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강줄기 따라걷기/문산천 따라 걷기

갈곡천 따라 걷기1(문산천제1지류)

시인마뇽 2023. 11. 3. 23:00

 

탐방구간: 미화레미콘-칠울교차로-애룡교

탐방일자: 2023. 11. 2()

탐방코스: 미화레미콘-갈곡리성당-갈곡리중간말정류장-칠울교차로-법원119안전센터-대능교

                -삼마군인아파트정류장-가야1-호명교-애룡교-연풍리정류장

탐방시간: 1350-1659(3시간9)

동행       : 나 홀로

 

 

  갈곡천이란 경기도파주시법원읍에 소재한 노고산(401m)의 서쪽 골짜기에서 발원해 파주읍 봉암리에서 문산천에 합류되는 지방하천을 이릅니다. 노고산에서 발원해 법원리를 동서로 관통한 다음 애룡저수지의 물을 받아 세를 불린 후 용주골과 주내를 지나 봉암리에서 문산천에 합류되기까지 갈곡천이 흐르는 유로길이는 20Km가량 됩니다.

 

  제가 갈곡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갈곡천이 고향 땅을 흐르는 하천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제 고향 파주 땅을 흐르는 대표적인 하천으로는 한강의 제1지류인 공릉천과 임진강의 제1지류인 문산천을 들 수 있습니다. 이번에 걸은 갈곡천은 문산천으로 흘러들어가는 문산천의 제1지류이자, 임진강의 제2지류이고, 동시에 한강의 제3지류입니다. 문산천으로 유입되는 문산천의 제1지류는 갈곡천 외에도 더 있는바, 제 고향의 집 앞을 흐르는 비암천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문산천은 3년전에, 비암천은 2년 전에 탐방한바 있습니다.

 

  제가 갈곡천을 따라 걸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이 하천이 추억어린 법원읍을 동서로 관통해 흘러서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법원리는 5일장이 섰던 파주시천현면의 면소재지였습니다. 제가 6살 때 부모님의 손을 잡고 장 구경하러 갔던 것은 70년 전인 1953년의 일입니다. 부모님을 따라 나선 첫 번째 나들이인 법원리 장구경은 지금도 어렴풋하게나마 생각이 납니다.

 

  지난 추석 때 고향의 형님댁에서 차례를 지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갈곡천 전체의 중간쯤 되는 연풍리의 애룡교를 들러, 이 다리에서 갈곡천을 따라 문산천과의 합류점까지 걸은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폐암으로 고생하시는 형님을 뵈러 가는 길에 갈곡천의 남은 구간을 마저 걸으려고 발원지로 향했습니다.

 

....................................................................................................................................

 

  산본집을 출발해 파주역까지 전철로 이동했습니다. 파주역에서 600번 버스를 타고 가다 법원리 시내에서 하차해 점심을 든 후 택시를 잡아타고 갈곡천의 발원지와 가장 가까운  미화레미콘파주공장으로 향했습니다.

 

  1350분 미화레미콘을 출발해 갈곡천 따라 걷기시작했습니다. 연이어 레미콘 차들이 오가는 차도를 따라 북서쪽으로 5-6m 가량 내려가다 점말교차로에서 왼쪽으로 꺾어 화합로로 접어들자 비로소 갈곡천의 물 흐름이 보였습니다. 갈곡천을 따라 10분가량 걷다가 2007년 한북감악금병단맥 종주시에 지났던 갈곡리성당을 들렀습니다.

 

  갈곡리성당은 1955년에 지어진 석조건물로 2020년에 보강공사를 해서인지 2007년에 들렀을 때보다 한결 깔끔해 보였습니다. 19세기 후반 박해를 피해 현재의 갈곡리인 칠울지역으로 옮겨와 정착한 천주교인들이 옹기그릇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면서 세운성당이 여기 칠울공소라고 합니다. 1955년 군종신부인 김창석신부와 에드워드신부가 군부대의 도움을 받아 의정부주교성당과 동일한 모습으로 한국전쟁으로 소실된 칠울공소를 다시 지은 것이 오늘의 갈곡리성당입니다. 외모가 단아한 이 성당의 문이 굳게 잠겨 있는 것은 이 성당이 주임신부가 상주하지 않고 순회하는 공소이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갈곡리성당 앞 다리인 개철교를 건너 다시 화합로를 따라 걸었습니다. 한참 후 갈곡2교를 건너며 내려다 본 갈곡천은 그새 유량이 조금 늘어난 것 같았습니다.

