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명소 탐방기2
탐방일자:2019. 4. 26일(금)
탐방지 :경기도연천군 소재 태풍전망대/
한탄강댐 물문화관/재인폭포
동행 :나 홀로
엿새 전 경기도 연천군의 역고드름에서 12회에 걸친 평화누리길 탐방을 마치기까지 연천 땅을 걸은 것은 모두 네 번입니다. 세 번은 임진강 강변길을, 한 번은 차탄천 천변길을 따라 걸으면서 연천의 명소 여러 곳을 탐방했습니다. 막상 평화누리길 탐방이 끝났다 싶어지자 새삼 가보고 싶은 연천의 명소 몇 곳이 불현듯 생각나 저 혼자서 탐방길에 올랐습니다. 육안으로 북한 땅이 조망되는 태풍전망대, 한탄강 댐 바로 아래에 세운 한탄강댐 물문화관, 그리고 23년 전 집사람과 함께 다녀온 재연폭포 등 세 곳을 탐방지로 정하고, 12시 정각 동두천역을 출발하는 연천군시티투어버스에 탑승했습니다.
동두천역에서 시티투어버스에 오른 사람은 저 혼자였습니다. 20대의 젊은 기사가 요 며칠 동안 통 손님이 없었다면서, 손님이 단 한 명이라도 있으면 예정대로 버스는 운행된다고 해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래 동승토록 되어 있는 해설사분에 전화연락을 했으나 다른 일이 있어 오지 못한다면서 미안해했습니다. 연천읍을 지나고 로하스(LOHAS) 파크 위 고개를 넘자 며칠 전에 찾아갔던 거구의 그리팅맨이 보였습니다. 고개에서 내려가 임진강변을 따라가다 다다른 민통5초소에서 초병에 신분증을 맡기고 산길로 올라가 태풍전망대 주차장에 이르렀습니다.
1.태풍전망대
잔뜩 흐린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다 이내 멈춰 북한 땅을 조망하는 데는 오히려 좋았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전망대로 다가가자 한 장병이 다가와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었습니다. 해발264m의 비슬산 정상에 세워진 2층의 전망대에 올라서자 철책선의 남방한계선과 그 건너 북방한계선, 그리고 양쪽 초소들이 잘 보였습니다. 비무장지대 안의 서쪽 높은 봉우리가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해발355m의 고암산이라는 것을 장병에게서 들었습니다. 여기 태풍전망대에서 왼쪽으로 보이는 군사분계선인 임진강까지 그 거리가 800m에 불과하고 그 건너 북한초소까지는 1,600m 밖에 안 되어 피어린 6백리의 휴전선 전체에서 남북한이 가장 가깝게 마주보고 있는 이곳으로 재작년 북한군 한 명이 넘어와 귀순한 일도 있다고 장병은 전했습니다.
이번에 찾아간 태풍전망대는 1991년 천하무적 태풍부대가 국민들의 안보정신을 고취하고자 연천군 중면의 비슬산에 세운 안보전망대로 서울에서 약 65km, 평양에서 약 140km 떨어져 있다고 합니다. (연천군의 홈피에 비끼산으로 적혀 있는 것은 비슬산의 오기인 것 같습니다.)군사분계선을 기점으로 2km 지점에 설정되었던 남방 한계선과 북방 한계선의 거리가 좁혀진 것은 1968년 북한이 먼저 휴전선에서 보다 가까운 곳에 철책을 설치했고, 우리나라도 1978년 그에 상응하는 조치로 휴전선에 보다 가까운 곳에 부분적으로 철책을 설치한 때문으로, 안내 장병이 가리키는 곳으로 망원경을 돌리자 북한초소와 초병들이 확연하게 보여, 날씨가 좋은 날에는 망원경 없이도 밭에서 일하는 북한주민이 잘 보인다는 이야기가 허언이 아니겠다 싶었습니다.
여기 태풍전망대에는 달랑 2층의 전망대만 서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버스에서 하차해 먼저 한국전쟁전적비와 6.25참전 소년전차병 기념비를 들러 잠시 묵념을 했습니다. 높다란 성모상를 보고 안내장병에 성당도 있느냐고 물었더니 교회와 법당도 있다고 했습니다. 사방이 탁 트인 전망대에 오르자 무엇보다 제 눈을 끈 것은 북녘 땅의 우람한 산줄기였습니다. 해발고도가 600-700m는 족히 될 만큼 제법 높은 이 산줄기가 백두대간의 두류산에서 분기되어 개성의 송악산으로 이어지는 임진북예성남정맥 일진데, 「산경표」에 나오는 북한 땅의 정맥을 처음 보는 것이다 싶어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습니다.
