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강줄기 따라걷기/황구지천 따라 걷기

황구지천 따라 걷기4(용주사-황계교-세마교)

시인마뇽 2023. 1. 24. 13:45

탐방구간: 용주사-황계교-세마교

탐방일자: 2023. 1. 23()

탐방코스: 용주사-현충공원-황계교-송산교-안녕교-황구지천교-안녕IC 1-세마교

탐방시간: 1343-1649(3시간6)

동행 : 나 홀로

 

 

  황구지천을 따라 걸으면서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것은 이 하천이 지천들의 물을 받아들여 세()를 불려간다는 것입니다. 발원지에서는 졸졸 흐르던 하천물이 하구에 이르러 하해(河海)가 되는 것은 중간에 여러 지천들의 물을 사양하지 않고 받아들여서 가능했을 것입니다. 지난번 기안교에서 서호천의 물을 받아들인 황구지천은 이번에는 황계교에서 수원천과 원천리천의 물을 받아 들였을 뿐만 아니라 서호천, 수원천이나 원천리천보다 그 세가 훨씬 약한 심미천 등의 규모가 아주 작은 지천의 물도 어김없이 받아들였습니다. 하천물이 하구로 내려갈수록 점점 많아지는 것은 아무리 가늘게 흐르는 세류(細流)라 해도 마다않고 모두 받아들여서입니다.

 

  진()나라 국왕(國王) (, 후에 진시황이 됨)이 타국 출신 식객들을 국외로 추방하려고 축객령(逐客令)을 내리자, ()나라 출신의 책사 이사(李斯, ? ~ BC208)는 국왕께 간축객서(諫逐客書)를 올려 축객령의 부당함을  간()합니다.

 

  “태산은 흙덩이를 사양하지 않아 거대함을 이루었고(泰山不辭土壤 故 能成其大), 하해는 가는 물줄기를 사양하지 않아 깊음을 이루었다(河海不擇細流 故 能就其深)”

 

  자기 나라 출신이냐 다른 나라 출신이냐를 따져 인재를 골라 쓴다면 참다운 인재를 구하지 못해 태산이나 하해 같은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룰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위 글은 사마천의 저술 사기(史記)이사열전에 실려 있습니다. 이사야말로 자연의 움직임을 통찰해 삶의 지혜를 터득한  인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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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점역에서 용주사까지는 먼 거리가 아니어서 택시로 이동했습니다. 황구지천을 막 건너 언덕 위에 자리한 정자를 눈여겨 본 것은 이따가  들를 뜻이 있어서였습니다. 지난번 탐방의 끝점인 용주사에 도착해 곧바로 이번 탐방을 시작했습니다. .

 

  1343분 용주사를 출발했습니다. 카카오맵에다 황구지천이 원천리천의 물을 받아들이는 합류점 위에 놓인 다리 황계교를 목적지로 설정해 놓고 이 맵(map)을 보고 황계교 쪽으로 진행했습니다. 안녕삼거리를 지나 그대로 직진하여 현충공원에 도착, 왼쪽 구릉으로 올라가 현충탑을 먼저 들렀습니다. 현충탑에서 가까운 무공수훈자공적비, 6.25참전기념비와 월남전참전기념비 등의 전적비를 사진 찍은 후 아까 본 정자를 들렀습니다. 외관이 깔끔한 것으로 보아 이 정자는 지은 지가 오래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1966년 미국의 존슨대통령이 들렀다 하여 존슨동산으로 명명된 구릉을 현충공원으로 조성하여 앞으로도 이 동산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계속 이어질 것 같습니다. 현충공원에서 내려가 병점으로 이어지는 송산교를 건너갔다가 다시 돌아오면서 물오리들이 떼 지어 쉬고 있는 한가로운 황구지천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송산교 다리 아래로 내려가 북쪽의 황계지교까지는 물 흐름을 거슬러 북진했습니다. 천변 서쪽에 자전거길을 겸한 제방길이 나 있어 걷기에 좋았습니다.

 

  155분 황계교에 다다랐습니다. 제방길을 따라 걸어 화산교를 지나자 북쪽의 황계교가 아주 가깝게 보였습니다. 십수분을 더 걸어 도착한 황계교는 민간인이 북쪽으로 갈 수 있는 끝점으로 다리에 가림막을 해 놓아 북쪽의 황구지천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동쪽의 원천천은 장애물이 없는데 서쪽의 황구지천에는 군부대에서 장애물을 설치해 물 밖이든, 물속이든 황구지천을 따라 북진하는 것은 철저하게 봉쇄되었습니다. 지난 번 되돌아간 군부대 초소에서 여기 황계교까지가 군부대에서 출입을 통제하는 구간인 것 같습니다. 기안교 인근에서  서호천을 받아들인 황구지천은 황계교에 이르기 직전에 광교저수지에서 흘러내려오는 수원천을 받아 들이고, 조금 내려가 바로 옆 동쪽에서 장다리천을 받아들인 원천리천의 물을 받아들인 후  4개의 하천이 하나가 되어 바로 아래 황계교 밑에 설치된 2단계의 보를 지나 남쪽으로 흘러 내려갑니다.  

