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서산 산행기
*산행일자:2018. 3. 3일(토)
*소재지 :충남홍성/보령
*산 높이 :해발791m
*산행코스:상담주차장-자라바위-오서산
-시루봉-성연주차장
*산행시간:9시40분-15시10분(5시간30분)
*동행 :나홀로
언어란 생각, 느낌 따위를 나타내거나 전달하는데 쓰는 음성, 문자 따위의 수단 또는 그 음성이나 문자 따위의 사회 관습적인 체계로 정의됩니다. 시대가 바뀜에 따라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가 바뀌고, 음성이나 문자 따위의 사회 관습적인 체계를 일컫는 언어 또한 따라 변화하는 것은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저처럼 나이든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의'를 '에'로 잘 못 발음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표준발음법에서 '의'를 '에'로 발음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는 것은 그런 경우가 비일비재해서입니다. 표준발음법이 '서울의'로 쓰고 '서울에'로 읽어도 틀리지 않다고 해야할 만큼 발음〔ㅢ〕가 〔ㅔ〕로 많이 변화해온 것입니다. 시대변화에 따른 언어의 변화는 발음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인정(人情)’이라는 단어는 국어사전에 ‘사람이 본래 가지고 있는 감정이나 심정’, ‘남을 동정하는 따뜻한 마음' , ‘세상 사람들의 마음’과 ‘벼슬아치들에 몰래 주던 선물’ 등 그 뜻이 4가지나 적혀 있습니다. 이는 ‘인정(人情)’이라는 단어가 조선시대에는 ‘뇌물’이라는 뜻으로도 쓰였기 때문입니다. 요즘처럼 이 단어가 ‘남을 동정하는 따뜻한 마음’ 등 좋은 의미로만 쓰인 것은 그 후의 일입니다. 이처럼 언어는 발음뿐만 아니라 의미도 같이 변화합니다.
고유명사인 산 이름도 고정불변일 수는 없습니다. 이번에 다녀온 충남의 오서산(烏棲山)도 이름과 뜻이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몇 차례 바뀌었습니다. 오서산전망대의 안내판에 따르면 백제 때 불린 오산(烏山)이 가장 오래된 이름인 것 같습니다. 통일신라 때는 오서악(烏西岳)으로 불리던 것이 조선시대에 들어와 오서산(烏棲山)으로 바뀐 이름이 오늘까지 불리고 있는 것입니다. 삼국사기 권제32 잡지제1에 3산5악 이하 명산대천을 나누어 “대사(大祀) 중사(中祀) 소사(小祀)로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 중 중사는 5악, 4진, 4해, 4독 외에 기타 지역에서도 제를 올렸는데, 기타 지역에 오서악(烏西岳)이 들어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오서악은 결기군에 있으며 삼국사기를 짓던 고려 인종 때는 홍성군 결성면에 소재한 것으로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의 오서산을 이르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 산이 단군조선에서부터 백제로 이어지는 동안 신령스런 기운이 넘치는 산으로 받들어져온 것은 태양 안에 세발 달린 까마귀인 삼족오(三足烏)가 살았다고 믿어서라 합니다. 이런 성스러운 산이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오서산(烏捿山)으로 바뀌었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까마귀산”으로 비하되면서 성스러운 명산의 의미가 퇴색되었다고 안내판은 적고 있습니다. 이 산은 옛 그대로인데 붙여진 이름은 오산-오서악-오서산으로 변천되어 왔으며,, 그 뜻하는 바도 삼족오라는 성스러움에서 기억을 제대로 못하고 까먹기를 잘하는 까마귀로 바뀐 것은 언어 또한 시대의 산물일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전9시40분 홍성 쪽의 상담주차장을 출발했습니다. 새벽부터 서둘러 산본 집을 나선 시각은 6시가 조금 넘어서입니다. 집에서 수원까지는 전철로 이동했고, 수원역에서 장항선 열차로로 갈아타 홍성시의 광천역에서 하차했습니다. 역전에서 7-8분 거리의 광천버스터미널로 옮겨 15분 남짓 기다렸다가 화개로 가는 710번 농촌버스에 승차해 중담을 지나 상담주차장에서 하차했습니다. 산행채비를 마친 후 주차장을 출발, 다리 건너 정암사로 가는 길을 4-5분가량 따라 걸어 다다른 삼거리에서 직진 길의 정암사행 길을 버리고 능선으로 가는 왼쪽 길로 들어섰습니다. 마침 삼거리에서 만난 홍성 분으로부터 정암사를 거쳐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계단이 무척 많아 무릎에 무리가 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이 분을 따라 능선길의 들머리까지 동행했습니다. 젊은 홍성 분에 제 발걸음이 느려 따라갈 수 없으니 먼저 갈 것을 권한 다음 천천히 그 뒤를 따라 올랐습니다. 들머리 바로 위 묘지를 지난 지 몇 분 안 되어 다다른 능선 길은 오른 쪽 위로 이어졌는데 길가 오른 쪽으로 나지막하게 울타리가 쳐진 것으로 보아 버섯이나 장뇌삼을 재배하는 사유림인 것 같았습니다. 산행시작 47분이 지나 다다른 첫 번째 임도를 건너 계단 위 산길로 올라섰습니다.
