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확인
낙동정맥의 마치재-어림산-시티재 구간을 종주하는 길에 잠시 멈춰 서서 새파란 하늘을 사진 찍었습니다. 혹시라도 하느님이 하늘에 계시다면 틀림없이 카메라에 찍힐 것이라 생각한 것은 구름 한 점 없어 방정맞도록 새파란 하늘에 하느님을 숨겨줄 어느 무엇도 보이지 않아서였습니다. 기대와는 달리 제 카메라는 하느님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아예 하늘에 하느님이 안계셨거나 카메라로 잡아낼 수 없을 만큼 아주 먼 곳에 계시어서 그러했을 것입니다. 무슨 전쟁이라도 났나 싶을 정도로 굉음을 내며 거칠게 움직이는 바람의 실체를 잡아보고자 크게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사진 찍었습니다. 바람이 움직이는 증거가 너무 확실해 나무를 뒤흔드는 바람의 모습을 볼 수 있겠다 싶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허탕이었습니다.
존재하는 것이 다 보이는 것이 아님을 두 컷의 사진 찍기에서 확인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바람의 모습이 어떠한 가를 본 적이 없지만 그렇다고 바람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을 저는 아직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존재를 느끼게 하는 것이 시각만이 아니고 오감의 나머지 감각 넷이 더 있기 때문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오감을 통해 느끼는 직관 외에 이성을 통해 합리적으로 추론하는 방법으로도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카메라가 새파란 하늘에서 하느님을 잡아내지 못했다고 하느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동양의 격언이나 “To see is to believe"라는 서양의 금언을 아무런 의심 없이 금과옥조로 믿어온 데서 오는 오류일지도 모릅니다. 또 사람의 오관을 모두 동원해 하느님을 찾아보았지만 하느님을 보았다는 사람이 아직 없는 것으로 보아 하느님은 영영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하느님은 바람보다 훨씬 까다로워 존재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기에, 하느님의 실재 여부는 과학의 영역이 아닌 종교에서 다룰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입니다.
얼마 전 국회의 한 청문회에서 어느 한 분이 천안함 피침사건을 두고 정부에서 북한의 소행이라 발표를 했으니 믿기는 하지만 직접 보지 않아서 확신할 수 없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분도 실체가 보이지 않아 사진 찍기에 실패한 바람의 실재를 부정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분께서도 시각만이 존재를 느끼는 감각기관이 아님을 잘 알고 있으며, 그래서 나머지 감각기관을 동원해 얻은 지식을 갖고 합리적으로 추론해 바람의 존재를 확인했을 것입니다. 천안함이 무슨 이유로 폭파되었는가를 알아내는 것은 하느님의 존재를 따지는 것보다는 훨씬 쉬운 과학의 문제입니다. 시각만이 아니고 나머지 감각을 모두 동원해 여러 나라가 최신의 정밀한 기구를 갖고 공동으로 조사해 천안함 피침은 북한 소행으로 이미 밝혀진 것인데도, 직접 보지 못해 못믿겠다면 과연 믿을 수 있는 것이 지극히 제한되어 일상을 살아가는데도 엄청 불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래 향가 “제망매가(祭亡妹歌)”는 신라의 경덕왕 때 승려 월명사가 지은 노래입니다.
죽고 사는 길이 예 있으매 저히고
나는 간다 말도 못다 하고 가는 가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이에 저에
떨어질 잎다이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 모르누나
아으 미타찰(彌陀刹)에서 만날 내 도닦아 기다리리다
죽은 누이를 위해 재를 올리며 이 노래를 불렀더니 홀연히 바람이 불어, 노잣돈으로 쓰이는 지전을 서쪽 극락세계방향으로 날려 보냈다 합니다. 천이백여 년 전 바람을 대하는 스님의 애절함이 이러했는데,그 애절함이 오늘에도 끊이지 않는 것은 북한의 만행으로 수장된 천암함 장병들의 절규가 들리는 듯 해서입니다.
*위 글은 2012년11월24일 낙동정맥의 마치재-어림산-시티재 구간을 산행하고 남긴 종주기 중 일부를 2018년1월16일에 가필하고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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