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V.시인마뇽의 문학산책/시인마뇽의 산행에세이

44. 개미와 소나무

시인마뇽 2021. 5. 10. 11:40

 

 

  정맥을 종주하며 개미들을 만나본 것은 꽤 오랜만입니다. 4년 전 호남정맥의 불재-경각산-슬치 구간을 종주할 때 에코브리지 길 위에서 개미떼들을 만난 일이 있습니다. 땡볕 더위에 새까맣게 모여들어 원형을 이룬 개미들을 보고 사진을 찍고 그들의 행태를 관찰한 소감을 산행기로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번(2012. 5. 10일) 낙동정맥의 주산재-먹구등-황장재 구간을 종주하며 만난 개미들은 눈으로 셀 수 있을 만큼 몇 마리 되지 않았습니다. 4년 전 길 위에 새까맣게 모여든 개미들을 보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시위에 참여하려 시청 앞 광장에 모여든 군중들이 생각났는데, 이번에 만나본 몇 마리의 개미들은 시위를 끝내고 일터로 돌아가 열심히 자기 일을 하는 직장인들을 연상시켰습니다.

 

  커다란 소나무의 두 줄기 밑동이 만나는 움푹 들어간 곳이 개미집인 것 같았습니다. 움푹 들어간 곳 앞에는 개미들이 나무를 갉아 만들었을 톱밥모양의 소나무 속살들이 수북하게 쌓여있었습니다. 물론 톱밥보다 작고 정교한 소나무 속살을 저 정도로 쌓아놓을 정도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소나무 밑동이 많이 비어있겠다 싶었습니다. 톱밥 위를 나다니는 몇 마리의 개미들은 집을 지키는 개미들일 것인데 참으로 여유로워보였습니다. 이들보다 훨씬 많은 일개미들은 밖으로 일 나갔을 것입니다. 이들의 지도자인 여왕개미(?)는 소나무 밑동에 숨겨진 엄청 큰 거실에서 머물고 있을 것입니다. 앞에 쌓인 톱밥모양의 속살을 보아 밑동 속 개미집은 유사시 일개미들을 모두 불러들여 대피해도 충분하겠다 싶었습니다.

 

  저 정도로 살을 에어냈으면 송진이라도 뿜어내 개미들의 접근을 막을 수 있었을 터인데 어인 일인지 소나무가 개미들에 저항한 흔적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떨어져나간 살점들은 개미집 앞에 차곡차곡 쌓여 있고 집지키는 개미들은 그 위에서 한가하게 놀고 있는데도 소나무가 분노한 징표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자기 살을 깎아 개미들에 집터를 내준 것이 소나무의 자의였음을 일러주는 것입니다. 저 정도쯤이야 눈 하나 까딱 안 할 만큼 소나무가 거목인 것은 틀림없지만, 그래도 집터를 내주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터인데 역시 소나무는 관대했습니다. 개미들도 소나무의 넉넉한 포용에 탄복했을 것입니다.

 

  지구상에 가장 널리 분포해 있으면서 종족을 잘 보존한 동물이 인간과 개미라고 합니다. 개미들도 그들 나름대로 사회를 이루어 생활을 하고 있어 사회적동물이라는 관점에서 인간보다 못할 바 없다 합니다. 어떤 학자는 인간이 개미보다 유일하게 뛰어난 점은 개미들이 갖고 있지 못한 종교를 갖고 있다는 점이라 말했습니다. 개미들의 사회성이 이 정도라면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고통을 감수하며 집터를 내준 소나무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음이 틀림없는 것같아 언제고 다시 찾아와 이들의 아름다운 공생을 확인해볼 뜻입니다.

 

*위 글은 2012512일 낙동정맥의 주산재-먹구등-황산재 구간을 종주한 후 남긴 종주기의 일부를 따와 2021510일 재 작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