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강줄기 따라걷기/금강 따라걷기

금강 따라 걷기14(적하삼거리-금강휴게소-가덕교)

시인마뇽 2022. 2. 20. 13:51

*탐방구간: 적하삼거리-금강휴게소-가덕교

*탐방일자: 2022. 2. 13()

*탐방코스: 적하삼거리-충혼탑-금강나루터-금강2-금강휴게소

-원당교-청마교-합금교-가덕교-가덕리마을회관

*탐방시간:940-1628(6시간48)

*동행 :나 홀로

 

 

  입춘이 지난 지 며칠 되었으니 조만간 겨울도 물러날 것입니다. 금강을 따라 걸으면서 거의 다 녹고 남은 좁은 폭의 얼음장이 물가를 따라 연이어 있는 것을 보고 봄이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했습니다. 한 겨울에는 저 강을 뒤덮었을 얼음장이 이제는 거의 다 녹아 응달진 강 한쪽의 물가에 2-3m 정도로 줄어든 채 간신히 붙어 있었습니다. 얼마 후 저 좁은 띠의 얼음장마저 녹아내린다면 겨울은 금강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을 것입니다.

 

  한때 사금을 채취한 곳으로 알려진 충북 옥천군의 합금리를 흐르는 금강은 아직은 겨울이 지배하고 있어 햇살이 약해진 오후 시간에 응달진 길을 걷는 동안은 한기가 느껴졌습니다. 합금교에서 가덕교까지 시계반대방향으로 반원을 그리며 이어지는 금강의 우안길은 차들이 거의 다니지 않아 한적했습니다. 이 길을 따라 물가에 붙어 반원을 그리며 가덕교까지 이어진 좁은 띠의 하얀 얼음장을 보노라니 은퇴를 얼마 앞둔 선수들의 뒷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얼음 녹듯이 사라지는 것은 겨울만이 아닐 것입니다. 뭇 생명체는 다 끝이 있어 때가 되면 물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겨우 내내 꽁꽁 얼어붙은 무생물인 얼음장도 봄이 되면 녹아 없어지는데, 유한한 생명체인 사람들이 무슨 재주로 계속 버텨낼 수 있겠습니까? 저 또한 저 얼음장과 같이 서서히 녹아 언젠가는 사라져야할 존재이기에, 얼음장이 다 녹아 없어지기 전에 부지런히 달려와 인사를 나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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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9시에 옥천군내버스정류장을 출발하는 적하리행버스를 타고 20분 남짓 달려 적하사거리에서 하차했습니다. 동이농공단지를 지나 만난 4번도로를 따라 걸어 몇 분 후 지난번에 13번째 탐방을 마친 적하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오전940분 적하삼거리를 출발했습니다. 4번국도상의 석화정류장에서 오른 쪽으로 내려가 실개천을 따라 걸었습니다.  적하사거리로 되돌아가 학령1리 정류장을 지난 것은 108분으로, 몇 분을 더 걸어 다다른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갈라지는 옥천동이로를 버리고 적하길을 따라 그대로 직진했습니다. 학사굴정류장을 지나 발걸음을 멈춘 것은 길가에 자리한 동이면의 충혼탑을 둘러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제가 보아온 여느 충혼탑보다 작아 보이는 이 탑은 1998년 국가보훈처가 순국하신 전몰군경과 애국용사들의 고귀한 영령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탑입니다. 이내 다다른 용죽공동작업장 앞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진행해 팬션(?) 마을의 금강나루터 식당을 막 지나자 오른 쪽 둔치 아래로 금강과 산책로가 보였습니다. 둔치로 내려가 산책로를 따라 강가를 걷고 싶었지만 그 길이 어디에서 끝나는지를 알 수 없어 그냥 차도를 따라 걸었는데, 길가에 세워진 '금강하구둑227km' 안내폴을 보자 엄청 반가웠습니다. 한 번만 더 나서면 천리길이 더 되는 장장405Km의 금강을 따라 걷는 것도 반을 훌쩍 넘기게 되어 벌써부터 가슴이 뛰었습니다.

