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따라걷기5
*종주구간:선거교-482.1m봉-사양삼거리
*종주일자:2020. 3. 29일(일)
*따라걷기:선거교-482.1m봉-470m봉-밖시안골입구
-사양삼거리
*종주시간:10시47분-17시40분(6시간53분)
*동행 :서울사대 원영환/이상훈 동문
중국에서 발발한 신종 코로나의 빠른 확산으로 한 달 여 쉬었던 ‘섬진강 따라 걷기’를 재개한 것은 계속 집에서만 칩거하다가는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아서였습니다. 마침 대학 동문 한 친구가 자기 차로 같이 가자고 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데 따르는 위험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어 안심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이번에 대학 동문 두 명과 같이 걸은 섬진강 강길은 ‘옥정호마실길’입니다.
옥정호(玉井湖)는 전라북도 임실군과 정읍시에 걸쳐 있는 섬진강 상류수계의 인공호수입니다. 1965년에 준공된 우리나라 최초의 다목적댐인 옥정호는 댐 높이 64m, 길이344.2m, 유역 면적 763㎢, 총저수용량이 4억 6600만t에 달하는 대규모 호수입니다. 옥정호의 등장으로 최대 발전량 34,800㎾의 전기를 생산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류 지역의 만성적인 홍수 및 한발의 자연재해를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력발전에 이용된 유수를 동진강으로 유역 변경시킴으로써 연간 200만석의 식량을 증산하게 되었으며 농업용수뿐만 아니라 전주, 정읍, 김제 시민의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상수원의 기능도 하고 있다고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자세히 적고 있습니다.
마실이란 이웃에 놀러 다니는 일을 지칭하는 순수한 우리말입니다. 이 말이 고향을 연상케 하는 것은 하루 일을 마치고 저녁식사를 마친 후 주로 밤 시간에 어느 한 큰 집의 사랑방 모여 노는 마실이 도시에서는 쉽게 뿌리내릴 수 없는 시골 고유의 풍습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낮 시간 내내 논밭에 나가 땡볕에서 일을 하느라 지친 몸을 이끌고 이웃집 사랑방으로 마실을 가는 것은 그리하지 않고서는 마을은 물론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알 수 없어서였습니다. 마실의 주 기능이 친교보다는 정보의 생성과 교환에 있었기에, 대중매체의 보급과 더불어 그 수명이 다한 것은 충분히 에견된 일입니다. 마실의 또 다른 뜻은 ‘마을’입니다. 경상도는 물론 전라도나 충청도에서 ’마을‘의 의미로 널리 쓰인 ’마실‘은 제 고향 경기도나 수도 서울에서는 같은 뜻으로는 쓰이지 않았던 하삼도(下三道)의 방언입니다.
전북임실군 운암면 학암리에서 신덕면의 국사봉으로 이어지는 전장15Km의 ‘옥정호마실길’ 은 이웃에 마실을 가는 정도로 채비해 길을 나섰다가는 낭패를 당할 수밖에 없는 험한 길입니다. 그럼에도 이 길을 마실길이라 칭하는 것은 마실이 마을의 방언으로 쓰였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다시 말해 ‘옥정호마실길’은 이웃에 마실 다니는 길이 아니고 옥정호 수변의 마을 이어주는 마을길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 길에 사람 다닌 흔적이 별반 보이지 않는 것은 이 길이 아니고도 호수변의 마을을 찾아 갈 수 있는 차도가 포장 또는 비포장으로 이미 나있어서일 것입니다.
길도 선명하지 않은 된비알의 험한 옥정호마실길을 마다 않고 따라 걷는 가장 큰 이유는 그림 같은 옥정호의 빼어난 풍광을 높은 곳에서 한 눈에 조망할 수 있어서입니다. 이런 목적으로 이어 놓은 길에는 옥정호 동쪽의 ‘옥정호마실길’과 서쪽의 ‘옥정호물안개길’이 있습니다. ‘섬진강 따라 걷기’는 이 두 길을 다 걷고도 몇 번을 더 나서야 옥정호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댐을 막아 호수를 만들면 강 면적이 넓어져 자연 상태의 강을 따라 걷는 것보다 발품을 더 팔아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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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47분 학암리의 섬진강에 가로놓인 선거교를 출발했습니다. 전북고창의 무장을 출발한지 두 시간이 좀 지나 도착한 선거교는 지난 달 ‘섬진강 따라 걷기’ 4구간을 마친 곳입니다. 차를 주차 시킨 후 오른 쪽 학산마을 위로 옮겨 옥정호마실길로 들어섰습니다. 시멘트 포장도로가 끝나는 곳에서 왼쪽으로 조금 떨어진 소연헌(小淵軒)은 바로 아래 섬진강이 잘 내려다보이는 개인 집입니다. 꽤 넓은 강폭의 섬진강을 작은 연못으로 불러야 어울릴 만한 작은 집의 주인은 50대(?)의 젊은 분으로 집 안을 지나는 저희를 반갑게 맞았습니다. 가파른 바위 길을 지나 350m대의 봉우리에 올라서는 길에 다소곳이 피어 있는 진달래를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진달래를 철쭉꽃처럼 야단스럽게 화사하지 않아 좋아하는 사람이 저만은 아닐 것입니다. 소월 김정식선생께서 1920년대 후반 우리 문단을 주도적으로 끌고간 '조선프로레탈리아 예술가맹(카프, KAPF)'에 가입해 목청을 높이지 않은 것은 선생의 천성이 수더분한 진달래꽃을 닮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350m대 봉우리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내려가 ‘학암기점1.8Km지점’의 시멘트길 삼거리에 다다랐습니다. 삼거리에서 강변 마을로 이어지는 왼쪽 아래 길을 버리고 오른 쪽 위로 향하는 길을 따라 오르면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선거교에서 350m대 봉우리를 서쪽으로 에돌아 흐르는 섬진강과 강 건너 월면리를 일별했습니다.
