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따라 걷기1
*종주구간:데미샘-반송리-덕운교
*종주일자:2020. 1. 19일 (일)
*따라걷기:성수휴양림입구-데미샘-성수휴양림입구-원신암-유동마을입구
-반송리-대광수련원-덕현리-백운교-덕운교-내봉버스정류장
*종주시간:11시53분-17시10분(5시간20분)
*동행 :나홀로
최근 십년 가까이 백두대간과 대간에서 분기된 9개 정맥의 길고 긴 산줄기를 종주하면서 항상 염두에 두었던 것은 산은 강의 어미니라는 명제였습니다. 모든 강의 발원지가 산이고, 강에 물을 대는 젖줄이 산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기에 산을 강의 어머니라고 칭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2010년 섬진강에 물을 대는 약630Km의 둘레산줄기 환주를 마치면서 제 스스로에 다짐한 것은 이 둘레산줄기로부터 물을 받아 흐르는 223km의 섬진강의 본류를 반드시 한 번은 따라 걸어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섬진강의 둘레산줄기 환주를 마치고 출간한 졸저 『섬진강 둘레산줄기에서 길을 찾다』의 서문에 “섬진강 본류를 발원지에서부터 강 하구까지 물줄기 따라 한 번 걸어볼 생각입니다. 그 때 먼발치에서나마 이 책에 콘텐츠를 부여한 섬진강 울타리산줄기에도 고마움을 표하고자 합니다.”라는 글을 남긴 것도 같은 뜻에서였습니다.
섬진강 강줄기를 따라 걷겠다고 다짐한지 꼭 10년 만에 ‘섬진강 따라 걷기’에 나섰습니다. 섬진강의 발원지인 팔공산 중턱에 자리한 데미샘을 찾아올라 15Km 가량 섬진강의 강줄기를 따라 걸으면서 내내 생각한 것은 이제 산줄기를 따라 걷는 종주산행은 이만 접고, 오래 걸어도 피로도가 훨씬 덜한 강줄기를 따라 걷는 것으로 바꿀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재작년 가을 평화누리길 탐방에 나서 한강과 임진강, 그리고 한탄강 강변길을 여러 차례 걸었지만 특정한 강을 정해 강길 따라 걷기를 표방하고 나선 것은 ‘섬진강 따라 걷기’가 처음입니다.
섬진강은 전북 진안군백운면 신암리의 팔공산 북쪽 1080m고지에서 발원해 전남 광양군진월면과 경남 하동군금성면의 경계인 광양만에서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물줄기로, 그 길이가
223Km이고 유역의 넓이는 약4,500Km²에 이릅니다. 고려 우왕11년인 1385년 왜구가 이 강 하구에 침입했을 때 수 십만마리의 두꺼비가 울부짖어 광양쪽으로 피해갔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으며, 이때부터 이 강이 “두꺼비 섬(蟾)”을 붙여 섬진강(蟾津江)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전남장흥의 사자산에서 발원한 보성강이 이 강의 가장 긴 지류로 이밖에도 추령천, 일중천, 오수천, 심초천, 경천, 옥과천, 요천, 수지천, 황전천, 서시천, 가리내, 화개천과 경남하동의 황천강등 여러 물줄기가 이 강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습니다. 1945년 해방직전 섬진강의 강물을 호남정맥을 뚫고 유역변경을 해 김제평야로 흘려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 20년 후인1965년 국내최초로 임실과 정읍 사이에 다목적댐을 건설해 이 강 중하류 지방의 홍수피해를 막아주고 또 유역변경으로 생기는 낙차를 이용해 칠보발전소를 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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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6시15분에 수원역을 출발하는 무궁화호에 몸을 실고 전주역으로 향했습니다. 3시간 가량 지나 도착한 전주역에서 하차하여 시외버스터미널까지는 택시로 이동했습니다. 10시10분 진안 행 버스에 오른 지 50분이 지나 도착한 진안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하차해 인근음식점에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초행길인데다 시간이 넉넉지 않아 진안에서 데미샘입구까지는 3만원을 들여 택시를 타고 갔습니다.
