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II.시인마뇽의 명소탐방/국내명소 탐방기

78.담양명소탐방기1(소쇄원, 한국가사문학관, 식영정, 면앙정)

시인마뇽 2017. 7. 21. 00:05

                                                         담양명소탐방기1

 

 

                                               *탐방일자:2017. 7. 19()

                                               *탐방지   :전남 담양 소재 소쇄원, 한국가사문학관

                                                                   식영정,    면앙정

                                               *동행     :쌍용제지 양방현/손병운 사우

 

 

 

 

     나이 들어 방송대에서 국문학을 공부한 것이 이토록 제 삶을 풍성하게 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젊어서는 화학을 전공해 세상만사를 웬만하면 과학에 근거를 두고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보고 또 해석하려고 노력했던 제가 새롭게 국문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백두대간 종주를 마치고나서입니다

 

   한반도의 척추에 해당하는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이르는 것으로 그 전장이 1,630Km에 달하는데, 제가 종주한 백두대간은 남한 땅의 진부령에서 지리산에 이르는 675Km에 불과합니다. 휴전선이 가로막아 북한 땅의 백두대간을 이어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고자 눈길을 돌린 것이 백두대간에서 뻗어나간 남한 땅의 9개 정맥종주였습니다. 정맥 길은 대간 길보다 훨씬 한갓져 하루 종일 걸어도 한 사람도 못 만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혼자 걷는 긴 시간의 종주산행이 외롭지 않고 두렵지 않았던 것은 우리의 산하와 그 산하에 자리해 살고 있는 숱한 산 식구들과의 대화를 시도해서였습니다.

 

   저의 대간이나 정맥 종주는 보통 8-10시간 정도 걸리는 긴 산행이어서 우리의 산을 사랑하고 아끼는 것만으로는 산식구들과 계속 대화를 이어가는 간다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우리 산에 관련된 것들을 더 넓혀 공부하는 것이었습니다. 도감을 찾아가며 야생화와 나무의 이름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보다 깊이 있는 대화를 위해 우리나라 지리와 역사를 다시 공부하려던 차에 한국방송대는 수능시험을 보지 않고도 들어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홈피에 들어가보았습니다. 기대했던 역사학과나 지리학과가 보이지 않아 실망스러웠지만, 이대로 끝낼 일이 아니다 싶어 궁리 끝에 그 대안으로 국문학과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러자 우리의 선조들은 과연 우리의 산하에서 무엇을 보았고 어떻게 교감했으며 어떻게 문학작품으로 형상화했는지 공부해보고 싶은 욕심이 동했습니다. 2010년 국문과에 입학해 2014년에 졸업하기까지 4년 동안 정말 열심히 공부했으며, 그 덕분에 세상을 다른 관점에서 새롭게 볼 수 있는 눈이 생겨 새삼 볼거리도 많아졌고 덩달아 제 삶도 즐거워졌습니다.

 

   이번에 찾아간 탐방지는 전남 담양에 자리한 소쇄원, 식영정과 면앙정 등의 역사적 명소와 한국가사문학관입니다. 1990년대 중반 2년 반 동안 충호남영업부장으로 일할 때 이 명소들을숱하게 지나갔으면서도 아예 들를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바빠서가 아니고 우리 고적에 별반 관심이 없어서였습니다. 뒤늦게나마 선현들의 옛 자취를 찾아 탐방 길에 나서 삶의 즐거움을 더해갈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방송대에서 국문학을 공부한 덕분입니다. 이번 담양명소탐방은 20여년전 호남지역에서 같이 일했던 광주의 양방현사장과 서울의 손병운사장이 함께 해주어 더욱 뜻 깊었습니다.

 

   

1.소쇄원(瀟灑院)

 

 

   담양 땅에 발을 들여 첫 번째로 찾아간 명소는 명승제 40호로 지정된 별서정원 소쇄원(瀟灑院)입니다. 별서(別墅)란 농장이나 뜰에 한적하게 따로 지은 집을 이릅니다.

