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구간: 뒷섬마을-농원마을-적벽강 엿여울(9구간)
큰방우리마을-선바위-내도교(8구간)
*탐방일자: 2021. 11. 27일(토)
*탐방코스: 청풍에너지-농원마을-주로천합류점-청풍에너지-선바위
-큰방우리마을-선바위-내도교-무주공용버스터미널
*탐방시간: 11시17분-16시56분(5시간39분)
*동행 : 나 홀로
이번 ‘금강 따라걷기’는 뒷섬마을-농원마을-적벽강 엿여울의 9구간과 지난번에 임도를 따라 걷느라 빼먹은 큰방우리마을-선바위-내도교의 8구간 탐방을 같이 진행했습니다. 전북무주와 충남금산을 넘나들며 진행한 이번 탐방 길에는 강을 건너지 못해 길을 이어가지 못한 곳도 두 곳이나 됩니다만, 길이 끊겨 걷지 못한 구간의 저쪽 끝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가까이 다가간 것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면서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왜 길이 끊겼냐고 금강을 탓할 일은 아닙니다. 겨우 겨우 이어온 길이 절벽을 만나 끊기게 되면 편안한 곳을 놓아두고 하필이면 이렇게 길이 끊긴 오지로 안내해 되돌아가게 만드느냐며, 저는 어리석게도 강에다 투정을 부리곤 했습니다. 강이야 이런 오지에 수로(水路)를 낸 것으로 제 할 일을 다 한 것이고, 물 따라 그 옆에다 둑길을 만들거나 다리를 놓아 길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사람들이 할 일입니다. 사리(事理)가 이렇다는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 애꿎게 강을 탓해 온 것은, 그렇게 해서라도 화를 풀고 나면 오던 길로 되돌아가는 것 또한 익히고 되 익히는 아주 좋은 복습이라면서 스스로를 달랠 수 있어서였습니다.
길이 끊긴 험지는 대개가 강이 숨겨놓은 승지(勝地)입니다. 길이 끊겼다고 속상해할 일이 아닌 것은 이런데서 길이 끊겨 남들이 가보지 못하는 비경을 육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된 것만도 참으로 행운이다 싶어서였습니다. 오지탐험가라면 이보다 더한 경승지를 만나 감격할 일이 많겠지만, 그저 강줄기를 따라 걷는 일로 가슴 벅차하는 저 같은 도보 꾼에는 이 정도의 승지만으로도 벅차고 넘쳐 이렇게 블로그에 올려 자랑하는 것입니다. 100% 완벽하게 강줄기를 따라 걷지 못하고 더러더러 건너뛰는 구간도 있어야 자랑하는 것도 조금 겸손하게 할 수 있지 않나 싶어 그저 금강에 감사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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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을 따라 걷기 위해 무주를 오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다 싶어 터미널에서 멀지 않은 ‘최북미술관 · 김환태문학관’을 들러 두 분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조선시대 산수화가로 이름을 날린 최북(崔北, 1712-1786)과 일제강점기에 이효석과 더불어 9인회멤버로 활동한 김환태(金煥泰, 1909-1944) 두 분이 무주가 배출한 예술가라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무주터미널에서 9구간이 시작되는 청풍에너지까지는 택시로 이동했습니다. 지난번에 따라 걷기를 마친 뒷섬마을로 가지 않고 곧바로 청풍에너지로 간 것은 뒷섬마을에서 청풍에너지까지의 약 300-400m 되는 구간이 길이 끊겨 강을 따라 걸을 수 없어서였습니다. 길이 끊겨 이어가지 못한 곳은 또 있었습니다. 농원마을 지나 주로천 합수점에 이르자 다음 구간이 시작되는 적벽강 엿여울이 저만치 보이는데 또 길이 끊겨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오던 길로 되돌아가야 했습니다.
무주터미널에서 잡아 탄 택시가 내도교를 건너 선바위를 지나서 오른쪽 산길로 접어들자, 기사분께서 여기서부터는 길이 좁아 도중에 차를 만나면 난감하다며 특히 눈이 덮이면 더욱 위험한 길이라고 했습니다. 다행히 맞은편에서 오는 차를 만나지 않아 수월하게 고개를 넘어 청풍에너지 앞 삼거리에서 하차했습니다.
