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계산 산행기
*산행일자:2018. 4. 22일(일)
*소재지 :경남거창/합천
*산높이 :해발1,126m
*산행코스:도리삼거리-비계산-1093m봉-마장재
-고견사입구다리
*산행시간:10시25분-16시38분(6시간13분)
*동행 : 대구참사랑산악회원 및 서울 독립군
모임 회원 15명
이번에 대구의 참사랑산악회와 함께 오른 비계산(飛鷄山)은 경남 거창군 가조면과 합천군 가야면을 경계 짓는 산으로, 해발고도가 1,126m에 이릅니다.(일부지도에는 고도가 1,130m로 나와 있습니다.) 돌, 굴, 너덜과 더불어 바람이 많기로 이름난 이 산이 하루 종일 바람을 잠재워 능선 길을 에워싼 안개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산세가 마치 닭이 날개를 펼치고 날아가는 것과 같다하여 이름 붙여진 비계산에 안타까운 전설이 전해진다는 것은 재희님의 블로그에서 아래 글을 읽고 알았습니다.
옛부터 비계산에는 비계포란형의 지형이 있어서 길지라고 했다. 닭이 알을 품는 형국이었는데, 산맥을 끊어 닭이 날아가는 형국으로 만들어 비계산이라 부르게 했던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가조가 도읍으로 변신하기 위해 飛鷄山이 말 그대로 '날아가려'했다는 것이다. 이 경우 가조는 사방이 산으로 막힌 데서, 한 곳이 훤히 트여지면서 도읍지로써 손색이 없었다고 했는데, 그런데 이 모습을 본 한 여인이, 방정 맞게도 '어 산이 날아 가네!'라고 큰소리를 질렀다는데, 이 소리를 들은 산은 그만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는 얘기가 전해져 온다고 한다. 그 이후에 이곳 가조 땅에는 재상이 한 명도 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단 한명의 재상도 배출하지 못한 이 산이 알카리 온천수를 내뿜어 온천욕을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은 1985년 이후의 일입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와 광명역에서 KTX를 타고 동대구역으로 향했습니다. 2시간을 조금 못 달려 도착한 동대구역에서 대구참사랑산악회원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미니버스로 갈아타고 88고속도로에 올랐습니다. 논공휴게소를 들러 참사랑산악회에서 차린 조반을 맛있게 든 다음 88고속도로를 더 달려 가조톨게이트에서 빠져나왔습니다. 1084번지방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이동, 도성육교를 조금 지나 도착한 시멘트도로 삼거리에서 하차했습니다.
10시25분 도리 삼거리에서 비계산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해발460m 지점의 삼거리를 출발해 왼쪽의 시멘트도로를 따라 10분가량 걸어 올라가 다다른 삼거리에서 오른 쪽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여러 기의 묘지를 지나 된비알길이 시작되었고 이내 만난 너덜겅을 비껴갔습니다. 너덜겅에 뿌리박은 꽤 큰 생강나무의 노랑꽃을 사진 찍으면서 생각난 것은 어렸을 때 제 고향 파주에서는 동백꽃이라 불린 이 꽃이 국민애창곡인 “동백아가씨”의 가사에 나오는 빨간 동백꽃과 색상이 같지 않아 이상했는데 십 수 년이 지난 후 여수로 신혼여행가서 진짜 동백꽃을 보고나서야 그 의문이 풀린 일입니다. 너덜겅을 지나 정북 방향으로 이어지는 오름 길은 경사가 더욱 가팔라졌고 비 또한 쉬지 않고 내려 산 오름에 속도를 내지 못했습니다. 중력을 거슬러 급경사 길을 오르는 것은 과체중의 제게는 역시 힘든 일이어서 한 시간 남짓 걸은 다음 5분 남짓 쉬어갔는데도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 한 순간 속이 메스껍고 현기증이 나서 그 자리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진정시킨 후 산행을 이어가야했습니다.
12시43분 해발1,126m의 비계산(飛鷄山)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소나무 밭을 지나 ‘산제치
3.4Km/도리1.9Km/비계산0.15Km’의 표지목이 서있는 능선에 이르렀는데도 바람이 전혀 불지 않아 산을 휘감고 있는 안개가 좀처럼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이번 산행의 하이라이트인 능선삼거리-비계산-의상봉 코스는 수도지맥이 지나는 능선 길로 경관이 빼어나기로 이름 난 길인데도 때맞춰 짙게 낀 안개가 태양광의 투과를 막아 아무 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능선삼거리에서 왼쪽 능선을 따라 10분가량 걸어 올라선 비계산 정상에서 합천군에서 세운 정상석을 사진 찍고 곧바로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해발1,130m의 지인봉으로 향하다 과연 명불허전이라며 감탄한 것은 수m 거리를 두고 깎아지른 두 암벽이 만든 안개 낀 협곡이 마냥 신비로워서였습니다. 지인봉에 세워진 벤치에 모여 앉아 점심을 함께 들었습니다. 올해로 11주년을 맞는 참사랑산악회와의 합동산행 덕분에 대구에서 멀지 않은 명산들을 두루 유람할 수 있었는데. 그때마다 산상에다 진수성찬의 점심상을 차려주어 더욱 고마웠습니다.