 

소쇄원(瀟灑院)은 조선중기 소쇄옹(瀟灑翁) 양산보(梁山甫,1503-1557)가 만든 대표적인 민간의 별서정원(別墅庭園)입니다. 1519년에 일어난 기묘사화로 스승인 조광조가 능주로 유배되고 사사되는 것을 지켜본 양산보는 세속에 뜻을 버리고 낙향했습니다. 양산보가 향리인 지석마을에 조성하기 시작한 소쇄원은 아들 자징과 손자 천운대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쳐 완성되었다고 안내책자는 적고 있습니다. 벼슬살이를 전혀 하지 않은 양산보가 계곡의 굴곡진 경사면들을 계단상으로 처리해 제월당(霽月堂)과 광풍각(光風閣), 그리고 대봉대(待鳳臺)를 짓고 연못 연지(蓮池)를 만들고 나무를 심고 다리를 놓는 등 노단식 정원으로 꾸며낼 수 있었던 것은 외가의 도움 덕분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양산보는 호남문단을 연 외종형 면앙 송순, 하서 김인후, 석천 임억령과 미암 유희춘 등과 교유한 바, 이들도 얼마만큼은 도움을 주었을 것입니다.

 

   소쇄원 입구 주차장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 폭염주의보를 발하게 한 후덥지근한 더위가 온 몸을 엄습해왔습니다. 주차장에서 차도를 건너 계곡 옆으로 낸 길을 따라 걸으며 길 양 옆으로 손목 굵기의 푸른 대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는 것을 보고 소쇄원은 과연 담양의 명소이다 했습니다. 작은 연못 연지를 조금 지나 조그마한 축대 위에 지은 삿갓지붕의 작은 모정(茅亭)인 대봉대에 이르자 소쇄원 일부 구역의 보수공사로 그 위 애양단으로 올라갈 수 없었습니다. 대봉대에서 왼쪽으로 조금 내려가 실개천 건너면 광풍각과 제월당에 닿는데 이 두곳도 출입이 금지되어 대봉대에서 사진을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장마철인데도 계곡의 굴곡진 경사면으로 흐르는 물이 많지 않아 사진에 나오는 시원한 폭포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제월당에 걸린 편액을 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이번 소쇄원탐방은 보수공사로 반쪽짜리 탐방일 수밖에 없다 싶어 더 이상 머무르지 않고 곧바로 주차장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번 소쇄원탐방으로 소쇄옹 양산보를 만나볼 수 있었던 것이 제게는 큰 수확입니다. 이분은 동행한 양사장의 선조로 하서 김인후와는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합니다. 퇴계 이황과 사단칠정에 관해 논쟁을 벌였던 기대승의 인물평대로 소쇄옹 양산보가 겉으로는 여간 부드러운 것 같으나 내심은 강직한 사람이며 만사를 낙관하는 군자였기에 보길도의 부용동원림과 더불어 자연과 인공을 조화시킨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별서(別墅) 정원인 소쇄원을 조성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2.한국가사문학관(韓國歌辭文學館)

 

 

   2008년 봄 호남정맥의 유둔재-입석리고개 구간을 종주하면서 한국가사문학관에서 멀지 않은 삿갓봉을 지난 일이 있습니다. 광주시와 화순시를 경계 짓는 유둔재를 출발해 이 문학관을 에워싸고 있는 산줄기를 따라 걸으면서 언제고 시간을 내어 저 아래 가사문학관을 찾아가 송강 정철을 만나보자고 마음먹었는데, 9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마음먹은 바를 이뤘습니다. 당시는 저 아래 한국가사문학관이 송강 정철을 기리는 가사문학관으로만 알았지 한국의 가사문학을 모두 어우르는 곳인줄은 몰랐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송강 정철은 이 지역 창평에 머무르면서 사마인곡, 속미인곡과 성산별곡을 지어 우리나라 가사문학을 꽃피운 인물입니다.  구운몽의 작가 김만중도 사미인곡, 속미인곡과 관동별곡을 일컬어 하늘에서 부여받은 천재성이 저절로 펴지고 세속의 더러움이 없어서 예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참된 가사는 이 세편뿐이다라고 극찬했으니 말입니다.

