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I.지역 명산/지역명산 탐방기

E-19. 아미산 산행기(군위)

시인마뇽 2023. 5. 10. 23:28

산행일자: 2023. 4. 23()

산높이 : 아미산 737m, 무시봉 667m

소재지 : 경북 군위

산행코스: 아미산주차장-앵기랑바위-무시봉-아미산-밭미골삼거리-병풍암

-대곡지-아미산주차장

산행시간: 1032-1545(5시간13)

동행 : 17(대구팀 13, 서울팀 4)

(대구팀 차수근·박금선, 임상택, 박영홍, 기경환, 차성섭·나경숙, 박상훈·최미애,

정강재, 김신자, 김형득, 권재형, 서울팀 하이맛, 범솥말, 성봉현, 우명길)

 

 

  한국의  근대시사(近代詩史)에서 소월(素月) 김정식선생과 함께 서정시의 극치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받는 김영랑(金英郞,  1903~1950) 선생은 그의 시 모란이 피기 까지는에서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기둘리고 잇슬테요/ 찰란한 슬픔의 봄을이라고 끝맺었습니다. 김영랑 선생이 모란꽃이 지는 것을 보고나서 봄을 보냈다면, 저는 대구팀과 합동으로 춘계산행을 하는 것으로써 봄을 맞아 왔습니다.

 

  방송통신대학교의 국문과 선생님 한 분이 4계의 봄이 보다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고 말씀한 것이 기억납니다. 한동안 보이지 않던 것이 다시 보이기 시작하는 때가 바로 봄이라는 것입니다. 나뭇가지에서 새싹이 돋아나 보이기 시작하고 겨우 내내 동면에 들어갔던 개구리가 잠을 깨고 활동을 시작해 보이기 시작하는 등 봄이 되면 만물이 움직이기 시작해 다시 보인다는 것입니다. 열매가 열리는 계절인 여름은 열매의 우리말인 여름에서 비롯되었고, 수확한 것을 갈무리하는 계절인 가을은 갈무리의 에서 유래했음을 덧붙인다면, 봄이 보다‘‘에서 유래했다는 말씀이 과장된 것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대구로 내려가 참사랑산악회원과 함께 산을 오르내리는 것은 이번 아미산 산행이 17번째입니다. 2007년 봄에 시작한 대구-서울 팀의 합동산행이 오늘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반가운 이들과 함께 산행할 수 있다는 설렘에 더하여 남녘의 산들이 겨울동안 지켜낸 생명체들과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눌 수 있어서였습니다. 이 생명체들을 만나 봄으로써 비로소 저의 봄이 시작된다 싶어 4월 마지막 일요일의 합동 산행을 그토록 기다려왔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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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대구의 참사랑산악회원과 같이 오른 산은 경북군위군삼국유사면의 석천리에 자리한 아미산(峨嵋山)입니다. 아침 일찍 ktx로 광명역을 출발해 아침 8시 반경에 동대구역에 도착했습니다. 대구의 참사랑산악회원들과 인사를 나눈 후 아미산주차장으로 옮겨 산행채비를 했습니다.

 

  오전 1032분 아미산 주차장을 출발했습니다. 낙동강의 제1지류인 위천을 건너 기도처를 들른 후 가파른 길로 들어서 본격적으로 산 오름을 시작했습니다. 경사는 급했지만 위험한 바위 봉우리는 꼭대기까지 오르지 않고 우회할 수 있도록 길이 나 있고, 된비알 길에는 데크 계단이 설치되어 오를 만 했습니다.  2008년 10월 춘천의 용화산에서 추락사고를 당한 후 생긴 바위 길에 대한 트라우마를 아직도 떨쳐내지 못해 이번에도 송곳바위, 2, 애기랑바위와 4봉을 다 지날 때까지 긴장을 풀지 못했습니다. 겨우 사진 몇 장 찍었을 뿐 송곳바위나 애기랑바위처럼 이름난 바위를 중간쯤이라도 올라보겠다는 것은 감히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곧추선 바위에 뿌리박은 나무들의 푸르른 나뭇잎들을 바라보자 봄이 보다의 명사형인 에서 유래했다는 생각이 들어 제 몸에도 생기가 도는 것 같았습니다.

