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II.시인마뇽의 명소탐방/국내명소 탐방기

99. 괴산명소탐방기1(산막이옛길)

시인마뇽 2019. 6. 12. 23:29

                                                  괴산명소탐방기1(산막이옛길)

 

 

                                           *탐방일자 :2019.6. 1()

                                           *탐방지   :충북괴산소재 산막이옛길, 쌍곡계곡,

                                                       홍범식독립유공자 생가

                                           *동행      :쌍용제지 입사동기 4

                                                            (한성환, 나기훈, 김광호, 우명길)

 

 

 

 

  이번 충북괴산의 산막이옛길탐방은 41년전 쌍용제지에 들어간 입사동기모임에서 주선해 가능했습니다. 이번 탐방이 더욱 알찼던 것은 마침 괴산이 고향인 김광호회장이 산막이옛길에 더해 쌍곡계곡과 홍범식독립유공자 생가도 같이 안내를 잘 해준 덕분입니다. 197817명이 입사해 근무하다가 저마다 다른 해에 퇴사해 입사동기모임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았는데, 그동안 줄곧 총무를 맡아 모임을 끌어온 나기훈동기의 각별한 노고 덕분에 지금도 5-6명이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충북의 중앙부에 자리한 괴산군(槐山郡))2003년 증평이 떨어져나가 그 군세(郡勢)가 옛날 만 못한 것 같습니다. 괴산이 널리 알려진 데는 화양계곡에 자리했던 만동묘와 화양서원이 단단히 한 몫 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 유학자인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은 제자 권상하에게 중국 명나라의 마지막 두 황제인 신종과 의종의 제사를 지낼 묘우를 짓기를 당부하고 세상을 하직했다 합니다. 임진왜란 때 조선을 지켜준 명나라 황제의 은혜를 기리기 위해 만동묘와 화양서원을 짓는 일은 모화사상이 지배적이었던 당대에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아침 8시경 천호역에서 나기훈 총무를 만나 김광호 회장이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고 괴산으로 향했습니다. 일죽에서 중부고속도로를 빠져나가 음성을 거쳐 충북괴산군 칠성면의 산막이옛길입구의 주차장에 도착한 것은 1028분이었습니다. 청주에서 차를 몰고 먼저 도착해 기다리는 한성환동기를 오랜만에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눴습니다. 주말인데다 날씨가 쾌청해서인지 손님을 실고 온 관광버스가 꽤 여러 대 보였습니다.

 

 

  산막이옛길이란 산 깊숙한 곳에 장막처럼 주변 산이 둘러싸고 있다하여 산막이라 불리는 마을 사람들이 오가던 옛길을 이릅니다. 이 길은 주차장을 출발해 물레방아-산막이나루-삼신바위-연하협구름다리-굴바위나루-원앙성을 차례로 거쳐 신랑바위에 이르기까지 약 7Km에 달하는 괴산호의 둘레길로, 이 길을 걷는 데는 편도 기준 약 2시간 반가량 걸린다고 안내 팜플렛은 전하고 있습니다.

 

 

   1040분경 주차장을 출발해 산막이옛길 탐방을 시작했습니다. 상가를 지나 언덕진 매표소에 도착해 연리지를 사진 찍은 다음 망세루로 가다가 잠시 오른 쪽 위 산길로 빠진 것은 한성환 동기가 준비해온 시원한 맥주를 냉기가 가시기 전에 마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다시 돌아간 산막이옛길을 따라 남진해 도착한 망세루에서 왼쪽 아래 괴산호를 조망했습니다.

 

 

   괴산호(槐山湖)는 속리산에서 발원한 달천강을 막아 만든 괴산댐에 물을 담아 생긴 인공호수입니다. 이 댐의 물을 이용해 발전하는 괴산수력발전소는 충북괴산군칠성면사은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1952년에 착공해 1957년에 준공된 이 발전소의 총저수용량은 1,533만세제곱미터이고 발전량은 연간1,080kwh1968년에 준공된 소양강수력발전소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소규모이지만, 국내기술로 설계해 시공한 최초의 수력발전소라는데 큰 의미가 있다 하겠습니다

 

 

   망세루에서 조망한 괴산호는 유람선만 떠다니지 않는다면 문명의 시간이 잠시 정지된 것이 아닌가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산 속 깊은 곳에 푹 들어 앉아 속세의 근심을 잊을 만 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망세루에서 병풍루로 이어지는 옛길도 산자락에 낸 길이어서 얼마간 오르내려야 했습니다. 산막이옛길 중간지점에 설치한 병풍루는 호수 건너편 한반도 지형의 좌우를 모두 조망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물레방아를 지나 다다른 산막마을에서 조선조 중기의 관각문인 노수신(盧守愼, 1515-1590)의 적소(謫所)였던 수월정(水月亭)을 찾아갔습니다. 을사사화 때 이곳으로 귀양왔다가 해배되어 영의정에 올랐지만 기축옥사 때 역적 정여립을 천거했다는 이유로 파직되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으나 시문에서는 대성해 정사룡, 황정욱과 더불어 관각삼걸(館閣三傑)로 불리기도 합니다. 송시풍(宋詩風)이 풍미하던 시대에 두보(杜甫)를 배워 뜻을 이룬 시인 노수신의 대표작은 아래 시 <십육야환선정(十六夜喚仙亭)>입니다.

