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V.시인마뇽의 문학산책/시인마뇽의 산행에세이

37.만어사(萬魚寺) 너덜이 전하는 메시지

시인마뇽 2019. 4. 8. 15:05

                                        만어사(萬魚寺) 너덜이 전하는 메시지


 

  어제(2011. 4. 25) 벌써부터 별러온 만어산을 다녀왔습니다. 전날 대구 참사랑산악회 초청으로 울산의 신불산을 올랐다가 저 혼자 남아 밀양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아침 일찍 삼랑진으로 옮겼습니다. 관음사에서 시작해 구천산과 만어산을 차례로 오른 후 만어산 중턱에 자리한 만어사(萬魚寺)를 탐방했습니다.

 

    나지막한 산 중턱에 자리한 자그마한 절 만어사가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것은 이 절의 규모나 오랜 역사 덕분이 아닙니다. 고려명종 때 지은 이 절이 신라 때 창건된 다른 명찰처럼 천년고찰이 아님은 분명하고, 좁은 절터에 세워진 미륵전과 대웅전의 규모 또한 아주 작아 큰 암자 같은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고찰도 못되고 대찰도 아닌 이 절이 명찰로 자리 잡은 것은 이 절 앞을 흐르는(?) 종석(鐘石) 너덜 덕분입니다. 이 너덜이 없었다면 김수로왕과 관련된 설화가 전해질리 만무했고, 그랬다면 만어사라는 절 이름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고려의 명승 일연스님은 그의 저서 삼국유사(三國遺事)”를 통해 이 절과 관련된 설화를 다음과 같이 전해주었습니다.

 

  고기(古記)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만어산(萬魚山)은 옛날 자성산(慈成山) 또는 아야사산(阿耶斯山)이니, 부근에 가라국이 있었다. 옛날에 알이 해변에서 내려와 사람이 되어 나라를 다스렸으니, 바로 수로왕(首露王)이다. 당시 나라 안에 옥지(玉池)가 있었는데, 연못에는 독룡이 살고 있었다. 만어산에는 나찰녀 다섯 명이 독룡과 오가면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이따금 번개가 치고 비가 와서 4년이 지나도록 오곡이 영글지 않았다. 왕은 주술을 막고자 했으나 하지 못하고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에게 청하여 설법을 한 연후에야 나찰녀가 오계(五戒)를 받아 이후로는 폐해가 없게 되었다. 그러자 동해의 물고기와 용이 바위로 변하여 골짜기에 가득 찼는데 각기 쇠북과 경쇠소리가 났다.”

 

   이 바위들을 고기들이 변해서 됐다하여 만어석(萬魚石)이라 부르며,  두드리면 종처럼 맑은 소리가 난다고 해 종석(鐘石)으로도 부릅니다. 이곳에 고려스님 동량 보림이 만어사를 세운 것이 1180년이었으니, 물고기들이 종석으로 변한 지 천년이 지난 후의 일입니다. 이 절을 8백년 넘게 지켜온 것은 대웅전 앞뜰의 삼층석탑과 지금도 두드리면 3개 중에 하나 꼴로 종소리를 낸다는 너덜입니다.

 

   만어사 아래 첩첩이 깔려 있는 너덜을 보고 마치 바위덩어리들이 흘러내려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그동안 이산 저산에서 크고 작은 너덜들을 꽤 여러 번 보았지만 매번 큰 바위가 박혀 있다고 생각했지 물 흐르듯이 바위들이 흘러가는 것 같다는 느낌을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우리말 너덜을 지형학 용어로 바위덩어리들의 흐름을 뜻하는 암괴류(巖塊流, Block Stream)으로 칭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습니다. 여기 암괴류는 약6,500만 년 전인 신생대 초기에 지하에서 관입한 흑운모 화강섬록암이라 합니다. 이 화강암은 오랜 세월 땅 속에서 풍화를 받은 후 지표에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화강암이 지표로 올라올 때 이 암석을 내리누르던 거대한 압력이 사라져 암석이 팽창하면서 절리가 발생하는데, 특별히 만어산 일대에서는 밀양-언양 단층선의 영향으로 화강암에 절리가 탁월하게 발달하여 대규모의 암괴류가 만들어졌다고 이우평님은 그의 저서 한국지형산책에 적고 있습니다. 바위에서 소리가 나는 것은 바위덩어리인 암괴들이 꽉 물려 고정된 것이 아니라 다른 바위들 사이에 가볍게 얹혀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자연현상이라 하니 부처님의 영험과는 무관한 것 같습니다.

 

  자연현상을 합리적 이유를 들어 설명하는 일은 과학이 맡고 있습니다.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 만어사 앞 종석너덜의 종소리를 합리적으로 설명하기가 어렵지 않습니다만, 신화가 지배하던 1세기경이라면 김수로왕이라도 그 설명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기(古記)를 있는 그대로 해석한다면 나찰녀와 독룡이 합작해 부린 행패가 그리 심하다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그 행패가 이따금 번개 치고 비 오는 정도라면 요즘도 흔한 일이니 4년이 지나도록 오곡이 영글지 않은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을 것입니다. 일연 스님은 이 설화를 통해 부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인가를 일러주셨지만, 저는 이 설화의 본 뜻이 부처님의 신통력에 있는 것이 아니고 거대한 암괴류를 보고 놀란 선조들이 그들 나름대로 암괴류의 생성원리를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안심했다는 데 있다는 생각입니다. 산에서 엄청 큰 바위가 굴러(?) 내려온 것을 이변으로 생각지 않고 동해의 용과 물고기가 변해 생성된 상서로운 일로 해석해야 마음을 놓을 수 있기에 김수로왕과 부처님의 도움을 받아 그리 해석한 것이라면 그 나름대로 합리성을 갖고 있기에 오늘날 지형학의 설명과 다르다하여 비과학적이라고 비난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설화가 생명력을 갖는 것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논리를 갖고 있기 때문임을 이번에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몇 해 전 부산의 금정산을 오른 적이 있습니다. 정상을 올랐다가 범어사로 내려가며 왼쪽 골짜기를 꽉 메운 너덜들을 보았습니다. 그 아래 범어사(梵魚寺)와는 한참 떨어져 있는 금정산의 암괴류도 만어사(萬魚寺) 앞 그것들보다 그리 작지 않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산 꼭대기에 황금색 물이 가득 차있는 우물이 있었는데 한 마리의 금빛 나는 물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범천에서 내려와 놀다 갔다는데서 금정산(金井山)의 산 이름과 범어사(梵魚寺)의 절 이름이 유래했다 합니다. 지난 4월에는 낙남정맥 종주 길에 신어산(神魚山)을 지났습니다. 신어산(神魚山)의 신어(神魚)는 수로왕릉 정면에 새겨진 두 마라 물고기를 뜻한다 합니다. 신어산에 자리한 은하사 대웅전의 수미단에 새겨진 쌍어문양이 수로왕비 허황옥이 인도 아유타국에서 도래했음을 일러주는 징표일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이 일대에 물고기와 관련된 설화가 전해지는 산이나 절이 많은 것은 수로왕이 지배한 가야 땅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처럼 물고기를 몰고 다니는 수로왕(首露王)을 수로왕(水路王)으로 불러도 괜찮겠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어 이만 탐방기를 맺습니다.  

 

*이 글은 2019. 4. 10일 만어산 산행기에서  따와  일부를 수정해 재작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