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구간: 심천역-이원대교-적하삼거리
*탐방일자: 2022. 1. 27일(목)
*탐방코스: 심천역-날근이다리-장동리-백지리-이원대교-구룡리
-충남학생수련원옥천분원-이원삼거리-적하삼거리
*탐방시간: 9시56분-16시3분(6시간7분)
*동행 : 나 홀로
요즘 강줄기를 따라 걷느라 기차여행이 부쩍 늘었습니다. 섬진강은 전라선을, 영산강은 호남선을, 그리고 요즘 걷고 있는 금강은 주로 경부선을 이용해 다녀오곤 했습니다. 제가 기차여행을 하며 눈여겨보는 것은 차창 밖의 풍경만이 아닙니다. 강가로 다가가기 위해 내리는 시골의 간이역에 눈길이 가는 것은 어렸을 때 보았던 고향의 기차역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입니다.
이번에 하차한 충북 영동의 심천역(深川驛)은 "옛 추억이 머무는 역"으로, 역사(驛舍)는 비록 작지만 역사(歷史)는 오래 되었습니다. 1905년에 영업을 개시한 이 역이 오늘의 자리에 역사(驛舍)를 지은 것은 영업개시 29년 후인 1934년이고, 역사(驛舍)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건축 후 64년이 지난 2006년의 일입니다. 이 역은 서울-부산을 오가는 경부선 열차는 그냥 통과하고, 대전-동대구를 오가는 무궁화호만이 하루에 상행 4회, 하행 5회 등 총 9회 운행되고 있습니다.
지난번에는 캄캄한 밤에 도착해 주변을 돌아보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아침 시간에 도착해 심천역의 역사와 역전, 그리고 심천시가지(?)를 둘러보았습니다. 기차에서 내려 영동 쪽으로 내달리는 기차와 두 선이 쭉 뻗어 나가는 철로, 그리고 깔끔하고 단출한 역사(驛舍)를 사진 찍은 후 이 역을 빠져나갔습니다. 역전 광장 왼쪽 끝에 잘 조림된 녹색의 대나무 숲이 자리한 덕분에 한 겨울의 심천역 광장(?)이 썰렁하지 않고 싱그러울 수 있었습니다. 대개의 역들은 외관이 날렵한 현대식 건물로 바뀌어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데, 심천역은 원래의 모습이 잘 유지되어 정감 어린 아날로그 시대의 옛 정취를 온전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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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역을 출발해 부산으로 가는 경부선 열차는 간이역(?) 규모의 심천역에서는 정차하지 않아 옥천역에서 내렸습니다. 이 역에서 10분 남짓 기다렸다가 동대구행 기차에 올라 심천역에서 하차한 시각이 9시53분이었습니다. 아담하고 조촐한 심천역사를 통과해 지난 번 밤에 도착해 찍지 못한 심천역사를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아침9시56분 심천역을 출발했습니다. 역 광장에서 오른 쪽으로 이어지는 시가지를 지나 심천초교 앞에서 오른 쪽 굴다리를 통과했습니다. 이내 도착한 심천교 앞에서 오른 쪽으로 이어지는 초강 우안의 심천둘레길로 들어섰습니다. ‘금강하구둑 전방244Km’ 지점을 지나 전망대에서 잠시 쉬며 초강과 금강의 합류점을 조망했습니다. 독특한 이름과는 달리 결코 낡지 않은 전장400m의 날근이다리를 건너 금강 좌안의 날근이제방길로 내려섰습니다. 시계반대 방향으로 반원을 그리며 제방길을 돌면서 느낀 것은 제방이 높고 튼실해 금강물에 둑이 터지거나 넘쳐흐르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는 믿음이었습니다. 여기에 견고한 제방을 쌓아 금강을 관리하는데 성공한 것은 날근이제방이 시작되는 날근이다리가 2011년에 준공된 것으로보아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습니다. 제방 가에 세워진 빨간 벽돌의 양옥집을 지나 둑방길이 끝나는 지점에 이르자 고당리에서 장동리로 금강을 건너는 세월교가 놓여 있었고, 가까이에 고가의 철교가 세워져 있어 서울-부산을 오가는 KTX열차가 빈번하게 지났습니다.
