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명소 탐방기 1(제2땅굴)
탐방일자: 2019. 5. 3일(금)
탐방지 : 강원도철원군 소재 제2땅굴/철원평화전망대/월정리역사
동행 : 문산중학교 황규직/황용기 동문
이날 하루 바빴던 것은 철원 땅의 안보관광과 평화누리길 종주를 연이어 해서입니다. 70평생을 살아오면서 이제껏 철원 땅을 밟은 것은 거의다가 산줄기를 오르내리는 종주산행(縱走山行)과 관련된 것이어서 포천과 철원, 연천과 철원의 경계를 이루는 능선 길을 걸었습니다. 이번처럼 철원군의 평지를 다닌 것은 경기북부지역인 파주-연천-철원-가평을 어우르는 임진강과 한탄강, 그리고 북한강의 명소들을 탐승하기위해 1996년 여름 집사람과 함께 큰 맘 먹고 1박2일로 차를 몰고 돌아다닌 것이 유일합니다. 그때도 고석정 등 한탄강의 명소를 탐방한 것이어서, 이번처럼 안보관광이나 평원지대 탐방은 아니었습니다.
이번에 철원 땅으로 평화누리길의 마지막 코스를 탐방하기에 앞서 분단의 현장을 먼저 찾아 나선 것은 백마고지역 - 도피안사 - 칠만암을 잇는 평화누리길 코스의 거리가 12Km정도 밖에 안 되어 오전에 안보관광을 마치고 오후에 평화누리길 탐방을 충분히 해낼 수 있겠다고 판단해서입니다. 백마고지역을 출발해 제2땅굴, 철원평화전망대, 그리고 월정리역을 둘러본 후 백마고지역으로 돌아오는 안보관광을 위해 철원군의 시티투어버스가 하루 한 번 운행됩니다. 오전10시30분에 백마고지역을 출발해 안보관광을 마치고 백마고지역으로 다시 돌아가기까지 2시간 반가량 소요됩니다.
10시30분 백마고지역을 출발했습니다. 승객은 저희 일행 세 명과 동두천에서 오셨다는 할머니 네 분 등 일곱 명이 전부인데도 해설사 한 분이 동행해 고마웠습니다. 사진으로만 보아온 노동당사는 버스로 지나가면서 보았습니다. 창밖에 보이는 토교저수지는 독수리 도래지로 널리 알려진 철원 벌 최대의 저수지입니다. 해방 후 남북으로 분단된 이래 3억평의 철원평야에 농업용수를 공급한 북한이 6.25전쟁에 패하자 대한민국에 빼앗긴 철원평야에 곧 바로 물 공급을 끊었다고 합니다. 이에 우리나라는 100만평 규모의 토교저수지와 25만평 규모의 동송저수지, 그리고 신명호저수지(?) 등 3개소의 인동저수지를 축조했고, 이 저수지에 강물을 전기로 끌어올려 담수해 두었다가 농번기에에 공급하고 있다는 해설사 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북한이 그런 짓을 했으니 천벌을 받아 지금 저렇게 쪼그라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은 것은 북한에서 물 공급을 중단한다고 남한에서 곡창지대인 철원평야를 내버려둘 리 없다는 것을 삼척동자도 알만한 일이어서 그랬습니다. 차라리 물 값을 받고 계속 공급했다면 김일성 집단은 대외적으로 평화주의자로 선전되고 또 실익까지 챙겼을 텐데 그리하지 못한 것은 공산주의 국가 지도자들의 한계가 아니었겠나 싶습니다.
1.제2땅굴
양지검문소를 통과해 첫 번 째 탐방지인 제2땅굴 앞에 도착했습니다. 해설사님으로부터 주의사항을 간단히 들은 다음 안전모를 쓰고 땅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연천군의 안내팜프렛은 제2땅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에서 발견된 땅굴은 한국군 초병이 경계근무 중 땅속에서 울리는 폭음을 듣고 수십 일 간의 끈질긴 굴착 작업 끝에 1975년 3월19일 한국군 지역에서는 두 번째로 발견한 북한의 기습남침용 땅굴이다.”