전망대 서쪽 가까이에 자리한 전시관은 다른 중요한 일로 몇 시간동안 개방하지 못한다고 해 주차장으로 내려가 버스에 올랐습니다. 민통5초소에서 주민등록증을 돌려주는 초병의 해맑은 얼굴을 보자 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본 북한초병의 힘없어 보이는 얼굴이 겹쳐졌습니다. 남북한의 체제 전쟁은 이미 대한민국의 승리로 끝이 났는데도 우리나라 안보가 점점 더 불안하게 느껴지는 것은 칠십 줄에 들어선 나이 때문일 것입니다.
2.한탄강댐 물문화관
태풍전망대에서 내려가 78번 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이동했습니다. 재인폭포가 멀지 않은 연천읍 고문리의 한탄강 댐아래 세워진 한탄강댐물문화관은 외관이 산뜻한 현대식 2층 건물로 그다지 크지 않은 건물이 넓은 공터에 자리하고 있어 아담해 보였습니다.
바로 위 한탄강댐은 환경을 최대한 고려한 홍수조절댐으로 임진강 및 한탄강 하류의 상습적인 홍수피해를 방지하고자 축조한 것이어서 군남홍수조절지와 그 기능이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시간이 없다며 댐 위로 올라가지 말아달라는 기사의 요청이 있어 한탄강댐이 얼마나 큰 가는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길이가 705m이고 높이가 85m인 여기 한탄강댐이 길이가 658m이고 높이가 26m에 불과한 군남홍수조절지보다 규모가 큰 것은 틀림없습니다.
한국수자원공사에서 관리하는 한탄강댐물문화관으로 들어서자 안내직원들이 반겨 맞았습니다. 안내전단에 나와 있는 대로 “물에 관한 체험, 놀이는 물론 다양한 문화행사를 즐길 수 있는 열려 있는 공간”인 여기 물문화관에서 제가 보고 배우고 싶었던 것은 한탄강에 관한 모든 것이었습니다.
북한 땅인 강원도 평강군의 추가령곡 동쪽 산지에서 발원한 한탄강(漢灘江)은 평강과 철원을 남류하고 연천군과 포천시의 경계를 따라 남서류하다가 연천군의 미산면과 전곡면의 경계에서 임진강으로 흘러드는 전장 136Km의 그리 길지 않은 강으로, 임진강의 제1지류이자 한강의 제2지류입니다. 한탄강이 국내에서 유일하게 하천을 따라 만들어진 현무암의 주상절리 협곡으로, 화산활동과 관련된 다양한 지질구조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1층 전시장을 돌아보면서 확실히 알았습니다.
한탄강이 향성된 것은 약 50만 년 전이라 합니다. 강원도 평강군의 오리산에서 수차례 화산이 폭발하면서 분출된 용암이 옛 한탄강을 따라 흘러내려가면서 강과 주변을 뒤덮습니다. 용암이 식어서 굳어진 현무암 위로 지금의 한탄강이 흐르면서 오랜 시간 용암지대를 침식해 오늘의 수직절벽과 협곡을 빚어낸 것입니다. 한탄강 부근에서 선캄브리아 -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에 걸쳐 다양한 암석들이 발견되는 것은 이 부근이 바로 화산암지대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근이 한탄강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된 것 또한 내륙에서 보기 드문 화산암지대여서 가능했을 것입니다.
한탄강하면 떠오르는 또 하나는 1978년 연천군 전곡리의 한탄강변에서 발견된 구석기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인 주먹도끼입니다. 유럽과 아프리카 지역의 그것과 동일한 기술 수준의 주먹도끼가 여기 한탄강변에서 발견되면서 동아시아지역 구석기문화에 대한 관점이 달라지고 연구가 활발해졌다고 합니다. 여담입니다만 이 주먹도끼를 발견한 사람은 한국여성과 강변으로 데이트하러 간 주한미군 그렉보웬입니다. 주먹도끼를 발견토록 만든 그의 한국여인사랑은 결혼으로 이어졌습니다. 귀국 후 아리조나 대학에서 고고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발굴전문회사에 취직해 한국여인과 잘 살고 있다하니 이만큼 성공한 러브스토리도 흔치 않을 것입니다.
볼 것은 많았지만 찾아가볼 곳이 하나 더 있어 조만간 한탄강국가지질공원의 탐방하자는 뜻을 다지면서 물문화관을 나섰습니다.
3.재인폭포
마지막 탐방지는 한탄강물문화관에서 멀지 않은 연천읍부곡리의 재인폭포입니다. 1996년 여름 집사람과 함께 들른 재인폭포를 2000년 여름에 혼자서 다시 찾아 간 것은 이곳이 먼저 간 집사람과 함께 한 추억의 명소였기 때문입니다. 이번의 연천명소탐방지로 재인폭포를 넣은 것은 두 번을 왔어도 찍지 못한 재인폭포를 카메라에 옮겨 담고, 또 탐방기를 남기고 싶어서였습니다.
