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강줄기 따라걷기/금강 따라걷기

금강 따라 걷기12(봉곡교-금호교-심천역)

시인마뇽 2022. 1. 26. 21:20

*탐방구간: 봉곡교-금호교-심천역

*탐방일자: 2022. 1. 22()

*탐방코스: 봉곡교-구강교-죽청교-금호교-난곡국악박물관-심천교-심천역

*탐방시간: 1228-1823(5시간55)

*동행 : 나홀로

 

 

  이번 금강을 따라 걷는 영동지방 나들이는 하루 종일 부산했습니다. 원래 계획대로 황간의 월류정만 다녀오고 양산의 외마포에서 시작했다면 서두르지 않아도 해떨어지기 훨씬 전에 목표지점인 심천역에 다다를 수 있었을 텐데, 공연히 욕심을 부려 지난번에 그냥 지나친 양산팔경 몇 곳을 더 둘러보느라 시간을 까먹어 이번에는 오후 내내 서둘러야 했습니다.

 

  갈 길을 재촉한 것은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제 옆을 흐르는 금강도 쉬지 않고 흘러 항상 저를 앞섰습니다. 제 딴에는 부지런히 내달렸다 싶은데 어느 한 순간도 금강의 물 흐름을 따라잡지 못했습니다. 여울 진 곳에서 쉬어간다 싶어 부지런히 쫓아가면, 어느새 저 만치 앞서 흐르면서 빨리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습니다. 통상 1시간에 3Km를 걷는 제가 이번에 3.5Km를 걸었는데도 금강의 물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자, 금강이 혹시 저와 같이 여행하는 것을 내심 반기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야 다리 밑을 지날 때 잠시 쉬면서 저를 기다릴 수도 있을 텐데 쉬지 않고 내달리는 것은 세속의 인간들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아서일지도 모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강은 발원지에서 하구까지 흐르면서 인간들을 위해 온갖 도움을 다 주는데도 정작 인간들은 강을 더럽히기에 급급할 뿐이니 말입니다. 제가 강이라 해도 예쁜 구석이 하나도 없는 인간들에게 같이 가자고 손을 내밀 것 같지 않아서 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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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631분 수원역을 출발해 848분에 황간역에 도착했습니다. 영동의 명소인 월류정을 둘러보고 황간역으로 돌아가 924분발 상행선에 탑승한 것은 택시를 대절해 가능했습니다. 935분 영동역에서 하차, 인근 버스정류장으로 옮겨 봉곡행 군내버스에 올랐습니다. 학산을 지나 양산에서 내리자, 생각지 못한 택시가 보여, 이 택시로 광운관광농원까지  이동했습니다. 광운관광농원에서 금강으로 내려가 세월교를 건넜습니다. 왼쪽 산 중턱에 자리한 봉황대를 먼발치에서 사진 찍는 것으로써 양산팔경 탐방을 시작했습니다. 세월교를 건넌 후 오른 쪽으로 꺾어 후 산자락에 낸 산길을 따라 걸으면서 도도히 흐르는 금강을 내려다보았고, 함벽정과 용암, 강선대 등 양산팔경을 차례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강선대와 인접한 봉곡교 다리 밑으로 이동해 가져간 햄버그로 요기를 한 후, 봉곡교에서 12번째 금강따라걷기에 나섰습니다.

 

  1228분 봉곡교를 출발했습니다. 지난번에 다리 건너 금강 우안의 차도를 따라 마포까지 걸어가, 이번에는 금강 좌안의 제방길로 들어섰습니다. 봉곡교 출발 후 10분 남짓 걸어 제방길에 강 하구까지 261Km남았음을 알리는  안내 폴(pole)이 서 있어 반가웠습니다. 제방 오른 쪽으로 잘 조림된 송림 너머 백사장은 지난번 강 건너 길을 걸을 때 사진을 찍어두었습니다. 시계반대방향으로 제방길을 빙 돌아 제방 끝에서 차도로 들어선 것은 더 이상 강가에 길이 나 있지 않아서였습니다. 나지막한 고개를 넘어 내려선 명양마을은 영동읍에서 하루에 버스가 다섯 번 오가는 시골마을로 양철지붕이 시뻘겋게 녹 슬은 폐가도 보였습니다. 명양마을에서 고개를 넘으며 뒤돌아보자 삼도봉을 지나는 백두대간(?)의 능선이 선명하게 보여 가슴이 뛰었습니다. 고개를 넘어 다다른 정자 앞에서 차도는 오른 쪽으로 휘어 구강교로 이어졌습니다.

 

  141분 구강교를 건넜습니다. 5톤 이상 나가는 차량의 통행을 금할 만큼 낡고 좁은 다리인 구강교를 건너 505번 도로를 따라 북진했습니다. 구강교를 건너 바깥쪽으로 크게 반원을 그리며 차도를 따라 걷는 것이 다리를 건너지 않고 구강리 둑길(?)을 따라 걷는 것보다 훨씬 멀다는 것은 505번 도로를 따라 한참동안 걷고 나서 알았습니다. 생각보다 차들이 많이 다니지 않았고, 강 한가운데 자리한 늪지의 갈대가 한 겨울의 정취를 자아내 길은 더 멀어도 걸을 만 했습니다. 금강 하구둑 256Km 지점을 지나면서 내려다 본 금강은 하늘의 구름을 잡아두어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구강교를 건넌 지 40분가량 지나 죽청교에 이르자 영동이 국악의 고장과일의 고장임을 알리는 광고문구가 눈을 끌었습니다. 죽청교를 조금 지나 오른 쪽으로 무주/학산 가는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영동/심천 가는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청남리 정류장을 지나 얼음이 반쯤 덮은 강을 보자 고향마을 냇가에서 얼음배를 타고 놀다 물에 빠져 혼난 일이 생각났습니다. 명천리 정류장을 지나자 차도 아래 강변에 꽤 넓게 자리 잡은 텅 빈 논이 보였습니다. 지루하리만치 단조롭고 먼 505번 차도를 따라 걸어 다다른 금정교차로를 막 지나 금호교에 이르렀습니다. 3시간 넘게 쉬지 않고 걸어서인지 다리가 무거워져 따끈한 커피를 마시면서 금호교 다리 앞에서 10분가량 쉬었습니다.

