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I.지역 명산/지역명산 탐방기

E-14.학가산 산행기

시인마뇽 2019. 1. 27. 05:00

                                                                 학가산 산행기

 

                                         *산행일자:2019. 1. 8()

                                         *소재지   :경북안동/예천

                                         *산높이   :학가산국사봉 해발870m

                                         *산행코스:애련사주차장-국사봉/송신탑갈림길-국사봉

                                                            -MBC송신탑-전망바위-애련사-천주마을

                                         *산행시간:953-1332(3시간39)

                                         *동행     :경동고24회 이규성동문

 

 

 

 

 

    새해 들어 오른 첫번 째  산은  안동의 학가산(鶴駕山)입니다. 산모양이 날아가는 학 모양과 같다하여 이름 붙여졌다는 이 산은 해발고도가 874m나 되는 낮지 않은 산으로 안동에서는 진산(鎭山)으로 모셔지는 명산입니다. 제가 진작부터 이 산을 오르겠다고 별러온 것은 석사과정의 과제물로 써낸 적이 있는 조선의 은일자 송암(宋巖) 권호문(權好文)이 이 산을 자주 올랐다는 것을 다른 분들의 산행기를 읽고 알아서입니다.

 

 

   권호문은 중종 27(1532) 안동에서 태어나 선조21(1587)56세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은일자(隱逸者)로 살아온 조선의 선비입니다. 권호문은 모친에의 뜻에 따라 몇 번 과거시험에 응시한 적은 있으나, 33세에 모친을 여의고 나서 이내 벼슬길을 단념, 안동의 청성산(靑城山) 아래에 무민재(無悶齋)를 짓고 자연에 묻혀 은둔자로 살았습니다.

 

 

   새벽같이 집을 나서 아침 630분에 동서울터미널을 출발하는 안동행 첫 버스에 올랐습니다. 2시간40분가량 걸려 도착한 안동버스터미널에서 하차하여 애련사까지 택시로 이동했습니다. 대구에서 저녁6시에 참사랑산악회원들과 모임이 예정되어 있어 행여 늦을세라 해발560m대의 학가산 중턱의 애련사주차장까지 택시를 타고 갔습니다.

 

 

   953분 애련사주차장에서 학가산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택시에서 내려 산행채비를 마친 후 시멘트 길을 따라 바로 위 애련사로 향했습니다. 암자로 불려야 더 어울릴 것 같은 작은 절 애련사는 누가 언제 창건하였는지는 밝혀진 바가 없으나 학조대사와 청음 김상헌 등이 머물렀던 곳이라 합니다. 애련사를 잠시 들러본 후 왼쪽으로 난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묘지를 지나 다다른 능선삼거리에서 오른 쪽 위 능선으로 얼마간 진행해 큰 바위 앞에 이르렀습니다. 오른쪽으로 건너가는 길이 조금 위험하다고 느낀 것은 실제 바위길이 위험해서가 아니고 11년 전 용화산에서의 낙상으로 생긴 바위공포증이 되살아나서입니다. 바위길을 지나 다다른 분기점은 직진의 송신탑 길과 좌향의 국사봉 길이 갈리는 능선삼거리인데, 이 곳에서 왼쪽으로 조금 내려가 왼쪽 아래로 당재 길이 갈리는 골짜기 삼거리에 이르렀습니다. 삼거리에서 국사봉으로 이어지는 오름 길은 바닥에 눈이 조금이라도 쌓였더라면 과연 오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된비알길이었습니다. 이 정도의 비탈길에는 대개 로프를 매어놓거나 가드레일을 설치할 만도 한데 그리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제가 과체중이어서 혼자 힘들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앞장서 길안내를 맡은 친구가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기다려준 덕분에 서두르지 않고 제 페이스에 맞추어 진행했습니다. 가파른 오름길은 국사봉-유선봉-삼모봉을 잇는 주능선 바로 아래 능인굴(能仁窟)에서 끝났습니다.

 

 

   1127분 이 산의 최고봉인 해발874m의 국사봉에 올라섰습니다. 능인굴은 의상대사의 10대제자 중의 한 명인 능인대사가 머문 곳으로 이 굴 안쪽에 마르지 않는 샘이 있다고 합니다. 굴 안으로 들어가 샘물을 받아 마시려 했으나 통로가 너무 좁아 뚱뚱한 저는 물론 친구도 안으로 들어가 물을 뜰 수 없었습니다. 능인굴에서 능선에 오르자 이 산의 최고봉인 국사봉이 바로 머리 위로 보였습니다. 학의 머리 또는 학 위에 탄 신선의 모습을 한 국사봉(國柌峰)은 학가산(鶴駕山)의 최고봉으로, 이 산을 아꼈던 조선의 문인 권호문(權好文, 1532-1587)에 의해 적성봉(適星峰)으로도 불렸다 합니다. 가파른 철계단을 걸어올라 국사봉에 오르자 사방이 탁 트여 전망이 일품으로 서쪽 멀리로 백두대간이 지나는 소백산의 연봉들이 잘 보였습니다언제 보아도 소백산에 정감이 가는 것은 집사람을 비롯해 가슴을 열고 이야기를 나눌만한 친구들과 함께 여러 번 올라서일 것입니다.