 

                     십육야환선정(十六夜喚仙亭)

 

    二八初秋夜    열엿셔날 초가을 밤

    三千弱水前    삼천리 약수 앞에 있네

    昇平好樓閣    태평성세엔 누각이 좋은데

    宇宙幾神仙    우주에는 신선이 얼마나 되는가?

    曲檻淸風度    굽은 난간에 맑은 바람 지나가고

    長空素月懸    긴 하늘에는 흰 달이 걸려 있네

    愀然發大嘯    서글피 길게 휘파람 부니

    孤鶴過翩韆    외로운 학 너울너울 날아가누나

 

 

   수월정을 나와 연하협구름다리로 가는 길에 만난 삼신바위는 큰 바위 3개를 하나씩 쌓아 만든 것으로 치마폭이 넓은 한복을 입은 삼신바위를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합니다.

 

 

   산막이옛길은 연하협 구름다리를 지나 신랑바위까지 이어지지만, 저희는 연하협구름다리를 건너갔다 돌아오는 것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연하협구름다리는 달천을 건너는 유일한 다리로 충청도양반길과 속리산 국립공원의 갈은 구곡으로 이어집니다. 생각보다 출렁이지 않아 구름다리를 건너면서 다리 아래로 흐르는 달천을 제대로 완상할 수 있었습니다.

 

 

   달천(達川)이란 충북보은군의 속리산(俗離山, 1,058m) 부근에서 발원하여 괴산군을 지나 충주시 서쪽에서 남한강에 합류되는 남한강 수계 최남부에 있는 지류로, 하천의 길이는 약 116에 달합니다. 한강의 제1지류인 달천이 제 귀에 익은 것은 방송대국문과에서 배운 한문소설<달천몽유록(達川夢遊錄)> 때문일 것입니다. 현전하는 <달천몽유록>은 조선중기의 문신인 윤계선(尹繼善, 1577-1604)1600년에 지은 것과 황윤중(黃允中, 생몰연도 미상) 1611년에 지은 것 등 2종이 있습니다만, 두 가지 모두 임진왜란 때 달천에서 전사한 신립과 관련된 이야기를 다룬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주차장으로 돌아가 옮겨간 괴산의 명소는 쌍곡계곡으로 15년 전 칠보산 등산길에 한 번 들른 곳이어서 눈에 익었습니다. 쌍곡휴게소에 차를 세워두고 인근 다리 아래 계곡으로 내려가 산막이옛길을 걷느라 열이 난 두 발을 물에 담가 열기를 식혔습니다. 계곡 건너 산이 칠보산임을 알고나자 과천산악회 회원들과 한 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이 산을 올랐다가 하산 길에 이 계곡에서 목욕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났습니다.

 

 

   이번 괴산탐방의 마지막 심방처는 괴산읍내 홍범식독립유공자 생가였습니다. 1962년 독립유공장이 추서된 홍범식(洪範植, 1871-1910) 선생은 태안군수와 금산군수를 역임한 분으로 1910년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로 병합되자 통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자결하였습니다. 가족에 유서를 남겨 빼앗긴 나라를 되찾을 것과 절대로 친일을 하지 말 것을 당부한 선생의 아들이 다름 아닌 소설 임꺽정을 지은 월북작가 홍명희(洪命憙, 1888-미상)입니다. 충청북도 민속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된 선생의 생가는 여주에서 보았던 고종의 왕후인 민비의 생가보다 더 커 제가 본 고택 중에 가장 크지 않나 싶습니다. 정남형으로 지어진 생가 안으로 들어가면 자형의 안채를 만나게 됩니다. 쌀을 담아두는 광이 여러 개인 것으로 보아 여느 독립운동가보다 살림살이는 넉넉했을 것 같습니다. 아들의 월북이 고인인 아버지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기에 생가가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자, 1948년에 건국된 대한민국은 그후 내내 민주공화국이었음이 실감됐습니다.

 

 

   서울로 돌아와 저녁을 같이 하면서 저희가 만난 지 어언 41년이 되었음을 새삼 확인했습니다. 앞으로도 십 수 년을 훨씬 넘겨 만나려면 건강이 최고라며 서로를 격려했습니다. 먼 길을 운전하느라 고생한 김광호회장, 모처럼 먼 곳으로 나들이를 함께 한 나기훈, 한성환 두 동기에 감사하며 탐방기를 맺습니다

 

 

                                                                           <탐방사진>  

 

1)산막이옛길

 

 

 

 

 

 

 

 

 

 

 

 

 

 

 

 

 

 

 

 

 

 

 

 

 

 

 

 

 

 

 

 

 

 

 

 

 

 

 

 

 

 

 

 

 

 

 

 

 

 

 

 

 

2)쌍곡계곡

 

 

 

 

 

 

 

 

3)홍범식독립유공자 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