북한이 굴착한 땅굴은 여기 제2땅굴 외에도 연천의 제1땅굴, 파주의 제3땅굴, 그리고 양구의 제4 땅굴 등 세 곳이나 더 있습니다. 입구에서 땅굴이 시작되는 지점까지는 우리 군이 계단을 설치해 허리를 펴고 내려갔으나 계단이 끝나는 지점부터 땅굴의 높이가 낮아져 머리가 부딪히지 않도록 허리를 굽히고 걸어야 했습니다. 기왕에 굴착하는 땅굴을 이렇게 낮게 판 것은 북한군의 신장이 우리 장병보다 훨씬 작아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안내판에 따르면 제2땅굴은 길이 총3.2Km, 높이2m, 폭 2.2m의 아치형 땅굴로, 군사분계선으로부터 1.1Km나 우리 땅 안으로 들어와 있습니다.
제2광장으로 조성된 공터는 굴착공사를 하는 북한의 인부들이 먹고 자고 휴식을 취하던 장소였다고 합니다. 땅굴 안은 습기가 많이 차 벽면에 초록색 이끼가 끼어 있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제3 차단벽을 지나고 제2광장에 이르러 ‘자기의 조국을 모르는 것보다 더한 수치는 없다“는 문자판을 보고 자유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건국사를 밥 먹듯이 왜곡하는 반역사적 세력들의 선전선동을 저지하는 것도 아주 중요한 애국활동이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땅굴의 굴착작업에 동원된 북한의 인부들이 먹고 자고 휴식하던 쉼터였던 제2광장에서 조금 더 가(?) 제2땅굴의 북쪽 끝 지점에 이르렀습니다. 북한군이 환기를 위하여 컴푸레셔를 설치했었다는 이곳에 우리 국군은 자유통일을 염원하는 국민들의 뜻을 모아 작은 자유의 종과 우물을 마련해 놓았습니다. 끝점에서 되돌아 나가 땅굴 앞에 세워진 제2땅굴 현황판을 보고서 이 땅굴의 굴착공사가 성공했다면 무장한 북한군이 시간당 16천명을 투입할 수 있었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습니다. 위령탑 앞에서 희생장병들에 잠시 묵념을 올린 후 바로 옆 전시관을 둘러본 후 버스에 올라 철원평화 전망대로 향했습니다.
2.철원평화전망대
제2땅굴에서 서쪽에 자리한 철원평화전망대로 가는 길은 드넓은 철원평야와 물결이 출렁이는 대규모의 저수지를 지나서인지 연천군의 통일전망대를 오를 때보다 덜 긴장되었습니다. 주차장에서 하차해 나지막한 구릉의 전망대까지 모노레일카로 이동하면서 내려다 본 동송저수지는 그 풍광이 일품이었습니다. 연초록의 숲, 엄청 넓어 보이는 저수지를 꽉 채운 물의 잔잔한 움직임, 그 뒤로 전개되는 광활한 평원, 이 평원의 울타리가 되어준 금학산과 고대산을 이어주는 산줄기를 보노라니 먼 옛날 궁예가 이곳을 태봉국의 수도로 삼고 자리 잡은 뜻을 알 것 같았습니다.
지상3층의 평화전망대에 도착해 설명을 들은 후, 망원경으로 “이곳에서는 조국을 지키다 장렬히 산화한 수많은 용사들이 묻혀 있는 비무장지대 일원과 평강공주로 잘 알려진 평강고원, 김일성 고지, 백마고지, 북한선전 마을, 피의 능선, 그리고 망원경을 통해 북한 병사의 모습은 물론 금강산까지도 조망할 수 가 있다.”고 전시물에 적혀 있는 대로 한 곳 한 곳을 짚어가며 찬찬히 보았습니다. 낙타모양의 낙타봉도 보았고 해발천m가 넘는 고산으로 일명 김일성봉으로도 불린다는 오성산도 보았습니다. 비무장 지대를 넘어 북쪽으로 펼쳐지는 넓은 평원이 평강고원임을 확인하고 저 곳이 바로 고구려의 바보온달과 평강공주가 만나 삶을 같이 한 역사의 현장이라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뛰었습니다. 비무장안에 지어놓은 아담한 현대식 건물이 우리 군의 초소라는 이아기를 듣고서 저런 위험한 곳에서 나라를 지키는 장병들이 있어 이렇게 마음 놓고 안보관광에 나설 수 있다 싶어지자 고마우면서도 마음 든든했습니다.