13시36분 지인봉을 출발했습니다. 40분 남짓 식사를 한 후 마장재를 거쳐 우두산을 오른 다음 주차장으로 하산하는 긴 코스를 타는 준족의 9명이 먼저 자리를 떴고, 마장재에서 왼쪽 아래 주차장으로 하산하는 짧은 코스를 택한 후미의 6명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김형수님이 지은 “韓國400山行記”에서 북쪽의 뒷들재로 이어지는 능선이 거대한 암봉으로 연결되는 험로여서 보조자일을 준비해가는 것이 좋겠다는 글을 읽은 데다 산행 중 부슬부슬 비가 내린 까닭에 길이 미끄럽다 싶어 잔뜩 긴장했는데 험로마다 안전하게 다리를 놓아 참으로 다행이다 했습니다. 지인봉에서 북쪽으로 5백m 가량 이동해 철제 다리를 건너면서 가조4경인 비계산 풍혈을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안내판에 따르면 ‘비계풍혈(飛鷄風穴)’을 비계산 산정의 지인봉에 위치하며, 깊이 20m의 굴이 있어, 가조고을에 바람이 일 기미가 있으면 이틀 전부터 굴속에서 바람소리가 일렁이고, 그 소리가 가조현까지 들렸다하여 '비계산 바람굴'이라고도 불렀다 합니다. 비계풍혈을 지나 올라선 산봉우리에서 돌탑봉으로 이어지는 서쪽 능선 길을 버리고 북쪽 능선 길로 내려가 마장재로 향했습니다.
15시49분 마장재에 이르렀습니다. 봉우리삼거리에서 북쪽으로 십 분 가까이 내려갔는데도 앞장선 후미의 두 여성회원이 보이지 않아 가던 길을 멈추었습니다. 두 분의 부군들이 큰 목소리로 되돌아오라고 외친 것이 주효해 길을 잘못 든 두 여성분이 그 소리를 듣고 응답을 해왔습니다. 저는 그 응답을 듣지 못했는데 부인을 걱정하는 간절한 부군 두 분이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부군 한 분이 오던 길로 되돌아가 길 잃은 두 분을 모시고 되돌아와 다시 산행을 함께 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뒷들재를 지나 1093m봉으로 오르는 길이 유독 길게 느껴진 것은 길을 잃었던 두 분이 합류하면서 긴장이 풀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1093m봉을 넘어 내려선 안부에서 조팝나무 군락지를 지났습니다. 앙증맞다 할 정도로 작은 하얀 꽃송이 여럿 모여 소담스러워 보이는 조팝나무 군락지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잠시 멈춰 합동사진을 찍었습니다. 꽤 넓은 헬기장을 지나 올라선 나지막한 둔덕은 우두산의 철쭉 군락지로 수많은 꽃망울이 이내 터질 것 같았습니다. 둔덕에서 내려선 넓은 안부가 마장재로 이 고개에서 왼쪽 아래 주차장으로 하산했습니다.
16시38분 고견사 입구 다리에서 하루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마장재는 합천군 가야면의 노른재와 거창군 가조면의 고견사입구로 길이 갈리는 안부사거리로 직진하면 우두산으로 오르게 됩니다. 우두산 방향의 가지만 앙상한 두 나무와 그 아래 놓인 두 개의 긴 벤치, 그리고 이들을 희미하게 감싼 안개가 연출한 몽환적인 정경을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왼쪽 고산사 입구의 주차장 쪽으로 하산하기 시작했습니다. 내려가는 길이 가파르지 않아 후미에서 동행한 전임 참사랑 산악회장분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나이가 70줄에 접어들자 언제부터인가 언제까지 사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꼭 집어 답을 말할 수는 없지만 그저 생명만 이어가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어 적절히 대비해야 한다는 데는 쉽게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한참 동안 내려가 만난 계곡은 고견천의 최상류로 물이 맑고 깨끗해 잠시 쉬어갔습니다. 계곡을 건너 언덕으로 올라서자 저 아래로 아침에 타고 온 노란 미니버스가 보였습니다. 0.5Km를 더 걸어 내려가 고견사가 멀지 않은 다리에 도착해 대기 중인 미니버스에 올랐습니다. 거의 비슷한 시각에 도착할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한 시간을 기다려 우두산을 오른 팀원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대구 시내로 옮겨 가진 뒤풀이도 점심상 못지않게 진수성찬이어서 송구스러웠습니다.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산행을 같이 하지 못하게되면 뒤풀이에는 반드시 참석할 정도로 해가 갈수록 우정이 돈독해져 가슴 뿌듯했습니다. 오래 건강이 유지되어 B코스라도 같이 오르기를 갈망하는 것은 함께 산을 오르고 나면 이런 것이 사람 사는 참맛이다 싶은 생각이 절로 들곤 해서입니다.
한 여인이 '어, 산이 날아가네!'라고 큰소리를 질렀더니 산이 그만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는 전설에서 제가 읽은 것은 여인의 방정맞음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제가 느낀 것은 이 여인의 슈퍼 파워입니다. 거대한 산을 주저앉히고 재상의 씨를 말리는 막강한 힘 말입니다. 비계산의 산세로 보아 여인이 이 산의 정기를 받아 태어났다면 능히 그럴만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전통적 남성우월의식이 산산이 깨져버린 오늘날 그나마 남아 있는 자존심마저 뿌리 채 뽑혀나간 것은 일부몰지각한 파워 맨들이 저지른 야만적 행위를 여성들이 용감히 나서 고발하는 운동을 벌인 때문일 것입니다. 비계산의 슈퍼 우먼이 여성 운동에 앞장선다면 갑질하는 재상은 배출하지 못해도, 정신이 제대로 박힌 올곧은 남성들은 계속 늘어날 것 같습니다.
비내리는 궂은 날씨에 암릉 길을 종주한 대구팀의 네 분 여성회원들도 비계산의 여인 못지 않은 슈퍼 우먼이라는 생각이 들어 한 꼭지 첨언했습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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