 

  1122분 금수강산 식당 건너 정자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안내폴을 사진 찍고 나지막한 고개를 넘어 음식점 금수강산 앞에 이르자 갑작스레 시장기가 느껴졌습니다. 마침 길옆에 정자가 있어 10여분 쉬면서 햄버그를 꺼내들자 공복감이 사라져 금강따라걷기를 이어갔습니다. 얼마 걷지 않아 만난 금강1교 아래 둔치로 내려가 산책로가 잘 나있는 강변 풍경을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조금 더 걸어 다다른 두 개의 금강 2교를 밑으로 지나 금강휴게소로 이어지는 금강 좌안길을 따라 시계방향으로 반원을 그리며 진행했습니다. 오른쪽 아래 금강에 비춰진 주위의 고봉들이 의젓해 보인 것은 강바람이 일지 않아 수면이 잔잔해진 때문입니다. 고속버스로 여행할 때 여러 번 들른 금강휴게소를 이번에는 걸어서 찾아갔습니다. 박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공을 인정해 시공사인 현대건설에 운영권을 주었다는 금강휴게소가 우여곡절 끝에 그 운영권이 롯데로 넘어갔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와서 보니 과연 그러했습니다. 적하삼거리를 출발한 지 딱 2시간 후인 1240분에 도착한 금강휴게소에서 커피를 들면서십 수분을 쉬었다가 그 아래 보(에 붙여 놓은 꽤 넓은 잠수교로 강을 건넜습니다. 차들도 건너다닐 만큼 넓은 다리를 걸어서 건너는 중 제 눈에 띈 것은 대각선 형태로 가지런히 띠를 이루어 강물 위에 떠 있는 폭이 10m는 족히 될 만한 얼음장이었습니다. 이 얼음장을 보자 동심(童心)이 작동해 그 위로 올라가 얼음배를 타고 싶었지만 꾹 참고 금강 우안길로 들어서 가던 길을 이어갔습니다.

 

  1344분 진구네민박집 앞 삼거리를 지났습니다. 금강을 막 건너 만난 연세든 한 분에 길을 물어 이번 탐방의 목적지인 가덕교까지 강을 따라 길이 나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마음 놓고 금강교를 지나는 9번도로 대신 향수100리길로 명명된 금강 우안의 제방 길로 접어들어 자 아직은 한기가 가시지 않은 강바람이 가슴팍을 파고들어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잘 꾸며진 ‘Pine Tree Farm 강보고와 꽤 큰 규모의 카페를 지나 다다른 진구네민박집 앞 삼거리에서 끝이 난 제방 길은 9번도로로 이어졌습니다. 금강4교 아래로 놓인 이 도로를 따라 북진하면서 왼쪽 아래 금강에 눈길을 보낸 것은 금강이 여울진 몇 곳을 지나며 내는 활기찬 소리가 마치 봄을 부르는 것 같아서였습니다. 높은벼루 정류장을 지나 길가의 음식점 어부와 나루터에 이르기까지 20분 남짓 걷는 동안 승용차 몇 대만 지나가 큰 차가 막 지난 뒤 곧바로 이어지는 세찬 바람을 맞지 않아 다행이다 했습니다. 강 건너 산자락의 조령리에 들어선 여러 채의 집들은 반듯한 양옥들로 언뜻 보면 팬션촌이 아닌가 싶습습니다. 보청천이 금강에 합류하는 원당교를 건너 왼쪽으로 이어지는 575번 도로를 따라 서진하다가 합금리 마을 입구를 지났습니다.

 

  1512분 청마교를 지났습니다. 합금리 마을 입구를 지나 상금 정류장에 이르자 다리가 가까이 보였습니다. 이 다리를 가덕교로 잘 못 알고 시간이 남는다 싶어 왼쪽 강가로 다가갔습니다. 강물에 두 손을 담그는 것으로써 금강과 인사를 나누는 것은 저 나름의 세레머니여서 이번에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가장 감격적으로 이 세레머니를 행한 것은 20년전인 2002815일 백두산 아래 천지에서 두 손을 물에 담근 것입니다. 강바람이 냉랭해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선 저의 눈을 끈 것은 어렸을 때 고향마을 앞을 흐르는 비암천에서 보았던 아주 작은 조개 껍질이었습니다. 이제는 사라진 작은 조개를 금강에서 다시 볼 수 있는 것은 여기 금강의 수질이 제 고향 파주의 개울보다 양호해서가 아닌가 합니다. 몇 분을 걸어 다다른 곳은 청마리와 합금리를 이어주는 청마교였습니다. 가덕교로 잘 못 알고 강가에서 쉬느라 시간을 까먹어 서둘른다 해도 1550분에 가덕마을 회관을 출발해 옥천읍내로 가는 버스를 타는 것은 불가능해 다음 버스를 타야 했는데. 그 버스는 두 시간 뒤인 1750분에 있어, 갑작스레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하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지금껏 걸어온 속도로 내달린다면 1시간이면 가덕마을에 다다를 것 같고, 그리되면 시간 반이 넘도록 바깥에서 버스를 기다려야 하는데 그동안 땀이 식어 감기에 걸리지 않을 까 걱정도 되었습니다. 1512분에 청마교를 지나서부터는 별 수 없이 걸음걸이를 천천히 하고 사진도 더 자주 찍으면서 시간을 죽여야 했는데, 이 또한 부지런히 걷는 것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하금마을 정류장을 지나 다다른 합금교차로에서 지금껏 걸어온 575번도로는 합금교를 건너 금강 좌안길로 이어졌습니다.

