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V.시인마뇽의 문학산책/시인마뇽의 산행에세이

26.광릉수목원

시인마뇽 2018. 1. 25. 22:17

                                                      광릉수목원




 

   백두대간의 분수령에서 분기된 한북정맥이 파주의 장명산에 이르기까지 가지 친 산줄기가 꽤 많습니다. 우리 산 꾼들은 그중 남한 땅의 대표적인 산줄기 8개를 골라 한북정맥 8지맥이라 이름 붙이고 이 지맥들을 종주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7년 전 오두지맥에 첫발을 들인 후 천마지맥, 감악지맥, 왕방지맥, 화악지맥, 연인지맥과 명성지맥을  종주했고 수락지맥 하나만 남겨 놓았습니다.

 

   수락지맥이란 다름재 인근의 무명봉에서 한북정맥과 나뉘어져  아차산에 이르는 산줄기로 그 전장이 약 40Km에 달합니다중량천의 동쪽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는 수락지맥 종주를 서두른 것은 이 지맥이 광릉수목원을 지나 용암산 일대가 입산금지지역으로 묶여 있어서입니다. 눈이 쌓인 한 겨울에는 아무래도 건조한 봄철보다 불이 날 염려가 적어 단속이 느슨하리라 판단하고 어제 수락지맥 종주에 나섰습니다. 별 탈 없이 입산금지구역을 통과했지만 용암산 일대를 완전히 벗어나기까지 2시간 남짓 동안 내내 마음을 졸였습니다. 남은 구간은 수락산, 불암산과 아차산 등 길이 열려 있는 산들로 도둑고양이처럼 몰래 통과하지 않아도 되어 이번 산행으로 큰 걱정 하나 던 셈입니다.

 

   산행 시작 6시간 반이 조금 못되어 광릉수목원의 최고봉인 해발536m의 소리봉에 올라섰습니다. 촉석고개를 출발해 한북수락지맥 분기점과 용암산을 거쳐 올라선 소리봉은 수락지맥 마루금에서 남서쪽으로 조금 벗어나 있습니다. 비알 길을 오르고 바위 길을 지나 산불감시초소가 서 있는 소리봉에 올라 잠시 숨을 고르며 사방을 둘러본 후 갈 길이 멀어 서둘러 지맥 길로 복귀했습니다.

 

   10시간 가까이 산행해 저녁 6시반경 이번 종주산행의 끝점인 43번 국도상의 숫돌고개에 다다르자 온 주위가 캄캄했습니다. 왼쪽 아래 청학동 아파트단지를 향해 걸어 내려가면서 생각한 것은 법을 어겨가며 상주감시가 불가능한 한 겨울에 몰래 입산금지구역을 통과한 것이었습니다. 달리 묘수가 없어 그리했지만 산행 내내 찜찜했고 내심 죄스러웠습니다. 백두대간의 입산금지구역을 지날 때도 같은 생각이었는데 정말 원천적 봉쇄 외에 달리 방법이 없을 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연이 보존되는 범위 안에서 적정인원을 산정한 후 사전에 신고토록 해 그 인원만 통과를 허용하는 방안도 관련당국이 고민해 주었으면 하는 산꾼들의 바람을 전하고자 합니다.

 

   광릉수목원은 18년 전인가 한 번 집사람과 함께 들른 기억이 납니다. 거의 매주 한 번 산을 오르는 제가 따로 짬을 내어 수목원을 찾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기에 이제껏 나무들의 자연박물관인 수목원을 제대로 탐방하지 못했습니다. 나무뿐만 아니라 산림에 의지해 사는 모든 생물들에 최고의 안식처로 자리매김한 수목원을 보는 시각이 나이가 들면서 가볼 만한 곳으로 바뀌어 가는 것은 산림이 주는 정중동(靜中動)의 의미를 조금씩 깨달아갔기 때문입니다.

 

   광릉수목원을 대표하는 식구는 단연 나무입니다. 나무들이 자라 숲을 만들고 이 숲속을 보금자리로 해서 각종 동식물이 자라고 있는 곳이 수목원입니다. 조선조 최고의 악장인 용비어천가에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움직인다고 찬한 문구가 나옵니다. 한 곳에 뿌리를 박고 자리를 지키는 나무는 분명 항상 움직이는 동물과는 많이 다를 것입니다. 얼핏 보면 한 자리에 머물러 있어 나무들이 항상 정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닙니다. 한시도 쉬지 않고 땅속의 물을 빨아올려 나뭇잎에 공급해 녹음을 만들고 꽃을 피우는 일을 나무들이 맡아 해내고 있습니다. 줄기에서 뻗어나간 가지들에도 이 물을 공급해 나무들이 긴 세월을 버텨낼 수 있도록 해줍니다. 뿌리 깊은 나무라 해서 바람에 아니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다가는 언제 허리를 분질러먹을 줄 몰라 얼마간 바람에 버티다가도 아니다 싶으면 바람 부는 방향으로 재빨리 등을 굽힐 줄 아는 것이 나무들입니다. 말없이 한 자리를 지키면서 할 일을 다 하는 나무들이 제게 전하는 메시지는 정중동의 진정한 의미라는 생각입니다.

 

  이런 나무들을 두고 하느님이 만드셨다고 극찬한 미국의 시인 조이스 킬머(Joyce Kilmer)의 시 "나무"의 전문을 아래와 같이 옮겨 놓습니다.

 

                                                       나무(Trees)

 

 

나는 생각한다. 나무처럼 사랑스러운 시를   I think that I shall never see

 

결코 볼 수 없으리라고.                    A poem lovely as a tree

 

 

 

대지의 단물을 흐르는 젖가슴에             A tree whose hungry mouth is prest

 

굶주린 입술을 대고 있는 나무;             Against the earth's sweet flowing breast

 

 

 

온 종일 하느님을 보며                     A tree that looks at God all day

 

잎이 무성한 팔을 들며 기도하는 나무:       And lifts her leafy arms to pray  

 

   

 

여름엔 머리칼에다                           A tree that may in summer wear

 

방울새의 보금자리를 치는 나무;               A nest of robins in her hair

 

 

 

가슴에 눈이 쌓이는;                           Upon whose bossom snow has lain

 

또 비와 함께 다정히 사는 나무.                Who intimately lives with rain 

 

 

 

시는 나와 같은 바보가 짓지만                  Poems are made by fools like me 

 

나무를 만드는 건 하느님 뿐.                    But only God can make a tree

 

 

*위 글은 2012년에 작성한 한북수락지맥종주기에서 일부를 따와 2018.1.25일에 가필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