11시19분 구만굴을 지나는 KTX 철교 아래에 놓은 세월교를 건넜습니다. 다리를 건널 때마다 습관처럼 사진을 찍는 곳은 다리 한 가운데입니다. 제가 건너는 다리를 향해 밀려내려오는 도도한 강물과 다리를 통과해 쉬지 않고 내달리는 강물을 지켜보노라면 강물처럼 부지런히 살아가는 것도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곤 합니다. 세월교를 건너 강둑으로 올라가지 않고 천변길을 따라 걸으며 금강의 물 흐름을 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보았습니다. 정오가 다 되어 강변 벤치에 앉아 팬션 촌으로 보이는 강 건너 마을을 바라보며 햄버그를 꺼내들어 요기를 했습니다. 따끈한 커피로 속을 데우고 따사로운 햇살로 몸을 덥히노라면 가슴팍을 파고드는 매서운 삭풍이 숨죽이고 있는 것이 그리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천변 길을 따라 걷다가 강둑으로 올라가 장동리를 오른쪽으로 끼고 시계방향으로 반원을 그리며 진행했습니다. 영동군과 옥천군의 경계(?)를 이루는 곳으로 보이는 한국농어촌공사의 군량양수장을 지나 이원교에 이르는 제방 길이 비교적 곧바를 수 있는 것은 왼쪽 아래 금강이 거의 직선으로 흘러서입니다. 시골 길을 걸으며 누군가에 길을 묻는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오른 쪽으로 백지리 마을을 끼고 직선의 제방길을 걸어 이원대교에 이르기까지 40분 남짓 지나도록 제가 만난 사람은 할머니 한 분일 정도로 사람을 만나기가 힘들다는 데서도 알 수 있습니다.
12시58분 이원대교를 건넜습니다. 지탄역이 멀지 않은 이원대교를 건너 차도를 따라 걷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오른 쪽 제방길로 들어섰습니다. 금강 좌안의 제방길은 북쪽으로 곧게 나있는데, 20분을 채 못 걸어 산을 만나는 곳에서 그 길은 끝났습니다. 산을 오른 쪽으로 에돌아 흐르는 금강을 더 이상 따라 걸을 수가 없어 한동안 잘 따라 걸은 이 강과 헤어져야 했습니다. 제방 길 끝자리에 위치한 원통2배수통문앞에서 왼쪽 아래 시멘트 길로 내려가 북서진했습니다. 집이 몇 채 안 되는 작은 마을 지나는 것에 신경이 쓰이는 것은 죽어라고 짖어대는 개들입니다. 여행복 차림으로 시골 마을을 지나기가 송구스럽고, 사람들이 거의 지나 다니지 않아 혹시라도 주인이 개를 풀어 기르는 것이 아닌 가 싶어 먼 길로 돌아갔습니다. 밭을 가로 지르고, 대나무 숲의 고개를 넘어 구룡리 버스정류장에 도착한 시각은 13시54분이었습니다. 겉보기로는 시골이다 싶은데 하루에 버스가 10회운행되고 있어 교통은 그다지 불편할 것 같지 않았습니다. 차도를 따라 걸어 상칠방리를 지난 후 하칠방리 정류장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충남학생수련원 옥천분원을 찾아 가 금강을 다시 만났습니다.
제가 지난 구룡리가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선생이 태어난 곳이라는 것을 안 것은 다녀오고 나서입니다. 우암 선생은 외가에서 태어났는데, 그 외가가 바로 여기 구룡리였습니다. 우암 선생은 주자의 학설을 신봉하고 실천해 송자(宋子)로도 불려온 조선 후기의 정통 성리학자로 효종임금을 모시고 북벌정책을 주도하는 등 현실정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기도 합니다. 선생께서 묻히신 곳은 충북괴산군청천면화양동의 송시열 유적지이고, 여기 구룡리에는 선생의 유허비(遺墟碑)가 있다고 합니다. 진작 알았다면 들렀을 텐데 그리하지 못해 많이 아쉬웠습니다.
14시30분 충남학생수련원옥천분원 앞에 이르자, 벽면에 쓰인 “푸른 날개를 펴라!”는 수련원의 캐치프레이즈가 제 눈을 끌었습니다. 저 문구가 이곳으로 수련하러 온 학생들의 가슴에 와 닿기 위해서는 저 아래 금강과 연관된 레포츠 프로그램이 마련되고 실행되어 젊음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학생수련원이 굳이 금강 가에 자리 잡을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1시간 만에 다시 만난 금강이 반가운 것은 발원지인 전북 장수의 뜬봉샘을 출발해 4백리가 넘게 강줄기를 따라걸으면서 금강과 정이 많이 들어서였을 것입니다. 강가로 내려가 강물에 손을 담그는 것으로써 금강에 반가움을 표했습니다. 옥천군동이면의 적하리 강변까지 강가로 길이 나 있지 않아 별 수 없이 금강과 다시 헤어져야 했습니다. 꽤 깊어 보이는 금강을 뒤로 하고 하칠방리버스정류장으로 돌아가 들판 한 가운데에 낸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왕복4차선의 4번국도를 만나 이 길로 올라갔는데 차들이 쌩쌩 달려 신경이 많이 쓰였습니다. 4번국도를 걷는 것은 이원교를 건너는 것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이원교를 건너 이내 다다른 이원삼거리에서 지난번에 지났던 양산으로 가는 501번 도로가 왼쪽으로 갈렸습니다.