    

 

   가사(歌辭)란 조선 초기에 나타난 시가와 산문 중간 형태의 문학을 이릅니다. 그 형식은 주로 4음보의 율문(律文)으로 3.4조 또는 4.4조를 기조로 하며 행수(行數)에는 제한이 없으며, 마지막 행이 시장의 종장과 같은 형식인 것을 정격(正格), 그렇지 않은 것을 변격(變格)이라 한다고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정의되어 있습니다. 우리 고유의 시가인 시조(時調)는 주로 사대부들이 짓고 즐긴데 반해 시가와 산문 중간 형태인 가사((歌辭)는 사대부는 물론 여성들도 지을 만큼 폭넓게 지어졌고 향유되었습니다. 향유층이 제한되었던 시조는 어렵게나마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데, 향유층이 넓었던 가사가 우리 문학에서 사라진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담양의 한국가사문학관은 소쇄원에서 북쪽으로 조금만 이동하면 바로 닿을 수 있을 만큼 매우 가깝습니다. 1995년에 기공하여 2000년에 준공한 본관은 지하 1층과 지상2층의 기와를 얹힌 양옥 건물로 3개의 전시장을 갖추고 있습니다. 부속건물로 세심정과 자미정 외 몇 개가 더 있으며 본 건물 앞의 넓은 뜰에는 연못과 소를 타고 시를 읊는 듯한 모양의 조각물, 그리고 기념관건립시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 문학관이 영남의 규방가사를 비롯하여 기행가사, 유배가사 등의 원본 및 필사본을 수집하고 전시해 한국가사문학관으로 거듭난 것은 2002년부터라 합니다

 

 

   시간이 넉넉지 않아 뜰 오른쪽의 기념비만 둘러보고 곧바로 본관으로 들어가 후다닥 전시장을 둘러보았습니다. 지상 1층의 갤러리 체험장에 전시된 한국화를 서둘러 훑어보고 그 옆의 제3전시장과 2층의 제1, 2전시장을 차례로 둘러보았습니다. 3곳의 전시장에서 만나본 가사작가는 모두 15분입니다. 이 땅에 가사문학을 연 인물로 알려진 고려조의 나옹화상, 가사문학의 시조는 나옹화상이 아니고 바로 이분이라고 칭해지는 조선조의 정극인, 정극인과 같이 14세기를 살았던 인물로 담양에서 최초로 가사 낙지가를 지은 이서, 가사문학의 최고봉을 점한 것으로 평가되는 정철, 경북영천 분으로 가사 누항사를 지어 임진왜란이 끝난 후의 지독히 빈곤한 삶을 그린 박인로, 면앙정가단을 연 송순 외에도 고경명, 양산보, 김인후, 임억령, 김성원, 박상, 허난설현, 백광홍, 조위 등이 그분들입니다.

 

 

   제가 만나본 15분의 가사작가들을 포함해 14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가사작품을 남긴 43분을 세기별로 작가명과 생몰연도, 그리고 작품명을 한 표로 만든 역대 가사 작자일람표가 걸려 있었습니다. 이 일람표가 자료로 매우 유용할 것 같아 사진을 찍어왔습니다. 이 표에는 가사문학의 창시자로 고려조의 나옹화상으로 보고 있습니다만,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와 있는 것 같이 15세기에 정극인이 지은 상춘곡을 효시로 보는 학설도 있습니다. 43분의 명단에 권섭(權燮,1671-1759)과 김인겸(金仁謙,1707-1772)이 포함된 것은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시조와 가사에 두루 능했던 권섭은 도통가와 영삼가를 남겼으며 57세인 1763년 통신사 조엄을 따라 일본을 다녀온 김인겸은 기행가사 일동장유가를 남긴 분입니다.

