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II.시인마뇽의 명소탐방/국내명소 탐방기

101.연천명소탐방기3 (연천 고구려3대성).

시인마뇽 2019. 7. 1. 23:48

                                              연천명소탐방기3 (연천 고구려3대성)

 

                             *탐방일자:2019329일/ 68,/613

                                  *탐방지   :경기연천소재 고구려 3대성

                                                          (당포성, 호로고루성, 은대리성)

                                 *동행     :문산중 황규직, 황용기 동문 등

 

 

 

  우리나라는 남한에만도 2천여개의 산성이 남아 있을 만큼 성곽이 많기로 이름난 나라입니다. 이제껏 7백여 산을 오르내리면서 여러 산성을 지켜봤지만, 강변의 구릉에 쌓은 성은 이번에 평화누리길을 종주하면서 처음 보았습니다. 제가 가본 성들 중 남강의 진주성, 한강의 아차산성과 행주산성, 남한강의 온달성, 금강의 공주산성 등은 모두 강과 면해 있지만, 강변의 평지에 쌓은 것이 아니고 강 위쪽 산에다 쌓은 성이어서 산성으로 불려야 마땅합니다.

 

 

   연천의 고구려3대성이란 고구려가 연천군의 임진강변에 쌓은 호로고루성과 당항성, 그리고 한탄강변에 축성한 은대리성 등을 이릅니다. 이들 3대성의 공통점은 임진강과 한탄강이 지류와 만나 만들어진 세모꼴의 대지 위에 축성한 강안평지성(江岸平地城)이라는 것입니다. 3대성 중에서 제가 가장 먼저 가본 성은 지난 3월 평화누리길 11코스인 임진적벽길을 따라 걷는 길에 짬을 내 들렀던 임진강변의 당포성입니다. 그 후 연천시티투어버스로 임진강변의 호로고루성을 탐방했고, 뒤이어 대중교통을 이용해 전곡리선사유적지에서 멀지 않은 임진강의 제1지류인 한탄강변의 은대리성을 혼자서 다녀왔습니다.

 

 

 

   고구려 3대성이 자리한 연천의 임진강과 한탄강 유역은 기원전 4세기까지는 백제의 영토였습니다. 서북쪽으로 한나라의 낙랑군과 맞대했던 백제는 동북쪽으로 추가령구조곡을 이용해 침입하는 말갈족을 견제하기 위해 일찍부터 임진강 일대를 북방의 요충지로 삼아 세력권을 형성해왔다고 연천호루고루홍보관의 안내전단은 적고 있습니다.

 

 

 

   고구려의 19대 광개토대왕(재위391-412)이 수군을 이끌고 내려와 백제의 17대 아신왕(재위392-405)의 항복을 받음으로써 임진강 유역이 고구려의 수중으로 넘어간 것은 서력396년의 일이고, 아버지 광개토대왕이 확보한 임진강유역을 기반으로 남진정책을 편 20대 장수왕(재위413-491)이 백제의 수도인 한성을 점령한 것은 475년의 일입니다. 장수왕은 이에 멈추지 않고 아산만에서 영일만에 이르는 지역까지 밀고 내려가 고구려의 영토로 삼음으로써 우리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한 군주가 되었습니다.

 

 

   나제연합군의 기습공격으로 한강의 아차산방어선이 붕괴된 551년에 고구려의 한강유역 통치는 끝났습니다. 한강에서 밀려난 고구려는 임진강을 따라 방어선을 구축하고 북상하는 신라와 대치하기를 120여년 계속하다가 668년 나당연합군에 패함으로써 임진강 일대는 신라의 통치를 받아왔습니다. 고구려는 임진강변을 따라 북쪽에 파주의 덕진산성, 연천의 호로고루성, 당포성, 무등리보루와 한탄강변의 은대리성 등 10여개 성을 쌓아 신라와의 교전에 대비했고, 신라는 임진강 남쪽의 파주 땅에 오두산성, 봉서산성, 이진맥성, 칠중성, 수철성, 연천 땅 한탄강 남쪽의 대전리산성(매소성으로 추정)에 진을 치고 고구려와의 전쟁에 대비했던 것입니다.

