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강줄기 따라걷기/낙동강 따라 걷기

낙동강 따라 걷기 4(승부역-양원역-분천역)

시인마뇽 2022. 11. 28. 16:17

탐방구간: 승부역-양원역-분천역

탐방일자: 2022. 11. 21()

탐방코스: 양원역-출렁다리-승부역-배바위고개-비동마을-분천역

탐방시간: 924-1645(7시간21)

동행 : 나 홀로

 

 

  주마간산(走馬看山)이란 말을 타고 달리며 산천을 구경한다는 뜻으로, 자세히 살피지 아니하고 대충대충 보고 지나감을 이릅니다. 이런 사자성어가 요즘도 쓰이는 것은 옛날에는 가장 빠른 이동수단이 말이어서가 아닌가 합니다. 말이 아니고 소였다면 주마간산(走馬看山) 대신 주우간산(走牛看山)으로 바뀌어 쓰였을 테니 말입니다. 그래서 말이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 궁금했습니다. 말 중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말은 하루에 천리를 간다는 천리마일 것입니다. 천리마가 하루에 24시간을 달려 천리, 400Km를 갔다면 천리마의 주행 속도는 시속17Km가 조금 못되고, 12시간에 천리를 갔다면 시속33Km를 조금 넘습니다. 하루에 8시간 달려 천리를 갔다고 치더라도 천리마의 빠르기는시속 50Km 밖에 안 되어 시골 길을 시속60Km로 서행하는 자동차를 따라잡지 못합니다. 천리마가 달리는 속도가 이러할 진데 보통 말은 아무리 빨리 달린들 시속 20Km가 안 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철도청이 자랑하는 관광열차 중 으뜸가는 것은 단연 백두대간협곡열차 V-train일 것입니다. 백두대간협곡열차는 경상북도의 영주역에서 강원도의 태백역을 달리는 관광열차로 하루 세 번 밖에 운행하지 않습니다. 영주에서 태백에 이르는 구간 중 백미는 낙동강의 물 흐름을 가까이에서 조망할 수 있는 철암-석포-승부-양원-분천까지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구간을 지나는 백두대간협곡열차의 속도는 시속30Km 정도 밖에 안 되어 주변경관을 차분하게 구경할 수 있습니다. 한 시간에 33Km를 달리는 천리마를 타고 산천을 구경하는 일이 시속30Km로 서행하는 백두대간협곡열차를 타고 보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것은 속도 때문만이 아닙니다. 승객들이 기차를 타고 편히 주변경관을 완상할 수 있는 것은 철마를 운전하는 기사분이 따로 있어서입니다. 주마간산하면서는 듬성듬성 볼 수밖에 없는 것은 구경에 한눈을 팔다가는 낙마하기 십상이어서 그러했을 것입니다. 힘깨나 쓰는 조선의 사대부들이 여행을 떠날 때 말몰이를 견마자비에 맡긴 것은 보다 편히 구경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다가오는 겨울보다 한 발 앞서 철암에서 멀지 않은 구문소에서 분천에 이르는 구간을 두 번으로 나누어 걸었습니다. 이틀 전에는 구문소-석포역-승부역 구간을 낙동강을 거슬러 역순으로 걸었고, 이번에는 승부역-양원역-분천역 구간을 영원역-승부역-배바위고개-비동마을-분천역 순으로 강 길도 걸었고, 산길도 걸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구문소-승부역-분천역 구간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백두대간협곡열차가 저를 철암역, 승부역, 양원역과 분천역에 내려주고 또 태워줘서 가능했습니다. 조선의 사대부들이 견마자비의 도움으로 명승지를 제대로 구경할 수 있었다면, 저는 철도기사 분들이 천리마보다 훨씬 큰 철마를 잘 구슬려 운행해준 덕분에 백두대간협곡을 속속들이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조선시대라면 웬만한 고관들도 가보기 힘든 백두대간 협곡을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여행하도록 교통편을 제공해준 철도청에 감사의 뜻을 표하고자 합니다.

 

....................................................................................................................................

