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구간 : 원통버스터미널-만해마을-매바위인공폭포
*탐방일자 : 2021. 4. 14일(수)
*탐방구간 : 원통버스터미널-설악휴게소-설악산수-만해마을-매바위인공폭포
*탐방시간 : 9시3분-16시17분(7시간14분)
*동행 : 문산중 황홍기/황규직 동문
이번 평화누리길 탐방길에 들른 강원도인제군의 용대리는 황태덕장으로 이름 난 곳입니다. 내설악의 중심에 자리한 척박한 용대리에 사람들이 모여든 것은 황태덕장이 들어서면서부터라고 합니다. 황태는 갓 잡은 명태를 손질하여 겨울철 추운 날씨에 얼렸다 녹였다를 스무번 이상 반복하며 3개월 이상 자연 바람에 말린 것이고, 황태덕장은 명태를 말려서 황태를 만들기 위해 덕을 매어 놓은 곳을 이릅니다. 이우평님은 그의 저서 <<한국지형산책>>에 용대리의 황태덕장에 관한 주요 자료를 실었습니다. 명태를 말리는 황태덕장의 가장 중요한 입지조건은 추위와 바람, 일조량 등인데, 인제의 용대리는 평창의 대관령과 더불어 겨울철에 눈이 많고 바람이 강할 뿐만 아니라 안개가 거의 없어 황태를 말리기에 최적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평가가 지나치지 않다는 것은 용대리 덕장에서 해마다 약 1600만 마리의 황태가 생산, 출하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명태란 대구목대구과에 속하는 어류로, 몸이 가늘고 길며 체색이 등 쪽으로 연한 갈색을, 배 쪽으로 흰색을 띠고 있습니다. 명태는 한반도의 경상북도 이북의 동해안, 오호츠크해, 베링해, 북아메리카 서해안, 일본의 북쪽 연해 등 북태평양 연해에서 많이 잡히는 생선입니다. 최근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동해의 수온이 올라가 명태의 어획량이 급격히 감소했다고 합니다. 명태는 언 상태로 15-20일이 경과해야 하는데 요즘의 겨울철 추위는 사나흘 밖에 지속되지 않아 황태덕장도 옛날에 훨씬 못미친다고 합니다.
제가 명태에 주목하는 것은 상태에 따라 그 이름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것은 명태, 얼리지 않은 그대로의 명태는 생태이고, 얼린 것은 동태, 말린 것은 황태입니다. 황태보다 더 오래말린 것은 북어이고, 반쯤 말린 북어는 코다리, 새끼를 말린 것은 노가리라고 부릅니다. 황태 또한 건조 정도와 상태에 따라 이름이 다양한 바, 날이 추워 하얗게 된 것은 백태, 날이 너무 따뜻해 검게 된 것은 먹태, 몸통이 잘린 것은 파태, 머리가 없는 것은 무두태라고 부릅니다. 명태 요리도 이름만큼이나 다채롭습니다. 명태 알로 젓갈을 담근 것은 명란 젖입니다. 생태로 요리한 탕은 생태탕이고, 동태로 끓인 찌개는 동태찌개입니다. 북어로 국을 끓인 것은 북어국이며 황태로 찜을 만든 것은 황태찜입니다. 황태나 동태는 명태를 물리적으로 변환시킨 것이고 명란젖, 동태찌개, 북어국, 황태찜등은 명태를 가공해 요리한 것이고 보면, 우리 선조는 명태를 주원료로 한 요리 만들기에 능했던 같습니다.