 

 

   1237분 전망바위 앞에서 점심식사를 마쳤습니다. 국사봉의 너른 바위에서 철계단을 내러가 유선봉으로 향했습니다. 애련사에서 올라온 길이 경사가 너무 급해 그 길로 되 내려가는 것이 암만해도 무릎에 무리가 갈 것 같아 방송국송신탑을 거쳐 애련사로 하산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동쪽 옆 봉우리인 유선봉으로 향했습니다. 얼마 걷지 않아 다다른 유선봉은 암봉으로 올라가는 길에 로프가 매여 있었습니다. 혼자 이 봉우리를 올라간 이교수가 내려오기를 기다려 삼모봉으로 향했습니다. 이 봉우리를 지나 방송국중계지의 울타리 오른쪽에 낸 좁은 길을 따라 에돌다 MBC송신탑에 조금 못 미친 곳에서 오른 쪽으로 방향을 확 틀어 내려갔습니다. 이내 전망바위 앞에 이르러 점심을 함께 든 후 오후 산행을 이어갔습니다. 전망바위를 출발해 로프를 잡고 내려가는 길을 지나 오전에 애련사에서 올라올 때 지났던 능선삼거리에 도착하자 비로소 국사봉에서 올라간 길로 내려가지 않고 이 길로 내려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른 쪽으로 능인굴 길이 갈리는 능선삼거리에서 조금 내려가자 바위를 등지고 에도는 조금은 위험해 보이는 바위 길을 지나야 했지만, 오전에 한 번 지나간 길이어서 이번에는 두렵지 않았습니다. 꽤 오래된 노송들이 자리한 능선 길을 따라 내려가다 능선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들어서 애련사로 내려갔습니다.

 

 

   1332분 천주마을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묘지를 지나 애련사에 이르렀을 때는 하루 중 가장 따뜻한 오후 1시경이어서인지 냉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애련사에서 천주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시멘트 도로로 단조로워 혼자 내려갔다면 조금은 지겨울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왼쪽으로 마당바위 길이 갈리는 삼거리를 지나 천주마을에 도착해 학가산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버스정류장에서 올려다 본 학가산은 정상부근에 암봉들이 딱 버티고 서있어 제법 우람해 보였습니다. 안동 시내로 나가는 농촌버스가 하루에 네 번 밖에 안 다니는 데다 지나다니는 차량이 별로 보이지 않았고 한 겨울이어서인지 밖을 나다니는 사람들도 전혀 보이지 않아 천주마을은 마치 시간이 멈춰선 듯 고요했습니다. 40분을 기다려 올라 탄 버스는 손님이라곤 저희 둘이 전부여서 기사분과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학가산의 명성과 관계없이 산 아랫마을들은 공동화(空洞化)가 계속되어 이제는 학생들을 찾아보기가 매우 힘들다는 기사분의 말씀을 듣고 나자 한 번 잘 살아보겠다고 죽어라고 달려온 70평생을 이쯤해서 돌아보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싶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산행기를 작성하면서 송암 권호문에 대해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하나 있음을 알았습니다. 저는 이제껏 권호문이 학가산을 다녀와서 유산기를 남겼다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착각은 아무런 근거 없이 성산이 학가산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믿고 권호문의 <성산기(城山記)>를 학가산(鶴駕山) 유산기로 잘못 안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성산은 안동 인근의 청성산을 이르는 것으로 해발고도가 3m도 채 안 되는 나지막한 산입니다.

 

 

   정작 학가산의 유산기를 남긴 분은 조선 중기의 문인인 노경임(盧景任, 1569-1620)입니다. 유성룡의 문하에서 수학한 노경임은 홍문관정자로 일하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향으로 돌아가 의병을 모집하여 왜군에 대항했던 분으로 말년에는 정인홍에 탄핵되어 낙동강 가에 은거하다 선산(善山)에서 별세했습니다.