 

 

   일람표에서 눈에 뜨인 인물은 신득청(申得,1332-1392)입니다. 2011년 낙동정맥을 종주할 때 영덕군의 산줄기를 지나면서 산행기를 쓰려고 자료를 찾다가 어느 한 분의 블로그에서 신득청에 관한 다음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가사문학 작품의 효시로 평가되는 신득청 선생의 역대전리가(歷代轉理歌 )가사문학비를 풍력발전단지 내에 건립하고 20101030일 제막식을 했다. ‘역대전리가는 고려 말기인 공민왕 20(서기 1371) 가을, 왕의 실정을 바로잡고자 중국 역대왕조가 겪어 온 흥망성쇠의 원인과 결과를 본문은 한문, 서술어는 이두로 지은 작품이다.

 

 

   주마간산 격으로나마 가사문학관을 둘러보고 나자 한국가사문학관이 여기 담양 땅에 세워진 것인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담양에서 창작된 가사는 모두 18편인데, 이 속에는 조선조 최고의 가사로 평가되는 송강 정철의 사미인곡, 속미인곡과 성산별곡이 있고 면앙정시단을 연 면앙 송순의 면앙정가가 들어 있습니다. 안내책자에 따르면 조선중기 이서의 낙지가(樂志歌)를 비롯하여 20세기 정해정의 민농가(憫農歌)에 이르기까지 담양권에서 가사문학 제작은 끊임없이 지속되었다 하니 담양은 과연 가사문학의 메카라 불릴만하다는 생각입니다.

 

 

 

 

3.식영정(息影亭)

 

 

 

   소쇄원과 더불어 명승지로 지정된 담양의 명소는 식영정(息影亭)입니다. 식영정은 본래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나 식영정을 포함한 원림 일대가 명승제57호로 승격 지정됨으로써 기념물에서 해제되고 명승지가 된 것입니다. 식영정 아래에 자리한 서하당(棲霞堂)은 최근에 복원되었다 합니다.

 

 

   식영정(息影亭)은 조선 명종 때 서하당(棲霞堂) 김성원(金成遠, 1525-1597)이 그의 장인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 1496-1568)을 위해 지은 정자로, 수많은 문인과 학자들이 이 정자를 드나들었으며, 송강 정철은 이곳에서 가사 성산별곡(星山別曲)’을 짓기도 했습니다. 식영정(息影亭) 이 들어앉은 담양 식영정 일원이란 무등산 북쪽 사면에 위치한 광주호의 상류에 위치한 정자를 중심으로 하는 원림을 이르는 것으로, 성산(星山)의 한 자락을 이루고 있는 지형의 언덕에 자리 잡고 있음을 이번 탐방으로 확실히 알았습니다.

 

 

 

   동행한 양사장이 일러주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쳐 많이 아쉬워할 뻔했습니다. 식영정의 이름은 익히 들어 아는 바지만, 소쇄원에서 면앙정으로 가는 도로변에 위치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한국가사문학관에서 북쪽으로 몇 분 옮겨 잠시 차를 멈추고 혼자서 오른 쪽 담벽을 따라 올라가다가 왼쪽 안으로 들어가자 장서각(藏書閣)이 보였습니다. 장서각 옆으로 낸 쪽문 안으로 들어가자 바로 위에 서하당(棲霞堂)과 그 왼쪽 옆에 자그마한 정자인 부용당(芙蓉堂)이 자리했고 그 왼쪽 아래로 작은 연못 연지(蓮池)가 보였습니다. 연지 위로 보이는 사당 성산사(星山祀)를 사진 찍고 식영정이 어디 있나 하고 둘러보니 왼쪽 언덕 위로 허름해 보이는 정자 하나가 보였습니다. 부지런히 올라가 정자임을 알았으나 무슨 글자인지 알아볼 수 없는 한자체로 식영정을 써놓아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안내판에 쓰인 소개 글을 읽고서야 식영정임을 확인한 저의 한문실력이 부끄러웠지만, 글자체를 예술로 승화시킨 중국인의 예술적 안목이 한가로워 보이기는 해도 부럽다는 느낌은 들지는 않았습니다

 

 

 