11시16분 자라바위를 지났습니다. 첫 번째 임도를 건너 올라선 산길은 경사가 제법 진 된 비알길이어서 천천히 걸어 올랐습니다. 능선을 중심으로 우측사면에 송림이, 그 반대 쪽 좌측사면에 참나무 숲이 자리 잡고 있어 대조적인 두 나무는 우리나라 극상림의 대표적 수종입니다. 모처럼 날씨가 따뜻해 마음이 안온해져서인지 상공을 나는 비행기의 굉음이 새소리처럼 다정다감하게 들렸습니다. 두 번째 임도에 이르러서는 임도 따라 왼쪽 위로 조금 옮겨 중담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지점에서 다시 오른 쪽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두 마리의 까마귀가 저를 보고 경계를 해서인지 꺼억꺼억 울자 이름 모르는 작은 새들도 덩달아 울어 귀에 거슬리는 불협화음의의 까마귀울음소리인 콜(call)과 재잘대는 작은 새들이 내는 화음의 송(song)이 이렇게 다르구나 했습니다.
계단 길을 지나 만난 자라바위는 생김새가 남달리 깔끔해서인지 그럴 듯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옛날 자라 등을 타고 산을 오르던 산신령이 힘에 겨워 지친 자라를 보고 등에서 내려 자라에게 항상 정상만 보고 살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합니다. 그 후 자라는 바위가 되어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 전설의 대강입니다. 전설을 알고나자 자그마한 바위가 거북에 비해 귀엽고 앙증맞은 자라처럼 보였습니다. 이 전설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는 것은 산을 다스리는 산신령이 물에서 살고 있는 동물까지 동원해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는 것과 힘들어 하는 자라를 보고 더 이상 타고 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내렸을 만큼 배려 깊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만하면 산신령이 산 속의 세계를 주재할 만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자라바위를 지나 해발고도가 500m 대에 이르자 잔설이 길을 덮어 아이젠을 꺼내 찼습니다. 그새 정상을 올라갔다가 하산 하는 홍성 분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면서 저도 벌써 누렸을 그분의 젊음을 새삼 부러워했습니다.
12시53분 해발791m의 오서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데크계단 길은 가파른 능선 길 끝부분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 계단을 따라 745m봉에 올라서자 아담한 원통형의 돌탑(?)이 자리하고 있어 카메라에 옮겨 담아왔습니다. 사방이 탁 트여 남동쪽 저 만치로 이 산의 정상이 잘 보이는 745m봉을 출발해 오서산정상에 이르기까지 능선 길에 눈이 수북이 쌓여 날씨만 푸근하지 않았다면 한 겨울에 설산을 걷고 있다는 착각에 빠질 뻔했습니다. 오서산 전망대에 올라 서자 사방이 탁 트여 과연 오서산이다 할 만큼 조망되는 풍광이 일품이었습니다. 서쪽과 남쪽 가까이로 눈에 들어오는 서해바다, 보령댐과 상연저수지, 동쪽과 북쪽으로 광천저수지와 가야산및 금북정맥이 한눈에 잡혀 군 으로 으로 가까이 보이는 서해 산에서 자 남서쪽 아래로 성연저수지, 북동쪽 아래로 광천저수지가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홍성시에서 세운 정상석을 지나 이 산의 정상에 다다르자 보령시에서 세운 정상석이 자리했는데, 사진을 찍고자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 제법 붐볐습니다. 배낭을 옆에 세워놓고 사진을 찍겠다는 생각을 접고 정상석만 사진 찍고 나자 금북정맥 종주 길에 이곳을 올랐던 12년 전의 산행이 떠올랐습니다. 언제 다시 오랴 싶어 정맥 길에서 얼마간 떨어져 있는 이 산의 정상을 우정 찾아 올랐던 2006년만 해도 50대 후반이여서 한 여름인데도 힘든 줄 모르고 올랐었습니다.