 

  1453분 칠울교차로를 지났습니다. 갈곡2교를 건너 SK주유소를 지나며 바라본 갈곡천 건너 야산의 적갈색 단풍이 SK주유소의 황색 및 적색의 로고와 잘 어울려 보였습니다. 왼쪽으로 파주CC길이 갈리는 삼거리를 지나 갈곡교를 건너며 다시 본 갈곡천의 물은 조금 전 지나온 갈곡2교 아래 갈곡천보다 조금 늘어나 보였습니다. 갈곡교를 건너 칠울교차로에 다다르자 어렸을 때 동네 어르신들한테서 칠울이라는 지명을 들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칡이 많은 골짜기라 하여 불린다는 칠울의 법정리명이 바로 갈곡리입니다. 높은골, 감나무골, 너븐여울 등의 한글지명이 한자명으로 바뀐 것은 일제 때 토지조사를 마치고 한문으로 토지대장을 만들면서부터가 아닌가 싶습니다만,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S-Oil의 흥안LPG충전소를 거쳐 오른쪽으로 적성과 문산으로 가는 사임당길이 갈리는 로타리를 지나 갈곡천의 우안길을 따라 걷다가 나무 벤치가 보여 쉬어갔습니다.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신 후 길 건너 법원119안전센터를 보다가 119대원들에 감사하는 마음이 일어 센터건물을 사진 찍어왔습니다.

 

  1539분 은빛사랑채 아파트 앞의 대능교에 이르렀습니다. 잠시 쉬면서  원기를 회복한 후 다시 갈곡천의 우안길을 따라 걷다 갈곡천을 지나는 다리를 건너 GS칼텍스주유소 건너편에 이른 후 오른쪽 갈곡천좌안길로 들어섰습니다. 7-8분을 걸어 다다른 대능교 앞에서 길을 건너 솔이홀로를 따라 걷다가 삼마군인아파트정류장을 막 지나 다시 갈곡천 좌안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여기서부터 약2Km 거리는 차가 별로 다니지 않는 천변길이어서 모처럼 마음 편히 걸을 수 있었습니다. 천변길을 걷는 저만 평안한 것이 아니고 하천에서 노니는 백로 또한 느긋해 보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시멘트 길위에 사뿐히 내려앉은 잠자리도 지나가는 제가 두렵지 않은 듯 다시 날기 시작해 저를 인도했습니다. 가야교를 지나자 머리가 새하얘진 갈대들이 미풍에도 너울너울 춤을 추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법원실내게이트볼장 앞을 돌아 수확이 끝난 논배미를 보자 바로 아래 보를 가득 채워 잔잔하게 물결이 이는 갈곡천과 대비된다 싶었습니다.

 

  1641분 애월교에 다다라 갈곡천의 첫 구간 탐방을 마쳤습니다. 호젓한 갈곡천 좌안 길은 호명교 앞에서 끝났습니다. 호명교를 건너 애룡저수지입구 정류장 앞에서 왼쪽으로 꺾어 애룡교 앞에 다다랐습니다. 한 달여 전 들렀던 애룡교를 건너 갈곡천의 첫 구간탐방을 마쳤습니다. 상류를 걸은 이번 갈곡천 탐방은 수량이 많지 않아 하천탐방의 맛이 조금 덜했습니다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고향의 산천을 두루 돌아보기가 쉽지 않겠다 싶어 규모가 작은 고향의 하천을 따라 걷는 일을 계속 이어가고자 합니다.

 

  애월교를 건너 대추벌과 용주골을 이어주는 연풍교까지 갈곡천 좌안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연풍교를 건너 버스를 타고 광탄까지 가서 택시로 창만4리의 형님댁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하루 걷기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

 

 

  법원리 하면 생각나는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영국의 작가 서머세트 모옴이 남긴 자전적 소설 인간의 멍에에 여주인공으로 나오는 밀드레드입니다. 서메셋트 모옴은 이 소설에서 돈은 제6감이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이 명언의 참 뜻은 돈이 없으면 인간의 5감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므로 고우나 미우나 돈을 제6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밀드레드는 돈을 제6감으로 생각해 돈을 쫓아 살아간 여인입니다. 다리를 저는 남자 주인공 필립은 밀드레드에 철저히 농락당한 후 세태에 물들지 않은 농장 처녀 셀리와 결혼해 잘살아갑니다.

 

  소설 속의 밀드레드는 영국에서 살았지만, 추억 속의 밀드레드는 1971년 서울의 한 다방에서 일했습니다. 1971년 이 여인을 처음 보고 고교동창들 몇이서 밀드레드라고 부르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 여인 밀드레드가 서울에서 옮겨 간 것이 바로 법원리의 한 다방이었습니다. 겨울방학 때 파주 광탄의 제집으로 놀러온 친구들과 함께 법원리로 가서 이여인 밀드레드를 한두 번 만난 것이 전부입니다만, 법원리를 지날 때마다 밀드레드여인이 생각나는 것은 대학시절 철 없던 때의 추억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탐방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