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산 산행기
*산행일자:2018. 10. 30일(화)
*소재지 :전남해남
*산높이 :달마산 489m
*산행코스:미황사-헬기장-정상 불성봉-바람재
-달마고도-미황사
*산행시간:10시5분-14시56분(4시간51분)
*동행 :서울사대 원영환/이상훈 동문
전라남도 해남 땅에 자리 잡은 달마산(達磨山)이 제 눈에 확 꽂힌 것은 이 산이 보기 드문 골산(骨山)이기 때문이었지만, 반드시 정상에 올라서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이 산을 오르면 막연하게나마 달마(達磨)가 동쪽으로 간 까닭을 알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달마산은 해발고도가 489m에 불과한 나지막한 산입니다. 달마가 중국에 머무르지 않고 더 동쪽으로 갔다면 아마도 이 산에서 머물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 산이 유라시아 대륙의 극동에 위치한 한반도 최남단의 땅끝마을에 가장 가까이 자리하고 있어서입니다. 달마산은 한반도의 조종산(祖宗山)인 백두산에서 발원한 족보 있는 산으로, 백두산을 출발해 백두대간, 호남금남정맥, 호남정맥과 땅끝기맥을 차례로 밟아야 이 산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은 저로 하여금 달마산에 대한 뭔가 모를 기대감을 갖게 한 것만으로도 명작임에 틀림없습니다. 1989년 배용균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이 영화는 일반 대중보다는 영화인들로부터 더 호평 받은 예술영화입니다. 사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실린 아래 내용처럼 단조롭기 이를 데 없습니다.
“노승 혜곡과 동자승 해진이 함께 지내는 산사로 기봉이 찾아든다. 기봉은 속세에 홀로 둔 맹인 어머니에 대한 걱정에 시달리면서도 도를 깨우치기를 갈망하는 젊은이다. 혜곡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행하다 큰 부상을 입는다. 기봉은 자신의 입적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달은 혜곡과 교감하며 견성성불(見性成佛)의 도를 깨우치려 한다. 하지만 기봉은 여전히 세속적 욕망에서 비롯된 번민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러던 중 입적을 앞둔 혜곡은 기봉에게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고 자신을 화장시켜달라고 부탁한다. 영화는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동자승 해진의 시선을 통해 인간의 생과 사, 자연과 생명의 신비함 등을 담담하게 묘사한다.”
이 간단한 스토리에 최고의 영상미가 더해져 명작으로 자리매김한 이 영화를 보고나자,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이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오전 9시29분 미황사(美黃寺)를 출발했습니다. 전날 저녁 다산초당을 둘러보고 완도로 건너가 하룻밤을 묵은 후 아침 일찍 해남의 미황사로 이동했습니다. 해남의 명찰 미황사는 두륜산 대흥사의 말사로 한반도 최남단에 자리한 절입니다. 경내를 둘러보고 왼쪽으로 나 있는 미황사의 둘레길인 달마고도로 들어섰습니다. 이내 오른 쪽으로 꺾였다가 얼마 더 가지 않아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갈라져나간 달마고도를 버리고 이 산의 정상 불성봉으로 이어지는 직진 길을 따라 올랐습니다. 오른쪽으로 문바위재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서 직진해 헬기장을 지나자 앞이 탁 트인 전망처가 나타나, 이곳에서 잠시 쉬며 바다 건너 진도를 조망했습니다. 전망처를 지나 바위 길을 오르면서도 별반 힘들지 않은 것은 맑은 날씨에 기온도 걷기에 적당한데다 진홍색의 단풍잎에 내려앉은 가을의 끝머리를 더위잡고 천천히 걸어 오르는 재미가 적지 않아서였습니다.
10시53분 이 산의 정상인 해발489m의 불성봉(佛聖峰)에 올라섰습니다. 미황사에서 올려다본 불성봉은 들쑥날쑥한 기암들이 곧추 서있어 그 위압감이 느껴졌는데 막상 꼭대기에 올라서자 넓은 터에 봉수대가 들어서 있고 사방이 탁 트여 답답한 가슴이 뻥 뚫려 시원하고 또 안온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남해 특유의 들쭉날쭉한 해안선과 크고 작은 섬들이 빚어내는 수려한 해안경관, 그리고 울퉁불퉁한 암봉, 가을 색의 억새풀과 늘푸른나무들이 차례로 자리한 깔끔한 땅끝기맥이 불성봉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뻗어나가는 것을 보노라면 이 또한 넓은 의미의 산자수명(山紫水明)이겠다 싶었습니다. 완도의 숙승봉과 북일 좌일산에 설치된 두 봉수대와 정보를 주고받았을 이곳 봉수대는 개축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였지만, 옛날부터 가뭄이 극심해지면 이 봉우리에 올라 기우제를 지내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을 것 같았습니다. 기념사진을 찍고도 바로 자리를 뜨지 못하고 주변 경관을 두루 조망하다가 11시가 몇 분지나 바람재로 향했습니다. 불성봉에서 북동쪽의 바람재로 이어지는 능선은 땅끝기맥으로 중간 중간에 암봉들이 자리했지만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수려해보였습니다. 불성봉에서 남쪽으로 조금 내려가 봉수대를 시계반대방향으로 돌자 바람재로 이어지는 능선길이 나타났습니다. 처음 얼마간 숲 사이로 난 편한 길을 걸으며 청초한 들국화(?)와 가지마다 다닥다닥 달려 있는 이름 모르는 새빨간 열매들과 눈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편안한 길은 오래지 않아 암릉 길로 바뀌어 잔뜩 긴장했습니다. 조심해서 올라선 암봉의 465m봉에서 밋밋한 안부로 내려갔습니다.
