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따라걷기2
*종주구간:덕운교-마령교-좌포교
*종주일자:2020. 2. 4일(화)
*따라걷기:백운정류장-덕운교-계남마을-마령교-월운교차로-월운교
-신내교-좌포교-원좌마을
*종주시간:11시53분-17시36분(5시간43분)
*동행 :나 홀로
섬진강의 발원지인 데미샘이 자리하고 있는 진안 땅은 해발4백m가 넘는 고원지대의 분지(盆地)입니다. 진안분지(鎭安盆地)로 명명된 이 분지는 영남육괴와 옥천조선대 사이에 생긴 단층선을 두고 두 개의 직각이 서로 반대방향으로 움직여 사다리꼴 형태로 지반이 꺼져 내린 후, 이곳에 만들어진 호수에 퇴적층이 두껍게 쌓여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우평님은 그의 책 『한국지형산책』에 “진안분지는 지하 깊은 곳에서 굳은 역암 층이 약4천만년 동안 지각이 양쪽으로 물러났다가 밀려들어오는 침강과 융기를 8회 이상 반복하면서 400m 이상 솟아올라 만들어졌다”고 적고 있습니다.
진안 최고의 비경은 누가 뭐라 해도 해발 6백m대의 거대한 바위덩어리로 이루어진 마이산일 것입니다. 마이산은 중생대 백악기말 진안분지의 퇴적암이 오랜 세월을 걸쳐 융기와 침강을 반복하면서 차별 침식을 받아 형성된 두 개의 거암을 이르는 것입니다. 마이산의 천연콘크리트 역암은 진안분지에 생성된 퇴적암 층이 지각변동을 겪으며 융기하여 지면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마이산의 역암층을 구성하는 자갈은 그 최대크기가 1m에 이른다 합니다. 역암이 지표에 노출되어 풍화와 침식을 받으면 주위의 점토나 모래가 풍화되어 자갈이 자기 자리에서 빠져나갑니다. 이렇게 차별침식으로 만들어진 풍화혈을 타포니(tafoni)라 부르는데, 마이산의 거암에 자갈이 빠져나가 생긴 큰 구멍의 풍화혈은 직접 가서 확인한 바 있습니다. 이런 타포니 현상은 지금도 아주 느린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합니다. 마이산의 두 봉우리인 숫마이봉과 암마이봉은 부부봉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부부봉은 오랜 세월 자갈이 빠져나가는 타포니 현상을 겪으면서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아픔을 느꼈을 것입니다. 금실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지 간난의 세월을 같이 겪은 부부봉이 서로 등지고 돌아앉아,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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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11시54분 진안군백운면의 백운시내를 출발했습니다. 지난 번 1구간을 종주할 때 곧바로 강둑길로 질러가느라 들르지 않아, 백운 시내를 걸어보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진안버스터미널에서 10시40분에 오른 버스가 풍혈냉천과 마령을 지나 백운에 도착한 시각은 11시10분이 조금 안 되어서입니다.시내를 잠시 둘러본 뒤 백운농협 건너편의 한 음식점을 찾아가 김치찌개를 시켜 들었습니다. 음식이 맛깔스럽기로는 전라도가 으뜸이라는 명성이 헛되지 않아 조그마한 식당인데도 밥과 반찬이 참으로 먹을 만 했습니다. 백운 시내에서 지난번에 1구간 종주를 마친 덕운교까지는 차도를 피해 샛길로 걸었는데, 공기는 조금 냉랭했지만 하늘은 쾌청해 방한의를 입고 걷기에 딱 좋았습니다.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7번 도로를 따라 걷다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왼쪽 시멘트 소로로 접어들어 서쪽으로 직진, 지난번에 지났던 내봉교를 건넜습니다. 잠시 멈춰 서서 동남쪽 먼발치에 자리한 해발1,142m의 선각산과 반대쪽 지근거리에 자리한 해발887m의 내동산, 그리고 바로 옆 강변의 솔밭을 사진 찍었습니다. 북쪽으로 이어지는 강둑길을 따라 걷는 동안 백운동천과의 합수점에 설치된 보를 가득 채운 강물이 뿜어내는 냉기를 느꼈습니다.
