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흥도 탐방기
탐방일자:2019. 5. 12일(일)-13일(월)
탐방지 :인천시옹진군 영흥도 해군전적비/
참수리호/비치팬션 정원
동헁 :도마산초교 2회 동문8명
(호영진, 허정숙, 고종옥, 윤정옥, 이제녀,
변종안, 김용회, 정기영, 우명길)
도마산 초교 2회 동창회의 주선으로 또 다시 서해의 섬을 다녀왔습니다. 지난해 12월 무의도를 다녀오고 나서 다섯 달 만에 다시 나선 서해의 영흥도 여행이 좋았던 것은 이번에는 한 곳에서 쉬면서 잘 꾸며진 인근 산책로를 따라 편하게 걷고, 또 바닷물이 밀려드는 것을 한가롭데 지켜볼 수 있어서였습니다. 또 하나 산본 집에서 멀지 않아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2시간 반이면 해안의 숙소까지 충분히 다다를 수 있어 시간을 내는 것이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았습니다.
호영진 동창회장의 전화를 받고 가능한 한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나서 걱정됐던 것은 매주 화요일은 대학원수업이 3과목이나 잡혀 있어 일요일과 월요일에는 거의 다 발표자료 준비에 시간을 할애해야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매월 둘째 주 월요일에 열리는 한국산서회의 월례모임을 방학 때만 참석하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화요일 수업시간에 발표할 자료를 완성해야 동창들과 함께 섬 나들이를 떠날 수 있어 몇 주 전부터 부지런히 자료준비를 해왔습니다. 다행히 일요일 오후에 발표자료 준비를 모두 마쳐 오후 4시반 경 산본 집을 나설 수 있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오이도에서 오전 10시 반에 집결해 승용차로 먼저 갔고 저 혼자 뒤늦게 동참해 기다리는 친구들에 미안했습니다.
산본 집에서 오이도까지는 전철로 이동했습니다. 40분가량 걸려 도착한 오이도역을 나가 버스정류장에서 10분을 채 안 기다려 1시간에 1대씩 운행되는 영흥도행 790번 버스에 올랐습니다. 오이도에서 7.4Km의 시화방조제를 건너 들어선 대부도는 남북으로 길게 뻗은 제법 큰 섬입니다. 24년 전 여름 제가 근무하던 회사의 같은 부서 직원이 이 섬에 본가가 있어 다른 직원들과 함께 놀러와 하룻밤을 묵고 갔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함께 회도 먹고 술도 마시면서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던 옛날에는 직장생활이 고되기는 했지만 근무분위기는 요즘보다 훨씬 인간적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안산시의 대부도에서 인천시 옹진군의 선자도로 넘어 가는 길은 선자교로 이어졌습니다. 이 섬 또한 5년 전에 바로 이 초교동창들과 함께 다녀간 곳이어서 전적으로 생소한 곳은 아닙니다. 그 때도 바쁜 일로 혼자서 저녁 늦게 왔다가 아침 일찍 돌아갔는데 바닷가의 일루아팬션에서 일출을 바라보며 맞은 4월 초의 아침 날씨가 제법 쌀쌀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선자도에서 영흥교를 건너 영흥도버스터미널에 다다른 시각은 18시15분이었습니다. 버스종점에서 몇 분 기다리지 않아 영흥면사무소를 거쳐 장경리로 가는 공영버스가 도착했습니다. 기사분에 언제 떠나는 가를 물었더니 몇 분 있다가 떠난다면서 면사무소까지는 걸가가도 십 수분밖에 걸리지 않으니 바쁘면 걸어가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매일 걷는 1만보를 채우려면 어디서든 7천보 가량 더 걸어야 해 면사무소까지 걸어가기로 마음먹고 가는 길을 물어 확인했습니다. 영흥늘푸른센터 앞 비석에 새겨진 태동철님의 시 “내 사랑 영흥도”는 이곳 현장에서 읽어야 느낌이 올 것 같아 일독 했습니다. “영흥도는 바다의 꽃 섬이였다”로 시작해 “영흥도는 꽃의 순결로 피어난다”로 끝을 맺는 이 시에서 감흥이 일었던 부분은 “어머니가 사랑의 심장으로 감싼 섬을 통해 육지를 배웠다”는 시구(詩句)였습니다.
영흥도버스터미널을 출발해 동서로 둑을 쌓아 방파제로 만든 영흥로를 따라 걷다가 이 길에서 벗어나 오른 쪽 수로를 따라 북서쪽으로 진행했습니다. 산책로로 조성된 수로변을 따라 걸어 다다른 내동저수지에서 영흥로로 되돌아가 3천보 가량을 추가했습니다. 영흥로를 다 걸어 길은 왼쪽으로 꺾였고 하룻밤을 묵어갈 비치팬선 표지판이 그 방향으로 안내해주어 안심이 됐습니다. 조금 더 걸어 다다른 삼거리에서 오른쪽 길로 가야 다다르는 면사무소는 잠시 뒤로 미루고 직진하여 오른 쪽 해군영흥도전적비를 참배한 후 아래로 내려가 전시용으로 정박중인 참수리호를 사진 찍었습니다. 삼거리에서 북쪽 차도를 따라가다 이내 왼쪽 길로 올라가 면사무소 정문 앞에 이르자 호회장이 전화로 알려준 ‘꾸지나무’ 비석이 보여 왼쪽 길로 내려갔습니다. 사방에 어둠이 내려 앉기 시작해 십 수분만 늦었다면 밤길을 걸을 뻔 했습니다.
