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2017년9월3일) 소양산 산행 길에 오른 빙산의 전망대에서 모처럼 여유롭게 소양강댐을 조망했습니다. 댐을 가득 채운 소양강의 수면이 잔잔해 보여, 먼발치에서도 안온함과 고즈넉함이 느껴졌습니다. 북한강에서 멀지 않은 춘천시 신북읍 천전리에 축조된 이 댐은 높이가 123m이고, 제방길이가 530m이며, 총 29억톤을 저수할 수 있는 다목적댐으로 1973년에 준공되었다 합니다. 이 댐의 축조로 생긴 소양호는 한국최대의 인공호수로 춘천시, 양구군과 인제군에 걸쳐 있습니다. 소양호 덕분에 소양강댐을 출발해 강원도 서북지역의 곳곳을 운항하는 관광선이 생겼고, 전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오지 마을도 이 배로 찾아갈 수 있어, 주말이면 이 댐을 찾는 사람들이 꽤 많다 합니다. 이 소양강 댐에 물을 채우는 일은 소양강이 맡아서 합니다. 소양강은 인제군의 서화면 무산에서 발원해 설악산의 북천, 방천, 계방산의 내린천 등의 지류를 받아들이며 남서쪽으로 흘러가 춘천 북쪽에 이르러서 북한강에 합류되는 한강의 제2지류입니다. 소양강은 총 유로길이가 4백리에 조금 못 미치는 157Km에 불과해 그리 긴 강은 아닙니다만, 소양강댐이 준공되기 세 해 전에 ‘소양강 처녀’ 노래가 나와 애창되면서 이 강도 덩달아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습니다.
제가 젊어서 즐겨 따라 부른 유행가에는 ‘소양강 처녀’와 ‘처녀 뱃사공’이 있습니다. 두 노래의 공통점은 강과 처녀가 등장하며, 노래의 모델이 될 만한 인물이 실재했다는 것입니다. 다른 점은 ‘소양강 처녀’는 떠나간 님을 향한 애틋한 사랑을 노래한 것이라면, ‘처녀 뱃사공’은 군인 간 오빠를 그린 다는 점일 것입니다. 노래가 나온 것은 ‘소양강 처녀’가 대학3학년 때인 1970년이고, ‘처녀 뱃사공’이 초등학교 5학년 때인 1959년이니, ‘처녀 뱃사공’이 11년 빨리 불리기 시작한 셈입니다. 그래서인지 제게는 ‘소양강 처녀’보다는 ‘처녀 뱃사공’이 입에 더 익어 ‘처녀 뱃사공’을 더 자주 흥얼댔던 것 같습니다. 네 살 위의 군인 간 오라버니는 전사해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처녀 뱃사공’ 혼자서 노를 젓던 경남 함안의 낙동강은 6년 전 강변의 나지막한 산 중턱에 세워진 정자 악양루에 올라가 내려다 본 적이 있습니다. 이 강은 낙동강의 지류로 수량이 소양강댐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적고, 강폭도 훨씬 좁아 처녀 뱃사공도 능히 노를 저어 건널 만했겠다 싶었습니다. 악양루에서 가까운 도로변에 세워진 기념비도 겨우 가슴을 찰 정도로 작고 초라해, 왠지 모르게 ‘처녀 뱃사공’에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두 노래 중 어느 노래가 더 인기를 끌었었는지, 또 끌고 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오늘에 이르러 사람들에 대접받기는 ‘처녀 뱃사공’보다 ‘소양강 처녀’가 압도적으로 앞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은 몇 곳에 세워진 조각품인 ‘소양강 처녀’상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반야월 선생이 작사하고 이 호 선생이 작곡한 ‘소양강 처녀’는 1970년 여가수 김태희가 불러 당시로서는 대박을 터뜨렸다고 할 만한 10만장의 앨범이 판매되었다 합니다. 이 노래의 모델은 1969년 당시 가수지망생이었던 1953년생의 윤기순이라는 여성이었습니다. 춘천시에서는 2005년 5억5천만원을 들여 ‘소양강 처녀’의 기념비를 세워 기리고 있습니다. 가수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 이름만은 후대에도 계속 전해질 것이니, 이만하면 모델료는 충분히 받은 것 같습니다. 기념비에 새겨진 노래 가사는 다시 읽어도 애절함이 옛 그대로여서 아래에 옮겨 놓습니다.
소양강 처녀
반야월 작사/이호 작곡
해 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면
외로운 갈대 밭에 슬피우는 두견새야
열여덟 딸기 같은 어린 내 순정
너마저 몰라주면 나는 나는 어쩌나
아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
동백꽃 피고 지는 계절이 오면
돌아와 주신다고 맹세하고 떠나셨죠
이렇게 기다리다 멍든 가슴에
떠나고 안오시면 나는 나는 어쩌나
아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
*위 글은 2017년9월30일에 '춘천분지순환등반로'의 4구간인 소양산 구간을 종주하고 기록한 '춘천분지순환등반로종주기4(소양강)'의 일부를 따와 2020년9월12일에 재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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