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강줄기 따라걷기/낙동강 따라 걷기

낙동강 따라 걷기5(분천역-적광사-현동역)

시인마뇽 2023. 5. 1. 09:35

탐방구간: 분천역-적광사-현동역

탐방일자: 2023. 4. 17

탐방코스: 현동역-2현동교-적광사-도호성 건물-풍애마을-풍애1-분천역

탐방시간: 1319-1720

동행 : 서울사대 원영환, 이상훈, 우명길 동문

 

 

  오지(奧地) 중의 오지인 경상북도 봉화군의 현동역으로 두 번이나 저를 불러낸 것은 우리의 산하(山河)인 낙동정맥과 낙동강입니다.

 

  2012123일 겨울밤에 처음으로 저를 혼자 현동역으로 불러낸 것은 낙동정맥이었습니다. 눈이 펄펄 내리는 밤에 현동역에서 하차해 택시를 불러 현동시내로 옮겨 하룻밤을 묵은 후 들머리인 애미랑재로 이동해 낙동정맥에 발을 들였습니다.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통고산을 올라 조망한 낙동정맥은 산줄기가 장대해,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습니다. 날머리인 답운치에 도착해 산행을 접기까지 7시간 넘게 삭풍을 이겨내며 걸었던 일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2년 후인 2014년 여름 낙동정맥 종주를 마침으로써 낙동강에 물을 대주는 둘레산줄기를 완주했습니다. 낙동강을 둘러싸고 있는 둘레산줄기는 동쪽 울타리인 낙동정맥과 서쪽 울타리인 백두대간, 그리고 남쪽 울타리인 낙남정맥을 이은 산줄기로 그 전장은 장장 1,150Km 가량 됩니다.

 

  2023417일 봄비가 내리는 한 낮에 두 친구들과 함께 현동역을 찾아간 것은 낙동강 따라 걷기를 이어가기 위해서였습니다. 낙동강을 둘러싸고 있는 둘레산줄기를 다 걸은 후 다음 수순은 이 둘레산줄기로부터 물을 받아 남해로 흘러내려가는 낙동강을 따라 걷는 것이었기에 두 번째로 저를 현동역으로 불러낸 것은 낙동정맥이 아닌 낙동강이었습니다. 제가 낙동강의 강줄기를 따라 걷기 시작한 것은 작년 10월로 이 강의 둘레산줄기를 완주하고 난 후 8년이 지나서입니다. 지난해 10월 낙동강의 발원지로 알려진 함백산의 너덜샘에서 낙동강 따라 걷기를 시작해 경북 봉화의 분천역에 이르기까지 네 구간으로 나누어 걸었습니다. 이번에 다섯 달 만에 낙동강을 따라 걸은 것은 남한 땅에서 가장 추운 지방으로 알려진 봉화 땅에 혹한의 겨울이 물러나고 따뜻한 봄이 오기를 기다려 재개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탐방에 길벗으로 동행한 두 친구는 서울사대 동기들로 섬진강과 금강도 한 두 구간을 같이 걸은 바 있는 산 친구이자 강 친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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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탐방의 출발지인 영동선의 현동역으로 가는 길은 멀었습니다. 평창역에서 두 친구를 만나 이상훈 교수 차로 현동역으로 향한 것은 오전 10시가 조금 못되어서입니다. 영월을 거쳐 현동으로 넘어 가는 고개에서 잠시 쉰 후 내내 달렸는데 현동역까지는 거의 세 시간이 걸려 1246분에 도착했습니다.

 

   「가 있는 현동 무인역의 역사 안에서 눈길을 끈 것은 이 역을 다녀간 여행객들의 이야기들이 적혀 있는  메모지들을 다닥다닥 붙여놓은 길을 걷는 사람들의 이야기코너와 용무가 있으신 분은 춘양역(2607)으로 연락주시기 바란다는 쪽지와 함께 놓인 백색의 전화기였습니다. 비를 피해 역사 안으로 들어가 가져간 점심을 꺼내 든 후 이 역을 지나는 영동선 철로를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1319분 현동역을 출발했습니다. 부슬부슬 내리던 봄비가 그쳐 현동역을 출발해 분천역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낙동강의 물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처음 건넌 다리는 세월교인 현동교로, 그 옆에 큰 비가 와도 물이 넘치지 않는 큰 다리로 새로 놓는 교량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어서 주위가 어수선했습니다. 두 번째 세월교인 현동2교를 건너 삼거리에서 풍애마을로 이어지는 직진 길을 버리고 오른 쪽으로 꺾어 헬기장을 지났습니다. 골짜기를 덮고 있던 구름이 채 가시지 않아 더욱 그윽해 보이는 먼발치의 산골짜기를 바라보며 낙동강을 따라 걸어가다 세 번째 세월교를 건넜습니다. 송림을 지나 강변에 면해 있는 우뚝 선 삼각바위의 맨 꼭대기에 뿌리박은 소나무를 올려다보면서 소나무의 고절(孤節)함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감탄했습니다.