 

  이번에 제가 걸은 구간은 낙동강하늘세평길로 널리 알려진 승부역-양원역-분천역 구간입니다. 봉화군에서 중대재해예방을 위해 비동역 교측보도를 통제함에 따라 202286일부터 우회 트레킹로를 개설할 때까지 낙동강세평하늘길의 일부구간(비동역-양원역)을 폐쇄해 승부역-양원역-비동역-분천역을 잇는 약12km의 낙동강세평하늘길을 온전히 따라 걸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우회 트레킹로가 개통될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 없어 폐쇄구간은 산길로 돌아가는 것으로 코스를 수정해서 탐방 길에 나섰습니다. 양원역에서 하차해 승부역까지는 낙동강을 따라 세평하늘길을 걷고 승부역에서 비동마을까지는 배바위고개를 넘는 산길로 낙동정맥트레일 길을 걸은 다음 비동마을에서 분천역까지는 다시 세평하늘길을 따라 걷는 것으로써 낙동강세평하늘길 탐방을 갈음했습니다.

 

  새벽 440분경에 산본 집을 나서 서빙고역까지 택시로 이동했습니다. 서빙고역에서 전철을 타고 이동해 청량리역에서 아침 6시에 영주로 출발하는 ktx이음차로 바꿔 탔습니다. 한 시간 쯤 달려 도착한 영주역에서 영동선 열차로 갈아타 분천역을 지난 후 첫 정차역인 무인역의 양원역에서 하차했습니다. 산골오지인 경북봉화군의 원곡마을과 울진군의 원곡마을에 사는 주민들이 대통령께 탄원해 지은 간이역사가 바로 여기 양원(兩院)역이라는 것은 철로 변에 세워진 안내판을 보고 알았습니다. 겉보기에 깔끔한 양원역 대합실은 벽면에 부착된 양원역 기적영화촬영지안내 포스터의 색이 다 바랜 것으로 보아 폐쇄된 지가 오래된 것 같습니다.

 

  924분 양원역을 출발해 5.6Km 떨어진 승부역으로 향했습니다. 함께 내린 60(?) 부부를 뒤로 하고 철 계단을 내려가 데크 길로 들어서는 것으로써 낙동강세평하늘길 탐방을 시작했습니다. 몇 분간 데크 길을 걷다가 시멘트 길로 내려섰습니다. 이 길도 길지 않아 수 분 후 한갓진 강변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다시 급경사의 데크계단을 걸어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가 피암터널 아래에 낸 시멘트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얼마 안 지나 강변의 깎아지른 암벽의 허리에 낸 데크 길을 통과했습니다. 다시 내려가 시멘트 길을 얼마간 걸은 후 강변 숲길로 들어서는 등 여러 번 다른 형태의 길을 바꿔 걸은 것은 제가 걷는 낙동강 강변이 지형 상으로 길을 내기가 그만큼 힘든 곳이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봉화군 등 관계당국이 이런 오지에 세평하늘길을 내 준 덕분에 큰비가 내리거나 눈이 많이 내리는 날만 피한다면 오지를 굽이굽이 흐르는 낙동강을 안심하고 따라 걸을 수 있습니다. 탐방 길은 강변의 갈대밭을 지나 소나무밭으로 이어졌습니다.

 

