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V.시인마뇽의 문학산책/시인마뇽의 산행에세이

31. 이카루스의 날개

시인마뇽 2018. 3. 21. 11:18

                                                         이카루스의 날개



 

  어제(2013. 3. 31)는 경기도 양평 땅의 말머리봉-유명산-배너미고개구간을 지나는 한강기맥을 종주했습니다. 이 구간에서 가장 높은 산은 해발862m의 유명산입니다. 이 산 정상부의 평원에 말을 방목해 길렀다 해서 이름 지어진 마유산이 유명산으로 이름 바뀐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이번 한강기맥 종주 길에 유명산을 지나며 하늘을 나는 패러글라이더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패러글라이더들의 비상을 보면서 말들이 어깨 죽지에서 날개가 돋아나 하늘을 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은 이 산의 원래 이름이  마유산(馬遊山)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패러글라이더는 아버지와 함께 탈옥해 하늘을 난 이카루스입니다. 아버지 다이달로스가 밀랍으로 날개를 붙여 주고 등을 떠밀어 하늘을 날게된 이카루스는 너무 높이 날면 밀랍이 태양열에 녹아 추락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하고 하늘 높이 날다가 밀랍이 녹아 바다로 추락해 죽는 어리석은(?) 인물입니다. 인류 최초로 하늘을 난 이카루스는 이문열의 소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가 출간되기 훨씬 전부터 소설의 제목처럼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음을 죽음으로 보여준 인물이기도 합니다. 하늘을 날고 싶은 욕망은 누구나 갖고 있는 본능적인 것이기에 우리 인류는 이카루스의 무모함을 비난하지 않고 그 용기를 높이 사 비행기를 만들었고 우주선도 개발했습니다.

 

   저도 딱 두 번 패러글라이드를 타 본 적이 있습니다. 초보 중의 왕 초보여서 밀랍이 녹아 없어질 만큼 하늘을 높이 나는 것은 꿈도 꿔보지 못했습니다. 파주에 사는 제 조카는 이 분야에 프로급이어서 한창 패러글라이딩에 미쳐 있을 때 이곳 유명산까지 원정을 자주 왔다 합니다. 저야 해발고도 70m 지점의 활공장에서 이륙한 것이 전부이지만, 제 조카는 활공장의 높이가 10배는 족히 되는 여기 유명산에서 하늘을 날며 저 아래 한강 위를 선회하곤 했다하니 그 기분이 정말 짱이었을 것입니다. 제 조카정도라면 밀랍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 그러하지 않고 욕심을 너무 내어 너무 높이, 그리고 너무 멀리 날아간다면 적당한 지점을 찾아 착륙하거나 다시 돌아오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명산의 상공을 나는 패러글라이더들을 보고 이카루스의 날개에서 밀랍을 녹인 것은 태양열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자제되지 않은 인간의 욕망이었을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더할 수 없이 유용한 에너지 원(Energy Source)이지만, 어느 선에서 자제되어야하는 관리 대상이기도 합니다. 이에 철저하지 못한 분들이 재상 반열에 오르려다 청문회에서 망신을 당하고 낙마하는 것이 요즘의 정치풍속도인 것 같습니다. 이들보다 지위가 낮거나 재산이 적은 사람들은 누구라도 이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다면 아직도 돌을 집어들 사람들이 많겠지만, 이들보다 욕심을 덜 낸 사람만이 돌을 던지라 한다면 동시대를 살아온 저를 포함한 동년배 중에는 돌을 들고 나설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한반도의 주요 산줄기를 모두 종주해보겠다고 꿈을 꾸는 것은 두 발을 땅에 딛고 내는 욕심이기에 밀랍이 녹아 없어지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무 걱정 하지 않고 한강기맥 종주를 이어가고자 합니다.

 

*위 글은 2013. 3. 31일 한강기맥의 말머리봉-유명산-배너미고개구간을 종주하고 쓴 종주기에서 일부를 발췌하여 2018. 3. 21일 가필 정정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