12시40분 섬진강의 발원지인 데미샘을 출발했습니다. 진안에서 타고 온 택시에서 내려 채비를 한 후 데미샘자연휴양림입구인 팔선정을 출발해 데미샘까지는 반시간이 걸렸는데, 오름길에 눈이 쌓여 아이젠을 준비해가지 않았다면 더 시간이 소요됐을 것입니다. “蟾津江發源地 데미샘” 의 표지석을 사진 찍고 나서 좀 더 머무르지 못한 것은 본격적으로 눈이 내린 때문입니다. 걷기 시작 1시간이 채 안되어 되돌아온 휴양림입구에서 계속 눈을 맞고 걸을 것인가를 결정못해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일기예보만 믿고 우의를 갖고 오지 않아 그냥 눈을 맞고 걸을 수밖에 없는데, 그리하면 스톰파커의 충전물인 거위털이 다 젖어 버려야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되었지만, 그렇다고 오랫동안 벼르고 별러오다 시작한 ‘섬진강 따라 걷기’를 그만둘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날씨가 춥지 않아 예정대로 진행하자고 마음먹고 발걸음을 서둘렀습니다.
스톰파커에 내려앉은 눈을 계속 털면서 아스팔트길을 따라 남서쪽으로 걸어 내려가 만난 첫 동네가 원산암 마을입니다. 원산암마을과 임하마을등 이 일대는 조선 후기 천주교에 대한 종교 박해가 있을 때 천주교 신자들이 조용히 숨어 사는 교우촌이었다고 합니다. 문 닫힌 슈펴와 벽이 반쯤 헐린 폐옥으로 을씨년스러워 보이는 원신암을 지나 신암교를 건너서부터는 북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742번도로를 따라 걸었습니다. 도로 왼쪽 아래로 흐르는 섬진강은 상류이어서인지 강다운 느낌이 전혀들지 않았습니다. 쉼 없이 내리는 눈을 맞고 차도를 걸으면서 오가는 차량들이 별로 보이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했습니다. 데미샘을 출발해 원신암과 신암리를 거쳐 원반교에 이르기까지 1시간50분이 걸렸는데, 그중 시간 반은 꼬박 눈을 맞고 걸었습니다. 차도에서는 무성한 달뿌리에 가려 물 흐름이 잘 보이지 않던 강물이 원반교에 이르자 다리 밑에다 조그마한 보를 설치한 덕분에 이 보를 가득 채운 섬진강이 새파래 보였습니다.
눈이 그치고 간간히 햇빛이 비치자 눈을 맞아 후질구레해진 방한복이 걱정되었지만, 섬진강에 물을 대는 둘레산줄기를 종주하고 나서 꼭 10년 만에 섬진강의 본류를 따라 걷고 있는 저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먼 곳에의 동경’이라는 열망이 아직도 식지 않아 73세의 나이를 잊고 혼자서 전장 223Km의 ‘섬진강 따라 걷기’에 나선 제 스스로가 참으로 대단하다는 자부심이 느껴졌습니다. 데미샘 빌리지 등 여러 곳의 팬션을 지나 원반/두원교가 놓인 반송리의 원반마을에 이르자 도로변에 여러 채의 집들이 모여 있어 이제야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 이르렀다 싶었는데 정작 큰 마을은 다리 건너 200m 거리의 두원마을이었습니다. 전라북도 기념물 제81호로 지정된 만육(晩六) 최양(崔瀁, 1351-1424)선생의 유허비(遺墟碑)가 세워져 있어, 다가가 한문의 묘갈문(墓碣文)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았는데 묘각이 묘비를 가린데다 실력부족으로 해독이 난망해 사진만 찍었습니다. 유허비를 소개한 안내문을 읽고나서 이성계가 건국한 조선에 귀의하지 않은 고려말의 지식인이 한 두 사람이 아니었음을 알았습니다. 외삼촌인 정몽주 선생에게서 글을 배워 문과에 급제하고 보문각대제학과 문하찬성사까지 올랐으나, 고려가 망하자 관직을 그만두고 끝까지 충절을 지킨 최양선생의 유허비가 이곳 백운면 반송리에 세워진 것은 선생께서 벼슬에서 물러나 여기서 가까운 팔공산에 들어가 3년간 세상을 피해 살았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거목의 느티나무, 학남정으로 명명된 강변의 정자, 그 아래 보에 가득 찬 섬진강 강물의 잔잔한 물결을 그냥 지나치기가 아쉬워 가져간 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잠시 쉬었습니다.