19년 만에 다시 찾은 재인폭포는 공사 중이라며 접근을 막아 먼발치의 전망대에서 내려다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 번의 탐방 때는 재인폭포를 둘러싸고 있는 깎아지른 암벽이 주상절리인 것을 몰랐고, 또 사진도 찍지 않아 이번 탐방을 많이 기대했었는데 내려갈 수 없다는 안내문을 보고 적지 아니 실망했습니다.
새로 만든 전망대는 투명한 유리 바닥에 서서 발아래 펼쳐진 풍광을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든 스카이 워크(sky walk)로 나이 든 분들이 애써 내려가지 않고도 폭포의 전경을 볼 수 있다는 좋은 점이 있지만, 추락을 막고자 설치한 유리벽과 그 사이의 기둥이 앞을 가로 막아 저 아래 재인폭포의 전경을 담는 일이 매우 불편했습니다. 형편이 이렇고 보니 직벽의 주상절리를 제대로 찍을 리 없고 재인폭포의 그림 같은 소(沼)도 사진으로 재현하는 것은 기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렵게 몇 커트를 사진 찍고 나서 재인폭포의 개요와 형성과정에 대한 안내문을 읽었습니다.
안내문에 따르면 재인폭포는 북쪽의 지장봉에서 흘러내려온 물이 18m에 달하는 현무암 주상절리절벽으로 쏟아지는 것이 장관이라면서, 현재 폭포의 위치는 두부침식작용으로 한탄강에서 약 30m이상 거슬러 올라간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제가 관심을 갖는 재인폭포의 형성과정은 몇 단계로 나누어집니다. 첫 단계는 옛 한탄강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고 지장봉에서 흘러온 작은 개울이 한탄강으로 흘러들어 가는 것입니다. 다음 단계는 약50만 년 전 옛 한탄강을 따라 흘러온 용암이 한탄강과 주변의 낮은 지역을 덮습니다. 용암이 식어 현무암이 생성된 후, 현무암 위로 다시 한탄강이 흐르고 작은 개울도 다시 한탄강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이 그 다음 단계입니다. 마지막 단계는 침식작용으로 한탄강이 조금씩 넓어지고 깊게 흐르며, 한탄강가에 있던 재인폭포가 점차 상류로 이동해 오늘여기에 재인폭포가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재인폭포와 관련된 전설도 새겨볼 만 합니다. 두 가지 전설 모두가 남존여비 시대에 못된 남자들이 저지른 비행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세상이 뒤집혀진 오늘의 사회에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서글픈 이야기일 뿐입니다. 광대의 아내에게 흑심을 품은 원님이 광대에 줄을 타라고 명령하고, 광대가 탄 줄을 끊어 폭포 아래로 떨어트려 죽게 만들었습니다. 광대남편이 죽고 수청을 들게 된 아내가 원님의 코를 물어버리고 자결했다는 것이 구전되는 전설의 대강입니다. 문헌으로 전해지는 전설은 그 내용이 상당부분 다릅니다. 양쪽 절벽에 외줄을 묶어 놓고 아내를 걸어 건너가기를 내기 건 재인이 성공할 것 같아보이자, 아내를 뺏기게 된 사람이 줄을 끊어 흑심을 품었던 재인을 아래로 떨어져 죽게 했다는 것입니다.
두 전설에서 공통된 내용은 못된 남자의 욕망이 재인을 떨어뜨려 죽였다는 것입니다. 남의 부인을 탐내 재인과 그 부인을 죽음으로 몰고 간 원님이 받은 벌이 고작 코를 물린 것이라면 남의 아내를 탐하다 재인폭포로 떨어져 죽은 재인은 억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흉악하기로는 지위를 남용해 광대를 죽인 원님이 재주를 믿고 남의 아내를 취하고자 한 재인보다 더할 것인데도 구전으로만 전해지는 것은 원님으로 대표되는 양반층이 비행이 기록되는 것을 막아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인폭포의 물이 저토록 짙푸른 것이 광대부부의 한이 서려 그런 것이라면 이제라도 재인폭포 위에 외줄을 걸고 원님으로 하여금 줄을 타게 한 후 중간에 줄을 끊는 퍼포만스라도 해서 광대부부의 한을 풀어주는 것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싶다가도 그리하면 적폐청산은 언제 청산할 수 있을까 싶어 망설여지기도 합니다.
한탄강변의 구석기 유적지도 가보고, 호루고루성도 찾아가 볼 뜻입니다. 한탄강 국가지질공원의 명소들도 둘러볼 생각이어서 아무래도 두 서너 번은 연천 땅을 더 밟아야 할 것 같습니다.
<탐방사진>
1)태풍전망대
2)한탄강댐물문화관
3)재인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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