 

 

   노경임의 <유학가산기(遊鶴駕山記)>는 그가 1600년에 예천군수를 사임하고 여기 학가산을 기행하고 쓴 글입니다. “학가산은 화산의 서쪽에 있으니 안동의 진산이 된다(鶴駕山在花山之西 作一府鎭)”으로 시작되는 <유학가산기(遊鶴駕山記)>는 노경임이 이틀에 걸쳐 학가산을 산행하고 남긴 기행문입니다. 이 산의 최고봉인 국사봉으로 보이는 국망봉을 오르는 어려움이 참으로 곡진하게 묘사된 <유학가산기(遊鶴駕山記)> 제가 읽은 오늘날의 어떤 학가산산행기보다 빼어납니다.

 

   “동쪽으로 가자 너덧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었다. 높이가 하늘까지 뛰어 오를 듯 하고 사면이 삐죽삐죽 솟아 있어 더위잡고 오를 수 없었을 것 같았는데, 이름을 국망봉(國望峯)’이라 했다. 바위틈을 붙잡고 올라가니 그 정상은 꽤나 펑퍼짐해서 수십명도 앉을 수 있을 만 했다. 돌을 쌓아 돈대를 만들어 놓았는데 돈대 위에 겨우 한자 남짓한 비석이 있었다. 자획이 마모되어 알아보기 어려워 오직 회창십일년(會昌十一年)’ 등의 서너자만 남아 있었다. 회창은 당나라 무종의 연호이다. 국망봉 오른쪽 남쪽 벼랑의 층암사이에 돌로 쌓은 산성이 반쯤 무너져 있으니 신라중엽 때 적을 방어하기 위한 곳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사물로 인해 감회가 일어 고금의 아득함에 대해 유적을 찾아 묻고 싶었지만 단지 탄식만 했을 뿐이다. 국망봉의 동쪽에 수백길 됨직한 단애가 있었으니 이름이 백현이라 했다. 찾아가 보고 싶었지만 기운이 빠져 가지 못했다.” (위 글은  국립수목원에서 발간한 국역유산기 중 노경임의 <유학가산기>에서 인용했습니다.)

 

   노경임은 이 봉우리에 올라 동쪽의 태백산과 오대산이, 북쪽으로 문수산과 소백산이, 서쪽으로 구불산과 속리산이, 그리고 남쪽으로 팔공산과 주왕산이 관망된다고 했는데 이중에서 제가 확실히 본 것은 소백산 산줄기였습니다.

 

 

   내친 김에 송암 권호문에 대해 몇 글자 적고자 합니다. 송암 권호문은 퇴계 이황의 제자입니다. 아래 글들은 요산요수(樂山樂水)에 대한 퇴계와 송암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중요한 글이다 싶어 여기에 첨언합니다. 퇴계는 권호문에게 보낸 편지에서 공자(孔子)의 요산요수(樂山樂水)를 아래와 같이 풀이했습니다.

 

   “요산요수(樂山樂水), 성인의 이 말씀은 산은 인()이 되고 물은 지()가 된다고 말한 것이 아니며, 사람은 산과 물과 더불어 본디 같은 성이라는 말도 아니다. 어진 이는 산과 같으므로 산을 즐기고, 지혜로운 이는 물과 같으므로 물을 즐긴다고 말했을 따름이다. 이른바 같다는 것은 인한 자와 지혜로운 자의 기상과 의사를 특히 지적한 것일 따름이다.”

 

 

   퇴계는 부연하여 설명하기를 두 가지 즐김의 뜻을 알고자 하거든, 마땅히 인한 자와 지혜로운 자의 기상과 의사를 찾아보아야 할 것이라며 산수에 나아가서 인과 지를 구하라고 한 것은 아닐 것이라 했습니다.

 

 

   권호문도 퇴계와 생각이 다르지 않다는 것은 그의 산수유기인 <遊淸凉山錄>에서 확인됩니다. 권호문은 청량산을 유산하면서 요산요수(樂山樂水)에 대한 그의 생각을 아들 행가에 아래와 같이 들려주었습니다.

 

사람의 심성은 정해진 것이 있으니 나에게서 이를 굳게 지킨 뒤에야 능히 바깥의 것을 맞아 응할 수 있다. 산을 보며 즐기는 것은 어진 사람의 일이요, 물을 보며 즐기는 것은 지혜로운 사람의 일이니 이러한 심성을 닦아 끝까지 잃지 않으면 고명한 데로 나아가는 것이 어렵지 않다. 이는 나와 네가 마땅히 힘써야 할 것이리라. 정자께서 이르시기를 산을 보고 물을 완상하는 것도 또한 마음을 풀어놓는 것이라 하셨으니 어찌 경계하지 않을손가.”

 

 

   권호문은 산과 수를 찾기 전에 먼저 심성을 닦아 어질고 지혜로울 것을 강조하고 단순히 어질어지기 위해 산을 찾고 지혜로워지기 위해 물을 찾는 일은 삼가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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