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구간: 뜬봉샘-개정2사거리-노하교
*탐방일자: 2021. 6. 12일(토)
*탐방코스: 수분령휴게소-뜬봉샘-수분교-수분2교-개정2사거리
-구락교-노하교-장수터미널
*탐방시간: 13시40분-18시50분(5시간10분)
*동행 : 나 홀로

굽이굽이 흐르는 물결이 비단결과 같다 하여 이름 지어진 금강(錦江)은 전북 장수군장수읍의 신무산에서 발원하여 군산에서 서해로 흘러들어가는 강을 이릅니다. 신무산 동쪽 자락의 수분리 뜬봉샘에서 발원해 전북의 장수군-진안군-무주군, 충남의 금산군, 충북의 영동군-옥천군-보은군-청주시, 대전시, 세종시와 충남의 공주시-청양군-부여군-강경군, 전북의 익산시, 충남의 서천군을 거쳐 전북의 군산시에 이르러 서해로 유입(流入)되는 금강은 그 전장(全長)이 총 401Km에 달합니다. 압록강(803Km), 두만강(548Km), 낙동강(506Km), 한강(482Km), 대동강(450Km) 다음으로 긴 금강은 남북한을 통틀어서는 여섯 번째, 남한에서는 세 번째로 긴 강입니다.
금강을 에워싸고 있는 금강둘레산줄기는 충남서천군 장항의 왕대산에서 시작해 금강을 한 가운데 두고 빙 돌아 바다 건너 군산시의 장계산에서 끝나는 산줄기를 이릅니다. 이 둘레산줄기로 가름되는 금강의 유역면적은 약9.9천K㎡로, 압록강(64.7천K㎡), 한강(34.4천K㎡), 두만강(32.9천K㎡), 낙동강(23.7천K㎡), 대동강(20.2천K㎡) 다음으로 넓습니다.
금강둘레산줄기는 서해와 면한 장항의 왕대산에서 시작해 충남보령의 백월산에 이르는 금북기맥(약70Km), 백월산에서 경기 안성의 칠장산까지의 금북정맥(약154Km), 칠장산에서 충북보은의 속리산까지의 한남금북정맥(약150Km), 속리산에서 전북장수의 영취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약169Km), 영취산에서 전북진안의 조약봉에 이르는 금남호남정맥(약65Km), 조약봉에서 전북완주의 왕사봉에 이르는 금남정맥(약24Km), 왕사봉에서 군산시의 장계산에 이르는 금남기맥(약97Km) 등 7개 산줄기로 이루어졌으며, 그 전장은 약 729Km에 달합니다. 금강의 둘레산줄기중 아직 제가 걷지 못한 산줄기는 금북기맥과 금남기맥으로, 그 길이는 149Km 가량 됩니다. 이번에 큰 맘 먹고 나선 금강 따라 걷기를 모두 마치고나면, 두 산줄기를 마저 걸어볼 생각입니다.
금강을 따라 걷는 일이 이제껏 걸었던 섬진강이나 영산강보다 훨씬 힘들 것이라고는 진작부터 생각했습니다. 그 까닭은 첫째 유로길이가 401Km로 이미 탐방을 끝낸 섬진강(230Km)과 영산강(115Km)을 합한 것보다 몇 십Km 더 길고, 둘째 정비가 잘 된 자전거 길의 비중이 영산강이나 섬진강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으며, 셋째 몇 군데서는 발을 벗고 강을 건너야 할 만큼 여러 곳에서 제방길이 끊겨 있어서입니다. 맨발로 강을 건너는 것은 섬진강이나 영산강을 따라 걸으며 경험하지 못한 것으로 강물이 급작스레 불어 너무 세게 흐르거나 수온이 떨어져 너무 차가우면 건널 수가 없어 이런 곳을 지나는 것은 적지 아니 신경이 쓰이는 일입니다. 이래저래 발걸음이 늦어질 것이 자명해 금강을 완주하는데는 30회 가까이 걸릴 것 같습니다.
남한의 5대강 중 금강, 섬진강, 영산강 등 세 강의 발원지가 전라도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나머지 두 강인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는 모두 강원도 태백에 모여 있습니다. 이번에 따라 걷는 금강은 전북 장수의 뜬봉샘에서 발원해 북쪽으로 흐르다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군산 앞 서해바다로 흘러들어가고, 작년 6월에 탐방을 마친 섬진강은 전북 진안의 데미샘에서 발원해 광양 앞 남해바다를 만나 끝이 나며, 올 4월에 따라 걷기를 끝낸 영산강은 전남 담양의 용소에서 발원해 목포 앞 서해바다와 만남으로써 물 흐름이 끝납니다. 제가 이제껏 충청도의 강으로 인식해온 금강이 실은 전라북도에서 시작해 충청도를 경유한 후 전라북도에서 끝난다는 것은 이번 길 나섬을 준비하면서 비로소 알았습니다.
금강의 발원지인 뜬봉샘은 그 유래에 관해 여러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장수군에서 제작한 「금강 첫물-뜬봉샘 열린 관광지」 팜플렛에 실린 뜬봉샘 유래를 소개하고자 하는 것은 『장수군지』에 실린 이 이야기가 조선의 건국신화를 방불해서입니다.