12시21분 내동버스정류장과 인접한 덕운교에서 2구간 종주를 시작했습니다. 덕운교를 건너 왼쪽 아래로 내려가 빨간색 양철지붕의 정미소인 ‘백운면물레방아’를 둘러보았습니다. 1850년 이전부터 방앗간과 같이 있었다는 물레방아는 보이지 않았지만, 섬진강 물을 끌어들이기 위해 막은 보에서 물레방아에 이르는 수로는 길이가 252m이고, 폭과 깊이가 각각 2m라 하니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머릿속에 그려졌습니다. 이 마을 저 마을에서 도정하러 온 주민들이 순서를 기다리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 틀림없을 테니, ‘백운면물레방아’는 섬진강이 마련해준 귀중한 소통의 장이었을 것입니다. 북쪽으로 뻗어나가는 강둑길을 따라 걸으며 천년을 넘겨 흘렀을 섬진강의 맑디맑은 물의 흐름을 지켜보다가 물소리도 더할 수 없이 맑다는 것이 감지되었습니다. 섬진강의 물 흐름이 빚어낸 절경과 절창을 혼자서 보고 듣기가 가슴 벅차 고향이 이곳에서 멀지 않은 대학친구에 전화를 걸어 함께 나누었습니다. 강 건너 내동산으로 오르는 들머리로 길을 이어주는 구수보를 지나 단청색이 많이 바랬는데도 편액이 보이지 않는 모운정(慕雲亭)에 이르기까지 강물은 만나는 보마다 물을 가득 채운 다음 보를 넘어 그 아래 달뿌리 밭에 난 좁은 물길을 따라 졸졸 흘러내려가기를 반복했습니다. 모운정을 막 지나 마을 앞 원운교다리를 건너는 제게 혼자서 걷느냐며 말을 건네 온 한 할머니에게서 외지 사람들도 반가워하는 외로움이 느껴졌습니다.
원운교에서 조금 떨어진 백마교를 건너 계남마을에 이르기 까지 반시간 넘게 시멘트로 잘 포장된 강둑길을 걸었습니다. 둑 너머 논 뜰이 강보다 그리 높지 않아 둑을 높이 쌓는 것은 필요 불가결했을 것입니다. 강 건너 절벽의 바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국가지질공원의 ‘길버트타입 퇴적층’의 안내문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길버트타입의 퇴적암체는 빠르게 흐르는 하천에 의해 운반된 퇴적물이 에너지가 낮은 조용한 호수로 유입되면서 만들어졌다는 설명을 보고 제가 걷고 있는 진안 일대가 원래 지대가 낮았는데 뒤에 융기되어 만들어진 고원지대라는 것이 새삼 떠올랐습니다. 강 건너 산 속에 푹 파묻혀 있는 작은 정자와 잔잔히 물결치는 봇물에서도 다가오는 봄이 느껴진 것은 넉넉해진 길손의 감성 덕분일 것입니다. 계남교를 건너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자 멀리 눈 덮인 산줄기가 보였는데 아마도 금남호남정맥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걷고 있는 진안 일대가 고원지대인데도 평야가 많아서인지 물을 대고자 설치한 보(洑)가 꽤 많이 보였습니다. 계남교를 건너 강둑길을 따라 걷다가 오른 쪽 멀리로 진안의 상징인 마이산이 눈에 띄어 반가웠습니다. 섬진강을 강 아래로 내려가 시멘트 다리를 건너며 발아래 강물을 보자 강 위를 가로 지르는 높은 다리를 건널 때와는 느낌이 달랐습니다.
