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강줄기 따라걷기/문산천 따라 걷기

비암천 따라 걷기 (문산천 제1지류)

시인마뇽 2021. 10. 4. 09:46

*탐방구간: 삼현교차로-의마총-문산천합류점

*탐방일자: 2021. 9. 21()

*탐방코스: 삼현교차로-발랑저수지-백경수-도마산초교-문산천합류점-방축사거리

*탐방시간: 128-1554(3시간46)

*동행      : 나 홀로

 

 

 

  이번에 걸은 비암천은 문산천의 제1지류이자, 임진강의 제2지류이며, 한강의 제3지류입니다. 제가 이 하천을 걸어보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제 고향 집 앞을 흐르는 하천이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 매년 여름 큰 비가 내리면 학교에 가느라 위험을 무릅쓰고 건넌 개천이 바로 비암천입니다.

 

  비암천은 경기도 양주에 위치한 해발401m의 노고산 남쪽 아래 점말에서 발원해 파주의 방축리에서 문산천에 합류되는 전장이 10Km(?) 안팎의 그리 길지 않은 지방하천입니다. 이 하천의 발원지인 노고산을 처음 가본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인 1960년 봄으로 이 산에서 흑연이 난다고 해서 급우들 몇 명과 함께 흑연을 캐러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캐온 것이 흑연이 아니고 석탄이라는 것을 안 것은 두 해 후 중학교를 다니면서 파주의 금촌역에 야적된 삭탄을 보고나서였습니다. 그 후 한북감악지맥을 종주하느라 이 산 정상을 두 번 오른 일은 있습니다만, 비암천의 발원지를 찾아 나선 적은 없었습니다.

 

  추석을 맞아 경기도 파주 광탄의 형님댁으로 차례를 지내러 내려간 김에 조카에 태워달라고 부탁해 비암천의 발원지가까이로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광탄면 창만4리의 형님댁을 출발한지 십 수분이 지나 3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양주군 광적면의 삼현교차로에 도착했습니다. 바로 아래 삼현1교를 건너 북쪽 산속 마을로 1Km 남짓 들어가야 노고산 남사면에 자리한 발원지에 이를 수 있는데, 길 상태가 어떤지 몰라 이곳에서 하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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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8분 삼현교차로에서 비암천을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곳까지 차를 태워 준 조카는 집으로 되돌아가고 혼자 남아 삼현1교와 노고산을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3번지방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습니다. 승태목장과 검은돌 버스정류장을 차례로 지나 도로변의 간이쉼터에서 잠시 쉬어 갔습니다. 쉼터에서 내려다본 본 비암천은 아직은 상류이어서인지 하천 폭이 좁고 그나마 잡풀이 무성해 물 흐름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도로변에 화사하게 피어 있는 연분홍 코스모스를 사진 찍은 후 걷기를 이어가 비암교차로에 도착한 시각은 1257분이었습니다. 비암교차로에서 해유령전첩지로 가는 길은 왼쪽으로 갈리고, 비암천을 따라 낸 길은 오른쪽으로 갈렸습니다.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360번도로를 따라 진행하면서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잘 자란 벼들이 가득히 들어선 논 뜰을 바라보노라니, 성큼성큼 다가오는 가을이 절로 감지되었습니다.

 

  1342분 비암2리 삼거리에 이르렀습니다. 비암교차로에서 비암4교와 비암3교를 차례로 지나 20분가량 걸어가자 외관이 새까맣고 선이 심플한 건물이 눈을 끌었습니다. 단조로우면서도 모던해 보이는 이 건물이 무슨 용도로 지어졌는지 궁금해 다가가 확인해본즉, 저로서는 처음 보는 반려동물장례식장이었습니다. 주위를 돌아본 후 3m를 더 가서 만난 삼거리에서 쇠장이마을로 가는 왼쪽 길을 버리고 그대로 직진해 비암2교를 건넜습니다. 바로 앞 대전차장애물을 지나 오른쪽으로 법원읍으로 가는 367번 도로가 갈리는 비암2리 삼거리에 이르렀는데, 이 삼거리에 비암장수마을 건준바위의 높다란 표지석이 세워진 것으로 보아 여기 비암2리가 비암장수마을인 것 같습니다. 비암2리 삼거리에서 서쪽으로 얼마 안걸어 파주시 광탄면의 발랑저수지에 이르게 되는데 이 저수지가 비암천의 물을 가두어 저장해주는 덕분에 건답이던 고향 전답이 수리답으로 바뀌었습니다.

