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2016년) 봄 강원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하고 나서 “전상국의 춘천산 이야기”를 사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소설 「아베의 가족」으로 한국문단에서 위치를 확고히 한 소설가 전상국님이 쓴 이 책에서 춘천을 둘러싸고 있는 산줄기를 어떻게 이어갈 수 있느냐에 대한 답을 얻고 나자, 제 머리를 맴돈 것은 언제부터 이 산줄기 종주할 것인 가였습니다.
춘천분지순환등반로는 춘천시를 둘러싸고 있는 산줄기를 이어가는 산길입니다. 의암댐에서 시작해 드름산, 금병산, 대룡 산, 오봉산, 수리봉, 삿갓봉, 가덕산, 북배산, 계관산을 거쳐 삼악산에 오른 다음 의암댐으로 내려가는 순환등반로인 이 산길은 그 전장이 83.2Km에 달합니다. 어제(2017년5월18일) 혼자서 드름산을 올라 춘천분지순환등반로에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드름산 정상에서 나무에 붙박아 놓은 벽시계를 보았습니다. 누군가가 손을 보아서인지 시간이 정확하게 맞았습니다. 어디다 쓰려고 이곳에 시계를 갖다놓았나 궁금해 하다가 문득 천마산 산행기에 써넣은 “시간을 미분하면 순간이 되고, 순간을 적분하면 세월이 된다”는 문구가 생각났습니다. 이 구절은 50대 후반에 천마산을 오르는 중 생각이 나서 쓴 것으로 지금 다시 읽어도 흐뭇해지곤 합니다.
그러고 보니 젊었을 때는 참으로 바쁘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항상 시간이 달려 미분해 쓰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고, 시간을 미분해 얻은 순간순간이 소중하고 아까웠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1972년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부임한 중학교에서 제가 맡은 수업시간이 주당 34시간이었습니다. 학교가 크지 않아 선생님이 많지 않았고, 그래서 전공하지 않은 상치과목을 맡아 가르쳐야 해 매주 10편 이상 교안을 작성해야 했습니다. 시간을 미분해 순간으로 쪼개 쓰지 않으면 도저히 만족스런 교안을 준비를 할 수 없었던 고통스런 경험은 언제부터인가 추억으로 미화되어 이렇게 되 뇌이고 있습니다.
나이 들어 시간 여유가 생기자 그렇게 쪼갠 시간을 다시 긁어모으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런 시간 모음을 “순간의 적분”이라고 명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바쁘게 살아간 순간들을 적분했는데, 옛날의 시간으로 되돌아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적분의 해(解)는 다시 쓸 수 있는 넉넉한 시간이 아니고 이미 흘러가버린 세월이었습니다. 순간의 적분이 시간이 아니고 세월인 것을 알게 된 것은 나이가 들어 육십 줄에 들고 나서였습니다.
세월에 떠밀려 표류하기에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7년 전 방송대에 입학해 국문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부터 오늘까지 순간을 적분하며 살면서 세월타령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학기에 굳이 4과목을 신청한 것은 젊어 한창 때처럼 순간순간을 바쁘게 살고 싶어서였습니다. 나이 들어 하는 공부가 결코 만만치 않아 종종 밤을 새며 과제물을 해내는 등 힘들기도 합니다. 그래도 바쁜 시간을 쪼개어 거의 매주 빼놓지 않고 산을 오르는 것은 아직은 시간을 미분해 알뜰살뜰히 살 때이지, 순간을 적분하면서 세월타령이나 하고 주저앉을 나이가 아니라고 생각해서입니다.
* 위 글은 2017년5월18일 강원도춘천의 드름산을 산행한 후 남긴 춘천분지순환등반로종주기1에서 일부를 발췌해 2021년2월13일에 재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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