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명소 탐방기1(선유도공원)
*탐방일자 :2017. 11. 25일(토)
* 탐방지 :서울시 한강의 선유도
* 동행 :경동고 김일섭, 김종화, 이규성, 우명길 동문
한강의 섬에 첫 발을 들인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인 1965년 가을입니다. 월남파병부대의 환송식에 참가하기 위해 처음 가본 여의도는 한 가운데에 비행장이 들어섰고, 그 주위는 대부분이 모래밭이어서 땅콩을 재배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먼지가 펄펄 나는 모래밭을 걸어가 참석한 여의도 환송식장은 제가 목도한 최초의 역사적 현장이어서 반세기가 지난 오늘에도 그때의 광경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모래섬에서 최고의 금융 중심지로 변신한 여의도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이 섬과의 인연은 끝나지 않아 1990년대에 3년여 이 섬에 있는 한 회사로 출퇴근을 했고, 지금은 두 아들이 여의도의 금융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제가 두 번째로 땅을 밟은 한강의 섬은 선유도입니다. 섬 모양이 배를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선유도는 섬 전체가 공원으로 조성되어 선유도공원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원래 선유봉이라는 산봉우리가 자리했던 뭍이었는데, 1925년 큰 비로 물에 잠긴 후 봉우리만 보이는 섬으로 바뀌었다 합니다. 1928년 인근의 여의도에 비행장을 만들 때 이 섬의 돌을 갖다 쓰느라 산봉우리를 헐어 평평하게 되었다 하니 여의도와의 인연이 참으로 모질다 싶었습니다. 이 섬에 정수장이 들어선 것은 1978년의 일입니다. 한강의 물을 끌어들여 하루에 40만 톤의 수도 물을 생산한 선유도 정수장은 1999년 폐쇄된 후 생태공원으로 탈바꿈해 오늘의 선유도공원이 된 것입니다.
선유도공원의 길 안내는 지근거리의 목동에서 살고 있는 김종화 고교동문이 맡아주었습니다. 한 고교동창이 목동의 교회에서 아들 결혼식을 가져 식장에 참석했다가 몇몇 동문과 뜻을 모아 인근의 선유도공원으로 이동했습니다.
한강의 남쪽인 목동에서 선유교를 건너 이 섬에 들어갔습니다. 아취형의 선유교는 새 천년을 맞이하여 프랑스 2000년위원회와 서울시가 공동기념사업으로 놓은 보행교입니다. 가늘게 내리던 가을비가 점점 굵어져 보행교를 지날 때는 우산을 받쳐 들어야 했습니다. 굵은 빗줄기가 세를 더하자 우산으로 온 몸을 가리기가 힘들어졌습니다. 확연하게 기온이 떨어지고 우산 안으로 들이친 비로 옷이 젖어 냉기가 느껴졌습니다. 비를 피해 따끈한 커피를 마실 만한 공간을 찾던 중 ‘카페테리아 나루’가 눈에 띄어, 그 안으로 들어가 우선 따끈한 커피로 몸을 따뜻하게 했습니다. 맥주 한 캔을 사마시면서 조망한 창밖의 한강은 온 몸으로 바를 맞고 있어 쓸쓸해 보였습니다. 강 건너 북쪽으로 카톨릭 성지인 절두산이 확 눈에 들어온 것은 제가 카톨릭신자여서 그랬을 것입니다.
줄기차게 내리는 가을비가 나뭇가지로부터 떨쳐낸 낙엽들이 길 위에 흩뿌려져 비를 흠뻑 맞고 있었습니다. 한 겨울에 더 이상 뿌리로부터 물을 끌어올리지 못하도록 해서 가지들이 얼어 죽지 않도록 하려면 나뭇가지로부터 나뭇잎을 떨쳐내는 것은 필수적인 일입니다. 이 일은 비가 맡아서 하기도 하고, 바람이 나서서 도와주기도 합니다만, 이번처럼 비바람이 불 때 그 작업효과가 가장 확실합니다. 한강 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선유도의 비바람은 결코 약하지 않아 나뭇가지들이 떨쳐낸 나뭇잎들이 땅바닥에 떨어져 이리 밀리고 저리 쓸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방금 떨어진 낙엽들을 밟고 지나가는 것을 보노라니 여름 내내 그렇게도 푸르렀던 나뭇잎들도 생명을 잃고 땅바닥에 떨어지자 한낱 사물로 취급될 수밖에 없구나 싶었습니다.