 

  잠시 저수지 둑길을 걸으면서 1998년 구정 때 집사람과 함께 이 저수지를 둘렀던 일을 떠올렸습니다. 두 아들도 함께 들러 꽁꽁 얼어붙은 저수지 안으로 들어가 세 모자를 함께 사진 찍었는데, 그 사진이 두 아들과 찍은 마지막 사진이 된 것은 집사람이 암에 걸려 투병생활을 하다가 두 해후인 20003월에 이 세상과 작별해서입니다.

 

  1446분 백경수 가게에서 음료수를 사들면서 잠시 쉬었습니다. 10Km 내외의 비암천에서 풍광이 가장 빼어난 발랑저수지를 지나서부터 백경수까지는 비암천에서 벗어나 나지막한 고개를 넘어야 했습니다. 고개에 이르기 전 오른 쪽으로 보이는 묘지는 그 규모가 하도 커 마치 작은 왕릉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어느 분의 묘지인지 확인이 안 되는 넓은 묘역을 지나 조금 오르자 오른 쪽으로 앞에서 본 묘역보다 조금 규모가 작은 연안이씨청련공파추모공원의 묘역이 보였습니다. 청련 선생을 기리는 사당인 청련사(靑蓮祠)가 들어선 묘역에는 충의공 이유길(李有吉, 1576-1619)장군의 가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묘역에 제가 찾던 의마총(義馬塚)이 함께 있어 무척 반가웠습니다. 때마침 성묘를 하러 온 장군의 직계후손 한 분을 만나, 장군의 충정을 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1618년 평안도의 영유 현령 이유길은 명의 조선군 파병요청에 따라 후금군과의 전투에 참전합니다. 1619년 후금군의 공략이 강화되면서 명의 군사는 거의 전멸되고, 파병된 조선군도 위급한 상황에 처합니다. 후금에 투항을 거부한 우영장 이유길 장군은 죽음이 멀지 않았음을 직감하고 입고 있던 한삼 소매를 찢어 三月四日死(삼월사일사)’라고 글을 써서 장군이 타고 다닌 말의 갈기에 매달아 고향으로 보냅니다. 밤낮으로 사흘을 달려 장군의 고향집에 도착한 말은 한삼을 전한 후 숨을 거둡니다. 말은 그 시신이 있어 여기 파주시광탄면 발랑리183번지의 야산에 묻을 수 있었지만, 시신을 거두지 못한 장군은 가묘로 조성됩니다. 1621년 광해군은 이유길장군을 병조참판으로 추서하고, 말이 묻힌 무덤은 의마총((義馬塚)으로 불리게 됩니다.

 

  고개를 넘어 건넌 다리는 발랑교이고, 그 왼쪽 물가가 백경수유원지로 어렸을 때 몇 번 놀러 간 적이 있습니다. 다리 건너 영광상회가게에서 시원한 캔 커피를 사든 후 360번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진행했습니다. 오른쪽 서원벨리CC로 들어가는 바랑교에 이르자 도마산초교 뒤편에 우뚝 솟은 해발 293m의 금병산이 아주 가깝게 보였습니다.

 

  1554분 방축사거리에서 비암천따라 걷기를 모두 마쳤습니다. 바랑교를 지나 형님댁으로 길이 갈리는 도마산교에 이르렀습니다. 이 다리가 놓이기까지는 장마철이면 위험을 무릅쓰고 비암천을 건너야 학교에 갈 수 있었습니다.