강 건너 마령 읍내를 바라보며 마령교를 지난 시각은 14시33분이었습니다. 마령교에서 강정교로 이어지는 강둑길은 꽤 큰 축사를 조금 지나서까지만 이어져 49번도로로 올라가 진행했습니다. 월운교차로 앞에서 745번 도로를 따라 강정교를 건넌 후 다시 수선루진입교를 건넌 것은 섬진강에 합류되는 세동천을 건너기 위해서였습니다. 해 떨어지기 전에 풍천냉혈에 도착하고자 넓게 터 잡은 마령체련공원을 지나면서도 가까이의 수선루를 들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산자락에 낸 길이 중간에 끊기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는데 월운교에 이르기까지 계속 연결되어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월운교 바로 아래 보를 설치해 수량이 지금까지 보아온 어느 보(洑)보다 물이 깊고 강폭도 넓었습니다. 이만하면 배를 띄울 만하다 했는데 배가 보이지 않은 것은 상수도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서였습니다. 월운교 앞에서 잠시 방향감각을 잃어 이 다리를 건너갔다가 다시 되돌아 왔습니다. 나침판과 지도를 보고 제 위치를 확인한 후 다리 아래 캠핑장으로 내려갔습니다. 55번 도로를 따라 서진하면 이내 서산교에 이를 수 있지만, ‘섬진강따라걷기’를 표방하고 나선 발걸음이어서 ‘ㄷ’자로 빙 돌아 강둑길을 걸었습니다. 강둑길 돌무더기에서 듬성듬성 자갈이 박혀 있는 역암(礫岩)을 보면서 거대한 역암덩어리인 마이산이 멀지 않구나 했습니다. 저녁5시가 조금 못되어 도착한 서산교 앞에서 길가에 털썩 앉아 처음으로 10분가량 푹 쉬었습니다.
17시36분 좌포보건소 앞에서 하루 걷기를 마무리했습니다. 해떨어지기까지 남은 시간이 넉넉지 않아 서산교에서 산자락에 낸 강변길을 걷는 대신 이 다리를 건너 성수면으로 들어섰습니다. 이내 만난 산내교에서 내려다 본 섬진강이 살포시 내려앉은 저녁 햇빛을 반사하여 빚어낸 고즈넉한 강변 풍광은 참으로 고혹적이었습니다. 이 다리를 건너고 나서부터는 강에 인접해 나란한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차도를 따라 걸었습니다. 저만치에 여러 채의 집들이 모여 있는 마을이 보여 여차하면 그 곳에서 끝내겠다는 생각을 하고 다시 강둑길로 들어섰습니다.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아서인지 길이 잘 나있지 않아 좌포교 전방 약 200m지점에서부터는 풀 넝쿨을 헤치며 나아가야 했습니다. 좌포교 앞에서 이번 구간 종주를 마치기로하고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 섬진강을사진 찍은 후 2-3분 거리의 원좌마을로 이동했습니다. 이 마을 좌포보건소 앞에서 택시를 타고 서둘러 관촌으로 이동했기에 관촌에서 전주 가는 시내버스를 타고가 20시16분에 전주역을 출발하는 수원 행 기차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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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섬진강의 강줄기를 따라 걷고 나서, 강은 이 마을과 저 마을을 연결해주는 소통의 장임을 깨달았습니다. 산줄기는 안부(鞍部)라 불리는 고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이 마을과 저 마을의 소통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라 생각했는데, 강줄기는 달랐습니다. 강줄기를 따라 이쪽저쪽에 마을이 형성되어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해준 것은 강줄기 곳곳에 설치된 보(洑)였고, 마을 간의 소통을 맡아 준 것은 강 위에 놓인 다리였음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습니다. 아직은 상류라서 강물이 깊지 않아 배를 띄운 곳은 보지 못했지만 배가 다닐 수 있는 물길은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소통의 길이라는 것도 분명합니다. 산과 달리 강이 소통의 장이라는 것을 배운 것만으로도 ‘섬진강따라걷기’는 의의는 충분하다 하겠습니다.
<걷기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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