 

 

   668년 고구려가 멸망하는 것으로 임진강유역의 영토전쟁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대동강이남 땅을 신라에 넘겨주기로 한 약속을 어기고 남쪽으로 진군한 당은 673년 호로하로 진군하고, 부흥군을 조직해 당나라에 저항해온 고구려의 병사들이 호로고루에 집결하여 배수의 진을 치고 결전에 임했지만, 중과부적으로 당해내지 못하고 사로잡혔거나 임진강을 건너 신라로 도망갔습니다. 호로하를 점령한 당군은 임진강 남쪽에 자리한 신라의 칠중성을 여러 차례 공격했으나 빼앗지를 못해 이 성을 우회해 매초성으로 들어가 20만명을 주둔시켰습니다. 신라군은 오늘의 오두산통일전망대 위치에 자리한 천성에 잠복하여 매초성으로 들어가는 당의 보급선을 궤멸시킴으로써 당군에 패배를 안겼습니다. 677년 당은 평양에 설치한 안동도호부를 만주 무순으로 옮겨 한반도의 지배를 포기하기에 이르렀고, 신라가 삼국을 통일함으로써 고구려3대성이 자리했던 임진강과 한탄강의 유역은 신라의 영토로 바뀌었습니다.

 

 

                                                                   1.당포성

 

                                                 *탐방일자:2019. 3. 29()

                                                 *탐방지 :연천군 미산면소재 당포성

                                                 *동행 :문산중 황규직/황용기 동문

 

 

 

 

   이번에 탐방한 당포성은 숭의전지에서 군남홍수조절댐지에 이르는 평화누리길11코스인 임진적벽길에서 약간 비껴 있어 처음부터 염두에 두었던 곳은 아닙니다. 숭의전지를 출발한지 오래 되지 않아 아미교를 건너 오른 쪽 위 언덕에 성 같은 것이 보이자 옛 고구려의 성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평화누리길을 벗어나 가서 둘러보는 것이 선비가 곁불을 쬐는 것 같아 망설여졌지만, 그냥 지나친다면 내내 찜찜할 것 같아 눈 딱 감고 잠시 누리길에서 벗어나 곁불을 쬐었습니다.

 

 

   곁불 쬐기를 참 잘했다 싶은 것은 그 성 같은 것이 바로 고구려의 옛 성 당포성이어서 그랬습니다. 당포성(堂浦城)은 임진강과 당개나루터로 흘러드는 하천이 형성한 세모꼴의 절벽 위에 쌓은 고구려의 성()입니다. 당포성이 위치한 이곳은 북상하는 신라군이 임진강이 크게 굽어 흐르는 여기 여울목으로 쉽게 강을 건너 개성으로 진입하는 길목이어서 고구려에는 더할 수 없이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강에 접해 있는 두 면은 놔두고 성내로 진입이 가능한 동쪽 방면을 차단하기 위해 축성한 이성의 동벽은 먼저 점토를 다져 쌓은 후 그 외면에 석성을 쌓아올린 토심석축의 구조를 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라 했습니다. 석성을 복원하는데 쓰인 석재들이 화강암이 아니고 현무암이라는 것을 보고 이곳이 화산지대였음을 확인했습니다.

 

 

   당포성을 빙 둘러본 후 그 앞 잔디밭에서 각자 가져온 빵과 김밥으로 점심을 들면서 이 성에 주둔했었을 고구려군을 떠올려보았습니다. 적이 쳐들어오면 만주의 넓은 벌판에서는 적군의 수중에 들어갈 만한 것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들을 깨끗이 비우고 성안으로 들어가 싸우는 청야작전을 펴 승전한 고구려군이 이 좁은 강변에서 그대로 청야전략을 폈을 리 만무하고 보면, 과연 어떤 전략을 전개해 이 성을 지켰는지 자못 궁금했습니다.