  시멘트 길과 솔밭 길을 바꿔 걸으면서 틈틈이 오른 쪽의 낙동강의 물 흐름을 카메라에 옮겨 담은 것은 사방을 둘러보아도 집 한 채 보이지 않는 오지의 빼어난 산수를 언제 어디서 다시 볼 수 있으랴 싶어서였습니다. 굽이쳐 흐르는 맑은 강물, 강물이 흐름을 멈춘 진초록의 깊은 소(), 강가의 희뿌연 넓적바위와 유수(流水)의 침식작용으로 형성된 강변 바위의 돌개구멍(pothole), 강 양쪽의 깎아지른 절벽 등이 어우러져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세평하늘길의 비경을 주마간산하듯 스쳐보는 것이 아니고 바로 옆에서 천천히 완상하며 걸을 수 있는 것은 아직은 제 두 다리가 튼튼한 덕분입니다. 정적을 깨는 기차 소리조차 정겨운 세평하늘길을 걸으면서 단풍철이 이미 지나 더욱 돋보이는 진홍색의 단풍잎들을 사진 찍었습니다. 데크 길로 에돌아 설홍선녀와 남달의 애달픈 전설이 전해지는 연인봉과 선약소의 전망처에 이르렀습니다. 낙동강세평하늘길의 12선경(仙境) 5경으로 꼽히는 연인봉과 선약소 중 선약소는 바로 아래 진청색의 소 같은데 연인봉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1017분 출렁다리를 건넜습니다. 연인봉과 선약소 전망처에서 5분을 더 걸어 출렁다리를 건넜습니다. 출렁다리를 건너 이어지는 갈대 숲길 역시 길지 않았습니다. 시멘트 길을 지나 데크 길을 걸어가던 중 승부역에서 하차해 양원역으로 진행하는 여러 분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이 길을 지나며 구경한 세평하늘길의 12선경은 구암(龜巖)이었습니다. 거북의 형상을 한 이 바위에 얽힌 설화가 앞서 지나온 연인봉과 선약소의 전설에 등장하는 설홍선녀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두꺼비로 달에서 살았다 하여 월섬(月蟾)으로도 불리는 거북은 가끔 선계로 유람을 다니며 선녀들을 놀라게 하는 등 장난도 잘 쳤다 합니다. 어느 날 신선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설홍선녀를 꾀어 인간세상으로 보내는 죄를 저질러 거북바위가 되어 이 세상에 남게 된 거북은 자신이 살던 달과 선계를 잊지 못해 곤륜산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전설의 주된 내용입니다. 이 전설 덕분에 거북바위가 바라보는 것을 보고 이역만리 중국에 자리한 곤륜산이 어느 방향에 있는가를 알았습니다. 데크 길을 지나 흙길을 걷다가 모래사장을 들러 강물로 손을 씻는 것으로써 낙동강과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모래사장에서 잠시 쉬면서 떠올린 것은 소월 김정식선생의 엄마야 누나야라는 시()였습니다. 소월 선생께서 엄마와 누나랑 함께 살고자 했던 강변은 이처럼 벽지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소월선생께서 어린 시절을 친구 하나 없이 살아야 하는 이런 벽지의 강변에서 살자고 엄마와 누나를 조르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낙엽이 소북이 쌓인 길을 막 지나 세월교를 건넜습니다. 양원역을 출발해 줄곧 낙동강 좌안에 낸 길만 걷다가 이번 탐방 처음으로 세월교로 낙동강을 건너며 냉기가 가신 강바람의 감미로운 감촉을 느꼈습니다.

 

  1125분 승부역에 도착했습니다. 세월교를 건너 낙동강 우안의 시멘트 도로를 따라 북진했습니다. 터널로 이어지는 강 위의 철로에서 일을 하는 분들을 올려다보고 비로소 알게 된 것은 철로에 붙어 있는 초록색 통로가 바로 이분들을 위해 낸 작업통로라는 것이었습니다. 철로를 그 아래로 지나자 승부역이 바로 앞에 보였습니다. 천애의 절벽 아래 자리한 소()가 양원역-승부역 구간의 마지막 비경이다 싶어 잠시 멈춰 서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어묵 국물로 속을 데우고자 승부역으로 올라갔으나 평일이어서인지 장사를 하지 않아 허탕을 쳤습니다. 지난번에 사진만 찍었던 진홍색의 승부현수교를 건너 소공원으로 이동했습니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와 호랑이의 조형물이 들어선 소공원에서 점심을 들면서 이번 탐방 처음으로 편히 쉬었습니다.

 

  강 건너 승부역 뒤쪽의 집 두 채가 보여 반가웠습니다. 강 길을 따라 6Km 가까이 걸으면서 민가를 한 채도 만나보지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금강을 따라 걸으면서 오지를 몇 곳 지난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긴 거리는 아니었습니다. 낙동강세평하늘길이 고유브랜드로 자리 잡는데 민가가 보이지 않는 오지라는 것이 보탬이 될 것 같습니다. 좀처럼 다시 찾아오기 어려운 강 건너 승부역을 뒤로하고, 소공원을 출발해 낙동정맥트레일 제2구간에 발을 들였습니다. 승부역-배바위고개-비동마을-분천역을 이어 걷는 2구간은 전장이 약10Km로 산길과 강 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승부역에서 비동마을로 내려가는 5.2Km의 길은 배바위고개를 넘는 산길이고, 비동마을에서 분천역까지 4.7Km의 길은 낙동강을 따라 걷는 강 길입니다.

