 실사구시파 등의 세 학파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학파인 경세치용학파는 근기남인출신의 성호 이익(李瀷, 1681-1763)이 주도한 중농파로, 백성의 생활안정을 위해 실용의 입장에서 국가제도를 개혁하고자 하는 학파를 이릅니다. 조선후기 실학자의 비조이면서 경세치용파의 종주인 성호이익은 농민의 입장에서 농업경제를 안정시키고자 한전론 시행을 주장했고, 40년 동안의 연구 성과를 30책 총3,007편의 주제로 정리해 성호사설을 저술합니다. 이익의 경세치용파는 택리지의 이중환, 동사강목의 안정복을 거쳐 다산 정약용에 이르러 절정에 이릅니다. 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근기남인계 실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참조하여 경세치용학이 실학을 대표하는 학문으로 자리 잡는데 큰 역할을 수행했을 뿐 아니라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등을 저술해 실학체계를 완성하기에 이릅니다.

 

   이용후생파는 경세치용파와 쌍벽을 이룬 학파입니다. 북학파로도 불리는 이용후생학파는 서인, 노론 출신의 홍대용과 박지원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진 학파로 농업을 중시하면서도 상공업에 관심을 기울여 중상학파로도 불립니다. 이용후생학파는 사회적 허위의식과 미신을 극복하고 백성들의 일상생활에 쓸모 있는 학문을 지향하는 것을 학문적 목표로 삼고, 대표적 허위의식인 소중화 의식을 극복하고 청과 서양으로부터 선진적인 문물을 수입해 조선을 부흥시키고자 합니다. 연암 박지원(朴趾源, 1737-1805)1780년 청의 열하를 다녀온 뒤 청나라의 문물제도와 사회경제 등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그곳의 문인 및 명사들과 교류하여 그 소감을 자세히 기록한 열하일기를 지어 이용후생의 참 뜻을 널리 알립니다. 이용후생파의 대표적인 인물로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 서유구, 이덕무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실사구시학파를 연 인물은 북학파인 박제가의 제자인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입니다. 실사구시란 사실을 밝혀서 진리를 추구한다는 뜻으로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아무 것도 믿지 않는다는 학문정신을 이릅니다. 실사구시학파가 앞의 두 학파와 다른 점은 중농이나 중상과 같이 백성들의 삶과 직접 관계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김정희가 청의 고증학자들과 교유하는 과정에서 성립된 것이어서 고증학파로도 불립니다. 김정희가 북한산 비봉의 비석이 진흥왕의 순수비임을 밝힐 수 있었던 것은 실사구시의 엄격한 학문정신 덕분일 것입니다.

 

 

   실학은 조선사회의 개혁을 지향했고, 그런 노력이 학문적으로는 종래 중국의 학풍을 버리고 연구하는 조선학으로 결실됩니다. 조선학의 시작은 역사학 연구에서 출발하여 언어학, 농학, 지리학, 과학, 의학, 백과전서 등의 연구로 전개됩니다. 조선, 그 자체를 학문연구의 대상으로 삼은 조선학은 각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저서를 결실합니다. 조선의 역사연구는 유득공의 발해고, 안정복의 동사강목, 한치윤의 해동역사, 언어생활연구는 류희의 언문지, 영토와 지리연구는 신경준의 도로고, 이중환의 택리지, 정약용의 아방강역고, 김정호의 대동지지, 과학과 의학 연구는 정약용의 마과회통, 최한기의 지구전요, 남병길의 성경, 지식의 생활화 및 백과사전 연구는 이익의 성호사설, 이덕무의 청장관전서, 이규경의 오주언문장전산고, 농업기ᄉᆍᆯ 및 경영 연구는 홍만선의 산림경제, 서유구의 임원경제지를 산출합니다.

 

   누가 이 땅에서 실학을 이끌었는가는 일러주는 전시물은 실사구시라는 제목의 두 종류 실학자명단입니다. 한 표는 17-18세기에 걸쳐 활동한 세 학파의 인물들을 도표화한 것이고 또 한 표는 실학의 선구 16명과 실학의 발전 32명 등 모두 48명의 실학자명단입니다. 선구자 명단의 첫머리에 한백겸이 자리했고 그 다음을 이수광이 이어간 것이 새로웠으며, 이 명단에 홍대용보다 앞서 지전설을 주장한 김석문도 들어있었습니다.

 

   제3전시실의 주제는 실학의 과학입니다. 16세기 이후 동아시아에서 서양의 학문과 문물이 전해지면서 조선의 천문학과 지리학이 크게 발전합니다.

 

  천문학의 발달은 천문기기의 제작에 힘입어서입니다. 1669년 송이영은 태양계와 행성등 천체의 위치를 측정하는 기구인 혼천의를 제작하고, 실학자 유금은 이슬람의 천문기기인 아스트로라브를 만듭니다. 19세기 중반 남병길은 적도경위기를 만들고, 박규수는 실용적인 천문관측기구인 간평의와 평혼의를 제작합니다.1653년 중국에서 시헌력을 도입해 계절의 변화를 음양오행의 순환에 따른 것이 아니고 태양과 지구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의 천문학 발전의 결과입니다.

 

   지리학의 발전은 새로운 지도제작으로 실현됩니다. 1708년 마테오 리치의 곤여만국전도를 필두로 서양식 세계지도가 전래되면서 새로운 우주관과 세계관이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1861년 김정호가 편찬, 간행한 대동여지도는 가로가 약4.2m, 세로가 6.6m가 되는 조선시대 최고의 전국지도로, 남북을 120리 간격으로 하여 22층으로 구분하고 동서를 80리씩으로 구분하여 동서로 접으면 휴대가 간편한 지도첩이 됩니다.

 

   제3전시실의 전시물 중 눈길을 끈 것은 조선 천구의로 남병길(남병길, 1820-1869)이 지은 성경(星鏡)에 따라 만든 것입니다.

 

   실학파의 인맥은 구한말 개화파로 이어집니다. 박지원-박제가-김정희의 실학파는 오경석-유홍기-박규수를 거쳐 이동인과 김옥균, 박영효, 박영식, 홍영식, 서광범, 그리고 김윤식, 신길준 등의 개화파로 이어졌지만, 조선의 멸망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2층 전시실에서 내려가 들른 특별전시실의 테마는 경계 없는 사유 홍대용2017”이었습니다. 홍대용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고자 한 것 같은데 쉽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실학박물관 탐방을 마치고 이 박물관에서 발간한 한국 실학의 종합고찰을 사 온 것이 이번 탐방의 가장 확실한 수확입니다. 실학을 개괄적으로 이해하는데 이만한 책이 없다 싶어 이번 탐방기를 쓰면서 많이 참고했습니다. 실학을 개괄할 만큼 실력이 뒷받침 되지 못해 이번 탐방은 실학의 세 학파를 이해한 것으로 만족하기로 하고, 시간 닿는 대로 실학명소탐방은 계속 이어갈 뜻입니다.

 

 

                                                                                     

                                                                 <탐방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