12시6분 삼거리에서 시멘트 길을 따라올라 고갯마루에 올라섰습니다. 이 고개에서 오른 쪽 아래로 내려가면 지난번에 지났던 ‘옥정호마실길 900m전방’의 표지목이 서 있는 745번 도로에 닿게 됩니다. 카카오 맵에 길이 나와 있는 시멘트 길은 차가 다니는 좁지 않은 길인데도 길 이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옥정호마실길’에서 가장 높은 지점인 정북 방향의 482.1m봉에 올라 점심 식사를 하기로 뜻을 모으고 고갯마루를 출발해 북쪽 능선에 발을 들였습니다. 송림과 묘지를 차례로 지나 밧줄이 걸린 전망바위에 다다랐지만 위험할 것 같아 바위에 올라서지 않았습니다. 이에 못지않은 전망처는 곧 바로 이어지는 데크 길로 강 건너 월면리와 지천리, 그리고 임석리로 이어지는 섬진강 강줄기가 한 눈에 잡혔습니다. 데크에서 내려다보니 옥정호가 빚어낸 최고의 걸작은 바로 아래 강 건너 월면리와 이곳을 굽돌아 태극모양을 그리며 지천리와 입석리 사이로 흘러가는 옥정호의 물줄기입니다. 마치 반도처럼 길쭉하게 강 쪽으로 뻗어 나온 월면리는 손이 꽤 갔을 황토밭과 그 사이로 난 깔끔한시 멘트 길, 그리고 밭가의 소나무들이 적절히 자리하고 있어 설사 옥정호와 면해 있지 않는다 해도 사람들 눈을 끌기에 충분합니다. 여러 장의 사진을 찍고 나서 앞 봉우리를 오르며 자칫 잘못해 미끄러지면 저 아래 강으로 떨어질 수도 있겠다는 방정맞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는 오름 길이 험한 직등길이서 만은 아니고, 조금 위험하다 싶으면 자연스럽게 죽음과 연결해 생각하는 나이에 접어들어서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13시5분 옥정호마실길의 최고봉인 482.1m봉에 올랐습니다. 데크를 지나 된비알의 험한 길을 걸어 오른 무명봉에서 잠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선 482.1m봉에는 삼각점이나 표지석이 세워져 있지 않았고, 주위가 나무들로 막혀 사방을 조망할 수 없었습니다. 준비해간 김밥을 꺼내들며 스스럼없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젊어 한 때 4년 동안 같은 캠퍼스에서 공부한 대학동창들이어서 더 자연스러웠습니다. 482.1m봉을 출발해 북쪽 아래 대치로 내려섰습니다. 다시 왼쪽으로 올랐다가 내려선 안부에서 오른 쪽 작은대치 마을과 왼쪽 월면리 건너편 강물까지 이어지는 비포장 길이 교차됐습니다. 직진 방향의 470m봉으로 이어지는 옥정호마실길은 된비알 길이어서 한 번에 오르지 못하고 나무에 기대 잠시 숨을 고른 후 오름 길을 이어갔습니다. 가파른 비알 길을 오르는 중 만난 연보라의 현호색은 앞서 본 떼로 핀 연푸른 색의 개불알풀, 순백색의 산자고, 그리고 진노랑의 민들레와 양지꽃 등과 같이 우리 산에 봄이 왔음을 알리는 봄의 전령들입니다.
