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V.시인마뇽의 문학산책/시인마뇽의 산행에세이

22.시인을 기다리는 때죽나무 꽃

시인마뇽 2018. 1. 11. 00:39

                                            시인을 기다리는 때죽나무 꽃






   전남장성군과 전북의 정읍시 및 고흥군을 경계 짓는 방장산(方丈山)은 산 높이가 해발742m에 불과해 그리 높은 산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산림청에서 이 산을 명산 100산의 한 산으로 선정한 것은 예부터 지리산, 무등산과 함께 호남의 삼신산(三神山)으로 불려왔으며 전북과 전남을 양분하는 산으로 산세가 웅장하고 자연휴양림인 점을 고려한 때문이라 합니다.


 

   제가 이 산을 꼭 올라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이 산에 백제가요 방등산가(方等山歌)의 유래가 얽혀 있는 방장굴을 둘러보고 싶어서였습니다. 양고살재에서 시작해 방장산 정상을 오르는 길에 주능선에서 100m 아래에 자리한 이 굴을 찾아갔습니다. 굴 옆 안내판에서 방등산가(方等山歌)는 고려사악지에 나오는 백제가요 5편 중 하나로 신라 말 도둑들에 잡혀간 장일현의 한 여인이 남편이 구하러 오지 않음을 원망한 노래이며,  이 동굴에 바로 이 방등산가의 유래가 얽혀 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백제가요는 가사는 알 수 없고 오직 어떤 내용인지와  제목만 전해지는 지리산가, 무등산가, 선운산가와 방등산가 등 5수와 유일하게 가사가 전해지는 정읍사(井邑詞) 등 모두 6수가  있습니다. 해독에 어려움은 있었지만 무려 25수나 가사가 완벽하게 전해지는 신라의 향가에 비하면 백제가요는 빈약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나마 방등산가가 다른 백제가요보다 그 존재가 널리 알려질 수 있는 것은 여기 방장굴 덕분일 것입니다. 방장굴은 그 후에도 계속 사용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 산을 넘어 실어 나르는 곡물을 약탈하는 도둑들이 소굴로 이용했던 이굴에서 병인박해를 피해 피난 온 천주교신자들이  기거하기도 했고, 한국전쟁 때에는 빨치산들이 숨어 활약했다고도 합니다. 도둑들이 들끓던 방등산(方等山)을 산이 넓고 커서 백성들을 감싸준다 하여 방장산(方丈山)으로 이름을 고쳐 부른 후에도 이 굴이 은신처로 쓰였다는 것은 결국 백성들이 먹고살만해진 뒤에야 비로소 이 굴이 그 쓸모를 잃었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양고실재를 출발해 방장굴을 찾아가는 길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방장산을 환히 밝히고 있는 새하얀 때죽나무 꽃을 보았습니다. 신라 말 도둑들에 잡혀간 장일현의 한 여인이 남편이 구하러 오지 않음을 원망한 그 때에도 때죽 꽃이 피어 이 산을 새하얗게 덮었을 것입니다. 길바닥에 떨어진 때죽 꽃을 밟고 산을 오르면서, 장일현의 한 여인은 머리카락이 저 꽃처럼 새하얗게 쉴 때까지 남편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방등산가를 불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 혼자가 아니고 역량있는 시인과 동행했더라면 기다림에 지친 이 여인의 사무친 원망을 해원해 줄 시를 지어 바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 없어 제 나름 몇 자 적어봅니다.


 

   영변의 약산을 온통 연분홍색으로 물들이는 진달래꽃도 요절한 서정시인 소월 김정식이 아니었다면 그 애절한 아름다움이 두 세대가 더 지난 오늘날까지 전해지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아파트 단지에 맨 먼저 봄의 화신을 전하는 목련꽃도 시인 김남조가 그 꽃 그늘아래에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지 않았다면 소담한 꽃의 아름다움을 찬하는 목소리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세계 최대 여자대학교의 교화인 배꽃도 고려조의 시조시인 이조년이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라고 그 아름다움을 시조로 남기지 않았다면 달콤한 과실을 맺는 이로운 꽃으로만 생각했지 달빛에 빛나는 고고한 꽃으로는 기억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 해도 이제껏 그 꽃을 탄상하는 언어의 조율사들이 있었기에 그 꽃 이름이 온전하게 이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산 밖으로 널리 이름을 알리고자 목 놓아 시인을 기다리는 꽃나무를 보았습니다. 더러는 기다리다 진이 빠져 땅바닥으로 떨어진 꽃잎들도 보았습니다. 지리산, 무등산과 더불어 호남 땅 삼신산의 한 산인 방장산을 오르내리며 만난 때죽나무에 정말 미안했던 것은 그토록 기다리는 시인을 모셔가지 못하고 저 혼자 올라서였습니다. 능선 길에 가득 깔린 때죽나무의 하얀 꽃잎들을 소월 선생이 친히 보았다면 연분홍 진달래에 바친 연정을 잠시 되찾아와 새하얀 때죽나무 꽃에 바쳤을 것입니다. 갈 봄 여름 없이 산에서 피는 꽃들을 노래하는 산유화라는 시를 발표해 단순히 4월의 진달래시인으로만 머무를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한 소월선생이 이번에 저와 함께 방장산을 올랐다면 6월의 산유화인 때죽나무 꽃을 보고 틀림없이 이 꽃을 칭송하는 명시를 남겼을 것입니다.