 

  1421분 적광사(寂光寺)를 들렀습니다. 강안(江岸)에 자리한 바위가 소나무와 손잡고 빚어낸 비경에 감탄하면서 낙동강을 따라 걷다가 잠시 길에서 벗어나 적광사를 둘러보았습니다. 대웅전인 대적광전과 요사체, 그리고 삼층석탑이 전부인 자그마한 이 절은 단청이 선명한 것으로 보아 오래된 절 같지는 않았습니다. 적광사를 출발한지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이번 탐방의 마지막 세월교인 네 번째 다리를 건넜습니다. 소수력발전소취수보를 지나 오로지 전설로만 남아 있는 도호왕국의 옛 성문을 재현한 도호성의 모형 성문 앞에 이르렀습니다. 이 성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서서 여기 도호마을에서 서쪽 춘양면까지 이어지는 오지를 지배했던 고대 부족국가의 작은 왕국인 소라국이 과연 어떤 나라였을까 상상해보았습니다. 잡목이 우거져 흔적이 잘 보이지 않는 마지막 민가 옆 제방을 지나 정자에서 잠시 쉬면서 안개가 옅게 낀 강 건너 마을을 조망했습니다. 제가 시인 김소월의 강변 살자라는 애송시를 떠올린 것은 이제는 강변에 같이 살자고 졸라댈 엄마나 누나를 오지의 강변마을에서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1549분 풍애마을로 내려섰습니다. 제방 끝 정자를 출발해 커다란 바위 밑으로 길이 나 있는 희미한 산길로 낙동강을 따라 걷다가 비를 맞아 한결 맑아 보이는 아기붓꽃의 활짝 핀 모습을 사진 찍었습니다. 이내 데크 길로 다가가 엄청 가파른 계단을 조심해 올라 표고를 150m가량 높이자 오름 길이 끝났습니다. 이제 힘든 길은 끝났다 싶어 잠시 쉬었다가 풍애마을로 내려가자 이 마을 첫 집의 견공 두 마리는 저희가 반가운 듯 잠시 짖다가 이내 멈췄습니다. 앞서 지나온 두 번째 세월교와 풍애마을을 이어주는 우회 길을 만나 그 길로 내려갔습니다. 반듯한 폐가를 지나고 마을을 조금 벗어나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자 저희가 걸어 올라간 데크 길 아래로 영동선이 지나는 터널이 뚫려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길가에 활짝 핀  배꽃을 보고 올 과수농사는 잘 될 것이다 생각했는데, 기대와는 달리 이 마을의 한 분은 며칠 전 급작스런 추위로 냉해를 크게 입었다고 올 과수농사를 걱정했습니다.

 

  1710분 분천역에 도착했습니다. 풍애건널목을 건너 낙동강 위에 놓인 풍애1교를 건넜습니다. 다리 아래 보가 보이고 조금 멀리로 작년 봄 골지천을 따라 걸을 때 처음 본 피암터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봉화지역을 흐르는 낙동강은 감입곡류가 뚜렷해 낙동강을 따라 낸 영동선은 유난히도 터널이 많고 피암터널도 꽤 여러 곳에 나 있었습니다. 시멘트로 만든 피암터널을 보고 자연경관을 파괴했다고 마냥 비난할 수만은 없는 것은 피암터널(避巖터널, Rock Shield Tunnel)은 철로를 낙석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든 안전시설이기 때문입니다. 분천1교와 분천교를 차례로 건너 분천역에 도착하자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2013년 스위스 체르마트역과 자매결연을 체결한 후 역사를 일부 스위스풍의 외관으로 개조해 산타 도시 분위기를 풍기는 이 역을 다시 찾아 온 것은 다섯 달 만의 일입니다. 저는 이 역에서 20분가량 기다렸다가 기차를 타고 청량리역으로 향했고, 동행한 두 친구는 택시를 불러 현동으로 가서 주차해둔 차로 평창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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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봉화의 무인역인 현동역은 조만간 다시 찾아갈 뜻입니다. 그리해야 이번에 따라 걸은 낙동강을 이어서 걸을 수 있습니다. 봉화의 석포역, 승부역, 양원역, 분천역과 현동역 등이 낙동강과 거의 붙어 있어 그동안 낙동강을 따라 걷기가 한결 수월했습니다. 이 역들 중 승부역, 양원역과 현동역은 역무원이 근무하지 않는 무인역입니다. 이 무인역들은 길을 걷는 사람들의 쉼터이기도 해 이번에 저희는 현동역의 역사 안에다 준비해간 음식들로 자리를 펴고 편안하게 점심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다음에는 현동역으로 내려가 소천면 임기리의 공이재삼거리까지 낙동강을 따라 걸을 계획입니다. 공이재삼거리는 임기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버스나 택시를 이용해 임기역으로 가야 영주행 기차를 탈 수 있습니다. 그 다음 탐방부터는 기차역에서 점점 멀어져 교통편이 불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차만을 이용해 낙동강을 따라 걷는 일은 이번이 마지막이다 싶은 생각이 들자 새삼 현동역이 존재만으로도 고맙기 이를 데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탐방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