 

164분 금호교를 건넜습니다. 다리를 건너 오른 쪽으로 이어지는 4번도로를 따라 걸으면서 사진을 덜 찍은 것은 어둡기 전에 심천역에 다다르기 위해서였는데, 몇 곳의 강변 풍경은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발걸음을 재촉해서인지 강물이 더욱 빨리 흐르는 것 같았고, 혹시나 저 강이 나를 두고 혼자 내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S-오일 주유소 앞에 이르러 차도를 건너 잘 지은 한옥이 밀양박씨(密陽朴氏) 세덕사(世德祀)임을 확인 한 후 4번 국도가 지나는 고당교를 건너지 않고 왼쪽 좁은 차도를 따라걷자 이내 난계국악박물관과 영동문학관이 보였습니다. 가게에서 약주를 드시는 분들에 물어 바로 앞 양강교를 건넌 후 둑길을 따라 쭉 걸어가면 반 시간 정도 걸려 심천역에 이른 다는 것을 안내받고 나자 깜깜해지기 전에 심천역에 도착할 수 있겠다 싶어 비로소 안도했습니다.

 

  난계(蘭溪) 박연(朴堧, 1378-1458) 선생은 밀양박씨 가문이 배출한 조선초기의 문신입니다. 충북영동군심천면의 고당리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생을 마친 박연의 부친 박천석은 이조판서를 지낸 분이고, 모친 김씨는 통례문부사를 지낸 김오의 여식으로 양가 모두 명문가라 하겠습니다. 세종을 도와서 음악을 정비하는데 크게 공헌했으며 특히 율관제작을 통해 편경을 제작하여 조선시대 초기의 음악을 완비하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적고 있습니다. 정확히 율관을 제작하자는 상소문등 음악과 관련해 수십 회 상소문을 올린 박연의 열정이 세종대왕의 국악을 정비하겠다는 의지와 어우러져 조선의 음악이 획기적으로 정비될 수 있었다는 생각입니다.

 

 

  1825분 심천역에 도착해 12번째 금강 따라 걷기를 마쳤습니다. 양강교를 건넌 후 금강과 영동천이 만나는 합류점의 언덕에 자리한 2층 누각의 호서루(湖西樓)를 둘러보았습니다. 영동천 위에 놓인 초강교를 건너 이어지는 제방 길은 초강과의 합류점에 이르기까지 거의 직선 길로, 이 길 서쪽 아래로 제법 큰 하중도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저녁 5시반경에 둑 아래 금강을 조망하다가 수달로 보이는 두 마리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것을 보고 얼른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제가 사진으로 확인한 바로는 수달이 분명한 것 같은데 사진만으로는 식별이 쉽지 않아 딱히 수달이라고 장담할 수 없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초강과의 합류점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몇 분을 걸어가 초강을 건너는 심천교에 다다른 시각은 1727분이었습니다. 이 다리를 건넌 후 왼쪽으로 차도를 따라가 심천역 건너편에 도착했는데 철로를 건너는 지하도나 육교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바로 앞에 보이는 심천역으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카카오맵을 찬찬히 보고서야 온 길로 되돌아가 다리를 건너야 심천역으로 갈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헤드랜턴으로 길을 밝히고 정신없이 내달려 철로 위 다리를 건넌 후 오른 쪽으로 꺾어 내려가 10분 남짓 부지런히 걸어 심천역에 도착했습니다. 1833분에 심천역을 출발하는 열차로 영동역으로 이동해 열차를 기다렸다가  1911분에 출발하는 수원행 열차에 올라 자리에 앉고 나자 부산했던 하루 여정이 주마등처럼 제 머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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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려면 금강이 제가 밉다 해서 줄행랑을 치겠나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렇게 속이 밴댕이처럼 좁아서야 바다인들 흘러들어오는 금강을 진정 반가와 하겠는가 싶어서입니다. 미운 일만 골라서 한다는 이유로 세속의 인간들을 감싸주지 못한다면, 강 또한 바다한테 더럽혀진 자신을 흔쾌히 받아들여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강이 제게 따라오지 말라고 손짓을 하는 데는 제가 알지 못하는 선의가 분명 숨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길안내가 아니겠나 싶습니다. 어느 누구도 뒤 따라가서는 길 안내를 할 수 없고 보면, 앞서 가는 것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길을 모르는 저를 앞세웠다가는 엉뚱한 길로 들어서 지천을 거슬러 올라갈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흐르는 물만 따라 걷는다면, 결국에는 강 하구에 도착하는 것이 분명한 것은 강물이 앞장서 흐르면서 길안내를 해주기 때문입니다.

 

 

<탐방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