11시54분 426m봉에 올랐습니다. 465m봉에서 안부로 내려갔다가 다시 오른 암봉인 426m봉에서 저 아래 바다를 바라보며 호연지기를 기르는듯(?) 두 팔을 벌린 친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이어지는 북진 길은 425m봉으로 오르는 편안한 길로, 길가 연분홍의 엉겅퀴 꽃 한 송이가 참으로 화사해보였습니다. 425m봉을 오른쪽으로 에돌아 내려선 곳이 개념도에 나와 있는 농바우재 같은데 이를 확인할 만한 어떤 표지물도 보지 못해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곳에서 335m봉을 오르지 않고 조금 못 미쳐서 왼쪽으로 내려가야 하는 것을 이 봉우리를 올라간 것이 잘못이었던 것 같습니다. 335m봉우리에서 암봉의 능선을 도저히 이어갈 수 없어 조금 짧다 싶은 로프가 매달린 급경사의 위험한 바위 길을 내려가야 했는데, 가벼운 몸의 이상훈 동문이 먼저 내려갔고 원영한 동문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먼저 내려간 친구에 배낭과 스틱을 내려주고 맨 몸으로 로프를 잡고 조심해서 내려갔습니다. 다시 오른 쪽으로 올라가 햇볕이 따사로운 바위 길에서 점심을 들은 후 암릉 지대를 빠져나가 바람이 넘나드는 널찍한 안부인 바람재로 내려섰습니다.
13시28분 바람재에서 왼쪽으로 하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암릉산행을 즐기는 산 꾼이라면 더할 수 없이 아기자기했을 2Km거리의 불성봉-바람재 구간이 제게 고역이었던 것은 꼭 10년 전 춘천 용화산의 바위 길에서 10m이상을 떨어지는 추락 사고를 당한 이후 생긴 바위공포증이 가시지 않아서입니다. 표지목에 능선삼거리로 표기된 바람재에서 왼쪽으로 내려가는 길도 경사가 급한데다 너덜 길이어서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반시간 가까이 너덜 길을 따라 내려가 숲길 삼거리에 이르렀습니다. 삼거리에서 좌우로 이어지는 길은 달마고도로, 왼쪽으로 이 길을 따라가면 미황사로 돌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미황사를 출발할 때 날머리로 버스를 탈 수 있는 송촌으로 정했는데, 그곳으로 내려가서 버스를 타고 미황사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달마고도를 따라 미황사로 바로 가는 것이 덜 번거롭고 시간도 절약될 것 같아 왼쪽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14시51분 미황사주차장에 도착해 달마산 산행을 마쳤습니다. 삼거리에서 미황사로 돌아가는 달마고도는 산책로인 둘레길로 조성된 것이어서 이제껏 걸어온 암릉길과는 판이하게 편안했습니다. 숲길과 차도를 번갈아가며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달마고도를 걸으며 불성봉 - 바람재 구간의 암봉들을 몇 번이고 올려다보았습니다. 암봉마다 하나같이 그 아래에 너덜지대가 형성된 것을 보고, 산을 오르는 도중 돌더미가 흘러내리는 너덜지대를 통과하기 때문에 산행이 쉽지만은 않으며 곳곳에 단절된 바위 암벽이 있어 단둘이 등반하기 보다는 삼삼오오 형태가 바람직하다고 적은 이 산의 안내 글이 참으로 적확하다고 했습니다. 미황사로 돌아가 약 5시간에 걸친 달마산 산행을 마무리하고 다음 행선지인 전북의 고창으로 향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제작과 흥행에 대해 아래와 같이 기록했습니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은 배용균이 제작, 연출, 각본, 촬영, 미술, 편집, 조명 등 영화의 전 과정을 담당해 완성되었다. 기획 8년, 제작 4년이라는 오랜 제작 기간이 소요된 이 작품은 1980년대 한국 예술영화의 표본이라 일컬어지며, 또한 한국에서 제작된 첫 번째 독립영화로서 ‘독립영화의 가능성을 모두 실천한 영화’로 평가받고 있다. 제42회 스위스 로카르노영화제에 출품되어 최우수작품상인 금표범상을 비롯해 감독상, 촬영상, 청년비평가상 등을 수상하였다. 이 작품이 이처럼 높게 평가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야기보다는 영화의 이미지 때문인데, 롱테이크(long-take)와 몽타주(montage), 롱 쇼트(long shot)와 클로즈업(close-up)을 오가는 이 영화의 스타일은 예민하고 신중한 시선으로 인간과 자연을 포착하고 있다. 