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서정주 님은 그의 시 「자화상」에서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八 割이 바람이다”라고 했습니다. 첫 머리에 “애비는 종이었다”라고 밝혀 「자화상」에 그려진 그의 모습이 거짓이 아님을 못 박은 만큼, 바람이 젊은 시절의 시인을 키운 것 또한 사실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바람이 서정주 시인을 키웠다면 최근 10수년간 저를 지켜준 것은 六 割이 산이라 하겠습니다. 시인의 8할을 제가 6할로 줄여 말한 것은 일주일에 두 번씩 오르던 산을, 2010년 방송대에 들어가고 나서 반으로 줄인 저를 보고 8할은 과하다며 산신령께서 혼을 내실까 두려워서입니다. 저 또한 한 평생 내내 “애비는 농사꾼이었다”라고 밝혀 제 종주기의 진실 됨을 담보하고자 합니다.
경기도 양평의 용문산은 제게는 오래 기억될 산입니다. 제가 본격적으로 산행에 빠져든 것은 1998년부터입니다. 1970년대 대학 다닐 때 잠시 암벽을 등반하고 며칠에 걸쳐 지리산과 설악산을 오르곤 했지만, 그나마도 졸업 후 직장에 다니면서 그만두었습니다. 1998년에 들어서 때 마침 고교동문 이규성교수가 안식휴가를 맞은 덕에 둘이서 경기도의 1천 미터를 넘는 고산들을 하나씩 오를 수 있었습니다. 어느 한 산을 정해 정상을 올랐다가 하산하는 것으로 산행을 마치는 ‘점산행(點山行)’은 그렇게 시작했고, 그 후 수년간 ‘점산행’을 이어가면서 화악산, 명지산과 국망봉 등 경기도의 고봉들을 하나하나 올랐습니다.
제가 ‘점산행(點山行)’에서 능선을 따라 걸어 두 세 산을 연이어 오르는 ‘선산행(線山行)’으로 산행스타일을 확 바꾼 것은 2003년부터입니다. 그때 ‘선 산행’의 출발점으로 삼은 산이 바로 용문산으로, 한 해 동안 이 산 일원의 산들로 출산한 것이 여덟 번이나 됩니다. 해발 1,157미터의 용문산을 위시해 유명산(862미터), 소구니산(800미터), 중미산(834미터), 어비산(822미터), 백운봉(940미터), 함왕봉(947미터), 도일봉(830미터), 중원산(800미터), 문례봉(992미터), 봉미산(856미터), 청계산(658미터)과 대부산(742미터) 등 모두 13개산을 몇 산 씩 연계해 차례로 오르내렸습니다. 이 산들을 오르내리면서 지구력이 몰라보게 좋아진 덕에 그 다음해 백두대간 종주에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백두대간 종주는 용문산 일원에서 시작한 ‘선산행(線山行)’ 덕분임은 앞에서 밝힌 바와 같습니다. 제가 백두대간에 9정맥을 더해 1대간9정맥을 완주한 것은 종주 시작 9년만인 2013년7월의 일입니다. 1대간9정맥이란 남한 땅의 백두대간과 이 백두대간에서 분기한 한북정맥, 한남금북정맥, 한남정맥, 금북정맥, 낙동정맥, 금남호남정맥, 금남정맥, 호남정맥, 낙남정맥 등 9정맥 등 남한의 대표적인 산줄기를 이르는 것으로, 그 전장은 도상거리 기준으로 약2,700Km에 달합니다. 1대간9정맥의 완주는 제 인생 최고의 쾌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체력과 시간 확보가 어려워 두 번 다시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입니다. 또 전장(全長) 2,700Km 가량의 능선 길중 90% 가까이를 저 혼자서 종주해 더욱 그렇습니다.
용문산에서 시작한 선산행(線山行)은 시작은 미미했지만 그 끝은 1대간9정맥완주를 결실했을 만큼 제게는 더할 수 없이 창대했습니다. 제가 특별히 용문산을 자주 떠올리며 고마워하는 것은 1대간9정맥 종주라는 창대한 꿈을 꾸게 한 산이 바로 이 산이라 생각해서입니다.
2021. 8. 8일
*위 글은 2013년5월21일 한강기맥 종주차 용문산을 오른 후 남긴 산행기에서 일부를 따와 한
두 군데 첨삭해 재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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