따지고 보면 사람 호칭의 다양함도 명태와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처(妻)는 친정에 보내고, 자식들은 외갓집에 보낸 후 자기는 처갓집에 가면 한집에서 아내와 자식 등 가족들을 모두 만날 수 있는 것은 역할이 바뀌면 같은 사람이 남편이나 아버지로 달리 불리기 때문입니다. 명태가 국민생선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형태의 명태이든 이름에 걸 맞는 역할을 다해 어떤 요리를 하든 제 맛이 나서일 것입니다. 황태찜은 맛있는데 동태찌개는 맛이 별로라면 명태의 이름은 물론 요리도 단조로웠을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싶은 것은 아버지로서는 존경받을 만한데 남편으로서는 그렇지 못하다면 훌륭한 사람으로 평가받기가 어렵다는 것은 명태와 다를 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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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9시3분 원통버스터미널을 출발했습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첫 버스를 타고 1시간40분을 달려 8시10분경에 원통버스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인근 식당을 찾아가 조반을 든 후 평화누리길 탐방에 나섰습니다. 원통교차로에서 원통교를 건너자마자 왼쪽으로 꺾어 북천 둑길을 따라 21.9Km 떨어진 용대삼거리를 향해 북동쪽으로 진행했습니다. 제방을 환하게 밝힌 것은 기온이 낮아 뒤늦게 만개한 벚꽃이었습니다. 대관령 풍차의 반이 될까 말까한 소형풍력발전기가 설치된 것으로 보아 저희가 거슬러 올라가는 북천이 골바람의 통로인 듯싶습니다. 물이 가득 고인 시멘트 보(洑)에 이어 돌을 쌓아 만든 보를 지나자 자전거쉼터가 나타나 이 길이 자전거전용의 평화누리길로 조성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서울에서는 벌써 진 샛노란 개나리꽃이 만발해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이두원교를 건너 44번 국도 옆의 자전거도로로 들어서자 정면으로 설악산의 한 봉우리인 안산(?)의 늠름한 자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10시25분 설악휴게소를 지났습니다. 구 도로를 자전거전용도로로 만들어 평화누리길을 탐방하는 이들에는 더 할 수 없이 안전하고 평안한 길입니다. 이 길 또한 벚꽃이 활짝 피어 봄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접경권평화누리길 안내판을 보자 반갑고 제 길을 걷는다 싶어 마음이 놓였습니다. 천변의 설하관광농원에 들어선 CAFE KANUNE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쉬어가고 싶었지만 갈 길이 멀어 그냥 지나쳤습니다. 이내 다다른 설악휴게소도 그냥 지나쳐 오른 쪽으로 한계령 길이 갈리는 한계교차로에서 왼쪽으로 꺾어 북진했습니다. 이내 다다른 고원통교차로에서 46번 국도를 건넌 것은 구도로를 따라 걸어야 터널을 지나지 않고 진행할 수 있어서였습니다. 도로 보수공사가 몇 곳에서 진행되었지만, 설악산이 숨겨놓은 굽이진 북천을 바람 길로 삼아 휘돌아가는 골바람이 봄바람이다 싶었던 것은 이 바람이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 훈풍이어서입니다.
12시26분 설악산수에서 오후 탐방을 이어갔습니다. 도로공사로 길이 막혀 차들이 오가지 않는 구도로를 따라 걸으며 설악산이 공들여 빚어낸 북천의 연초록 물줄기를 완상했습니다. 평화누리길을 걸으며 만난 계곡 중 북천계곡이 으뜸이라 할 만한 것은 북천에 수로를 내준 설악산이 불러들인 곧추선 바위와 이 바위에 뿌리박은 노송들이 천변에 도열해 있어 마치 조선시대 화가 정선의 진경산수화를 보는 듯 했습니다. 이제는 가동이 멈춰진 설악산수 앞에서 점심 식사를 하느라 반시간 가까이 쉬었습니다. 설악산수를 출발해 쌍다리 쉼터를 지나자 얼마 후 용대터널을 빠져나온 46번국도가 보였습니다. 넓어진 북천 한 가운데 하중도에 자리한 미리내캠프장은 꽤 커보였습니다. 평화누리길은 46번 국도와 나란한 방향으로 이어지는 북천 둑길을 따라 걸으며 하천 건너 하중도에 자리한 미리내캠프에 눈길을 준 것은 파릇파릇 돋아난 나뭇잎들이 봄을 맞고 있어서였습니다. 한 여름에 여기 둑길에 조성한 ‘용대1리선녀마을다래길’을 지났다면 둑길 양옆에 심은 다래들이 터널을 이루어 볼만했을 텐데 철이 일러 다래넝쿨이 타고 올라갈 골조물만 보였습니다. 미리내캠프 북단의 십이선녀교를 건너 십이선녀탕 계곡입구를 둘러보자 반세기 전에 경동고교동문들과 함께 오른 기억들이 아련히 떠올랐습니다.
14시13분 만해마을 앞에 이르렀습니다. 십이선녀교를 되 건너 오른 쪽으로 이어지는 평화누리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천변의 송림을 지나 만해교를 건너자 만해마을이 보였습니다. 입구에 이르러 이 마을 밖에서 수려한 여러 건물들을 사진만 찍었을 뿐 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못했습니다. 만해마을을 거쳐 연 이어 있는 한국시집박물관 및 여초김응현서예관을 지나자 언제고 짬을 내어 다시 찾아와 세 곳을 찬찬히 둘러보아야겠다는 마음이 동했습니다.