13시54분 해발562m의 시루봉을 지났습니다. 정상을 출발해 남쪽으로 이동한지 10여분이 지나 광케이블매설용(?)으로 세워진 둥근 구축물 앞에 이르렀습니다. 이 봉우리도 상연쪽에서 올라오는 산객들로 붐비기는 정상과 별반 차이가 없어보였습니다. 공중에 드론을 띄워 놓고 바쁘게 사진을 찍는 한 그룹의 젊은이들을 보고 또 한 번 젊음을 부러워했습니다. 이봉우리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성골주차장”방향의 평탄한 능선 길은 이내 가파른 내리막길로 바뀌어 아이젠을 차지 않았다면 생고생을 할 뻔했습니다. 올라오는 일군의 산객들과 인사를 반갑게 나누면서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인사를 하지 않고 그냥 지나친 것이 꽤 오래되었다 했습니다. 얼마 후 눈이 없는 곳을 찾아 자리를 잡은 후 20분 가까이 모처럼 푹 쉬면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내려가는 길은 그새 눈이 녹아 질펀했고, 자칫 잘못해 엉덩방아를 찧을까 엄청 신경이 쓰였습니다. 등산로에 세워진 표지목에 눈길이 간 것은 보령시의 특산물을 광고하는 문구가 적혀 있어서였습니다. 육면체의 사각목 한 면에 쓰여 있는 “보령 특산품 - 바다에서 태어난 순수머드 화장품”이 그 좋은 예로, 표지목마다 광고 상품이 달랐습니다. 돌탑에 세워진 시루봉(?)에 다다른 것은 정상을 출발한지 1시간 가량 지난 뒤였습니다.
15시10분 보령 땅 성연주차장에서 하루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시루봉에서 하산하는 길도 길이 가파르고 미끄럽기는 앞서 걸어 내려온 길보다 못하지 않았습니다. 고도가 낮아질수록 잔설이 보이지 않는 대신 밤에 얼었던 표토가 녹아 아이젠을 찼는데도 찍찍 미끄러져 스틱이 아니었다면 발랑 나자빠지기가 십상일 것 같았습니다. 묘지를 지나고 얼마 후 내려선 임도에서 오른 쪽으로 내려가다 고로쇠물을 채취하는 젊은이들을 만나 주차장으로 가는 보다 빠른 길을 안내받았습니다. 임도 따라 내려가다 왼쪽 아래로 난 샛길로 내려가 다시 임도로 내려섰습니다. 임도 따라 왼쪽으로 내려가 집들이 듬성듬성 떨어져 있는 상연리 신촌생태마을입구에 다다랐습니다. 바로 앞의 610번 지방도로를 건너 주차장에서 하루 산행을 마무리하고 택시를 불러 광천역으로 이동했습니다. 기사분과는 한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서인지 둘이 나눈 대화는 자연스럽게 노년의 삶으로 모아졌습니다.
이번 산행 중 몇 마리의 까마귀가 까악까악 우는 소리를 몇 번 들었습니다. 몸통의 색깔이 온통 새까만데다 그 우는 소리도 별로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니어서 어느 누구라도 까마귀를 직접 대하고 옛날처럼 성스러운 삼족오로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까마귀의 전신인 전설상의 삼족오가 상상속의 봉황새로 대체됨에 따라 까마귀의 위상이 삼족오와 함께 떨어지는 것이 어쩔 수 없었듯이, 오서산도 그 후 더 유명한 산들이 속속 밝혀짐에 따라 그 지위가 그저 그런 산중의 하나로 격하되는 것을 피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오서산을 굳이 한자로 표기하지 않고 그냥 한글로 표기해 까마귀를 들먹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까마귀산”이라는 오명을 씻어내는 한 방법이 될 수 있겠다 싶기도 합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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