카페에서 나와 찾아 간 곳은 ‘시간의 정원’입니다. 약품침전지를 재활용하여 다양한 식물의 세계로 꾸민 공간으로 방향원, 덩굴원, 색채원, 소리의 정원, 이끼원, 고사리 원 등 작은 주제로 꾸민 정원을 감상할 수 있다고 안내팜플렛은 적고 있었습니다. 팜플렛이 전해주는 이 정원의 다양함은 여름날의 이야기일 뿐, 어느새 겨울로 한 발 들어서 잎이 거의 다 진 이번 탐방에서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과지를 재활용한 수생식물 정원인 수생식물원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수생식물의 모습과 생장과정을 가까이에서 관찰하기에 적당치 못했습니다.
이채로웠던 것은 정수지의 콘크리트 상판 지붕을 들어내고 남긴 녹색기둥의 정원입니다. 한 여름에 기둥과 담을 뒤덮었을 담쟁이 잎들은 별로 많이 붙어 있지 않았지만 넝쿨의 줄기는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덜렁 30개의 기둥이 도열해 있는 이 정원에서 질서감과 스산함을 함께 느낀 데는 주룩주룩 내리는 늦가을 비도 한 몫 했습니다.
스물한 해 동안 서울시민들에게 상수도를 공급하는 정수장으로 기능했던 선유도의 옛 모습이 비교적 잘 지켜진 곳은 선유도이야기관입니다. 이 전시관은 선유도와 한강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 전시공간입니다. 안내팜플렛은 이 전시관이 장방형구조의 송수펌프실을 재활용했고 2층의 사색공간, 1층에 기획전시관, 지하층 영상 상설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상세히 적고 있습니다. 더 이상 우산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실내공간이어서 아래 위층을 오가며 전시물을 보았고 또 사진도 찍었습니다.
이번에 선유도를 찾아간 것은 그동안 몰랐던 것을 배우고자 하는 데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52년 전 월남파병용사들을 환송하기 위해 여의도를 함께 갔던 오랜 지기들과 그동안 살아온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것도 한 이유가 되었기에 비가 내린다 해서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늦가을에 겨울을 재촉하는 비를 맞으며 한 때 젊음의 상징이었던 나뭇잎들을 떨쳐내는 나무들을 보면서 70줄에 막 들어선 저희의 삶도 이와 같겠다 싶어 생각하는 바가 많았습니다. 나뭇잎을 떨쳐냈다 해서 나무들의 삶이 끝나지 않듯이 저희의 살아가는 이야기도 여기서 끝낼 수는 없습니다. 버스를 타고 양화대교를 건너 함께 영등포 시장에서 내린 것은 선유도공원에서 못 다한 이야기를 술 한잔 마시면서 이어가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래서 그리했습니다.
이번 선유도공원 탐방기는 이 섬을 에워싸고 흐르는 한강 이야기를 한 쪽지 덧붙이는 것으로 매듭짓고자 합니다. 우리의 삶을 담는 시간이 역사라면, 공간은 국토가 될 것이라고 갈파한 박양호님은 그의 글 「강과 한국인의 삶」에서 우리 국토공간의 특색을 ‘3해(海) 3다(多)의 국토’라 했습니다. 삼다는 강, 산, 섬이 많다는 것으로, 섬의 거의 다가 바다에 있는 것을 감안하면 ‘바다, 강, 산’이 하나의 틀 속에서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공간적 원형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겠습니다. 삼다 중 강이 중요한 것은 강은 소통과 통합의 문화적 실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강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구축한 역사문명의 토대가 된다는 것도 같은 뜻에서 이야기되는 것입니다.
한강은 한반도에서 으뜸가는 강입니다. 우리 역사상 어느 나라든 한반도에서 주인 행세를 하려면 반드시 한강유역을 확보해야 했던 것은 한강이 으뜸 강이어서 그러했습니다. 이 으뜸 강인 한강을 자연생태의 한강이자 문화역사의 한강이라고 말한 분은 소설가 박태순 선생입니다. 금강산, 설악산, 오대산, 태백산 등 백두대간 산골 샘물들을 끌어 모아 강원도, 충청도, 경기도 일대 녹색대지의 온갖 생명들의 젖줄이 되고, 이어서 메갈로폴리스 서울의 교통환경 편의와 상수원 역할을 충족시키면서 마침내 서해바다에 닿게 되는 물줄기가 곧 한강이라고 했습니다. 한강이 없는 서울을 상상할 수 없는 것은 한강이 바로 서울시민에는 무엇보다 중요한 생명의 젖줄이기 때문입니다.
강물이 생명의 젖줄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상수도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상수도원인 강에서 물을 끌어대어 수돗물로 바꾸는 일은 정수장이 맡아서 합니다. 선유도가 22년간 이 일을 해낸 것입니다. 강 하류에 치우쳐 있어 깨끗한 강물의 취수가 점점 어려워지자 마침내 상류의 정수장으로 그 기능을 넘기고 생태공원으로 탈바꿈한 선유도의 변신을 직접 보고나자 제게도 한 번 크게 변신을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새삼 삶의 의지를 다져 봅니다.
<탐방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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