 

 

 

                                                                2.호로고루성

 

                                              *탐방일자:2019. 6, 8()

                                              *탐방지   :연천군장남면 소재 호로고루성

                                              *동행      :연천시티투어버스 동승손님

 

 

 

  연천의 고구려3대성 중 중심이 되는 성은 호루고루 성입니다. 세 곳의 성()중 가장 서쪽에 위치한 호로고루성이 몇 번 다녀온 고랑포구에서 멀지 않다는 것을 이번에 연천으로 안보관광을 다녀오고 나서 처음 알았습니다연천고랑포구역사공원에서 버스로 4-5분 이동해 호로고루성에 도착했습니다.  북한에서 기증했다는 실물 크기의 광개토대왕비 모형을 사진 찍고 나서, 연천고루홍보관을 들러 호로고루성의 대강을 파악했습니다.

 

 

   호로고루(瓠蘆古壘) ()은 임진강북원의 현무암절벽위에 축조한 고구려의 성입니다. 삼국시대부터 이 일대의 임진강을 호로하(瓠蘆河)라고 부른데서 유래된 호로고루성은 둘레는

401m로 크지 않지만 남쪽과 북쪽으로 현무암의 주상절리로 만들어진 천애의 절벽을 자연적인 성벽으로 활용하고, 평야로 이어지는 동쪽에만 너비40m, 높이10m, 길이 90m정도의 성벽을 쌓아 세모꼴의 성을 축조한 것이 바로 호로고루성입니다.

 

 

   호로고루성이 임진강 유역의 보루를 포함한 10여개 성 중 중심 성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이 성이 고구려의 평양성과 백제의 한성을 잇는 간선도로상에 위치해 있고, 수심이 얕은 여울목으로 말을 타고 직접 임진강을 건널 수 있는 길목을 지킬 수 있어서입니다. 이는 이 성에서 화려한 기와건물과 상당히 높은 신분의 지휘관이 상주하고 있었음을 짐작케 하는 유물들이 출토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이 성 내부에서 건물지와 수혈유구, 대규모석축집수지. 우물, 목책등의 다양한 유구와 연화문와당, 치미, 호자(虎子), 벼루 외에도 많은 양의 고구려 토기와 기와가 출토되었다는 것은 수차례의 발굴조사로 확인된 바 있습니다.

 

 

   홍보관을 나와 현장탐방에 나섰습니다. 눈앞에 전개된 일자형의 성벽인 동벽이 이제껏 보아온 산성과 크게 달랐습니다. 우선 눈에 띈 것은 대개의 산성이 돌로 쌓은 석벽인데 비해 이 성은 2단의 석벽 위에 토성을 쌓은 것이어서 성벽의 높이가 여타 산성보다 훨씬 높아 마치 야산처럼 보였다는 것과 상단의 토성은 잔디로 덮여 있었고 마차가 다녀도 될 만큼 성곽의 폭도 넓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최근에 개축된 것이지만 성 쌓기에 사용된 석재가 다공성의 현무암이라는 것은 당포성에서 본 바와 같습니다.

 

 

   이 성의 동벽 상단에 올라서자 성의 전모가 한눈에 잡혔습니다. 호로고루성은 세모꼴로 동쪽은 일자형으로 성을 쌓았고, 임진강과 면해 있는 남면과 이름 모르는 하천에 면해 있는 북면 등 두 면은 깎아지른 자연의 절벽을 자연성으로 활용해 만들어진 성임을 두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동쪽 성 아래 세모꼴의 넓은 터에 고구려 군이 주둔해 있었다는데, 과연 그에 필요했던 대형집수정이 자리했던 터가 보였습니다. 세모꼴의 꼭지점에 설치한 망향단 앞에서 잠시 묵례한 후 홍보관으로 돌아가 시티투어버스에 올랐습니다.

