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구간: 황새터-장계관광지-소정휴게소
탐방일자: 2022. 4. 2일(토)
탐방코스 :
첫 번째 코스 : 안남면 연주리정류장-안피실입구-연주리정류장
두 번째 코스 : 장계교-주막마을-장계교-장계관광지-장계교-소정휴게소
탐방시간: 총6시간8분
첫 번째 코스 : 9시35분-11시20분(1시간45분)
두 번째 코스 : 13시8분-17시31분(4시간23분)
동행 : 나 홀로
강줄기를 따라 걸으면서 같은 길을 왕복한다면 이는 분명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강변길이 중간에 끊겨 계속 이어갈 수 없어서였습니다. 이럴 경우 편도만이라도 택시로 이동할 수 있으면 좋은데, 택시비가 많이 들면 쌩 돈이 나가는 것이 아까워 걸어서 갔다 오곤 했습니다.
금강 따라 걷기가 섬진강이나 영산강보다 훨씬 힘든 것은 골짜기를 굽이굽이 돌며 흐르는 강을 따라 낸 길이 중간에 끊긴 곳이 여러 곳 있어서였습니다. 장수와 진안을 지날 때는 몰랐는데 무주 땅에 들어서자 금산과 만나는 몇 곳에서 길이 끊겨 갔던 길로 되돌아 나와야 했습니다. 이는 금강이 섬진강이나 영산강보다 감입곡류(嵌入曲流)가 발달해서가 아닌가 합니다. 감입곡류란 산지(山地)나 고원지대에서 깊은 골짜기 사이를 구불구불 굽이쳐 흐르는 하천을 이릅니다. 이에 비해 거의 평탄한 지형을 흐르는 노년기의 하천은 자유곡류(自由曲流)로, 조그만 장매물만 있어도 물길이 쉽게 굽어져 몹시 구불구불하게 흐릅니다. 같은 곡류라도 자유곡류는 평탄한 지형을 흘러 강변길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데, 골짜기를 따라 흐르는 감입곡류는 강과 면하고 있는 산의 형세에 따라 도저히 길을 낼 수 없는 곳도 많습니다. 이런 경우 중간에 길이 끊겨 왔던 길로 되돌아가야해, 걸어서 강줄기를 따라 걷는 저 같은 도보꾼들에게는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금강을 따라 걸으면서 감입곡류를 만나 길을 이어가지 못한 곳은 말골여울(금산군부리면)-큰방우리마을(금산군부리면), 뒷섬마을(무주군무주읍)-청풍에너지(금산군부리면), 주로천합수점(금산군부리면)-적벽강엿여울(금산군부리면), 안피실(옥천군안남면)-피실나루(옥천군안남면), 황새터(옥천군옥천읍)-주막마을(옥천군옥천읍) 등 모두 5곳입니다.
길이 끊겨 되돌아 나온 구간은 세월교(금산군부리면)-말골여울(금산군부리면), 내도교(무주군무주읍)-큰방우리마을(금산군부리면), 안남초교(옥천군안남면)-안피실(옥천군안남면), 피실나루터(옥천군동이면)-황새터(옥천군옥천읍), 주막마을(옥천군옥천읍)-장계관광지(옥천군옥천읍) 등 5구간입니다.
중간에 길이 끊긴 곳은 거의 다가 심심산골의 오지입니다. 금강을 따라 걸으며 섬진강이나 영산강에서 보지 못한 오지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이 강이 감입곡류하천이어서 그러했습니다. 감입곡류를 따라 걸으며 오지의 비경을 완상하느라 힘든 줄 모르고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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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이번 탐방도 거의 다가 왕복코스로 이루어졌습니다. 첫 번째 코스는 안남면의 연주리정류장- 안피실입구-연주리정류장 코스로 왕복거리가 약6.4Km에 이르고, 두 번째 코스는 장계교-주막마을-장계교-장계관광지-장계교 코스로 왕복거리는 약12.4Km에 달합니다.
1. 첫 번째 코스
옥천터미널에서 아침9시에 출발하는 가덕리행 버스를 타고 반시간 가까이 달려 안남면의 연주리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두 달 만에 이 정류장을 다시 찾아온 것은 지난 2월 시간이 없어 빼먹은 독락정마을-안피실 구간을 마저 탐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두 시간 안에 안피실을 다녀와야 11시40분발 옥천행 버스를 타고 이동해 장계리에서 다음 코스를 이어갈 수 있어 서둘러 탐방을 시작했습니다.