 

 

  황구지천을 따라 송산교로 되돌아가는 길에 물가에 무리지어 모여 쉬는 물오리들을 눈 여겨 보았습니다. 황구지천의 물오리들이 여기에 다 모여들어 구정을 같이 세는 것이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꽤 많은 물오리들이 한 자리에 모여 쉬고 있었습니다. 청둥오리, 흑색의 오리와 비둘기 색을 한 오리들이 한 장소에 모여 노는 것을 보니 저들은 색깔이 다르다는 이유로 괄시를 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1557분 안녕교를 밑으로 지났습니다. 송산교를 지나자 제법 넓은 갈대밭이 보였습니다. 황계교에서 송산교까지 갈대밭이 보이지 않은 것은 하천을 정비하면서 없어진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갈대밭의 중요한 기능의 하나가 오염된 물의 정화라면 도시를 지나는 하천에서 갈대밭은 더욱 긴요하다 하겠습니다. 황구지천 서쪽에 자리한 화산수리장저수지는 카카오 맵에 나와 있어 그냥 지나치지 않으려고 신경을 썼는데, 생각보다 규모가 작아 저수지보다는 웅덩이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황구지천은 안녕교 인근에서동쪽에서 흘러내려오는 심미천의 물을 받아들여 다시 세를 불려 남쪽으로 흘러내려갔습니다. 황구지천교로 다가가자 서쪽 천변에 수많은 오리들이 무리지어 쉬고 있는 것이 하루 일과를 무사히 마쳐 안도하는 모습으로 비쳐졌습니다. 황구지천교를 지나 가운데를 터놓아 수로를 낸 보()를 보았습니다. 잘은 몰라도 상류에서 흘러내려와 쌓인 토사(土砂)가 쌓여 보가 제 기능을 못하게 되자 가운데를 헐어 수로를 낸 것 같습니다만, 과연 그런 것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1649분 세마교에서 네 번째 황구지천 따라 걷기를 마쳤습니다. 황구지천 서안의 제방 길은 산책 코스로는 더 할 수 없이 좋은 길이다 싶은데 오가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 한가로웠습니다. 3개의 다리가 동시에 지나는 안녕IC 1아래로 융릉 · 건릉 쪽에서 흘러내려오는 가느다란 세류(細流)를 건너자 화성효행길의 표지목이 세워져 있어 0.7km만 더 걸으면 이번 탐방의 끝점인 세마교에 이를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곳이 옛 수원도호부의 행정중심지였던 화산동이라는 것과 지명이 융릉과 건릉이 자리하고 있는 나지막한 화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경기옛길 삼남길의 안내판을 보고 알았습니다. 제방 길에는 색색의 바람개비들이 제 세상을 만난 듯 신나게 돌고 있었고, 그 아래 천변에는 물오리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해지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어 대비되었습니다. 육안으로도 독산성을 식별할 수 있을 만큼 세마산이 아주 가깝게 보이는 제방길을 걸어 세마교에 이르렀습니다. 욕심 같아서는 4.2Km를 더 걸어 용수교까지 진출해보고 싶었지만, 곧 해가 지고 교통편이 어떠한지 몰라 포기하고 바로 옆 뱅뱅정류장으로 자리를 옮겨 20분 가까이 기다렸다가 세류역으로 가는 25번 버스에 탑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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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방 길을 걷다가 안녕제3 배수통문옆에 세워진 일진제강() 폐수 처리수 최종방류구의 안내판을 보았습니다. “ 이곳은 일진제강()에서 배출되는 폐수의 최종방류구입니다. 폐수 무단방류 등 불법환경오염 행위를 발견한 경우에는 신고기관으로 연락바랍니다.”라는 안내문과 함께 폐수 방류기준을 적시해 놓은 것이 이채로웠습니다. 검사항목은 pH, COD, Zn 9개였으며, 각 항목마다 pH 5.8~8.6, COD 130mg/l  등 기준치가 제시되었습니다.

 

  이 안내문을 읽고 생각한 것은 이사(李斯)하해는 가는 물줄기를 사양하지 않아 깊음을 이루었다(河海不擇細流 故 能就其深)”는 언급이 사실로서는 거짓된 것이 아니지만, 그리 하는 것이 과연 잘하는 일인가는 따져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산업이 발달하기 전에는 강물이 공업용수로 거의 쓰이지 않아 지천의 물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여도 별 문제가 안 되었지만, 산업시대 이후에는 강물도 정화된 지류만 받아들여야 수질오염을 막아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엄격하게 관리된 물이 아니라면 세류를 받아들여서는 안 되도록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사는 세상은 강물보다 훨씬 먼저 오염되어 먼 옛날에도 간신배들이 득시글거렸습니다. 진나라의 책사 이사가 비극적 죽음을 맞은 것은 조고라는 간신배를 가려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됨을 제대로 살펴보지 않고 눈앞의 권력과 이익만을 쫓아 손을 잡았다가 천하의 책사인 이사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자연이든 인간세상이든 오염원을 골라내 제거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탐방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