16시3분 적하삼거리의 석화버스정류장에서 옥천행 버스에 오름으로써 13번째 금강따라걷기를 마쳤습니다. 이원삼거리에서 직진해 건진교를 건너자 인도가 따로 나있지 않아 조심해서 걸었습니다. 북쪽으로 곧게 뻗은 4번 도로를 따라 걸어 올라가면서 가능한 한 지나가는 차들과 멀리 떨어져 걷고자 이 도로 오른 쪽 끝으로 바짝 붙어 구분치고개로 향했습니다. 구간 구간이 자동차 전용도로인 것 같은데 걸어가다가 사고가 나면 보행자의 책임이 아닌지 걱정되어 한 시라도 빨리 이 길을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501번도로와 합류되는 구문치고개를 넘자 저만치 앞에 오른 쪽으로 길이 갈리는 삼거리가 보여 얼마 후면 4번국도를 빠져나갈 수 있다 싶어 마음이 놓였습니다. 10분 남짓 걸어 내려가 만난 삼거리에서 오른 쪽 동이농공단지 쪽으로 향하다가 옥천가는 버스 정류장이 4번국도상에 있는 것이 생각나 4번국도로 되돌아가 10분여 걸었습니다. 적하삼거리의 석화버스정류장에 도착해 10여분 기다렸다가 버스를 타고 옥천으로 이동했습니다. 옥천버스정류장에서 4-5분을 걸어 옥천역으로 가서 십수분을 기다렸다가 16시57분발 수원행 열차에 탑승하는 것으로써 하루 여정을 마무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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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란 여객차나 화차를 끌고 다니는 철도차량을 일컫는 것으로 증기기관차, 디젤기관차, 전기기관차 따위가 있다고 사전에 적혀 있습니다. 증기가 기관차의 동력으로 쓰이던 때에는 석탄을 태워 증기를 얻었습니다. 1968년 여름 여주에서 기차를 타고 수원으로 여행할 때 증기관차를 탔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수원-여주 간의 수여선은 철로가 협궤였고 연결된 차량도 몇 대 되지 않았으며, 운행시간은 2시간 넘게 걸린 것 같습니다. 기차가 빨라진 것은 증기관차가 디젤기관차로 바뀌고 나서이고, 결정적으로 빨라진 것은 고속전철 덕분입니다.
기차가 빨라진 만큼 제 몸의 이동도 같이 빨라졌습니다. 빨리 움직이다보니 천천히 기다리는 것을 참지 못했습니다. 진급도 빨리해야 하고 돈도 빨리 벌어야 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남에게 뒤쳐진다 싶어 기가 죽곤 했습니다. 적어도 70대의 저희는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러다가 넘어지면 그만큼 뒤쳐질까봐 얼른 일어나 죽어라고 내달렸습니다. 그렇게 살면서 집안을 일으켜 세웠고 나라도 튼튼하게 세웠으니 빨리 빨리 살아온 것이 잘못이라고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속도를 높여 살아갈 수만은 없습니다. 앞으로는 숨을 고르고 천천히 살아가고자 합니다. 걸음도 천천히 걷고 생각도 천천히 해볼 뜻입니다. 생각이 빠르면 마음이 급해져 걸음이 빨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빨리 움직이는 것을 보고 걸으면 자연 걸음도 빨라집니다. 도시 사람들의 발걸음이 시골사람들보다 훨씬 빠른 것은 차들을 보고 걸어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산길을 걷거나 강줄기를 따라 걷다보면 자연히 천천히 걷게 됩니다. 천천히 걸어야 볼 것이 보이고 들을 것이 들립니다. 금강을 따라 걷고 나서 이런 긴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천천히 걸으면서 볼 것을 제대로 보았고, 들을 것도 제대로 들은 덕분이 아닌가 합니다.
<탐방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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