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II.시인마뇽의 명소탐방/국내명소 탐방기

76. 정선명소 탐방기1(아우라지)

시인마뇽 2017. 4. 30. 09:19

 

                                                   탐방일자:2016. 7. 27

                                                   탐방지 :강원정선 소재 아우라지

                                                    동행 :서울사대 원영환, 이상훈 동문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위 노래가사는 <정선아리랑>의 첫 소절입니다. 강원도 일대에 널리 퍼져있는 <정선아리랑>은 호남의 <진도아리랑>과 경남의 <밀양아리랑>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아리랑의 하나로 꼽히는 민요입니다. 민족문화백과사전에 따르면 아리랑은 전국에 고루 분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널리 퍼져 있어서 이른바 독립군아리랑을 비롯하여 연변아리랑등의 이름이 쓰이고 있을 정도이며, 멀리 소련의 카자흐스탄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교포들의 아리랑도 전해지고 있다 합니다. 제가 태어난 경기도의 경기아리랑은 누군가가 창의적으로 윤색했다하여 신민요아리랑으로 분류됩니다.

 

 

   대학 동문 몇이서 강원도의 노추산을 산행하고 나서 봉평으로 돌아가는 길에 정선아우라지를 들렀습니다. 정선군의 여량면 여량리에 위치한 아우라지는 정선아리랑의 대표적인 발상지 중의 한 곳입니다. 아우라지란 대관령에서 발원한 구절 쪽의 송천과 삼척에서 발원한 임계 쪽의 골지천이 합류되어 어우러진다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송천을 양수, 골지천을 음수라 칭하여 여름 장마 때 양수가 많으면 대홍수가 예상되고, 음수가 많으면 장마가 끊긴다는 옛말이 전해오고 있는 여기 정선 아우라지는 정선 읍에서도 50리나 떨어진 벽촌에 자리한 합수점입니다.

 

 

   노추산 입구에서 415번 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다 레일바이크의 출발점인 구절역을 지났습니다. 이 역에서 레일바이크를 타고 7.2Km를 남쪽으로 달리면 아우라지역에 닿게 되는데 승용차로 이동 중이어서 난생 처음 레일바이크를 탈 수 있는 기회를 놓쳤습니다. 아우라지에 도착해 주차장에 주차시킨 후 합수점의 천변으로 다가갔습니다. 모래가 제법 고와보이는 천변에서 동쪽으로 골지천 위에 설치한 현대식 다리가 보였습니다. 이 다리 한가운데 설치한 그믐달 모양의 조형물은 다리 건너 정자와 북쪽의 송천을 건너는 징검다리와 명징하게 대비되었습니다. 물이 깊고 강폭이 넓은 편으로 배가 띄워져 있었습니다. 여기 정선아우라지가 영평천이 한탄강에 합류되는 포천의 아우라지보다 훨씬 많은 물을 담고 있어 뗏목을 띄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제가 이곳에 꼭 한번 와보고 싶었던 것은 여기 아우라지 합수점이 한양으로 목재를 운반하던 한강 최상류의 뗏목 터라는 것 때문입니다. 아우라지에서 송천의 물을 받은 골지천은 뗏목을 띄우고 흐르다 나전에서 오대천의 물을 받아 동강으로 세를 불립니다. 동강은 영월을 지나며 어라연을 빚어낸 후 영월읍에서 오대산에서 발원한 평창강과 합류하여 남한강이 됩니다. 영월을 출발한 남한강은 단양을 지나 충주의 탄금대에서 속리산에서 발원한 달천의 물을 받아 여주로 향합니다. 청미천과 섬강이 차례로 유입되어 수량이 풍부해진 남한강은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합류하여 비로소 한강의 이름으로 내달아 한양에 이릅니다. 정선의 아우라지를 출발한 뗏목도 이와 같이 한양에 다다릅니다.  

 

 

   구한말 한강의 뗏목 길을 거룻배를 타고 여행한 외국인이 있습니다. 영국의 왕립지리학회 최초의 여성회원 이사벨라 버드 비숍(1831-1904)1894-1897년 동안 11개월에 걸쳐 네 차례나 조선을 답사해 우리나라 민초들의 힘든 삶을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이라는 책을 펴내 생생하게 증언했습니다. 1894414일 마포 근처에서 작은 배를 타고 한양을 출발한 비숍은 갖은 고생 끝에 13일째 되는 날 단양에 도착했습니다. 영춘까지 올라간 비숍은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그만두고 53일 한강을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한강의 급류가 너무나 격렬해 청뚜에서 이창에 이르는 푸강과 양자강의 급류보다 비할 수 없이 위험하다고 했습니다. 양수리에서 북한강을 거슬러 가평과 춘천을 거쳐 구무뇨까지 다녀온 비숍은 여행 중 들른 관아 안에 조선의 생명력을 빨아먹는 인간기생충들이 우글거렸다고 말하면서 그 기생충으로 군인, 포졸, 문필가, 부정한 관리, 전령들을 뽑았습니다. 19세기가 다해갈수록 정선아리랑이 더욱 구슬프고 애달팠다 싶은 것은 양자강의 급류보다 더 위험한 물길을 따라 한양으로 향해 가는 뗏목을 인간기생충들이 순순히 통과시키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이곳 아우라지에서 한양으로 달랑 뗏목만 실어 보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했다면 이곳 아우라지로 각지에서 뱃사공이 모여들 리 없었을 테고, 뱃사공의 아리랑 노래가 계속 전해졌을 리 만무합니다. 이곳이 정선아리랑 가사의 유래지로 알려진 것은 뗏목과 다른 짐들을 실은 뗏목배에 행상을 함께 태워 보내고 나서 무사하게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연인의 간절한 염원도 같이 실어 보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선아리랑의 첫 소절은 기실 민초들의 애환을 담아낸 것이 아닙니다. 이 가사의 기원설화에 관련된 인물들은 고려 말엽의 민초가 아니고 조선창업을 반대한 유신들입니다. 72명의 고려유신은 송도의 두문동에서 숨어 지내다가 그중 전오륜을 비롯한 7명이 정선으로 은거지를 옮기고 고려왕조에 충절을 맹세하며 남은 인생을 산나물이나 뜯어 먹으면서 살았다는 것이 관련 설화의 대강입니다. 고려 말 만수산 검은 먹구름이 몰려와 눈비를 내리고 억수장마를 불러온이성계의 역성혁명이 두려웠던 계층은 바람에 맞서거나 피해야 하는 대신들이었지 바람 부는 대로 몸을 눕히면 그만인 민초들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민초들의 애달픈 한을 담아낸 것은 다음 소절에서입니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주게

       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위 노래는 아우라지를 사이에 두고 싸리골로 동백을 따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 유천리로 건너가 한 총각과 사랑을 나누다가 여름 장마로 홍수가 져 물을 못 건너가게 되자 총각을 만날 수 없게 된 여랑리 처녀가 이를 원망한데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정선아리랑>은 가사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그때그때 시대의 변화상을 담아왔습니다. “반달같은 우리 오빠는 대동아전쟁에 갔는데 샛별 같은 우리 올케는 독수공방 지키네라든가 사발그릇은 깨어지면은 세네쪽이 나고 삼팔선이 깨어지면은 한 덩어리로 뭉치네라는 가사만 보아도 이 노래가 유행했던 당시의 시대상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정선아리랑>의 노래 말이 자그만치 700800여 수나 된다고 하는 것이 민초들의 애환이 참으로 다양하고 애달팠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진데, 우리 민족은 과연 한의 민족이다 싶습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