오전9시35분 연주리정류장을 출발했습니다. 연남초교를 지나 독락정 마을에 도착해 지난번에 빼먹은 정자 독락정을 찾아갔습니다.
독락정(獨樂亭)은 1607년(선조40년) 독락옹(獨樂翁) 주몽득(周夢得)이 옥천군 연남면연주리의 금강 변에 세운 조선 중기의 정자입니다. 주몽득(周夢得)은 임진왜란 때 추령에서 왜적을 크게 무찔렀고, 1607년 일본에 건너가 조선인 포로 1,000여명을 송환했으며, 1624년에는 이괄의 난을 진압해 절충장군과 첨지중추부사에 올랐던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면3칸, 측면2칸의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으로 지어진 이 정자를 보고 아쉽다 싶었던 것은 여느 정자와 달리 울타리로 담장을 쌓았고 출입문을 설치했으며, 양 측면은 툇마루를 설치하기 위해 내부를 4칸으로 만들고, 온돌방을 들여 정자로서의 개방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아래가 안남천이 금강에 합류되는 합수점이고, 이 금강이 ‘한반도지형’을 휘돌아 흐르는 지점이어서 조망은 더할 수 없이 빼어난 데, 누구나 쉽게 와서 쉴 수 있도록 개방하지 않은 것은 나중에 이 정자를 서당(書堂)으로 사용해서라고 합니다. 독락정이 마을 이름으로도 불리는 까닭은 이 마을이 초계주씨의 집성촌이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독락정과 가까운 곳에 사당 영모사(永慕社)가 자리 잡았고, 길가 입구에는 공덕비, 열녀비, 세거비, 위령비 등 초계주씨와 관련된 비석이 여럿 세워져 있어 초계주씨의 집성촌임을 단번에 알아챘습니다.
독락정에서 아주 가깝게 조망되는 안남천과 금강의 합류점은 낚시꾼들로 붐볐습니다. 독락정마을 끝자리에 위치한 농어촌개발공사영동지사 건물을 지나서부터는 포장이 안 된 울퉁불퉁한 길이어서 걷기에도 불편했습니다. ‘한반도지형의 남해안’을 에돌아 남쪽으로 흘러내려가는 금강을 바라보며 이 강에 살포시 내려앉은 봄을 반갑게 맞았습니다. 성큼 다가선 봄이 금강을 꽁꽁 얼어붙게 한 겨울을 몰아낸 덕분에 겨우 내내 온 강을 뒤덮었던 얼음장이 다 녹아 물고기를 낚는 강태공들이 이 강에 모여들었을 것입니다.
10시34분 안피실마을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독락정마을에서 안피실로 가는 강변길은 직선길이 아니고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이어지는 곡선 길입니다. 조금 더 가면 피실나루터 건너편의 옥천팜랜드가 보일 것이라 기대했는데 길이 굽어 볼 수 없었습니다. 길가에 더러 낚시하러 들어온 차량들을 볼 수 있었지만, 오가는 차량들이 별로 없는데다 길바닥이 울퉁불퉁해 차들이 서행을 해서인지 먼지를 뒤집어쓰는 일은 없었습니다. 연주리에서 11시40분에 출발하는 옥천행 버스를 타려면 이제 돌아가야겠다고 했는데, 마침 집한 채가 보여 다가가본즉 강변을 따라 낸 찻길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산위로 나있는 길은 가까운 마을 안피실까지만 이어졌는데 시간이 없어 가보지 못하고 연주리로 되돌아갔습니다.
12시가 다되어 연주리 버스정류장에 이르렀습니다. 안피실입구에서 연주리정류장으로 돌아가는 길이 한결 짧게 느껴진 것은 사진을 거의 찍지 않아서였습니다. 돌아갈 때 찍은 사진은 초미니 배를 혼자 타고 강에서 낚시를 하는 분을 보고 진풍경이다 싶어 카메라에 옮겨 담은 것 등 몇 장 되지 않습니다. 저는 이제껏 배를 타고 하는 낚시는 바다낚시뿐이라고 알고 있어, 강에서 배를 타고 낚시질을 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안남초교정류장에서 기다린 버스가 11시40분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아 연주리 정류장으로 돌아가 알아본즉, 그 버스는 벌써 떠났고, 다음 버스는 13시에 출발한다 했습니다. 정류장 옆 제과점에서 냉커피를 사 마시며 1시간 가까이 기다렸다가 13시에 출발하는 옥천행 버스를 타고 장계리로 이동했습니다.
