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와 함께 떠난 제주여행
네 살 박이 손자와 함께 떠난 첫 여행지는 제주도입니다. 큰아들 내외가 휴가를 내어 주선한 제주여행은 그 여정이 3박4일(2018. 12.28-31일)로 잡혀 있어 너무 긴 것 아니냐 했는데 막상 가서 함께 지내보니 며칠 더 있어도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손자는 2015년7월4일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큰아들이 결혼한 지 만 10년이 조금 지나 낳은 자식이기에 큰아들 내외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컸을 것입니다. 저 또한 다르지 않아 손자를 낳았다는 전화를 받고 뛸 듯이 기뻤습니다. 그동안 아들에게 얘기는 안했지만 매주말 미사시간에 아들내외가 자식을 가질 수 있도록 주님께 은총을 내려주시기를 빌어 왔는데 그 덕이다 싶어 감사기도를 올렸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유언을 받들어 돌아가신지 11년 만인 2000년8월 카톨릭교에 입교했습니다. 저의 카톨릭교 입교는 2000년3월에 유명을 달리한 집사람과의 마지막 약속을 지키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진정한 신자라면 주님께 이런 저런 것을 이루어지도록 해달라고 비는 기복신앙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온 제가 주일 미사 중 묵상시간에 손자를 볼 수 있도록 은총을 내려달라고 빌기 시작한 것은 둘째 아들이 장가든지 2년이 지나서입니다. 두 아들이 늦지 않게 결혼을 해 제 때 손자를 보는 것은 따 놓은 당상이라 여겼습니다. 기대와는 달리 결혼하고 나서 큰아들은 일곱 해가 지나고 작은 아들은 두해가 지나도록 손자 소식이 없자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러다가 제 대에서 손이 끊어지는 것은 아닌지, 그리된다면 이 다음에 죽어서 부모님들과 집사람을 무슨 낯으로 뵐까 걱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미사 중 묵상시간에 주님께 두 아들 누구에게라도 자식 좀 가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비는 것이었습니다. 기복신앙에 대한 저의 불신이 너무 커 주저되기는 했으나, 다른 길을 찾지 못해 별 수 없이 주님께 두 아들 중 누구라도 빨리 손자 좀 보게 해달라고 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한 후 1년이 지나지 않아 작은 아들이 먼저 떡두꺼비 같은 손자를 제게 안겼습니다. 기도의 효험을 확신하게 된 저는 큰아들도 자식을 볼 수 있도록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습니다. 전능하신 주님께서 저의 간절한 기도를 갸륵히 여겨서인지 큰아들도 결혼한 지 10년 만에 아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그 전처럼 자주 또 절실하게 기도드리지는 못하지만 가끔은 두 손자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보고 주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곤 합니다.
자식들과는 독립해서 저 혼자 살아온 까닭에 그간 손자들과 오랜 시간을 같이하지는 못했습니다. 한 달에 한두 번 만나면서 손자들과 같이한 시간은 매번 한나절을 넘기지 않았습니다. 집이 가까워 자주 찾아오시는 외할아버지와 긴 시간을 같이 보낸 큰손자는 아주 어렸을 때는 저를 보고 낯을 타기도 했습니다. 긴 시간을 함께 보내는 데는 여행을 같이 가는 것이 최상이다 싶었는데 두 아들 모두 직장에서 한창 일할 나이여서 그리할만한 짬을 내지 못했습니다.
연말에 며칠간 함께 제주여행을 갈 수 있느냐는 큰아들의 전화를 받고나서 모처럼 손자와 한 집에서 먹고 놀고 잘 수 있다 싶어지자 가슴이 뛰었습니다. 큰아들이 해가 바뀌기 전에 남겨둔 휴가일수를 쓸 겸해서 주선한 제주 여행에는 작은아들 네도 같이 가려 했으나 휴가를 내지 못해 큰아들가족하고만 여행을 떠났습니다.
2018년12월28일 11시가 조금 지나 제주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렌트카로 자리를 옮겨 점심을 들었습니다. 날씨가 좋지 않아 비행기가 바로 착륙하지 못하고 하늘을 선회하는 동안 요동이 일었는데 네 살 박이 손자에게는 좀 심하게 느껴졌던지 뷔페 집에서 점심을 먹다가 이내 먹은 것을 다 토하고 힘들어해 지켜보기가 안타까웠습니다. 제주 시내 소아과병원을 들러 약을 타 먹인 후 숙소인 신화월드의 서머세트레조트로 향했습니다. 우박이 내렸다가 해가 보였고 바로 눈이 내리는 등 하루 종일 일기가 불순해 어디를 둘러보지 못하고 곧바로 숙소로 들어갔습니다. 눈이 살짝 깔린 레조트 단지를 1시간 가까이 걸은 후 저녁을 먹고 나자 손자가 생기를 되찾아 다행이다 했습니다. 제 배낭을 뒤져 찾아낸 젤리를 맛있게 먹는 손자의 모습을 지켜보노라니 먼저 가 이런 자리를 함께하지 못한 집사람이 생각났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다 싶은 것은 집사람이 큰아들과 연애 중인 며늘아기를 보고 떠났다는 것입니다.