 

  122분 큰작사골삼거리를 지났습니다. 4봉과 5봉을 거쳐 관리가 거의 안 된 묘지를 지나 큰작사골삼거리에 이르자 주차장1.8Km/무시봉1.1Km’의 이정표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주차장을 출발한지 시간 반이 지났는데 1.8Km 밖에 못 걸은 것은 나이가 들면서 걸음이 점점 늦어져서입니다. 앞으로 점점 걸음이 늦어져 팀 전체에 누를 끼치게 되는 것이 분명할진데, 이렇게 동행하는 것도 길어야 3년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603m봉 안부에 먼저 와 기다리던 기고문님이 건네주는 맥주를 마셔 원기를 되찾았습니다. 돌탑위에 정상석을 세워놓은 해발 667m의 무시봉을 올라 기념사진을 찍은 후 아미산 정상이 멀지 않은 평평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 점심을 들었습니다. 떡집의 떡이나 빵집의 빵을 사갖고 와 대구 팀이 정성들여 준비해온 점심상에 올려놓기가 낯부끄러워 몇 해 전부터는 수저만 들고 빈손으로 왔습니다.

 

  1345분 해발737m의 아미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점심 식사를 끝내고 조금 걸어 올라가자 무시봉과 마찬가지로 돌탑 위에 한글 아미산과 한자 峨嵋山을 병기한 정상석이 보였습니다. 시야가 탁 트여 사방을 둘러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달리 나무들로 시야가 가려 정상석을 배경삼아 사진을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동행한 이교수는 이 산의 이름이 미인의 눈썹을 이르는 아미산(蛾眉山)이 아니고 우람하고 높은 산이라는 뜻을 갖는 아미산(峨嵋山)인 것을 못내 아쉬워하는 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이 산이 삼국유사와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미타불의 아미산(阿彌山)인줄 알았습니다. 이 산은 중국에서 한자가 들어오기 훨씬 전에 만들어진 것이어서 당연히 그 이름도 한자가 아닌 우리말로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구전으로 전해졌거나 이두로 표기되었을 이 산의 이름이 한자 이름으로 바뀐 것은 아무리 빨라도 신라의 경덕왕 때가 아닌가 합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했던 고구려와 백제를 통일한 신라가 통치를 위해 한자로 새로 지명을 지어 통일된 방식으로 표기토록 한 분이 신라의 35대 국왕인 경덕왕입니다. 그때 우람하고 높은 이 바위산을 보고 여인의 아름다운 눈썹을 연상해 아미산(蛾眉山)으로 이름을 정했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같은 이유로 불교가 들어오기 오래 전에 형성된 이 산의 이름을 아미산(阿彌山)으로 지었을 리도 없었을 것입니다. 우뚝 솟은 바위들이 즐비한 이 산을 보고 한자이름을 아미산(峨嵋山)으로 정했으리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아미산 정상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얼마 후 다다른 밭미골삼거리에서 다시 오른 쪽으로 하산하기 시작했습니다.

 

  154분 병풍암에 내려섰습니다. 밭미골삼거리에서 병풍암으로 내려가는 길은 생각보다 급경사여서 스틱이 없었다면 내려가기가 참으로 쉽지 않았겠다 싶었습니다. 자칫 발을 헛디디어 넘어지기라도 하면 낭패다 싶어 조심하고 또 조심해 내려가느라 사진을 찍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이런 정도의 된비알 길은 1대간9정맥을 종주할 때 수없이 오르내렸는데  두려워한다는 것은 이제 산을 그만 다니라는 산신령의 계시를 제 몸이 감지해서가 아닌가 합니다. 밭미골 삼거리에서 1시간 가까이 걸어 임도에 내려서고 나서야 비로소 안도했습니다. 임도를 잠깐 걸어 다다른 병풍암은 진짜 암자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작고 누추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흙벽에 슬레이트 지붕을 한 병풍암을 지나면서 인기척은 느끼지 못했지만 물통이 가지런히 있고 마당이 잘 정돈된 것으로 보아 빈집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1545분 아미산 주차장으로 돌아가 원점회귀산행을 끝마쳤습니다. 병풍암을 지나 나지막한 능선삼거리로 올라서자 이정표가 대곡지로 가는 길을 안내했습니다. 나무다리를 건너 얼마 후 다다른 대곡지 저수지는 규모가 작아 아담해보였습니다. 올라갈 때 들렀던 기도처를 거쳐 다리를 건너고 주차장에 이르러 아미산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주차장의 정자에 차려 놓은 저녁상을 함께하며 다시 한 번 대구팀과 서울팀의 우의를 다졌습니다. 이번 주연(酒筵)에서 가장 돋보인 것은 이교수님이 즉석에서 지은 자작시를 낭송한 것입니다. 우람하고 높은 아미산(峨嵋山)을 여인의 아름다운 눈썹을 뜻하는 아미산(蛾眉山)으로 바꿔놓고 조선의 의기(義妓) 논개(論介)를 불러낸 후 아미산 산행에 부쳐라는 시제(詩題)로 즉석에서 긴 시를 지어냈습니다. 34차에 걸친 합동산행에서 처음 창작된 이 시는 이교수님 개인의 소중한 작품이자 우리 모두가 같이 낭송할 만한 기념비적인 시라고 생각되어 여기에 적어놓습니다.