 

  3년 전 갑자기 나 홀로 산행이 두렵다는 생각이 든 후, 혼자서 산으로 오르는 것은 집근처 산에 국한했습니다. 대신에 국내 6대강 탐방에 나서 그간 꾸준히 강줄기를 따라 걸었습니다. 전장 223km의 섬진강, 전장150Km의 영산강은 발원지에서 강 하구까지 다 걸었고, 전장254Km의 임진강은 강 하구에서 시작해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다 연천에서 중단하고 통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남한 땅의 임진강 따라 걷기를 마치고, 요즘은 금강 따라 걷기에 주력해 전장 401Km 300km를 조금 더 걸었습니다. 전장 482Km의 한강은 80Km 가량 걸었으며, 전장523Km의 낙동강은 약70Km를 걸었습니다. 이번 배바위산 등산은 3년 만에 처음 해보는 나 홀로 산행이어서 긴장도 되고 설레기도 했습니다.

 

  1312분 배바위고개에 올라섰습니다. 1155분에 소공원을 출발해 곧 바로 무지개 모양의 데크다리를 건너는 것으로써 배바위산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인터넷에서 이 산을 먼저 오른 분들의 산행기를 검색해 읽어보고, 개념도도 찾아 제 지형도에 등산로를 그려보는 등 사전에 인도어 크라이밍(indoor climbing)을 철저히 해서인지 다리를 건너 골짜기를 따라 걸어 오르면서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旣視感) 마저 들었습니다. 철이 늦어 만장홍엽의 단풍제전은 지켜볼 수 없었지만, 혼자서 산을 오르는 저를 따뜻이 품어주는 고산의 듬직함이 느껴지는 것은 1대간9정맥을 혼자서 종주할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계곡을 따라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생각보다 넓다 했는데 이 길은 벌목한 목재를 실어 나르기 위해 만든 산판 길이었다고 합니다. 바닥을 완전히 가린 낙엽들을 밟으며 박동감이 느껴지는 계곡 물소리를 듣노라니 오래 숨겨두었던 등산에 대한 욕심이 되살아났습니다. 여기 저기 널찍한 바위 위에 소북이 쌓인 낙엽들을 보노라니 단풍철을 놓친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산행시작 40분이 채 안 지나 평상이 놓인 승부역 1.7Km/배바위고개 1.1Km’ 지점에 다다랐습니다. 이런 속도라면 오후 5시 이전에 분천역에 도착할 것 같아 마음이 놓였습니다. 곳곳에 세워진 안내판의 글을 읽으며 알게 된 것은 이 일대가 화전민들이 밭을 일궈 살던 곳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뽕나무가 많아 이름 붙여진 뽕나무 골에서 살던 화전민들이 완전히 이 산을 떠난 것은 1975년 화전정리 5개년 계획에 의거한 것이라 하니 그리 오래 전의 일도 아닙니다. 산행 시작 1 시간 쯤 지나 경사가 완만한 계곡 길이 끝나고 된비알의 통나무 계단 길이 시작됐습니다. 쉬지 않고 걸어 십 수분 만에 올라선 해발808m의 배바위고개는 1968년 울진으로 침투한 북한의 공비들이 퇴각할 때 넘은 고개입니다.

 

  1513분 비동마을 앞 세월교 앞에 다다랐습니다. 배바위고개에 오르자 왼쪽으로 0.7Km 가량 떨어진 해발968m의 배바위산 정상을 다녀오겠다는 욕심이 동했습니다. 배바위산 정상을 오르는 길은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아서인지 낙엽이 길을 덮어 가파른 비알 길은 스틱의 도움을 받아 올랐습니다. 오름 길에 강 건너 높은 산에 자리한 풍력발전기를 보았습니다. 풍력발전기가 서있는 산줄기는 낙동정맥이 틀림없는데, 산은 10년 전 낙동정맥을 종주할 때 안개 속에 길을 잃고 풍력발전단지를 헤맸던 맹동산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나지막한 봉우리 몇 개를 넘어 제법 높은 봉우리에 올라서자 건너편으로 배바위산 정상이 아주 가깝게 보였습니다. 문제는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지나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정상으로 올라서야 하는데 다가가 내리막길을 보고나자 겁이 덜컥 났습니다. 몇 년 전이라면 이런 정도의 내리막길이 위험하다고 피하지 않았겠지만 70대를 훌쩍 넘기고 보니 혹시라도 넘어지거나 미끄러져 다친다면 큰일이라는 두려움이 앞서 결국 포기하고 배바위고개로 돌아갔습니다. 배바위 고개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저 또한 세월을 비껴갈 수 없음을 확인하고 나자 고려시대의 문신인 우탁(禹倬. 1262-13420) 선생께서 탄노가(嘆老歌)를 지어 노래한 심사를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배바위고개에서 비동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통나무계단으로 이어졌습니다.  쉼터에서 더 내려가 사람의 혼을 빼먹었다는 요망한 도깨비들을 퇴치한 엄나무 한 그루를 사진 찍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인 1963년 초여름날 밤에 친구와 함께 비를 맞으며 논둑길을 걷다가 뭔가 켕겨 뒤를 돌아보고 하얀 소복을 한 여인이 뒤따라오는 것을 목도한 일이 있었습니다. 제 평생 딱 한번 귀신에 홀린 사건으로, 그때도 귀신에 홀렸다고 생각한 것은 어쩌다 차가 지나면서 라이트를 비치면 소복한 여인이 감쪽같이 사라지곤 해서였습니다. 진작 알았더라면 엄나무 가지를 꺾어 다닐 걸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산길은 하얀 회벽의 기와집 앞에서 끝이 났고, 이 집에서 비동마을을 지나 낙동강을 다시 만나는 비동삼거리의 세월교까지는 넓은 길로 이어졌습니다.