11시17분 청풍에너지앞 삼거리에서 9구간 탐방을 시작했습니다. 개가 시끄럽게 짖어대어 청풍에너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조금 다가가 4-5백m 가량 떨어져 보이는 뒷섬마을 사진 찍은 후 농원마을로 향했습니다. 휘돌아 흐르는 금강을 따라 제방을 쌓아 낸 둑길을 걸으면서 느낀 것은 사방이 하도 조용해 시간의 흐름이 잠시 멈춰선 것이 아닌 가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작은방우리의 농원마을은 요즘은 이농한 분들이 많아 집이 몇 채 안됩니다. 1963년 신상옥 선생이 감독하고, 최은희, 신영균, 김희갑, 허장강 선생 등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출연해 만든 영화 ‘쌀’의 실제 배경이 된 곳이 바로 여기 농원마을이고, 영화촬영도 이곳에서 했다고 합니다. 방우리 앞 구시소에서 산 너머 절벽까지 하루에 12cm씩 길이250m, 둘레 2.3m의 굴을 뚫어 농원방우리 장자벌에 일군 3만평의 논에 물을 대고, 굴의 경사로 나타나는 12m의 낙차를 이용해 60kw의 전력을 생산해 방우리, 뒷섬, 굴천, 산의실, 방죽안, 안골, 수통리, 도파리까지 오지 마을들을 모두 불 밝혔다고 최수경님은 저서 『금강길 이야길』에 적고 있습니다. 일제 때 착공해 27m쯤 뚫다만 이 굴을 방우리마을의 설병환님이 주도하고, 전쟁피난민들이 적극 참여하고, 공병부대가 지원해 마저 뚫은 것은 1963년이고, 이에 맞춰 제작된 영화가 바로 “쌀"입니다. 설병환님을 기리는 비는 농원마을 입구 정자 옆에 서 있어 사진을 찍었습니다.
농원마을 제방 길을 빙 돌아 농원나루터에 도착했습니다. 공사안내판에서 방우리에서 수통리를 연결하는 길을 내는 공사가 2023년에 완공될 예정이라는 것을 보고, 그렇다면 공사현장을 오가는 차량들이 다닌 흔적이 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흔적을 따라 가는데 까지 가보자고 마음먹고 지렛여울에 놓은 세월교를 건넜습니다. 팬션으로 보이는 집이 한 채 보였지만, 잡목과 잡초들이 우거진 것으로 보아 오랫동안 살지 않은 빈집인 것 같았습니다. 저 말고는 누구 하나 보이지 않는 오지의 금강 길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강물에 두 손을 물에 담그는 것으로써 금강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오른 쪽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주로천이 금강과 만나는 합류점에 이르자 그나마 희미한 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20m가량 떨어진 작은 사구(砂丘?)까지 가면 다시 길이 이어질 것 같아 등산화를 벗고 맨발로 물속을 걸었는데, 생각보다 물이 차갑지 않았습니다. 막상 사구에 이르고 보니 더 이상 길이 나있지 않아 6-7백m가량 떨어진 적벽강 초입의 엿여울공사현장을 사진 찍은 후 다시 물을 건너 청풍에너지앞 삼거리로 되돌아갔습니다.
13시58분 청풍에너지앞 삼거리를 출발해 큰방우리마을로 향했습니다. 몇 시간 전에 택시로 넘은 산길을 이번에는 걸어서 되넘었습니다. 청풍에너지 앞 삼거리에서 고갯마루에 가까이 올라 길이 끊겨 걷지 못한 뒷섬마을-청풍에너지 구간을 조망했습니다. 저 아래 보이는 뒷섬 여울목은 『금강길 이야길』의 저자 최수경님이 금강 소 1경으로 뽑았을 만큼 풍광이 수려한 곳입니다. 저 또한 차를 만나지 않아 마음 편히 산을 넘어 삼거리에 이르렀습니다. 바로 앞 선바위를 사진 찍은 후 오른 쪽으로 확 꺾어 큰방우리마을로 향했습니다. 이 마을 초입에서 마을 안을 지나는 차도를 버리고 강변을 따라 걸었습니다. 이 마을 맨 끝자리 강가에 작은 배 한 척이 매여 있는 것으로 보아, 여기가 쇠목여울 나룻터(?)였던 것 같습니다. 밭에서 일하시는 한 분을 만나 걸어서는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먼발치로 흐릿하게 보이는 말골여울 인근의 절벽을 사진 찍었습니다.
14시45분 큰방우리마을을 출발해 내도교로 향했습니다. 지난번에 임도로 돌아가느라 건너 뛴 구간을 걷고자 찾아간 큰방우리마을의 품여울나룻터(?)에서 잠시 쉬었다가 내도교를 향해 마을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농촌마을치고는 번듯한 집들이 많이 들어선 것으로 보아 외지인들이 별장으로 지어놓은 집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쭈그러진 빨간 고추들이 밭에 그냥 남아 있는 것을 보고나자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들은 시끄럽게 짖어대는데 방우리경로당은 문이 닫혀 있고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 마을 전체가 썰렁했습니다. 마을을 빠져나가기 바로 전에 다다른 “書樂園” 건물은 도서관이나 독서실로 쓰이는 것 같은데 외관이 다부져 보여 눈길이 갔습니다. 길 양쪽으로 우뚝 선 칠암바위을 지나 발전을 위해 물을 모아놓은 보에 이르자 강 건너로 방우리수력발전소(?)가 보였습니다. 얼마 후 금강의 북쪽에 낸 제방 길을 걷다가 둔치가 워낙 넓어 공원으로 조성 중인 천변으로 내려가 강을 따라 걸었습니다.