 

  1628분 가덕리 마을회관에 도착해 14번째 금강따라걷기를 마쳤습니다. 합금교에서 가덕교로 이어지는 금강의 우안 길은 바로 비포장도로로 바뀌었습니다. 흙길로 된 금강의 우안길은 시계반대방향으로 반원을 그리며 북쪽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길을 따라 걷다가 시간을 죽이려 길 가에 앉아 커피를 꺼내 들었는데 응달진 곳이라서 땀이 금방 식어 오래 쉬지 못하고 일어서야 했습니다. 건너 편 강변에는 햇볕이 잘 들어서인지 얼음장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걷고 있는 우안 길 아래 강가에는 좁은 폭의 하얀 얼음장이 띠를 만들어 곡선을 그리며 이어져 강을 가운데 두고 양쪽의 강변이 빚어낸 풍경이 이처럼 판이할 수 있나 싶었습니다. 시퍼런 강물이 도도히 흐르는 것으로 보아 수심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았습니다. 가덕교에 이르러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자 저녁 햇살이 드리운 금강이 참으로 고즈넉해 보였습니다. 가덕교를 건넌 후 직진 길로 4-5분을 더 걸어 가덕리마을회관에 도착하자 바로 옆에 정자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신발을 벗어야 올라가 쉴 수 있어 한 겨울에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는 정자에는 올라가지 못하고, 그 옆 공터에서 간이 의자를 꺼내 앉아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온 몸이 식어가는 듯 해 자리에서 일어나 동네를 돌아보며 걷기를 계속했습니다.

 

  1750분에 가덕마을을 출발한 군내버스가 안남을 거쳐 대청호를 지나 옥천시내버스정류장에 도착하기까지 40분 남짓 걸린 것 같습니다. 인근 식당에서 저녁을 사든 후 1930분에 옥천역을 출발하는 무궁화호에 올라 수원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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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음장다운 얼음장을 본 것은 금강휴게소 아래 보를 막고 놓은 다리를 건너면서입니다. 폭이 10m는 족히 될 만한 넓은 얼음장이 강 위에 비스듬하게 걸쳐 있어 큰 배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얼음장이 놀이터였던 것은 고향의 시골마을에서 보냈던 어린 시절뿐입니다. 반쯤 녹은 얼음장에 올라 작대기로 물을 저으며 뱃놀이를 하다가 얼음장이 갈라지는 바람에 물에 빠져 누비옷을 다 적신 일도 있었습니다. 대개 정월보름을 막 지나서였으니 이맘 때였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배를 처음 타본 것은 1963년 중학교 2학년 때 강화도로 수학여행을 갈 때였습니다. 이보다 훨씬 전에 얼음장에 올라 뱃놀이를 했으니 제가 난생 처음으로 타본 배는 다름 아닌 얼음 배였습니다. 낮에 탄 얼음장은 두렵지 않았는데 정작 무서웠던 것은 고요한 밤에 얼음장이 쩍쩍 갈라지며 내는  소리였습니다. 이제는 누구하나 올라탈 생각조차 하지 않으니 얼음장도 뱃놀이 손님을 다 잃어 개점휴업상태에 놓였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얼음장인들 어찌 저를 보고 반가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반갑게 인사는 나누었지만, 시간이 없어 같이 놀지 못하고 사진만 찍어왔습니다.

 

 

<탐방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