“이성계가 나라를 얻기 위해서 산신으로부터 계시를 받으려고 신무산 중턱에 단을 쌓고 백일기도에 들어간 백 일째 새벽, 단에서 조금 떨어진 샘에서 피어 오른 무지개를 타고 오색찬란한 봉황이 너울너울 떠나간 하늘에서 ‘새나라를 열라’는 게시를 듣고 샘물로 제수를 준비하여 천제를 모셨다. 이후 봉황이 떠올랐다고 해서 샘의 이름을 ‘뜬봉샘’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반도에서 신화의 시대는 역사의 시대가 시작된 삼국의 건국과 더불어 끝났습니다. 고려나 조선에 관련된 건국신화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은 두 나라 모두 역사의 시대에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뜬봉샘 유래 설화의 진위를 가릴 뜻은 전혀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우리는 잠시나마 신화의 시대로 숨어들어갈 수 있다면 이 또한 흥겨운 시간 여행이 될 수 있다 싶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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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읍과 번암면을 가르는 수분령휴게소를 출발한 시각은 13시40분경입니다. 이 휴게소는 2008년 금남호남정맥을 종주할 때 잠시 쉬어간 곳이어서 첫 눈에 그때 그 휴게소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13시25분에 장수터미널을 출발하는 번암행 농촌행 버스를 타고 십여분 달려 다다른 수분령 휴게소 건너편에서 하차해 물뿌랭이 마을로 이름이 전해져 내려온 수분마을로 이동했습니다. 천주교의 오래된 공소가 남아 있는 수분마을 입구의 뜬봉샘생태공원안내센터는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신무산의 동쪽 산자락에 자리한 금강사랑물체험관을 들러 한번 휘 둘러보고 몇 종류의 안내전단을 가져왔습니다. 하지를 며칠 앞둔 6월의 한낮 태양이 뿜어내는 열기가 만만찮아 뜬봉샘생태공원탐방로를 따라 걸어 봉화대에 이르기까지 반시간 가량 걸었는데 어느새 땀이 등 뒤에 흥건히 배어 이제 여름 더위가 본격화되었음을 실감했습니다.
14시56분 발원지 뜬봉샘에서 금강 따라 걷기를 시작했습니다. 길가 정자 맞은편의 봉화대 앞에서 오른 쪽 산속에 낸 길을 따라 해발780m의 뜬봉샘으로 오르는 일은 경사가 완만하고다 그늘이 진데다 1대간9정맥을 종주하며 이맘때 자주 보았던 만개한 산딸나무 꽃을 만나 힘든 줄 몰랐습니다. 섬진강의 데미샘보다 샘터는 더 크지 않아보였는데 표지석이 엄청 큰 것은 금강이 섬진강보다 4백리 이상 더 긴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변이 잘 정비된 뜬봉샘에서 샘물을 떠 마신 후 물줄기를 따라낸 길을 걸어내려가 봉화대에 이르렀습니다. 뜬봉샘에서 흐르기 시작한 물줄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봉화대 앞에서 넓은 탐방로를 버리고 아직 공사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데크 길로 내려섰습니다. 조심해서 데크 길을 따라 내려가 수분리마을 어구에 이르러 왼쪽 금강사랑물체험관을 지나는 넓은 생태탐방로로 올라섰습니다.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 금강줄기 첫 번 째 다리인 수분교를 건넜습니다. 수분교를 건너 하천 우안의 축대를 쌓은 좁은 길을 따라가다 19번국도 바로 아래에서 왼쪽으로 확 꺾어 북쪽으로 흘러내려가는 금강을 따라 진행했습니다. 이내 무명교를 거쳐 대규모 비닐하우스를 지난 후 한동안 하천 좌안의 시멘트길을 따라 걸으면서 가지런히 이앙된 벼들이 쑥쑥 자라고 있는 길옆의 논을 사진 찍곤 했습니다.
14시56분 수분2교에 다다랐습니다. 무명교를 지나 다다른 수분2교에서 이 다리를 건너 길이 잘 나있는 19번도로를 따라 걸을까 하다가 그래도 천변 길을 이어가는 것이 옳겠다 싶어 좌안 길을 따라 7-8분 가량 걸어가자 산 중턱에 집 한 채가 나타나고 그 뒤로는 길이 끊어져 다시 수분2교로 돌아왔습니다. 자세히 살펴본 즉 다리 건너 우안 길로 이어갈 수 있겠다 싶어 이 길로 들어서 우안 길로 진행하다 이내 19번 도로로 올라선 것은 이 도로가 금강의 물 흐름과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이어져 얼마간 이 길을 따라 걸어도 무방하다 싶어서였습니다. 19번 도로와 금강 하천 사이에 사과농장 「수지농원」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필요시 물을 양수하기가 쉽고 고지대 산군이라는 좋은 입지 때문일 것입니다. 무주나 장수처럼 고지대산군에서 생산되는 사과는 일교차가 커 다른 곳의 사과보다 당도가 훨씬 높다고 합니다.