철원평화전망대에서 내려가 버스를 타고 월정리 역으로 향했습니다.
3.월정리역
철원평화전망대에서 서쪽의 월정리역으로 가는 길은 멀지 않아 7-8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현재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에 근접한 최북단종착지점에 위치한 월정역에는 바로 맞은편에 미군의 폭격을 맞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인민군의 열차가 우리가 세운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간판과 함께 70년 가까이 서 있습니다. 월정역은 일본인들을 강제동원하고 10월 혁명으로 추방된 러시아인을 고용해 1914년 8월 강원도에서 처음 부설된 서울 -원산 간 227Km를 잇는 경원선의 매우 중요한 역으로, 철원에서 생산되는 각종 생산물의 수송을 맡았던 산업철도 경원선의 거점 역이기도 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길 건너 날렵한 흰색 건물의 철원두루미관을 들르지 않은 것은 북방의 두루미들이 철원평야를 찾는 계절이 봄이 아니고 겨울철이어서 그랬습니다. 그간 손을 보아서인지 하얀 외벽이 말짱해 보이는 월정리역(月井里驛) 역사 안으로 들어서자 녹이 덕지덕지 슬은 경원선의 철로와 그 위에 폭격을 받고 부서져 주저앉은 열차의 참담한 모습이 눈에 잡혔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도 말없이 저 자리를 지켜온 철마가 다시 북녘으로 달릴 날이 멀지 않았다고 환호했었습니다. 철마가 달릴 몇 번의 기회는 우리 정부의 통 큰 양보로 현실화 되겠다 싶었다가도 북한의 돌변으로 그때마다 좌절되는 것을 보아온 저는 더 이상 북한의 달콤한 대남약속을 믿지 않았기에 지난 달 하노이에서 열린 미북회담이 북한의 비핵화의지가 전혀 없다는 이유로 전면 결렬된 것을 가지고 그다지 놀라지 않았습니다.
꽤 넓은 DMZ평화문화광장에는 월정리역 이외에도 평화의 숲공원, 야외음악당, 평화문화관, 6.25전쟁추모비, 두루미전시관, 평화의 종 등 다양한 기념시설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13시까지는 백마고지역으로 돌아가야해 평화의 종과 6.25전쟁추모비, 그리고 문화관 전의 정자와 연못만을 사진 찍고 나서 월정리역을 떠났습니다.
안내판에 적힌 월정리의 전설은 이름 모를 병으로 고생하는 아버지를 딸이 온갖 정성을 다 바쳐 구완하는 미담으로 엮여있습니다. 밤마다 찾아와 아버지의 쾌유를 비는 딸에 달님은 집 옆 바위에 고인 물을 달이 지기 전에 딸의 손으로 천모금을 길어 드리면 낳는다고 했고, 그 말을 들은 딸이 온 몸을 바위에 부딪혀가면서 천 번을 간신히 채워 물을 길어다 아버지에 드려 아버지는 병이 나았으나, 이 딸은 피를 너무 많이 흘려 끝내 회생되지 못하고 죽었다 합니다. 그 후 물이 고였던 자리는 월정(月井)으로, 마을은 월정리(月井里)로 불렸다는 것이 이 전설의 요지입니다. 아버지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하고자 효녀 심청이 공양미 3백석에 팔려가는 심청전보다 이 전설이 더 잔혹한 것은 끝내 효녀가 다시 살아나지 못해서입니다. 아버지를 위해 딸의 희생을 당연시 하는 사회의 무지가 빚어낸 비극인 이런 전설이 더 이상 전파되지 않은 것은 한국전쟁이 끝난 후일 것입니다.
철원명소 탐방은 이제 그 첫발을 내딛었을 뿐입니다. 3-4회를 더 찾아와 철원군에서 6코스로 조성한 한여울길을 다 걸어볼 뜻입니다.
<탐방사진>
1)제2땅굴
2)철원평화전망대
3)월정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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