2003년에 동국대에서 조성한 만해마을은 스님이자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이었던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 1879-1944) 선생의 불교사상과 높은 문학혼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건물입니다. 내설악의 넉넉하고 쾌적한 자연환경 속에서 몸과 마음을 편히 쉴 수 있는 휴식 공간으로 조성된 만해마을에는 만해문학박물관을 비롯해 문인의 집, 만해학교, 심우장, 서원보전 등이 들어서 있습니다. 만해마을은 그저 단순히 만해를 기리고자 조성한 마을이 아닙니다. 홈페이지에 실린 소개 글에 따르면 만해마을은 ”미래를 준비하는 특별한 공간“으로 조성된 마을입니다. 동국대학교가 ”인문교육을 바탕으로 만해가 염원한 인류 평화의 메시지를 널리 전파하고, 제4의 물결인 생명사회(Bio Society)를 준비하는 미래의 도량으로 만해마을을 새롭게 만들어 갈 것“임을 밝힌 것은 만해마을을 과거의 기억 공간에서 미래의 준비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의지의 천명으로 해석됩니다.
16시17분 매바위인공폭포에 도착해 29번째 평화누리길 탐방을 마쳤습니다. 한국시집박물관 및 여초김응현서예관을 지나 눈에 띈 야영장들은 코비드19의 영향 때문인지 텅 비어 있었습니다. 내가평교를 건너 다다른 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45년 전 집사람과 함께 걸었던 백담사로 가는 길이 나 있었습니다. 백담사 길을 버리고 북천을 따라 북진해 길옆 야산에 여러 기의 풍력발전기가 세워진 풍력발전단지(?)를 지나자 내방객의 방문을 환영하는 “황태마을” 아치문이 보였습니다. 덕장이 그대로 있는 남아 있는 곳도 있고 텅 빈 덕장도 눈에 띄었으며, 길옆에 황태보관창고, 냉동저온창고, 생산가공유통과 식당납품전문을 표방한 건물도 보였습니다. 덕장을 지나 다다른 매바위인공폭포 앞 광장(?)에는 황태판매장과 황태전문식당들이 들어서있어 과연 용대리는 황태의 명소로 불릴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황태전문식당을 들러 저녁식사를 함께 한 후 원통으로 이동해 동서울행 버스에 오르는 것으로 29번째 탐방을 마무리했습니다.
매바위인공폭포는 높이100m의 매바위에 인공으로 폭포를 조성한 용대리의 명소입니다. 여름철에는 시원한 물줄기의 폭포가 일품이고, 겨울에는 70m 높이의 빙폭이 생겨 빙벽타기의 도장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시원한 폭포수나 꽁꽁 얼어붙은 빙폭을 볼 수 있는 계절이 아니어서 매의 형상을 하고 있는 매바위만 사진을 찍었는데 바위가 하도 커서 전신을 카메라에 담느라 애좀 먹었습니다.
거대한 매바위와 마주한 백골병단전적비도 여느 전적비보다 커보였습니다. 1990년에 세워진 이 전적비는 한국 최초의 유격대로 창설된 640명의 백골병단 대원들이 6 . 25전쟁 때 설악산에서 적을 교란함으로써 아군 작전에 기여하는 전공을 세워 이들을 기리고 순국 산화한 장병의 명복을 빌고자 건립한 기념비입니다. 이 비의 건립취지문을 보고 당시 백골병단의 단장이 훗날 월남전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채명신 장군임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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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21일자 중앙일보에 "중앙시조백일장 4월수상작"으로 선정된 시조인 이종현 님의 「황태, 몸을 풀다」가 실려 있어 여기에 그 전문을 옮겨 놓습니다.
황태, 몸을 풀다
-이종현-
바닷속 기억들을 갑판 위에 부리고
비릿한 언어마저 얼음 속에 쟁였다
내설악 입적하던 날
눈꽃이 한창이다
파도에 몸살 앓던 흔적을 끌어안고
횡계리 들어설 때 사나워진 눈보라
속울음 덕장에 내걸고
묵언수행에 들다
실눈 뜬 봄바람에 산문 밖 훔쳐보다
고의춤 뒤적이며 잔 가득 목젖을 적신,
속 쓰린 사내를 만났다
콩나물에 몸을 풀다
황태도 콩나물에 몸을 풀기 전에 묵언수행에 들어간다는데 저는 별 생각 없이 이렇게 황태이야기를 풀어가도 좋은지 덕장에 막 들어온 명태에 물어보고자 합니다.
<탐방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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