17시12분 개정2사거리에서 금강의 천변 길로 복귀했습니다. 19번 도로로 올라가 15분가량 북진해 공사로 어수선한 개정2사거리에 이르렀습니다. 19번 도로는 남원 쪽에서 합미성 아래 자고개를 넘어 여기 사거리를 지나는 13번 도로로 바뀌어 북쪽의 장수읍내로 똑바로 이어졌습니다. 13번 차도에서 벗어나 왼쪽 개정교로 다가간 것은 금강 우안의 천변 길을 걷고 싶어서였습니다. 금강 우안의 천변 길은 이내 끊어져 잠시 13번 도로를 따라 걷다가 다시 천변으로 다가가 저수지 개정제에서 흘러내려온 물이 금강에 합류되는 하용교를 지났습니다. 거목의 느티나무와 소나무 몇 그루가 모여 있는 평지의 숲을 사진 찍은 후 북진해 하평교를 지났습니다. 구락나무 쉼터를 지나 다다른 구락교를 건너 금강 좌안의 천변 길로 들어섰습니다 천변 길 왼쪽으로 넓게 펼쳐진 들판에 옮겨 심은 벼들은 어느새 크게 자라 논 뜰이 녹색의 벼들로 거의 다 덮였습니다. ‘2020년 어도 개보수사업‘으로 동사리, 피라미, 참종개 등 어류가 이동할 수 있도록 설치된 폭2.5m, 길이 24.6m의 도벽식 어도로 물이 흐르는 것은 바로 앞에 작은 보가 설치해서인데, 천변 길에서 10m 가량 떨어져 있어 물고기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18시31분 노하교에 이르러 금강의 첫 구간 따라 걷기를 마무리했습니다. 도벽식 어도를 지나 다다른 송정교에서 다리를 건너 직진하면 조선의 의로운 여인인 논개를 기리는 의암공원에 이르게 됩니다만, 시간이 여의치 못해 들르지 못했 습니다. 송정교에서 금강의 좌안 천변 길을 따라 직진하면서 느낀 것은 한 낮에 목덜미를 내리쬐는 태양도 저녁이 되자 그 기운이 쇠해져 햇볕이 그다지 따갑지 않다는 것입니다. 부지런히 걸어 다다른 봉강교에서 다리를 건너 우안 길로 들어섰습니다. 졸졸 흐르던 금강은 몇 곳에서 지천의 물을 받아들여 세를 키워서인지 봉강교에 이르자 수량(水量)이 제법 늘어나 제법 큰 물고기도 살 것 같았습니다. 봉강교에서 이번 탐방의 끝점인 노하교로 이동하는 중 한 아주머니를 만나 노하교에서 장수터미널로 가는 길을 물어 확인했습니다. 노하교에 이르러 오른 쪽으로 이어지는 차도를 따라가다 13번도로 아래 굴다리를 건너 장수읍내 시가지로 들어섰습니다. 10분 남짓 걸어 18시50분경 장수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장수터미널을 19시25분에 출발하는 대전행 막차를 타고 장계, 안성과 무주를 거쳐 대전복합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시각은 21시25분이었습니다. 바로 옆 고속버스터미널로 옮겨 21시40분에 출발한 서울 행 고속버스가 예정시간보다 20분 빠른 23시20분경 강남터미널에 도착해, 산본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습니다. 자정을 조금 넘겨 산본 집에 도착하고 나자 정확하게 작동하는 우리나라 대중교통에 신뢰와 감사의 마음이 절로 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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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지리학자인 이중환(李重煥, 1750-1768)은 저서 『택리지(擇里志)』에서 “물자를 옮기고 바꾸는 방법은 신농(神農) 성인이 만들었으며 이것이 없다면 재물이 생길 수 없다. 그러나 물자를 옮기는데 말이 수레보다 못하고, 수레는 배보다 못하다 (貿遷交易之道乃神農聖人之法也 無此則無以生財 然馬不如車車不如船 )”고 했습니다. 금강이 물자를 옮기는데 한 몫 단단히 했으리라는 것은 이중환의 언급이 없었다 하더라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금강에는 폭이 좁고 길이가 긴 강배와 폭이 넓고 견고한 바닷배가 운항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바닷배는 군산앞바다에서 강경포구까지 올라갔고, 강배는 강경포구에서 부강포구까지 다녔다고 합니다. 전상인/박양호 공편의 『강과 한국인의 삶』에 실린 변평섭/오석민의 글 「금강」에 따르면 1927년 현재 금강의 주요 포구는 금강 본류에는 군산, 강경, 공주, 부강 등 22곳에 있었으며, 지류에는 논산천의 논산, 길산천의 길산포가 있었습니다.
앞으로 금강을 따라 걸으며 눈여겨보고자 하는 것은 금강의 수운(水運)과 관련된 발자취입니다. 이런 발자취는 충청도에 이르러서야 만나볼 수 있는 것이어서 전라북도의 장수, 무주, 진안 땅을 지나는 동안은 금강이 빚어낸 승경(勝景)을 완상할 뜻입니다.
<탐방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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