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자: 2021. 8. 20일(금)
*소재지 : 경기 광주/성남
*산높이 : 문형산498m, 영장산413m
*산행코스: 오포초교후문-두리봉-문형산-강남300CC 필드옆 능선
-영장산-매자봉-이매역 2번출구
*산행시간: 9시45분-16시42분(6시간57분)
*동행 : 나홀로
문형(文衡)이란 원래 대제학의 별칭이지만, 모든 대제학이 문형의 칭호를 얻는 것은 아닙니다. 조선 초에는 예문관대제학과 성균관대사성을 겸임한 자를 일컬었고, 홍문관이 법제화된 뒤 예문관 · 홍문관의 대제학과 지성균관사(知成均館事)를 겸임한 자라야만 문형의 칭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1888년 이후에 필사된 것으로 보이는 『문형록(文衡錄)』에 실린 조선시대 문형은 총188명으로, 단겸문형(單兼文衡) 6명과 양관대제학(兩館大提學) 178명, 별천문형(別薦文衡) 4명이라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학식과 덕망이 높아야 오를 수 있는 그 자리에 두 번 오른 문형은 홍귀달(洪貴達) 등 22명, 세 번 오른 문형은 이덕형(李德馨) 등 9명이고, 네 번 오른 문형도 이식(李植) 등 6명이었다고 합니다.
칠십 평생에 관직이라고는 경기도의 공립 중·고등학교에서 5년 가까이 학생들을 가르친 교사 경력이 전부인 제가 설사 조선시대에 살았다고 해도 문형자리를 올려다본다는 것은 감히 꿈도 꾸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제 저는 이런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을 경기도 광주의 문형산(文衡山)을 오르는 것으로써 대신했습니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산을 오른 후 남긴 등산기록인 유산기 중에 문형산의 유산기가 한 편도 전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저처럼 문형의 자리에 못 오르는 아쉬움을 문형산을 오름으로써 풀어보고자 한 조선의 사대부들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쉽게도 광주의 문형산과 조선시대 문형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인터넷에서 관련 자료를 검색해보았으나, 컴퓨터 활용이 미숙해서인지 찾지를 못했습니다. 다만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경기도 광주지방이 한양에서 멀지 않고 물길이 닿는 곳이 많아 문형에 올랐던 조선의 명문사족이 문형산 자락 어딘가에 별서를 두고 세거지로 삼아 살았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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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8시경 산본 집을 나섰습니다. 군포우체국 앞에서 3500번 버스를 타고 가다 판교에서 하차해 인근 판교역으로 이동했습니다. 8시40분경 판본-여주간을 운행하는 전철인 경기중앙선에 탑승해 20분가량 달려 도착한 광주역에서 하차, 곧바로 70번 광주시내버스로 갈아타 오포초교 정류장에 다다른 시각이 9시30분 경이었으니, 산본 집에서 여기까지 시간 반이 걸린 셈입니다.
9시45분 오포초교후문을 출발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오른 쪽 언덕으로 10분 여 올라가 다다른 오포초교 후문에 도착했습니다. 바로 옆 풍경채 빌라에서 들머리를 찾아 북서쪽의 두리봉으로 이어지는 산길로 올라섰습니다. 경사가 완만하고 길이 그늘져 8월의 한낮인데도 그다지 덥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체력단련장, 송전탑과 묘지를 차례로 지나 두리봉에 오르는 동안 하늘소 등 곤충들이 갉아 먹은 상수리나무가지와 그 가지에 달린 초록색의 도토리들이 땅바닥에 떨어져 나뒹구는 것을 여러 곳에서 보았습니다. 두리봉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은 오포읍사무소로 내려가는 길이고 문형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동쪽으로 이어졌습니다. 누리봉에서 서진하며 고도를 조금 낮추었다가 다시 올라가 돌탑봉에 이르른 시각은 10시50분이었습니다.
11시33분 해발499m의 문형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돌탑봉에서 서쪽으로 진행해 오른쪽 아래로 고산리주차장으로 가는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 이르렀습니다. 삼거리에서 0.57Km 밖에 안 떨어진 정상으로 올라가는 데크 계단 길이 가팔라 이 길을 걸어 오르느라 땀을 많이 흘렸습니다. 바위아래 세워진 문형산의 정상석을 사진 찍고 나서 사방을 휘둘러보았습니다. 한강 건너 멀리로 가장 높이 보이는 희미한 봉우리는 그동안 열 번은 족히 올랐을 용문산이 틀림없을진대, 최근 십수년간 오르지 않아서인지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문형산의 정상을 출발해 서쪽으로 진행하다 이내 다다른 해맞이봉에서 오른쪽 아래로 내려가 시멘트로 포장된 넓은 길을 만났습니다. 잠시 넓은 길을 건너 따라 걷다 오른 쪽 산길로 들어서 영장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을 따라 걸어 아스팔트 포장도로로 내려섰다가 길 건너 산길로 다시 올라섰습니다. 오른쪽 아래에 자리한 강남300CC 골프장과 왼쪽으로 꽤 높은 곳까지 들어선 가옥들 사이로 나 있는 좁은 능선길은 골프장의 출입을 막고자 설치한 초록색울타리에 바짝 붙여 내, 한참 동안 이 길을 따라 오르느라 답답했습니다.
