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信賴)의 성(城) - 산(山)
이번(2008. 8. 20일) 금남호남정맥을 종주하는 중에 전북 장수의 팔공산 능선 길에서 아주 견고해 보이는 자그마한 성 하나를 보았습니다. 성안에 군량미를 보관했다하여 합미성(合米城)으로 불리는 이 성은 후백제때 축성된 석성입니다. 성 둘레가 300m밖에 안 되는 작은 성이지만 안쪽으로 4.5m를, 바깥쪽으로 1.5m 쌓아 올린 이 성은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다부져보였습니다. 이 성을 쌓아올린 후백제는 건국 34년 만에 멸망했지만 후백제가 쌓아올린 이 성은 몇 번이고 개축되어 아직도 견고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 튼튼한 합미성이 후백제를 지켜내지 못한 것은 외침이 아니라 견훤과 그 아들간의 내분 때문이다 함은 이미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입니다.
서기935년 후백제에서는 권력에의 집착이 견훤과 아들들을 등지게 만들었다면, 2008년 대한민국에서는 거짓 선동이 광우병파동을 증폭시켜 한반도 남쪽을 요동치게 한 것은 아닌가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투른 대미협상과 국민설득에 실패한 정부의 잘못은 백 번 질책 받아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국민들이 광우병에 걸린다고 한 것은 누가 뭐라 해도 명명백백하게 의도된 선동이자 왜곡입니다. 2백만 명이 넘는 재미교포들이 매일 쇠고기를 먹어도 광우병에 걸린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전적적으로 광우병에 더 걸리기 쉽다고 한 것만 보아도 터무니없는 왜곡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러한 고의적 왜곡에 우리 국민들이 쉽게 넘어간 것은 특별히 과학에 무지해서가 아닙니다. 과학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발달한 미국에서 있었던 다음 사례는 어느 누구도 고의적 왜곡에 속아 넘어가는 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국의 한 학교에서 어떤 학생이 캠페인을 벌였다 합니다. 무색무취한 “일산화이수소”가 심각한 수화현상을 일으키고, 소변이 자주 마려운 증상을 일으키며, 땀이 많이 나게 하고, 구토를 일으키며, 또 기체 상태에서는 심각한 화상을 입히는 데다 이 화학물질이 말기 암 환자의 종양에서도 발견됐고 땅을 침식시키는 산성비의 주요 요소라며 50명의 학생들에 이 화학물질을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해달라고 캠페인을 벌였다 합니다. 캠페인 결과는 놀랍게도 43명이 흔쾌히 서명했고 6명은 결정을 보류했으며 서명에 반대한 사람은 단 한명으로 그 물질이 바로 산소 1원자와 수소 2원자가 결합해 만들어진 물이라며 서명하지 않았다 합니다. 이 학생이 물을 "일산화이수소"로 왜곡하지 않았다면 어느 누구도 물을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미국의 화학자 제임스 콜만 교수가 지은 “Naturally Dangerous" 책에 실린 것으로 이 책은 광우병파동이 있기 훨씬 전인 2001년에 발간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얼마 전 번역판이 “내츄럴리 데인저러스”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어 시판 중에 있습니다. 세계의 과학을 선도하는 미국에서도 이런 정도이니 우리나라에서 광우병파동이 일어난 것을 가지고 국제적 망신이라며 자괴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후백제가 쌓아올린 합미성은 견고했습니다. 그러나 견훤이 쌓아올린 신뢰의 성은 말할 수 없이 취약했고 취약한 이 성을 견훤과 그 아들들이 발 벗고 나서서 무너뜨렸습니다. 대한민국이 60년간 쌓아온 국방의 성은 이제 어느 나라보다 견고합니다. 그러나 이 나라 정치지도자들이 쌓아온 신뢰의 성은 그러하지 못하다는 것이 이번 광우병파동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고의적 왜곡시도가 국민들에 먹혀든 것도 따지고 보면 그 근본적인 이유가 정치적지도자들의 신뢰상실에 있습니다. 뭇 사람들로부터 산이 신뢰받는 가장 큰 이유는 넓은 가슴으로 산을 찾는 모든 이들을 감싸준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에 하나를 더한다면 산의 질서를 깨는 자는 어느 누구라도 예외 없이 벌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이 나라 정치지도자들이 신뢰의 성을 높이 쌓기 위해서 최고의 스승으로 모셔야 할 분은 아무래도 산(山)이 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
*위 글은 2008년8월20일 금남정맥의 팔공산구간종주기에서 일부를 따와, 2018년2월27일 가필 정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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