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V.시인마뇽의 문학산책/시인마뇽의 산행에세이

39. 지도 단상(斷想)

시인마뇽 2020. 12. 25. 20:34

  미국의 역사학자 조지프 A. 아마토가 지은 "걷기, 인간과 세상의 대화(On Foot)"에 따르면 우리 조상들이 직립보행을 시작한 지 약 6백만 년이 지났다고 합니다. 세계 최초로 바빌로니아지도가 만들어진 것이 약4,500년 전의 일이라 하니, 그 때의 우리조상들이 지금의 우리와 같지는 않겠지만 지도를 보고 걸은 기간은 그 때부터 계산하더라도 걷기 역사의 1%도 채 안 되는 아주 짧은 시간입니다. 다시 말해 인류는 직립보행 역사의 99% 이상을 지도 없이 걸은 것입니다. 우리나라 지형도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일제 때로 우리나라 산꾼들이 등고선을 보고 산위를 걷기 시작한 것 또한 아무리 길게 잡아도 100년이 못됩니다. 저 역시 어렸을 때 동네 뒷산을 지도 없이 잘도 오르내렸습니다. 칡뿌리도 캐먹고 버찌도 따먹는 등 그 당시 절대 부족했던 당분을 보충하고자 그리 높지 않은 뒷산을 수도 없이 오르락내리락 했습니다. 좀 커서는 먼 산으로 땔감을 구하러 가기도 했고 눈이 많이 내린 날은 토끼몰이 차 푹푹 빠지는 눈 속을 헤매기도 했습니다. 이 모두가 지도 없이 한 일입니다.

 

 

  19705만분의 1 지형도를 처음 사갖고 지리산을 올랐습니다. 바늘 가는 데 실이 빠질 수 없듯이 나침반을 처음 써 본 것도 제가 혼자서 처음으로 지리산을 종주한 그 때였습니다. 지도사용이 서툴렀지만 눈이 나쁜 사람이 처음으로 안경을 해 끼었을 때 온 세상이 내 세상처럼 보이듯이 산세가 한 눈에 잡혀 정말 신기했습니다. 제가 본격적으로 지도를 빼놓지 않고 휴대한 것은 경기도 일원의 해발 1,000m가 넘는 산들을 하나하나 오르기 시작한 1998년부터로  이제 겨우 10년이 됐습니다. 2004년부터 주로 혼자서 대간과 정맥을 종주하며 지도 덕을 단단히 보았기에 요즘은 지도 없이 산 나들이를 나서는 것은 꿈도 꿀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산에서 저의 안전을 가장 확실하게 담보하는 것이 지도와 나침반이어서 제게는 이 둘이 휴대폰보다 훨씬 듬직한 길동무입니다.

 

 

 

  어제는 양자산 정상에서 예정에 없던 양자산-백병봉-남한강변 구간으로 하산코스를 변경하느라 이 구간을 지도 없이 걸었습니다. 결과는 보기 좋게 실패했고 그래서 도중에 그 보다 짧은 성덕2리로 하산해야 했습니다. 이제껏 길동무로 알아왔던 지도가 제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길잡이였음을 어제 비로소 알았습니다. 1968년 한라산을 오른 이후 저 나름대로 40년을 꾸준히 산에 올랐기에 해발 600-700m정도의 경기도 산들이야 지도가 없다고 설마 길을 잃으랴 싶었습니다.  그 설마가 현실화되어 저의 만용을 비웃었습니다. 양지산 정상에서 만난 한 분이 그 길로 올라왔다면서 한 번 내려가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을 듣고 냉큼 받아들인 것이 결과적으로 잘 못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지도 없이도 잘도 산을 다녔습니다. 그 후 40년 가까이 산을 다니면서 지도를 가지고 산을 다닌 것은 고작 10년 밖에 안 됩니다. 지도가 없다는 이유로 길을 찾지 못해 다른 길로 하산하고 나자, 최근10년간 지도에 너무 의존해 직관적으로 길을 찾는 능력이 상당히 저하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명의 이기들이 거의 다 그렇듯이 한 번 빠져들면 그 다음부터는 그 이기의 노예가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휴대폰에 전화번호를 입력하고 나서는 두 아들의 번호도 새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이제 휴대폰을 잃어버린다면 저의 비상연락망은 올 스톱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암기를 쉽게 하기위해 휴대폰에 전화번호 입력을 포기할 수 없듯이 길을 찾는 직관을 강화하기 위해 지도를 내버릴 수는 없습니다.

 

 

  산 속에서 지도가 길을 안내하듯이 인생에서도 제 길로 인도하는 소중한 분이 계실 것입니다. 그 분의 인도만 있다면 광야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권철신과 그의 제자들은 천진암에 모여들어 지도 한 장 없이 새로운 신앙의 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래서 천진암을 우리나라 천주교의 자생지로 성지가 된 것입니다. 인류가 99%의 걷기 역사를 지도 없이 걸었듯이 권철신과 그의 제자들은 신부님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당연 가시밭길이었고 그들은 목숨을 바쳐 가시밭길을 지나 후손들에 신앙의 지도를 남겼습니다. 그들이 걸은 가시밭길이 얼마나 험난했는가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세례를 받은 이승훈이 일시적으로 배교를 했고 다산 정약용이 천주교에 발을 끊은 것으로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조선 조정은 이벽, 이승훈, 정약종, 권철신, 권이신등의 목숨만으로는 모자라 103인의 순교자를 내고서도 박해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당시 조선조정은 새롭게 내고 있는 올바른 신앙의 길을 그려놓은 지도를 들여다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길을 바로 내고 지도를 만든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위 글은 2008년 경기도의 양자산으로 오르고 작성한 산행기의 일부를 발췌해 2020년12월25일 다시 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