13시59분 해발414m의 영장산에 도착했습니다. 철조망 울타리를 따라 걸어 벤치가 세워진 전망지에 오르자 오른쪽 아래로 꽤 넓게 자리 잡은 강남300CC의 초록색의 골프장을 내려다보자 시야를 가리는 것이 없어 가슴이 탁 트이는 듯 했습니다. 조금 더 진행해 정자에 앉아 쉬는 한 분에 영장산으로 가는 길을 물어 북쪽으로 진행했습니다. 영장산 정상까지 남은 거리가 1.4Km에 불과해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영장산에 다다를 것 같았습니다. 해발358m의 응달평산에 오른 후 오른 쪽으로 방향을 틀어 지근거리의 영장산으로 향했습니다. 수 분후 도착한 해발414m의 영장산이 낯설지 않은 것은 2009년 한겨울에 한남검단지맥을 종주하느라 이 산을 오른 일이 있어서였습니다. 영장봉에 오르자 그날 문형산을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날씨가 너무 춥고 시간 여유가 없어 태재로 바로 내려간 일이 생생하게 기억났습니다. 10여분 정상에 머무르면서 땀을 식힌 후 이번 산행의 끝점인 이매역2번 출구를 향해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응달평산을 지나 그대로 서진해 내려가는 중 돌탑 꼭대기에 꽂혀 있는 태극기를 보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반시간 가까이 더 걸어 내려가 다다른 매자봉 전방 1.4Km 지점에서 마지막 사진을 찍은 것은 스마트폰의 바테리가 남아 있지 않아서였는데, 더 이상 사진을 찍지 못하는 것보다 더욱 문제가 된 것은 카카오맵을 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15시30분 경 해발 275m의 매자봉을 지난 것 같은데 스마트폰이 작동되지 않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매자봉1.4Km 전방지점을 지나자 얼마 안 있어 후드득 소낙비가 내려 우의를 꺼내 입고 산행을 했습니다. 영장봉을 오르는 몇 분들에 길을 물어 가다가 어느 지점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내려갔는데 그 지점이 매자봉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오포초교에서 영장봉까지는 대체로 오름 길이 더 길어 살짝 튕겨 나온 발톱이 문제되지 않았지만 계속 내려가는 하산 길에서는 발톱이 구두에 닿아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자연 하산속도가 늦어져 서둘러 올라가 벌어놓은 시간을 다 까먹었습니다.
16시42분 이매역 2번 출구에 도착해 7시간이 다 걸린 문형산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표지목을 세심히 보고 진행을 해 하산 중에 길을 잘못 든 일은 없었습니다만, 이매역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혹시라도 엉뚱한 길로 들어설까 불안했습니다. 작년 가을 고대산을 오른 후 10개월 만에 긴 시간 산행을 한 셈인데 아직은 제 몸이 산을 잘 읽어주는 덕분에 그다지 힘들지 않았습니다. 하루 이틀 지나야 다리 근육이 풀렸는지 여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만, 썩어도 준치라는데 1대간9정맥을 종주하면서 단련된 다리의 근육이 열 달 쉬었다고 풀리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7시간가량 걸리리라는 애당초의 계획이 들어맞아 더욱 그리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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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는 제게는 참으로 추억어린 곳입니다. 1974년 겨울 광주의 경안에 자리한 광주중학교의 과학교사로 발령 난 것이 제게는 더 할 수 없는 행운이었던바, 이 학교에서 미술교사로 봉직하는 집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집사람이 아들 둘을 낳아 올곧게 키운 덕분에 두 아들 모두 사회의 일원이 되어 맡은 바 소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두 아들이 제 때에 결혼해 손자를 낳은 덕분에 저는 무럭무럭 커가는 손자들을 지켜보는 기쁨을 한껏 누리고 있습니다. 이 또한 집사람이 아들 둘을 잘 키운 덕이라고 생각해 집사람에 마냥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오른 문형산은 광주의 오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1977년 경기도교육위원회에서 주최하는 과학전시회에 출품하고자 오포의 인삼밭에서 토양을 채취해 수소이온지수인 pH를 측정한 일이 있습니다. 이 실험 자료에 근거해 오포인삼밭의 토양적 특성을 연구한 결과를 전시회에 출품해 입선을 한 일도 생각났습니다. 그때 제 실험을 도와주었던 과학반원 중 한 명은 요즘도 연락을 해오곤 합니다.
21년전 집사람이 이 세상을 떠나 동행하지 못했지만, 어제 하루는 산행 내내 젊어 한 때 함께 빚어낸 아름다운 추억을 반추하느라 충분히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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