감독은 때로는 가까이서 들여다보고 때로는 거리를 두고 관조하며 한 폭의 그림 같은 예술적 작품으로 영화를 완성하였다. 이 작품은 한국 예술영화로서는 최초로 개봉과 함께 14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이 작품이 이처럼 높게 평가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야기보다는 영화의 이미지 때문"이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이 영화의 성공이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을 잘 설명했기 때문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배용균 감독이 이 영화에서 견성성불의 어려움을 이야기한 것은 달마가 동쪽으로 간 진정한 까닭이 바로 견성성불에 있음을 일깨워주기 위해서가 아닐까 합니다.
달마(達磨)는 중국남북조시대에 중국의 선종(禪宗)을 창시한 대사(大師)입니다. 남인도 향지국왕의 셋째 아들로 반야다라를 따라 출가하여 대/소승 불교를 모조리 섭렵하였으며, 나중에 대승불교의 승려가 되어 선(禪)에 통달했습니다. 서력 520년경 동쪽의 중국으로 가 북위 낙양의 숭산(崇山) 소림사(少林寺)에서 9년간 면벽좌선(面壁坐禪)하고 나서 사람의 마음은 본래 청정하다는 이(理)를 깨달아야한다고 주장하고, 이 선법(禪法)을 제자 혜가(慧可)에 전수했다 합니다. 달마대사가 중국에서 머무르지 않고 더 동쪽으로 가 유라시아의 동쪽 끝자리에 자리한 한반도에 들어왔다는 기록은 찾지 못했습니다. 한반도에 들어오지 않은 달마대사가 여기 달마산에 머무른 일은 없는 것이 확실한데도 이 산을 달마산으로 명명한 것은 혹시라도 이 산의 기암절벽과 너덜길을 오르내리는 것이 달마대사가 행한 참선(參禪) 처럼 고된 일이어서 그리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견성성불(見性成佛)이란 자기 본래의 성품인 자성을 깨달아 부처가 됨을 이릅니다. 달마대사는 참선을 통해 견성성불에 이를 것이라 보았습니다. 공자는 진리에 이르는 길은 격물치지(格物致知)에 있음을 역설했습니다. 격물치지란 실제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지식을 완전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참선이나 격물치지 모두 진리에 이르는 참 길일 것입니다. 굳이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불교와 유학의 근본적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싶습니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 단 10분도 면벽좌선을 견디지 못하는 제게도 진리에 이를 수 길이 있다면 그것은 참선이 아닌 격물치지일텐데, 이 또한 엄청 치열하게 탐구해야 가능할 것이기에 그저 그림의 떡일 수 밖에 없습니다. 참선도 격물치지도 모두 어렵다면 저는 이 산 저 산을 오르내리며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이나 물어보고자 합니다.
*추기(追記) : 이 산이 달마산으로 불리는 이유는 미황사의 홈페이지에서 확인했습니다. 1264년 겨울에 중국남송의 배 한 척이 달마산 동쪽 바다에 도착했는데 한 고관이 "이 나라에 달마산이 있다고 하던데 이 산이 그 산인가?"하고 물어 한 주민이 그렇다고 답하자 달마산을 향해 예를 표하고"우리나라에서는 그 명성만 듣고 동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이리 보니 여기서 나고 자란 그대들이 부럽고 부럽도다."라면서 "이 산은 참으로 달마대사가 항상 머무를만 하구료." 하면서 참배하고 화폭에 담아 갔다 합니다. 달마대사가 혜가대사를 만나 선법을 전해주고는 중국역사에서 자취를 감춘 후 그 어디에도 달마대사의 행적이나 지명을 가진 곳은 없다 합니다. 다만 그 때의 중국인들은 달마대사가 해동으로 건너가 안주한 곳이 여기 달마산이라며 찾아오고 부러워했던 모양이라고 미황사 홈피는 전하고 있습니다.
<탐방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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