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V.시인마뇽의 문학산책/시인마뇽의 산행에세이

35.신록의 천마산에 올라 순간을 적분하다

시인마뇽 2018. 5. 24. 21:13

                                 

                                  신록의 천마산에 올라 순간을 적분하다


 


   시간을 미분하면 순간이 되고, 순간을 적분하면 세월이 됩니다. 계절의 여왕 5월에 산을 오르면 순간을 다투며 푸르게 변해가는 신록의 숲에 발을 들이게 되고, 억겁의 세월이 정성들여 만든 바위도 오르게 됩니다. 순간과 세월이 모두 시간의 함수라면 5월의 산에 올라 시간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실체를 만져볼 수 없다고 시간의 존재를 잊어버린다면 삶의 자취를 점찍어 나갈 시공의 좌표면도 같이 잊게 되어 살아나가기가 엄청 당혹스러울 것입니다. 삶의 현주소가 확인 안 되어 언제 어디에서 온 누구인가를 새까맣게 잊게 될 것이고 앞으로도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해야 할지 방향잡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계를 만들어 오관으로 확인 할 수 없는 시간을 측정하고 기록해두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제가 즐겨하는 산행도 결국은 그때그때 남기고 싶은 순간을 기록하고 쌓아가 세월을 만들어가는 삶의 한 과정이기에 이 또한 시간의 함수입니다.

 

  어제(2007. 5. 20일)는 경동고교 동문들과 함께 천마산 구간의 한북천마지맥을 종주했습니다. 천마산의 산줄기를 타면서 계절의 여왕으로 널리 알려진 5월이 명불허전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하루 산행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어제의 천마산 산행만 같기를 바라는 것은 5월이 준비해 놓은 신록과 바람 덕분입니다. 파릇파릇 돋아난 새싹들이 어느새 크게 자라 온 산이 푸르렀으며 산줄기로 올라선 골바람이 적절한 세기로 불어주어 얼마고 걸어도 더운 줄 모르고 한참을 쉬어도 써늘하지 않은 최적의 기온이었습니다. 이에 더하여 길섶의 야생화도 저희들에 곁을 주어 천마산이 마치 천국처럼 느껴졌습니다. 쉴 새 없이 하늘거리는 야생화의 청아하고도 아름다운 한 순간을 포착해 카메라에 담는 민첩성이 돋보인 한 후배의 재빠른 손놀림이나, 오랜만의 장시간 산행으로 지쳐 마지막 얼마동안 다리를 끄는 또 다른 후배의 느린 발걸음 모두 5월의 산줄기가 준비한 시간놀음이었습니다.

 

 오전 11시경 남양주시 수동면의 가양초교 앞에서 산행을 시작한지 5시간 만에 해발812미터의 천마산 고스락에 올라섰습니다. 먼저 정상에 올라 자리를 지키던 한 분이 저희 일행 5명의 기뻐하는 모습 몇 커트를 사진 찍어주었는데 그때마다 들어갑니다하고 신호를 보냈습니다. 이제껏 피사체가 카메라 안으로 들어간다고 믿어온 제게 거꾸로 카메라가 피사체 안으로 들어간다고 일러준 그 분의 한마디에서 저의 세상 보는 눈이 너무 고답적임을 알았습니다. 거대한 산줄기가 카메라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고 속상해하는 제가 작은 카메라를 웅장한 산속으로 들이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을 바꾸게 한 것은 촌철살인과 같은 들어갑니다한마디였습니다.

 

   손이 석자만 더 길었어도 손끝이 하늘에 닿을 수 있다하여 천마산으로 불린다는 이 암봉에 석자가 훨씬 넘는 깃봉이 세워졌어도 하늘은 여전히 높아보였습니다. 어차피 손끝에 닿지 못할 하늘이라면 깃발을 세워 소리 없는 아우성을 전하는 편이 옳겠다는 판단에서 이 암봉에 깃봉을 세우고 태극기를 매달았다면 같은 뜻으로 깃봉을 세웠을 주금산, 철마산과 천마산 정상봉을 묶어 한북천마지맥의 국기봉 삼형제로 불러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천마산 정상에서 남쪽 마치고개로 이어지는 지맥 길은 경사가 급한 내림 길이 헬기장까지 이어졌습니다. 헬기장을 지나서 얼마 후 로프를 잡고 절벽을 내려서자 고도차가 별로 없는 편안한 구릉 길이 시작되어, 남은 길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 길만 같으라고 빌었습니다. 더할 수 없이 안온한 이 순간을 적분해 세월 수준으로 끌고 갈 수 있다면 남은 길이 이 길과 같아 최고의 양탄자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라 하면서 이 순간의 스러짐을 아쉬워했습니다. 정상에서 2시간 가까이 걸어 내려가 다다른 마치고개에서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일 년 열두 달 중 산행하기 가장 좋은 달은 누가 뭐라 해도 계절의 여왕인 5월임에 틀림없습니다. 이틀 동안 내린 비로 마냥 싱그러워진 신록의 산속에서 7시간여 동문들과 같이 보낸 어제의 천마산 산행은 걸으면서 시간이 멈춰주기를 바라는 아름다운 순간이 꽤 여러 번 있었습니다. 어느새 세월 속으로 꼭꼭 숨어버린 아름다운 순간들을 다시 끄집어 내 이 글을 쓰느라 무척 힘들었습니다.   


* 위 글은 2007년 5월20일 고교동문들과 함께 한북천마지맥 종주차 천마산을 산행한 후 쓴 '한북천마지맥종주기3'에서 일부를 따와 2018년 5월24일 가필 수정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