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2011. 9. 5일)는 신불산을 지나는 낙동정맥을 종주하면서 이산의 억새평전에서 훈련을 했을지도 모르는 신라의 화랑을 떠올렸습니다. 신라의 고도 서라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천 미터가 넘는 높은 산이 있고 그 위에 넓은 평전이 있는데 수려한 산천을 찾아 심신을 닦는 화랑이 이런 곳을 그냥 빼놓을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아직 관련기록을 찾지 못해 이곳이 훈련장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신라의 명승 원효대사가 머물렀다는 천성산이 그리 멀지 않기에 화랑들이 원효대사를 기리기위해서도 이 산길을 오르내렸을 것입니다.
삼국유사가 전하는 향가에 등장하는 화랑은 모죽지랑가의 죽지랑, 화랑일것으로 추정되는 찬기파랑가의 기파랑과 혜성가의 세 화랑입니다. 융천사가 지어 불길한 혜성을 퇴치했다는 혜성가(慧星歌)에는 “세 화랑의 산 구경을 오심을 듣고”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홍기삼교수의 해설에 따르면 세 화랑의 무리가 지금의 금강산인 풍악에 놀러가려고 하는데 혜성(慧星)이 심대성(心大星)을 범하여 낭도들이 의아해 하며 여행을 중지하려 했다 합니다. 그때 융천사가 향가를 지어 부르자 괴성이 곧 사라지고 일본병도 환국해 오히려 경사스럽게 되었고 이에 대왕이 기뻐하여 낭도들을 풍악에 놀러 보냈다는 것이 이 노래 내용의 요지입니다. 서라벌에서 그 먼 풍악까지 놀러갔는데 이 가까운 신불산 정도라면 왔어도 몇 번은 왔을 것입니다.
신라의 화랑이 낙동정맥이 지나는 이 산줄기를 원행 코스로 삼았음을 문헌으로 확인할 수만 있다면 영남알프스라 명명한 이 산길을 화랑로(花郞路)로 바꿔도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삼국사기에 분명히 적혀 있는 북한산도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이름을 바꿨다며 삼각산으로 고쳐 부르자는 주장도 있는데 관련기록만 확실하다면 굳이 유럽의 알프스산맥에서 이름을 따다가 쓸 일이 없잖나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참고로 북한산에 관련된 삼국사기의 기록을 옮겨 놓습니다. 신라본기 진흥왕 편의 “16년 정월에 비사벌에 완산주를 두었다. 10월에 북한산에 순행하여 강역을 확정하였다(十六年, 春正月, 置完山州於比斯伐, 同十月 王巡行 北漢山 拓定封疆).”는 기록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북한산의 본래 이름도 북한산이 분명합니다.
옛날 화랑이라면 신불산 산줄기를 원행한 후 택시를 타지 않고 말을 탔을 것입니다. 또 저처럼 KTX를 타고 서둘러 서울로 내빼지 않고 천천히 서라벌로 입성했을 것입니다. 화랑들이 영남알프스 길을 걸은 것이 확인만 된다면 배내고개 쯤에 역참을 만들어 울산역까지 말을 타고 가보는 관광프로그램도 꾸며볼 만 하다는 생각이 든 것은 바뀔 이름의 화랑로만은 옛 그대로 천천히 걸으며 화랑들처럼 유람해보고 싶어서입니다. 그 때보다 수명은 몇 십 년 늘어났는데 그 긴 인생을 내내 달릴 수만은 없지 않나 싶기도 해서입니다.
*본고는 2011년9월5일 신불산을 지나는 낙동정맥을 종주한 후 작성한 산행후기에서 일부를 떼어 2021년1월13일 재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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