2.두 번째 코스
안남면의 연주리에서 장계리정류장까지는 10분이 채 안 걸렸습니다. 인포교에서 장계교까지 펼쳐진 금강은 대청댐이 가까워 수량도 많고 경관도 아름다웠습니다.
13시8분 장계리 정류장을 출발했습니다. 지난번에는 옥천선사공원에서 금강 좌안에 설치한 데크 길의 향수호수길을 따라 북쪽으로 진행해 황새터에 이르렀는데, 낙석이 위험하다며 주막마을까지 통행을 금지해 별 수 없이 옥천선사공원으로 되돌아가야 했습니다. 이번에는 주막마을 찾아가 금강 길을 이어가고자 장계리를 출발한 것이어서, 사진은 주막마을에서 장계리로 되돌아올 때 찍기로 하고 오직 걷는 것에만 주력했습니다. 장계대교를 다리 아래로 지나자 새파란 금강이 눈앞에 시원스레 펼쳐져 가슴이 탁 트이는 듯 했습니다. 강변 레스토랑 ‘뿌리깊은 나무’를 지나자 길은 산 쪽으로 이어졌습니다. 나지막한 고개를 몇 번 넘어 주막마을에 다다라, “길 없음! 돌아가세요.”라는 글이 실린 안내판을 보았습니다. 지난 2월22일에 시작된 낙석의 위험을 제거하는 「향수호수길 기반조성공사」 가 플래카드에 적힌 대로 오는 7월10일에 끝난다면 가을쯤에 다시 와 건너뛴 황새터-주막마을‘구간을 걸을 뜻입니다. 주막마을 바로 아래 강변으로 내려가 강물로 두 손을 씻는 것으로써 금강에 대한 인사를 가름했습니다.
14시35분 주막마을을 출발했습니다. 기온이 섭씨10도를 윗돌아 걷기에 좋았습니다. 산자락으로 이어지는 차도는 아스팔트로 포장 된지 얼마 안 된 새 길로, 중간에 하얀 분리선이 그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새로 포장된 이 길로 다니는 차들이 별로 없어 봄이 찾아온 산골마을이 조용하다 못해 적막했습니다. 이 달 들어 한낮의 기온이 영상10도선에서 머물러 여기저기서 풀들이 파릇파릇 돋아났는데, 그래도 자연에 활기를 부여하는 것은 봄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야산에 드문드문 피어 있는 연분홍의 진달래와 샛노란 생강나무 꽃들은 물론, 길가에 핀 야생화들 모두 가장 부지런한 봄의 전령들입니다. 강가 언덕위에 자리하고 있는 주황색 지붕의 하얀 건물이 산뜻하게 보이는 것은 봄이 찾아와서입니다. 똑 같은 건물을 강물이 꽁꽁 얼어붙은 겨울에 보았다면 썰렁하게 보였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 레스토랑을 지나서부터는 길이 강변에 가까이 나 있어 사진 찍기에 바빴습니다. 봄을 맞아 활기를 되찾은 것은 자연만이 아니었습니다. 쾌속선을 타고 파란 금강을 가르며 질주하는 유람객들을 바라보자, 제가 다 젊음을 되찾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장수 발원지에서 여기에 이르기까지 쾌속선이 금강 위를 질주하는 것은 오대리선착장과 여기 장계에서 단 두 차례 보았을 뿐입니다. 장계대교를 얼마 앞둔 지점에서 길가 펜스에 걸려 있는 ‘비실이 부부’ 표지리본을 보자 엄청 반가웠습니다. 백두대간과 9정맥을 종주할 때 자주 보았던 이들 부부의 리본을 강줄기를 걸으며 다시 보리라 생각지 못했는데, 이분들 역시 저처럼 강줄기를 따라 걷는 것 같습니다.