반송리의 원반마을을 출발한지 10분도 지나지 않아 도착한 대광수련원은 폐교된 초등학교를 개조한 것이라 합니다. 진안군향토문화유산 제3호로 지정된 ‘통훈대부 사헌부감찰 박리풍 (朴履豊 )부자의 석정려(石旌閭)’를 사진 찍은 후 안내문을 읽어봤습니다. 부자의 극진한 효심을 기리기 위해 마을 앞에 세운 정려비는 가운데가 볼록 나온 배흘림이 특징이라 하는데 통훈대부 사헌부감찰 박리풍 부자의 효심을 기리기 위해 세운 이 정려비도 과연 그러했습니다. 수련원에서 몇 분을 안 걸어 만난 삼거리에서 백운면 소재지로 직행하지 않고 왼쪽의 섬진강 강둑길로 들어선 시각이 15시31분입니다. 이제야 비로소 섬진강 강줄기를 따라 걷는 것이다 싶어 섬진강 상류의 진면목을 카메라에 옮겨 담기에 바빴습니다. 폭은 많이 넓어졌지만 언뜻 보면 갈대로 잘못 알 수도 있는 달뿌리가 하천의 거의 다를 덮고 있어 도랑물이 흐르듯 유로가 좁았다가 보를 만나서야 유로가 확 넓어져 강물처럼 보였습니다. 느티나무 아래 정자가 세워진 무등마을 지나 얼마 후 다다른 백운교를 건넜습니다. 강둑길을 따라 직진하지 않고 다리를 건너 30번 도로를 따라 걸은 것은 뚝방 집의 개들이 요란하게 짖어대서였습니다. 백운교를 건너 삼거리에서 오른쪽 덕현리로 이어지는 30번도로를 따라 걸었습니다. 짙은 구름에 가린 길 왼쪽의 높은 산이 해발 887m의 내동산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지도를 보고 나서였습니다. 윤기버스정류장을 조금 못가서 차도에서 벗어나 왼쪽 강둑길로 다가가 다시 섬진강 강줄기를 따라 걸었습니다. 강 건너 소나무들의 그림자가 바로 아래 보의 강물에 잠겨 있는 모습이 주변의 시골풍경과 잘 어울려 잠시 쉬어 가고 싶은 마음이 일었습니다.
16시53분 덕운교에서 ‘섬진강 따라 걷기 1구간’ 종주를 마무리했습니다. 내동산 아랫마을 내동과 백운시내를 이어주는 내봉교에 이르러 강 건너 소나무밭을 다시 한 번 사진 찍었습니다. 오른 쪽 차도변의 윤기정류장으로 가서 버스를 타려다가 멀지 않은 곳에 보이는 다리로 가는 강둑길이 진안고도라는 표지물을 보고나자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대로 강둑길을 따라 걷기를 잘 했다 싶은 것은 중간에 설치된 보를 가득 채운 강물을 보자 새삼 섬진강의 넉넉함이 느껴져서였습니다. 중국의 무한에서 발병한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가 세를 더해가 마스크를 하고 걸을 수 밖에 없는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강둑길을 아무런 걱정 없이 혼자서 걷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행복했습니다. 덕운교에서 하루 일정을 마치고 왼쪽으로 몇 십 걸음 옮겨 내봉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긴 의자에 열선이 깔려 궁둥이가 따뜻해지자 승객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지자체가 고마웠습니다. 얼마간 버스를 기다리다 너무 늦어지면 저녁8시16분에 전주역을 출발하는 상행열차를 못 탈 수도 있겠다 싶어 오전에 탔던 택시를 불러 진안으로 이동했습니다. 진안에서 버스를 타고 가 기차시간 1시간가량을 앞두고 전주역에 도착했는데. 마침 일요일이어서인지 전주역은 손님들로 붐볐습니다. 20시16분 정시에 도착한 열차를 타고가다 수원역에서 하차해 산본 집에 도착한 시각은 자정이 다 되어서이니 5시간을 걷자고 가고 오는데 14시간을 들인 셈입니다. 이에 택시비만 4만8천원이 들었으니 ‘섬진강 따라 걷기’가 만만한 일은 아닌 것이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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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제가 찾아간 데미샘은 전북 진안군의 팔공산 아래 백운면의 신암리 원신암 마을 상추막이골에 자리한 섬진강의 발원지로, 금강의 발원지와 이웃하고 있습니다. 데미샘이 있는 봉우리를 천상데미라고 하는데, ‘데미’라는 말은 ‘더미[봉우리]’의 전라도 사투리로, 섬진강에서 ‘천상으로 올라가는 봉우리’란 뜻으로 ‘천상데미’라 불렸고, 샘이 천상데미에 있다고 하여 데미샘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이 샘에서 발원한 섬진강은 3개도11개시/군을 거쳐 전라남도 광양만에 이르는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긴 강입니다. 데미샘을 출발해 이 강의 끝점인 광양만까지 걸어가려면 스무 번 가까이 나서야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걱정이 안 되는 것은 ‘섬진강 따라 걷기’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려오는 환희가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걷기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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