 

  열매를 찧어 냇물에 풀면 에고사포닌이라는 독성분이 물고기들을 기절시켜 죽인다는 것은 예부터 전해오는 사실이지만 그래서 이 나무가 고기를 떼로 죽인다하여 때죽나무로 부른다는 일설은 떼와 때를 구분하지 못한 낭설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나무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이름으로 스노우벨(snowbell)이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이 나무는 그 별명에 걸맞게 꽃송이가 눈송이처럼 하얗습니다. 여기저기에 하얀 꽃을 피워 6월의 방장산을 환하게 밝힌 꽃나무는 때죽나무 말고도 산딸나무가 있습니다. 탐스럽게 커다란 그리 많지 않은 하얀 꽃송이들이 하늘을 향해 목을 쭉 빼고 활짝 웃고 있는 산딸나무가 이 산의 귀족나무라면, 잔가지 사이마다 아래를 향해 두 서너 송이씩 은방울 같은 꽃을 피우고 있는 때죽나무는 그 꽃송이가 헤일 수 없이 많고 또 산속 여기저기에 골고루 퍼져 있어 6월의 방장산이 회심작으로 내놓는 최고로 대중적인 꽃나무가 아닐까 싶습니다. 시인을 기다리다 지쳐 떨어진 꽃송이들이 온 땅을 빈틈없이 덮고 있어 이 꽃잎들을 지려 밟지 않고서는 이 나무 그늘 아래 땅을 한 걸음도 내딛을 수 없을 정도이니 아무리 바쁘게 살다간 소월선생이라 해도 이 꽃나무를 칭송하는 시 한수 남기지 않고 그냥 지나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장성갈재에서 산행을 마치고 반시간을 넘게 걸어 내려가 느티나무 거목 옆의 연월리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바로 옆 구멍가게에서 맥주 한 캔을 사든 후 올해 76세의 주인할머니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한 시간 남짓하게 정읍행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나이 서른을 갓 넘어 남편을 사별하신 할머니께서 6남매를 혼자서 키워 시집장가를 다 보내고 이 마을에 홀로 남아 가게를 열며 살아가신다 했습니다. 인천과 서울에 산다는 자식들과 함께 살지 않는 것은 이렇다 하게 아는 친구들도 없는 도시에 갇혀 살기 싫어서라는 말씀을 듣자 1980년대에 교편을 잡고 있던 집사람을 대신해 손자 녀석들을 돌보시려 용인의 저희 집에 와계셨던  어머니께서 서울로 이사를 가면 당신은 시골로 돌아가시겠다고 막무가내로 버티신 것도 이 할머니와 같은 이유였겠다 싶었습니다. 반세기 가까이 혼자서 살아오신 할머니께서 8년 전에 사별한 제게 재혼하라고 말씀을 주시는 것으로 보아 혼자서 자식 키우며 살아오기가 참으로 힘드셨던 모양입니다. 자기가 낳은 자식을 살기 힘들다고 유기하는 요즈음의 일부 어머니들과는 달리 홀로 자식 키우고 굳건하게 살아온 할머니나 자식 키우는 것으로도 모자라 손자까지 도맡아 길러주신 돌아가신 어머니가 이 나라의 전통적인 어머니 상일 것입니다. 방장산을 하얗게 밝힌 것이 때죽나무와 산딸나무의 하얀 꽃들이라면, 오늘까지 이 사회를 환하게 밝힌 분들은 우리 어머니들입니다. 새삼 이 분들이 즐겨 입으신 옥양목 치마저고리가 산 속의 희디 흰 꽃들보다 더 하얗게 기억됐습니다

 

*이 글은 20086월 방장산을 오르고 난 감회를 적은 글을 2018111일에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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