4층의 백색건물인 비치팬션에 도착한 것은 17시 반이 조금 지나서였습니다. 먼저 온 일행들은 이미 1차 술자리를 파한 터여서 엄청 많은 양의 도미회(?)를 독상으로 받았습니다. 늦게 와 미안해하는 저를 반겨 맞으며 술을 따라주는 동창들이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술잔을 서로 따라주며 60년 전의 초등학교 학창생활을 회고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자리를 같이 하지 않은 몇몇 친구와 선생님들의 근황을 묻기도 하고, 한 친구가 선생님께 별 이유 없이 벌을 받았던 일도 화제로 올렸습니다.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불린 이름이 호적상의 이름과 달랐던 것이 저만이 아님도 이번 모임에서 처음 알았습니다. 저녁밥을 함께 든 후 소화를 돕기 위해 산보 길에 나섰습니다.
어둠에 쫓겨 주마간산 격으로 둘러 본 해군영흥도전적비와 참수리호를 다시 찾아가 꼼꼼히 살펴보았습니다. 전적비에 새겨진 비문에 1950년 8월15일 감행된 인천상륙작전의 승리에 영흥지구해군과 영흥도주민으로 조직된 대한청년단 방위대원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수행 했는지가 자세히 적혀 있었습니다.
“인천상륙작전에 앞서 한국 해군 기동함대(701,702,704,513,301,307,309,310,313함)의
승조장병으로 편성한 육전대가 함포지원하에 상륙작전을 감행하여 8월18일 덕적도를, 8월
20일 영흥도를 차례로 탈환하고, 8월 23일부터는 LST에 탑재하고 있던 해군 이동기지 육전대가 상륙하여 영흥도 청년방위대와 함께 이 섬을 사수함으로써, 인천 상륙작전을 위한 거점을 확보하고 상륙 기동부대의 안전항행을 보장 하였습니다. 한편 동년 8월 24일 영흥도를 거점으로 작전을 개시한 한국 해군첩보부대는 9월1일 미 극동군에서 파견한 첩보 팀과 긴밀한 협조 하에 상륙목표 해안을 비롯한 인천, 서울, 수원 등 적이 장악중인 지역에서 용감하게 첩보활동을 전개하여 상륙 작전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였습니다. 이 작전기간 중 9월13일 북괴군은 대대급 병력을 영흥도에 투입하여 일시 점령하였으나 용감무쌍한 우리해군장병들과 청년방위대원들이 703함의 필사적인 근접 함포 지원 아래 적을 격퇴하였습니다.”
바다에 정박 중인 참수리호에 승선하여 이 함정에 관한 제반 정보를 자세하게 알아보았습니다. 인천시 옹진군에서 여기 영흥도 내리 해안부근에 안보관광용으로 설치한 길이 33m, 폭 7m의 이 전함은 경하톤수(輕荷屯數)가 127톤에 이르는 참수리호 263호정의 퇴역함입니다. 본 PKM(Patrol Killer, Medium) - 263호는 연평해전에서 북한군의 적함 선체에 손상을 입혀 선제도발을 억제해온 작전을 성공리에 수행해왔습니다. 20mm 함포, 40mm 발칸포와 12.7mm K6 중기관총을 장착한 이 함정의 최대속도는 시속 40Knot(74Km)입니다. 말로만 들었던 발칸포를 직접 보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참수리호를 돌아보고 연평해전에서 순직한 장병들이 교통사고로 숨진 세월호의 희생자들보다 훨씬 못한 보상을 받는 것은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 국가의 잘못된 처사라는 생각이 들어 전사자들의 이름을 떠올리기가 정말 부끄럽고 망설여졌습니다.
숙소로 돌아와 가볍게 술 한 잔씩 마신 후 저는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호회장의 안내로 이 팬션에 붙어 있는 꽤 넓은 정원을 산책했습니다. 해안에 바짝 붙여 낸 산책로를 따라 숲길을 오르내리는 일이 유독 숨이 가쁘고 힘들게 느껴진 것은 전날 밤의 과식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 불안했는데, 산책을 마치자 이내 원상태로 돌아가 안심됐습니다. 철쭉꽃이 화사하고 소나무 숲이 그윽한 산책로를 두어 바퀴 돈 후 추어탕으로 아침식사를 맛있게 들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해안가로 가까이 다가가 물때가 되어 밀려오는 밀물을 한참동안 지켜보았습니다. 밀물과 썰물이 왜 생기는지 궁금해 하는 친구들에 그 원리를 간단히 설명해주었습니다. 자연현상을 두려워만 하면 자연숭배에 빠지게 되므로 자연현상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일이 중요한데 그 일은 과학자의 몫임을 함께 이야기했습니다.
11시가 넘어 비치팬션을 출발, 호영진회장과 변종안 동창의 차에 분승해 귀가 길에 올랐습니다. 중간에 중식을 간단히 든 후 오이도역으로 옮겨 일단 해산한 것은 여기서부터 전철 이용이 가능해서였습니다. 차 주인은 자기 차로 가고 나머지 6명이 오이도역에서 전철을 타고 서울 시내로 향하다 제가 제일 먼저 산본역에서 하차했습니다. 집에 도착한 시각은 여정을 마치기에는 조금 이른 오후 3시가 조금 넘어서였습니다.
모처럼 짬을 내 느긋하게 섬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이곳저곳을 들르느라 여유롭지 못했던 여느 여행보다 좋았던 것은 한가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이번 영흥도 탐방으로 게으름도 즐거움일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 봄나들이를 주선한 호영진 회장과 허정숙 총무, 그리고 나들이를 함께한 동창들에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탐방사진>
1)선자도(2014. 4. 3일)
2)영흥도(2019. 5. 12-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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