 

  도마산교 다리를 건너 얼마 떨어지지 않은 도마산초교를 들렀습니다. 제가 꼭 60년 전에 졸업한 이 학교는 고맙게도 심상정의원의 조부께서 땅을 기부하시고, 미해병대가 건물을 지어주어 1955년에 개교했습니다. 이후 5년간 신산국민학교의 도마산분교였다가 1960년 도마산국민학교로 승격되어 2회로 졸업했습니다. 34명의 졸업생 중 중학교에 진학한 동창은 5명에 불과했을 정도로 집안이 가난했지만, 저희 동창들은 열심히 일해 자식들을 거의 다 대학을 졸업시켰기에 요즘도 동창회에서 만나면 뉘나 할 것 없이 자식 자랑에 열을 올리곤 합니다. 60년 전의 학교건물은 모두 개축되었지만, 여전히 학생수가 적어 도시의 초등학교에 비하면 그 규모가 비할 수 없이 작습니다. 6년간의 추억이 깃든 정감어린 학교를 사진 찍고 난 후 다시 도마산교로 돌아가 벽초지문화수목원 뒤편의 천변 둑길로 들어섰습니다.

 

  도마산초교에서 길 건너에 자리한 이 수목원은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천변의 참나무 숲이었던 곳으로 매일 이 옆을 지나야 했습니다. 동네 친구와 함께 학교를 빠지고 이 숲에서 놀다가 아버지한테 들켜 크게 꾸지람을 들었던 추억의 숲이 졸업 후 양돈장으로 바뀌었다가 1990년에 오늘의 벽초지문화수목원으로 변신하여 이제는 가족들이 함께 나들이하기에 최고의 적지 중 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아직도 가보지 못했지만, 코로나19가 풀리면 명절에 성묘하러 갈 때에 짬을 내어 손자들과 함께 들러볼 생각입니다.

 

  비암천 북쪽 천변 둑길은 벽초지문화수목원과는 바로 붙어 있어 길이 잘 나있고, 수목원의 울타리를 이루고 있는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주어 걷기에 딱 좋았습니다. 개천 건너 형님댁과 오전에 들렀던 선영이 자리한 먼발치의 선산을 사진 찍고 나자, 겨울방학 때면 나무를 하러 지게를 지고 이 산을 오르내렸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벽초수목원 뒤 둑길을 따라 걸어 지난 낚시터는 비암천의 물을 끌어들여 만든 곳으로, 낚시를 즐기는 많은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낚시터가 끝나는 곳에서 조금 더 내려가 마장리 쪽에서 흘러내려오는 문산천과의 합수점에 이르렀습니다. 잡풀로 개천이 뒤덮여 합수점을 정확히 가리기는 난감했지만, 어림해서 사진을 찍는 것으로 비암천 따라 걷기를 끝맺었습니다.

 

시골 형님이 차를 가지고 와 방축사거리의 만장교에서 기다린다는 전화를 받고 비암천변 둑길을 이어가는 문산천변 둑길을 따라 10분가량 더 걸었습니다. 그 아래 작은 보가 설치된 만장교에 이르자 물이 많아져 답답함을 덜 수 있었습니다. 대기 중인 형님 차로 광탄으로 나가, 버스로 금촌역으로 가서 전철에 오르는 것으로써 비암천 따라 걷기의 여정을 마무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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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암 말기의 시골형님이 동생의 귀가 길을 편하게 해주려고 제가 걷기를 마치는 만장교 인근에 차를 대고 반시간 넘게 기다려 주어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최근 5년 동안 큰누님, 작은누님, 작은매형, 큰형수님, 작은형수님 등 다섯 분이 유명을 달리해 이제는 이 형님과 저만 남아 있습니다. 저는 아직 건강하지만, 시골에서 줄곧 농사일을 해온 형님은 건강이 그리 좋지 않아 걱정입니다. 살아 있는 날이라도 자주 만나야 한다 싶지만, 뒤늦게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하고 있음을 핑계대면서 그리하지 않았습니다. 몸이 아프면 사람이 더욱 그리운 법인데 앞으로는 종종 찾아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탐방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