 

<아미산 산행에 부쳐>

 

군위의 아미산

여인의 눈썹처럼

아름다워라

 

일찍이 변영로 선생은

논개의 아리따운 눈썹에 서린

처연한 죽음을 노래했지

"아리땁던 그 아미(蛾眉)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맞추었네"

 

오늘 논개의 기상 맛보며

대구와 서울의 산 친구들

군위의 아미산에

입 맞추었네

 

되살아 나거라

논개의 정신아

지금 마침

부활의 달이러니

금수강산 답사하는

우리 가슴속에서

다시 한 번 울려다오

 

초입의 바윗길 험했지만은

푹신한 육산길 비단길일세

정상에 다다르니

걸음은 무거워도 맘은 가볍다

 

지천으로 핀 철쭉은

수로부인께 꺾어 바친

노인의 그 꽃이던가

(삼국유사를 소환한다)

 

여인은 우아하고

남정네는 튼실한데

술은 달고

안주는 입에 붙는다

오늘의 천국 아미산 만세

 

10여년 지나며

같이 산을 오르내리니

인연은 더 깊어지고

헤어짐은 더 힘들다

 

윗녘 아랫녘 금수강산을

끝 날까지 함께 찾으리니

뜨겁게 이 산하를 노래하세나

어제와 오늘 같이

내일마저도

 

"! 강낭콩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논개의 정신아

우리 마음을

짙게 더 붉게 물들여다오

 

주차장에 차려진

최후의 술상은

빛과 사랑의

만찬인데

정깊은 시바스 리갈 한 병

취기를 더하네

 

그 마지막

물결 잔잔한

더 큰 강 건너갈 때는

산에서 맺은 우정 떠올리며

웃으며 갈 수 있으리

빛과 사랑에 한껏 싸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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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 삼국유사면이 있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삼국유사와 인연이 깊은 곳이 어디 여기뿐이겠는가 만은, 경북 군위군에서 선점을 해 다른 시군에서는 삼국유사면이라는 지명을 쓰기 힘들 것 같습니다. 이렇듯 이름을 선점해 관광효과를 보는 곳이 더 있으니, 강원도 영월군의 한반도면이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하천은 골짜기사이를 뱀처럼 굽이굽이 흐르는 감입곡류(嵌入曲流, 일명 사행천)가 흔한 편이어서 한반도를 닮은 지형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강원도 영월군에서 옛날에 남면인 것을 2009년에 한반도면이라는 이름을 먼저 써 다른 지자체에서는 이 이름을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군위군이 2021년에 고로면을 삼국유사면으로 개명한 것은 삼국유사의 저자인 일연스님이 입적한 곳이 여기 군위군의 인각사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기로 따지면 삼국유사를 집필하기 시작한 운문사가 자리한 청도군이나 삼국유사와 관련이 있는 여러 지자체에서 삼국유사면으로 이름을 바꾸겠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기왕에 군위군에서 삼국유사면이라는 이름을 선점한 만큼, 일연스님이나 삼국유사를 널리 홍보하는 것은 물론 삼국사기도 같이 알렸으면 합니다. 주위를 돌아보면 삼국사기는 저자 김부식이 친중 사대주의자라는 이유로, 삼국유사는 불교이야기가 주이고 정사(正史)가 아니라면서 읽지 않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비록 고려 때 저술된 것이지만 삼국의 역사나 정치, 사회 문화상을 알려주는 저서는 삼국사기삼국유사가 가장 오래된 책이 아닌가 합니다. 이제껏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 두 책을 외면해온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에서 사족을 달았습니다.

 

  이번 아미산 산행을 주선하고 준비한 대구 참사랑산악회의 차회장님과 임대장님 등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는 인사말씀을 올립니다. 고맙습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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