다음 날인 12월29일은 고교동창과 같이 올레 길을 걷느라 손자와 낮 시간을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아침시간과 저녁시간을 20여분씩 같이 하는 동안 제 스마트폰을 갖고 놀면서 자기 목소리를 녹음하고 파일을 만들어 저장도 하고 또 재생도 해 정말 놀랐습니다. 제가 전깃불을 처음 본 것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읍내 중학교에 진학해서이고, 녹음기를 가지고 작동하기 시작한 것은 시골의 한 중학교에서 상치과목인 영어를 한 반 맡아 가르칠 때 영어회화테이프를 녹음기에 넣어 틀어줄 때이니 20대 후반으로 기억됩니다. 손자 녀석은 스마트 폰의 카메라를 찾아 사진을 찍고 찍은 사진을 다시 보곤 했습니다. 제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일은 아이들을 낳고 기르면서 시작한 것이니 30대 초반의 일인데 손자는 단 네 살에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손자가 하고 있는 새로운 경험은 불과 두 세대 만에 우리나라가 이뤄낸 눈부신 발전 덕분입니다. 이 발전에 동참하고 일부나마 같이 이뤄내어 제 손자에 번영된 오늘을 경험하고 즐길 수 있게 해줄 수 있었다는데 대해 무한한 자부심을 느낍니다.
손자와 낮 시간을 함께 보낸 것은 12월30일 하루였습니다. 아침 식사 후 네 명 모두가 함께 찾아 나선 곳은 서귀포시 안덕면에 자리한 세계자동차박물관입니다. 나지막한 구릉에 세운 세계자동차박물관은 이름에 부끄럽지 않을 만큼 여러 나라의 각종 차들이 보였습니다. 주차장에서 박물관으로 오른 길은 타이어의 야외 박물관으로 다양한 타이어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자동차는 역시 미국이다 할 만했던 것은 대부분이 미국차로 자동차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손자가 좋아하는 차는 진열된 실물의 차보다는 갖고 놀 수 있는 장난감자동차였던지 좀처럼 눈을 떼지 않아 자그마한 장난감자동차 한 개를 사주었습니다. 엄마와 함께 자동차를 타고 사진이 나오는 자동차면허증(이 또한 장난감면허증)을 취득했으니 자동차박물관을 찾아온 보람은 충분하다 싶었습니다. 분홍색의 동백꽃 숲을 걸으며 사슴과 토끼에 먹이주기 체험을 하는 것은 이 박물관이 덤으로 제공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신화월드로 돌아와 메리어트호텔내 뷔페식당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이틀 전 제주 시내 뷔페식당에서 토하느라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손자 녀석이 이번에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잘 먹어 보는 저도 식욕이 절로 생겼습니다. 이번 제주 나들이가 추사 김정희의 유배지를 들를 절호의 기회다 싶어 큰아들에 부탁해 대정의 추사박물관을 다녀오느라 오후 한나절은 손자와 같이 놀지 못했습니다. 저녁을 들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제 방을 찾아온 손자가 갖고 논 것은 제 스마트폰으로 즐겨 쓴 프로그램은 한자쓰기였습니다. 한자를 알 리 없는 손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마구 선을 긋는 것이었는데, 그때 하단에 나타난 한자는 용 네 마리가 그려진 ‘용이 가는 모양 답’ 등의 40획이 훨씬 넘는 복잡한 한자들로 제 컴퓨터의 자판으로는 한글-한자가 호환되지 않았습니다.
12월31일은 올해의 마지막 날로 3박4일의 제주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입니다. 전날 밤 짐을 싸면서 마지막 한 개를 남겨둔 제리를 손자에 주는 것으로 아침을 열었습니다. 식사 후 잠시 짬을 내 손자가 보는 프로그램은 영어로 된 만화였습니다. 저리하면 우리말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엄마가 신경 써서 손자와 대화를 하기 때문입니다. 며늘아기가 다른 엄마와 다르다 싶은 것은 아들과 이야기할 때 좀 길더라도 온전한 문장으로 이야기하고 아기들에 좀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하는 단어들도 설명을 곁들여 자연스럽게 쓴다는 것입니다. 손자가 엄마에게 배워 다양하게 어휘를 구사하고, 완전한 문장의 형태를 다 갖추어 말하는 것을 보고 국어를 부국어(父國語)라 하지 않고 모국어(母國語)라 말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제주 공항에서 점심을 들고 1시간가량 비행기를 타고 상공을 날아 김포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4시경이었습니다. 곤히 잠자는 손자를 깨워 비행기에서 내리게 하자 손자 녀석의 짜증이 발동했습니다. 얼마 후 풀려 재잘거리는 것을 보고 저런 과정을 반복하며 희노애락의 참뜻을 배워가고 자란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산본 집에서 하차하고 손자와 엄마/아버지는 인덕원으로 떠나는 것으로 3박4일의 제주여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이번 여행이 더할 수 없이 즐겁고 고마운 것은 네 살 박이 손자와 긴 시간 함께 보내며 추억을 쌓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래 오래 기억하겠지만 손자에게는 이번 여행이 앞으로 보다 강력한 추억으로 대체되어 잊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가 돌아가신 부모님과 함께 한 경험 중 가장 오래 된 것은 6살 때 이십 리가량 떨어진 시골장터를 손잡고 함께 가본 것입니다. 그전에도 어머니가 제 손을 잡고 나들이를 하지 않으셨을 리가 없는데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제 머리가 그 수준 밖에 안 되어서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손자가 커서 이번 여행을 기억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도 좋을 것입니다. 제가 지켜본 바로는 손자의 머리가 저보다 훨씬 총명한 것이 분명해 안심하고 충분히 기대할 만 합니다. 손자가 귀엽고 고맙고 또 자랑스럽기 그지없어 이 글을 남깁니다.
<여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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