16시10분 내도교를 건넜습니다. 저녁이 가까워지자 그늘진 천변길이 강바람이 불어서인지 냉기가 느껴졌습니다. 깎아지른 절벽과 강바람에 흔들거리는 갈대들이 어우러져 연출하는 정(靜)과 동(動)의 어우름은 저 강이 천년을 두고 흐르면서 빚어낸 작품이다 싶었습니다. 다시 제방으로 올라가 내도교를 건너면서 뒤돌아본 금강은 앞섬을 휘돌아 뒤섬으로 내달았습니다. 내도교를 건너면서, 배가 전복되어 18명의 어린 생명을 잃고 나서야 대통령의 특별지원으로 이 다리를 놓을 수밖에 없었던 1960년대 초반의 가난을 떠올렸습니다. 저 또한 읍내 중학교근처에서 자취를 하면서 중3 때인 1964년 내내 점심을 싸가지 못해 굶은 적이 있습니다. 가난을 자랑할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누가 말하듯이 가난 때문에 더럽게 살지는 않았기에 굳이 숨기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16시55분 무주공용버스터미널에서 9구간 탐방을 마쳤습니다. 내도교를 건넌 김에 내쳐 무주버스터미널까지 걸어갔습니다. 장정들은 반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는데 저는 15분이 더 걸렸습니다. 고갯마루에 자리한 길이166M의 터널을 지나자 무주읍내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시내로 들어가서는 몇 번이고 길을 물어 무주 시내를 흐르는 남대천을 건넜습니다. 이내 도착한 무주버스터미널에서 반시간 기다려 영동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금강을 따라 걷느라 무주터미널을 들른 것은 모두 일곱 번입니다. 그새 정이 들어서인지 이제 다시 오기;가 쉽지 않겠다 싶은 생각이 들자 서운하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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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혜의 비경이 비교적 잘 보존된 금강을 따라 걸으며 생각해본 것은 환경보전과 경제발전이 관계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이 둘은 벌써부터 상충적 관계에서 상보적 관계로 발전해왔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옛날에 환경이 좋았다면서 그때를 그리워하는 말씀들을 많이 합니다.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살아온 저로서는 그때의 열악한 환경을 잘 알고 있어 동의하지 않습니다. 홍수가 나면 방축이 부실해 마을 안으로 물이 덮쳐들어와 몸을 피한 적도 있습니다. 밭에다 인분을 뿌려 거름으로 삼는 비위생적인 일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진 것도 비료가 부족해서 그랬습니다. 양돈장이나 목장에서 가축들이 방뇨한 것을 그대로 하천으로 내보내 하천물이 오염된 것도 1980년대까지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집안에는 파리들이 들끓고 천장에는 밤새도록 쥐들이 다녀 잠을 이루기 힘들었습니다. 개는 바깥에다 재우면서 고양이를 방안에 들여 재운 것은 쥐가 너무 많이 준동해서였습니다. 돈이 없어 치약을 쓰지 못하고 개천으로 나가 모래로 이를 닦은 후 초등학교선생님께 검사를 받은 것은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환경이 몰라보게 좋아진 것은 1990년대 이후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웬만큼 먹고 살만 하자 비로소 삶의 질을 높이는데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화석연료가 보급되면서 산이 푸르러졌고 축산폐수도 정화한 후에 처리되어 수질오염을 막았습니다. 국민들이 삶의 질을 중시하자 기업들도 환경보전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경제발전이 환경보전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일어나 오늘에 이른 것은 다 먹고 살만해진 덕분입니다. 치산치수처럼 국가적인 사업은 경제가 뒷받침되지 않고는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남북의 환경과 경제를 비교하면 부국환경론이 옳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경제발전이 환경보전을 좋게 하고 좋아진 환경이 경제발전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계속되기 위해서는 발전과 보전을 상보적인 것으로 보는 시선과 양측 주장의 조화로운 타협도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나이 칠십을 훌쩍 넘겨 잘 보존된 금수강산을 두루 걸어 다니면서 즐길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부유해진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덕분입니다. 제가 이 나라를 자랑스러워하는 것도 환경보전과 경제발전을 모두 성공적으로 이루어냈다고 자부해서입니다.
<탐방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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