 

 

 

                                                                     3.은대리성

 

                                                 *탐방일자:2019. 6. 13()

                                                 *탐방지   :연천군 전곡읍소재 은대리성

                                                *동행      :나홀로

 

 

 

     앞서 살펴본 임진강변의 호로고루성이나 당포성과 달리, 은대리성은 한탄강변에 쌓은 고구려의 강안평지성입니다. 6세기 중엽 나제연합군에 한강유역을 빼앗긴 고구려군은 임진강유역으로 후퇴하면서 한탄강변에 있었던 은대리성은 신라로 넘어갔습니다. 신라로 넘어간 은대리성은 전략적 가치를 잃게 되었고, 그 결과로 폐성되었으리라는 것이 이 앞의 두 성과 구별되는 점입니다.

 

 

   연천군전곡읍에 위치한 은대리성은 전곡구석기유적지 탐방 길에 짬을 내 들렀습니다. 오후 2시경 전곡리유적을 빠져나와 북쪽으로 이어지는 차도를 따라가 협곡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 연천군보건의료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 병원을 왼쪽으로 돌아서자 꽤 넓은 잔디밭 뒤로 호로고루성이나 당포성과 같이 일자형의 성벽이 길 양 옆으로 포진해 있음을 보았습니다.

 

 

   연천의 은대리성은 한탄강과 차탄천이 만나는 지점에 형성된 세모꼴의 하안단구위에 쌓은 고구려의 성으로 한탄강과 합류하는 곳이 꼭지점에 해당되고 이곳에서 동쪽으로 가면서 넓어지는 형태입니다. 한탄강과 차탄천의 합류지점에 형성된 마여울은 수심이 낮아 강을 쉽게 건널 수 있는 군사적요충지인데, 은대리성은 이곳을 통제하는 성입니다. 남벽과 북벽은 각각 자연절벽을 그대로 성벽으로 활용했고 동쪽에 형성된 개활지를 가로질러 축조되었습니다. 성의 총길이는 1,005m 정도로 동서로 400m, 남북으로는 130m입니다. 이 성은 삼국시대 고구려의 남진경영과 관련된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안내판은 적고 있습니다

 

 

   이 성이 앞의 두 성과 다른 또 하나는 동쪽 평탄지에 쌓은 성벽에서 세모꼴의 꼭지점 지점까지 거리가 4-5m는 족히 될 만큼 길다는 것입니다. 보건의료원에서 가운데 길을 따라 올라 양 옆의 일자형 성을 사진 찍은 후 제초기의 풀 깎는 소리가 시끄럽기 그지없는 세모꼴의 풀밭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세모꼴의 풀밭이 성의 전부가 아닌 것은 꼭지점에서 보여야 하는 함수점이 보이지 않아서였습니다. 세모꼴 풀밭의 꼭지점에서 소나무 숲사이로 난 길을 따라 직진해 삼형제바위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 이르렀습니다. 데크로 된 전망대에서 한탄강을 조망하자 삼형제바위 중 두 개의 바위가 보였고, 바로 그 지점에서 오른 쪽에서 흘러내려온 차탄천이 한탄강과 합류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제가 은대리성 세모꼴의 꼭지점 위치에 서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으로 은대성탐방을 마무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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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천의 고구려3대성의 지리적 중요성은 삼국시대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19506.25전쟁 때 우리 국군은 고랑포일대에서 큰 전투를 치렀습니다. 절대 열세의 우리 국군이 이 전투에서 북한군 2개 사단의 남하를 나흘 간이나 저지해 미군의 참전할 시간을 벌었던 것입니다. 19681.21사태 때 김신조 일당의 무장공비가 그 옛날 고구려 군사의 남하루트로 잠입해 고랑포를 건넜습니다. 제가 전공과 무관한 역사지리(historical geography)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탐방사진>

 

1)당포성

 

 

 

 

 

 

 

 

 

 

 

 

 

 

 

 

 

 

 

 

 

 

2)호로고루성

 

 

 

 

 

 

 

 

 

 

 

 

 

 

 

 

 

 

 

 

 

 

 

 

 

 

 

 

 

 

 

 

 

 

 

 

 

 

 

3)은대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