16시9분 장계관광지에 도착했습니다. 장계대교를 지나 다다른 장계리정류장에서 장계교를 사진 찍은 후 곧바로 장계관광지로 향한 것은 주막마을에서 따라 걸은 금강이 장계교를 지나 장계관광지에서 왼쪽으로 꺾어 남서쪽으로 흘러내려가서입니다. 10분을 채 못 걸어 장계관광지에 도착해 먼저 들른 곳은 옥천 향토전시관입니다. 이 지역의 고대 유물이 전시된 이 전시관에서 눈을 끈 것은 옥천의 인물소개였습니다. 김문기(金文起, 1409-1456), 조헌(趙憲, 1544-1592)과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은 조선시대의 문신이고, 정지용(鄭芝溶, 1902- ?)은 한국전쟁 때 납북된 시인으로 언제 사망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사육신과 함께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죽임을 당한 김문기,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왜군과 맞서 싸우다 순절한 조헌, 북진론을 주창한 유학의 대가 송시열, 그리고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등의 청록파시인들을 등단시켰으며, 요즘도 널리 애창되는 국민가요 ‘향수’의 가사를 시로 지은 시인 정지용 외에 기억해야 할 또 한 분은 육영수(陸英修, 1925-1974) 여사입니다. 향토전시관은 네 분보다 더 많은 관련자료들을 전시해 육영수여사를 기렸습니다. 제가 육영수여사를 직접 뵌 것은 대학 다닐 때 딱 한 번 있었습니다. 1971년5월15일 영부인인 육영수여사께서 영애 박근혜양을 데리고 박정희 대통령이 지어준 대학교 기숙사 ‘정영사(正英舍)를 찾아와 사생들을 격려해준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저도 그 기숙사 사생이어서 모임에 참석해 가까이에서 뵐 수 있었습니다. 향토전시관을 나와 산책길을 걸으며 도도히 흐르는 금강을 지켜보았습니다.
17시31분 소정휴게소에서 17번째 금강탐방을 마쳤습니다. 금강을 따라 걷는 수려한 강변길이 보여 카카오맵을 확인해본 즉 중간에 길이 끊겨 저 길을 따라가서는 소정휴게소까지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다시 장계리정류장으로 돌아가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왕복2차선의 37번 도로를 따라 걷다가 고개를 넘어 왕복4차선의 4번도로로 올라섰습니다. 도로 오른 쪽으로 바짝 붙어 15분 남짓 걸어 다시 왕복2차선의 37번 도로로 내려서기까지 혹시라도 길 위의 작은 돌이 튀어 날아오지 않을까 걱정되어 긴장을 풀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좋았던 것은 저만치 앞쪽으로 보이는 넓은 금강의 수면이 석양에 조사되는 흔치 않은 경관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안온해짐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소정휴게소를 막 지나 다다른 소정정류장에서 옥천으로 들어가는 버스에 올라 하루 여정을 모두 마무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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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류하천은 옛날에는 사행천(蛇行川)으로 불렸습니다. 강물이 뱀이 기어가는 것처럼 요리 구불 조리 구불 흐른다하여 사행천이라 부른 것입니다. 사행천을 곡류로 바꾼 것은 뱀이 갖고 있는 부정적 이미지 때문이라 합니다.
이름을 잘 짓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2차 대전 때 영국에서 있었던 일화를 대학영어 교재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독일의 공습으로 부상자가 부쩍 늘어나자 이들을 복도에 수용해 치료를 한 적이 있습니다. 런던의 언론들이 어찌 대영제국의 이른바 국군통합병원(?)이 아무리 전쟁 중이라 하더라도 복도에서 치료를 할 수 있느냐며 비난을 퍼부었다고 합니다. 병원장은 고심 끝에 국군통합병원을 야전병원으로 고쳐 발표했는데, 이때부터 야전병원이라면 문제될 것이 없다면서 비난을 중단했다고 합니다. 바뀐 것은 병원의 이름뿐인데 런던의 언론은 비난을 멈춘 것입니다. 병원 간판의 변경이 인식의 변화를 가져온 결과라 하겠습니다.
강물이 구불구불 흐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 자연스러운 물 흐름을 뱀의 몸동작에 비유해 이름을 지은 것은 잘한 일은 아닌 듯싶습니다. 곡류는 부드러움을 연상시키지만 사행천 하면 징그러움이 연상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우리의 뿌리 깊은 인식 때문일 것입니다.
<탐방사진>
1)첫 번째 코스 : 연주리-안피실입구-연주리
2)두 번째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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