 

  1645분 분천역에 도착해 낙동강 따라 걷기의 4구간 탐방을 매듭지었습니다. 다시 만난 낙동강을 건넌 것은 비동역을 들르기 위해서였습니다. 세월교를 건너 북쪽으로 이어지는 낙동강세평하늘길은 시멘트로 포장되어 소형승용차는 다닐 만큼 넓어 보였습니다. 세월교를 건너 10분가량 북진하자 일부구간 폐쇄를 안내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어 비동역을 들르지 못하고 비동삼거리로 되돌아갔습니다. 비동삼거리에서 3.7Km 거리의 분천역으로 이어지는 강변길은 양원-승부 간의 길처럼 오지에 낸 도보길이 아니고 왕복2차선의 차도여서 차량들이 자주 눈에 띄었습니다. 공사장을 지나 송림 앞 와유곡을 가까이에서 지켜 본 후 세월교를 건너 언덕으로 올라섬으로써 낙동강과는 조금씩 멀어졌습니다. 분천역에 도착해 잠시 쉬자 어둠이 분격적으로 깔리기 시작해 바로 어두워졌습니다. 길 건너 슈퍼에서 맥주 한 캔을 사서 마신 후 분천역에 조성된 분천산타마을의 크리스마스 조형물들을 구경했습니다. 우리나라 분천역과 스위스의 체르마트역이 자매결연을 체결하고 2014년 국내 최초로 산타마을을 개장한 덕분에 제가 이곳에서 젊은 시절 친구들과 밤새워 보냈던 크리스마스이브를 어렴풋이나마 회상할 수 있었습니다.

 

  1744분에 분천역을 출발하는 영동선 열차에 탑승해 아침에 내려온 역순으로 올라가 215분에 청량리역에 도착했습니다. 새벽440분에 산본 집을 출발해 다시 돌아온 시각이 1030분경이었으니 낙동강세평하늘길 트레일에 소요된 총 시간은 18시간이 거의 다 됩니다.

 

....................................................................................................................................

 

  낙동강한테 한 가운데 물길을 내준 백두대간협곡의 양쪽 산들은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산들은 높은 편이 아니지만 강 흐름이 양쪽 산 사이를 구불구불 굽이쳐 흐르는 전형적인 감입곡류(嵌入曲流)인데다, 강에 면한 산사면(山斜面)이 대부분 천애의 깎아지른 절벽이어서 강을 따라 길을 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강을 따라 철로를 내지 못하고 수많은 터널을 뚫어야 했던 것도 이 일대를 지나는 낙동강의 물 흐름이 감입곡류 때문이라는 것을 이번에 비로소 알았습니다.

 

깊은 산속 오지에 강물이 굽이쳐 흐르면서 만들어진 소()와 깎아지른 절벽이 만나면 비경(秘境)이 빚어집니다. 이런 비경이 몇 곳 이어지면 승지(勝地)가 되고 이런 승지를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되면 명승지(名勝地)가 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승지가 명승지가 되려면 접근이 용이해야 하는데 낙동강세평하늘길은 교통이 불편해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출입이 통제된 양원역-비동역 구간이 재개통되면 친구들과 다시 한 번 찾아가 걸어볼 생각입니다. 인문학에 기초한 스토리텔링이 덧붙여진다면 승지가 보다 수월하게 명승지로 바뀔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어, 가능하다면 내년에는 글 잘 쓰는 친구들을 대동해 걸어보고자 합니다.

 

 

<탐방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