   땀 흘려 올라가 만나본 식영정은 생각보다 아담했습니다. 정면 2, 측면2칸의 단층 팔작집으로 1칸의 온돌방과 대청마루가 각각 절반으로 구성되어 앞서 본 서하당과 많이 달랐습니다. 뒤로는 송림이 울창해 보이고 아래로 작은 하천이 보였습니다. 나뭇잎들이 앞을 가려 광주호와 무등산을 제대로 보지 못해서인지 송강 정철이 성산별곡을 지을 때의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가파른 계단 길을 따라 내려가 기다리던 차에 오름으로써 식영정 탐방을 마쳤지만, 뭔가 미진한 듯해 자료를 찾아보니 한국민족문화백과대사전에 식영정(息影亭)에 관한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옛날에 자기의 그림자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그림자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쳤는데, 빛이 있는 곳에서는 항상 쫓아오던 그림자가 나무 그늘 아래로 달아나자 없어지는 것을 보고, 그림자를 없애는 방법은 그늘에 숨던지 빛이 없는 곳에 머무르는 수밖에 없다.”고 한 장자의 외영오적(畏影惡迹)에 관한 고사로부터 식영정의 이름을 지었다고 했습니다.

 

 

 

  탐방기를 쓰면서 제가 탐방한 곳이 단순한 식영정이 아니고 담양식영정 일원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 식영정 일원이 여느 정자와 크게 다른 것은 서원에 있는 장서각이 있다는 것입니다 장서각이 있어 여기 식영정에서 송강 정철이 성산별곡을 지을 수 있었겠다 싶었습니다

 

 

4.면앙정(俛仰亭)

 

 

   이번 탐방의 마지막 목적지인 면앙정(俛仰亭)은 식영정에서 가깝지 않아 호남고속도로와

 88올림픽 고속도로를 밑으로 통과한 후에야 다다를 수 있었습니다. 담양군 봉산면의 제월리의 언덕 위에 자리한 면앙정은 중종28년인 1553년에 면앙 송순이 지은 조선중기의 정자입니다. 이번에 오른 정자는 임진왜란 때 파괴된 것을 후손들이 효종5년인 1654년에 중건한 것이라 합니다.

 

   면앙정이 널리 알려진 데는 이 정자를 지은 면앙정(俛仰亭) 송순(宋純, 1493-1582)의 명성이 한 몫 했을 것입니다. 면앙정 송순은 참으로 처세를 훌륭하게 한분이다 싶은 것은 관직에서 물러나 있을 때 낙담하지 않고 보람있는 일을 해내서입니다. 1519년 별시문과에 급제해 승문원권지부정자로 사환기를 시작한 송순은 1533년 김안로가 권세를 잡자 귀향해 면앙정을 짓고 호남제일의 가단인 면앙정가단을 만들었습니다. 호남의 성산가단, 영남의 경정산가단과 노가재가단의 선구 역할을 한 면앙정가단은 전문가객이 중심이 된 영남 가단과 달리 사대부출신의 문인가객이 중심이 되어 활동했다는 것이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김안로가 사사된

1537년에 홍문관 부응교로 제수되어 다시 관직생활을 재개한 송순은 1569년 의정부우참찬을 마지막으로 은퇴해 50년간의 관직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일찍이 박상(朴祥)과 송세림(宋世琳)에게서 사사한 송순은 신광한(申光漢성수침(成守琛나세찬(羅世纘이황(李滉박우(朴祐정만종(鄭萬鍾송세형(宋世珩홍섬(洪暹임억령(林億齡)등과 교유했으며, 문하 인사로 김인후(金麟厚임형수(林亨秀노진(盧禛박순(朴淳기대승(奇大升고경명(高敬命정철(鄭澈임제(林悌)등이 있습니다. 과연 송순의 인품은 그의 인맥에서도 가늠된다 하겠습니다.