14시51분 옥정호마실길에서 두 번째로 높은 470m대봉에 올라섰습니다. 안부에서 반시간 가까이 걸어 올라선 470m대 봉우리에 올라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쉬는 동안 이상훈 동문이 열창한 판소리를 들으면서 산상음악회의 진수를 맛보았습니다. 연초록색의 이끼바위가 두드러져보이는 평평한 능선 길을 따라 걷다가 오래 전에 놓은 것 같은 돌계단을 따라 내려가 학암기점7Km지점’의 지곡(?)에서 잠시 쉬면서 가파른 봉우리를 오르내리느라 고생한 두 발을 물에 담가 피로를 풀었습니다. 바로 앞 외딴 집을 막 지나자 비록 흙길이지만 차가 다니는 넓은 길이 시작되어 이 길을 따라 걸었는데 한참 지나서야 사유지인 이 길이 임의로 임산물을 채취해 가는 것을 막고자 차량출입이 금지된 길임을 알았습니다. 고개를 넘어 이어지는 흙길을 걸으며 바로 아래 옥정호에 몸을 거의 다 담근 연두색의 버드나무(?)를 보자 주왕산의 주산지가 생각났습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 나오는 주산지가 계절을 달리하며 보여주는 영상이미지는 가히 일품이어서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16시18분 개 들이 시끄럽게 짖어대는 외딴 집 앞에서 흙길은 시멘트 길로 바뀌었습니다. 언덕 위로 이어지는 이 길 옆의 대나무 숲이 울창하고 푸르러 봄기운이 절로 느껴졌습니다. 시멘트 길은 언덕을 넘고 ‘옥정호마실길 20’의 표지목이 세워진 사거리를 지나서도 한참 동안 강가로 내려서지 못한 채 계속 산길로 이어졌습니다. 바로 길옆에 차를 세워놓고 포크레인으로 산의 흙을 퍼 담으면서도 지나가는 차량의 안전을 위해 마땅히 세워두어야 할 안내판이 보이지 않아 불법으로 산의 흙을 파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산길이 끝나고 묘지와 정자가 자리한 밖시앙골 삼거리에 도착한 시각은 17시2분이었습니다. 학암9.7km지점의 밖시앙골 삼거리를 출발해 강변길 718번 도로를 따라 북진하는 중 강변에 정박해 묶여 있는 두 배 소야호와 월양호를 보았는데, 선착장이 없는 것으로 보아 유람선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17시40분 사양삼거리에 이르러 ‘섬진강따라걷기 5구간’ 종주를 모두 마쳤습니다. 밖시앙골에서 10분 거리인 안시앙골에 이르러 이 마을을 들어갔다 나오는 농촌형버스를 만났습니다. 저 혼자라면 이 버스를 타고 관촌으로 가야하지만, 이번에는 친구가 차를 가지고 와 그냥 버스를 보냈습니다. ‘나주임씨장수공파세장산입구’ 삼거리에서 10분을 더 걸어 도착한 사양삼거리에서 섬진강 따라걷기를 마무리하고 임실택시를 불러 차를 두고 온 선거교로 향했습니다. 선거교에서 군포까지는 친구 차로 이동했습니다. 다행히 길이 막히지 않아 밤 10시 조금 넘어 군포의 당정역에 도착해 해산했습니다.
이번에 걸은 5구간은 전장이 약11km로 약7시간이 걸렸으니 시간 당 1.6Km 가량 걸은 셈입니다. 평지의 섬진강 강둑길을 걸을 때는 한 시간에 3Km 남짓 걸었는데 이번에는 그 반이 조금 넘는 1.6Km에 머무른 것은 꼭 길이 험해서만은 아닙니다. 산 아래 옥정호가 하도 매혹적이어서 사진을 많이 찍은 것도 속도가 거의 반으로 줄어드는데 한 몫 했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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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제법 험한 산길을 걸어 ‘섬진강 따라걷기’를 이어갔습니다. 댐만 막지 않았다면 강이 그다지 깊지 않고 강폭도 좁아 굳이 산에다 길을 내지 않고도 얼마든지 강을 따라 걸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산길을 따라 걷기가 힘들어 섬진강을 따라 걷는 분들 중에 선거교에서 쌍암리까지 차로 이동하는 분들도 더러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힘들다는 이유로 옥정호마실길을 건너뛰었다면 많이 후회했을 것입니다. 산 위에서 내려다 본 옥정호는 한 폭의 잘 그린 수채화였습니다. 옥정호는 그 수변에 이렇다 할 위락시설이 들어서지 않아 자연의 본래 모습이 잘 보존된 곳이기도 합니다. 몇 번을 더 추가하더라도 옥정호 둘레길을 다 걸어볼 생각입니다. 그리하면 옥정호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댐의 축조가 우리 생활에 미치는 순기능과 역기능도 함께 살펴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도 좋을 것입니다.
이번 섬진강따라걷기를 같이 해준 두 친구에 심심한 사의를 표합니다.
<걷기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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