 

   주차장에서 면앙정으로 오르는 길은 가파른 계단 길로 중간에 잠시 멈춰 서서 숨을 돌린 후 다시 올랐습니다. 넓은 공터 왼쪽 끝자락에 자리한 면앙정은 정면 3, 측면 2칸의 팔작지붕건물로 마루 한가운데에 한 칸 넓이의 방이 꾸며져 있었습니다. 俛仰亭 현판 바로 밑에 나이든 두 분이 오랫동안 앉아 있어 혹시라도 초상권을 침해했다고 항의를 받을까 염려되어 정자의 전신이 나오도록 사진을 찍는 것이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습니다. 정자에 걸려 있는 여러 편액 중에서 눈길을 끈 것은 장문의 俛仰亭三十詠’(면앙정삼십영)이었습니다.

 

   아직 한문을 우리말로 옮길 능력이 안 되어 인터넷을 뒤져 번역문을 찾았습니다. 임종헌님의 블로그에 따르면 송순이 면앙정을 증축하자 고경명과 임억령이 면앙정삽십영(俛仰亭三十詠)을 지었다합니다. 면앙정삼십영이란 면앙정 주변에 펼쳐진 30경을 각인각색으로 노래한 장편연작시로 추월취벽(秋月翠壁)으로 시작해 전계소교(前溪小橋)로 끝납니다. 아래 두 시도 임종헌님의 블로그에서 따왔습니다.

 

   ‘秋月翠壁’(추월취벽)은 임억령이 추월산에 떠오른 달을 보면서 읊은 시라 합니다.

 

                                       秋月翠壁

 

               皎皎蓮初出     갓 피어난 연꽃마냥 마ᇐ고도 밝으면서

               蒼蒼墨未乾     마르지 않은 먹물처럼 짙푸르기도 해

               淸光思遠贈     맑은 달빛 멀리까지 보내주기 바라니

               飛鳥度應難     새도 날아서 이곳 넘기는 어려울 거야

 

   ‘前溪小橋’(전계소교)는 고경명이 손님들을 개울 건너보내고 물소리를 들으려고 외나무다리에서 지팡이를 짚고 서 있는 심정을 읊은 것이라 합니다.

 

                                      前溪小橋

 

               沙路明橫野     모랫길을 들판질러 환하게 트이고

               枯槎跨淺灣      앞 시내엔 마른 등걸까지 놓였으니

               趁虛人去盡      왔던 사람들 모두다 가버린 뒤에도

               扶杖聽潺湲      물소리 들으려 지팡이 짚고 섰다네

 

   주차장으로 내려가 북쪽의 높은 산이 병풍산이라는 것을 양사장에게서 확인했습니다. 병풍산까지의 넓은 벌판은 많은 도로가 얼기설기 나있고, 남쪽 뒤편으로는 제월봉의 나무들에 가려 무등산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면앙정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는 것보다 이 정자에 앉아 송순의 가사 면앙정가를 읽는 편이 훨씬 흥취 있다 싶었던 것은 그래서였습니다.

 

                                      俛仰亭歌

 

 

                无等山 ᄒᆞ활기뫼히 동다하로 버뎌이셔

 

                멀니 ᄯᅢ쳐와 霽月峯 되야거ᄂᆞᆯ

                無邊大野의 므ᄉᆞᆷ 짐쟉ᄒᆞ노라

 

                                       -중략-

 

                흰 구름 부흰 연하 프로니ᄂᆞᆫ 山嵐이라

                千巖萬壑을 제 집을 삼아두고

                나명셩 들명셩 일ᄒᆡ도 구ᄂᆞᆫ지고

                오르거니 ᄂᆞ리거니 長空의 ᄯᅥ나거니 廣野로 거너거니

                프르락 불그락 여토락 지트락

                斜陽과 서거지어 細雨조ᄎᆞ 리ᄂᆞᆫ다

                藍輿ᄅᆞᆯ ᄇᆡ여ᄐᆞ고 솔 아ᄅᆡ 구븐 길노 오며 가며 ᄒᆞᄂᆞᆫ 적의

                綠楊의 으ᄂᆞᆫ 嬌態 겨워 ᄒᆞᄂᆞᆫ괴야

                나모 새 ᄌᆞᄌᆞ지어 樹陰이 얼린 적의

                百尺 欄干의 긴 조으름 내여피니

                水面 凉風이야 이 긋칠 줄 모ᄅᆞᄂᆞᆫ다

                즌 서리 ᄲᅡ진 후의 산 밋치 금슈로다

                黃雲은 ᄯᅩ 엇지 萬頃의 퍼거지요

                漁笛도 흥을 계워 ᄃᆞᆯᄅᆞᆯ ᄯᅡ롸 브니ᄂᆞᆫ다

                草木 다 진 후의 江山이 ᄆᆡ몰커ᄂᆞᆯ

                造物이 헌ᄉᆞᄒᆞ야 氷雪노 ᄭᅮ며내니

                瓊宮 瑤臺玉海 銀山眼底의 버러셰라

                乾坤도 가ᄋᆞᆷ열샤 간대마다 경이로다

 

                                        -중략

 

                浩蕩 情懷야 이예셔 더ᄒᆞᆯ소냐

                이 몸이 이렁굼도 亦君恩이샷다

 

     김천택의 청구영언에 무명씨의 작품으로 실린 아래 노래는 위 가사보다 더 명징하게 면앙정의 풍류운치를 느끼게 합니다.

 

 

               십년을 경영해야 초당삼간 지어내니

               반간은 청풍이요, 반간은 명월이라

               강산은 드릴대 업스니 돌려두고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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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격적인 탐방에 들어가기 전에 들른 곳이 있습니다. 차를 가지고 미리 와 대기한 양사장이  정읍역에서 손사장과 저를 맞아 안내한 회문산 산자락의 음식점 정자나무가든이 그곳입니다. 음식으로 나온 닭백숙과 바로 옆 계곡 모두 일품이어서 오래 머무르지 못한 것이 아쉬웠습니다. 회문산의 남쪽 골짜지기에서 시작해 구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바로 옆 계곡은  나무들이 하늘을 가려 그늘 진데다 물이 많이 흐르고 맑아 식사를 끝낸 후 얼마동안 발을 담그며 탁족을 즐겼습니다.

 

   정읍에서 담양의 명소로 가는 길에 옥정호와 담양호를 지났습니다. 2007년 호남정맥 종주 때 산 위에서 조망한 두 호수는 댐에 물이 가득 차 주변의 산들과 어우러진 모습이 참으로 승경이다 했습니다. 이런 두 호수가 장마철인데도 물이 많지 않아 올 가을과 내년 농사는 어떻게 지어야하나 벌써부터 걱정됐습니다. 내년에는 녹조를 걱정할 일이 아예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든 것은 이러다가는 녹조가 낄 물이 없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어서입니다. 그래도 무등산 아래 광주호는 앞의 두 호수보다 물이 어느 정도 채워져 있어 담양명소탐방이 덜 송구스러웠습니다

 

   회사 일로 바쁜 중에 일부러 짬을 내어 끝까지 안내해준 양사장께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안내를 해준 것만도 고마운 일인데 점심과 저녁식사까지 대접받고 거기에 더해 선물까지 받았으니 아무리 여러 번 고맙다고 인사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번 담양명소 탐방으로 가사문학과 정자문화를 다시 살펴볼 수 있어 보람 있었습니다. 이에 더해 같은 회사에서 오랜 기간 같이 일한 인연도 소중함을 배웠습니다. 동행한 두 사우께 감사인사 드리며 탐방기를 맺습니다

 

 

                                                                 <탐방사진> 

 

1)회문산 계곡

 

 

 

 

 

 

 

 

 

 

 

 

 

 

 

 

 

 

 

 

 

 

 

 

 

 

 

 

 

 

 

 

 

 

 

 

 

 

 

2)한국가사문학관

 

 

 

 

 

 

 

 

 

 

 

 

 

 

 

 

 

 

 

 

 

 

 

 

 

4)식영정

 

 

 

 

 

 

 

 

 

 

 

 

 

 

 

 

 

 

 

 

 

 

 

 

 

5)면앙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