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강줄기 따라걷기/낙동강 따라 걷기

낙동강 따라 걷기 30(적포교-박진교-영아지마을입구삼거리)

시인마뇽 2024. 11. 29. 00:12

탐방구간: 적포교-박진교-영아지마을입구삼거리

탐방일자: 20241122()

탐방코스: 적교장모텔-적포교-상포교-감곡정류장-의령낙동대교공사장  -박진고개

                -박진교-영아지마을입구삼거리

탐방시간: 741=1551(8시간10)

동행       : 나 홀로

 

 

 

  오랜만에 안개가 짙게 낀 시골길을 걸었습니다. 낙동강을 따라 걷는 길에 합천군 청덕면의 적포교에서 신반천이 낙동강에 합류되는 지점의 상포교를 건너 의령땅으로 발을 들이기까지 한 시간 가까이 10m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 속을 걸었습니다.

 

  안개란 대기 중의 수증기가 응결하여 지표 가까이에 작은 물방울이 떠 있는 현상을 말합니다. 지표면에 붙어 있는 구름을 안개라고 부르는데, 이는 구름과 안개가 서로 구성 요소나 생성 원리가 같기 때문입니다. 안개는 보통 기온이 가장 낮게 떨어지는 새벽과 아침 사이에 발생하고 일출 후 2~3시간 정도까지 이어집니다만, 역전층과 지면 부근의 포화된 층의 두께가 두껍다면, 안개의 소산 시간은 일출 후 3시간 이상 길어지기도 합니다.

 

  안개는 지표의 냉각으로 형성되는 복사안개(radiation fog), 따뜻하고 습윤한 공기가 차가 운 지표 또는 수면 위로 이동할 때 포화되어 발생하는 이류안개(advection fog), 습윤한 공기가 높은 지형을 따라 상승하여 응결하는 활승안개(upslope fog), 온난전선면 부근에서 약한 비가 내릴 때 발생하는 전선안개(frontal fog), 차가운 공기가 따뜻한 수면 위를 이동할 때 발생하는 김안개(steam fog) 5종류로 나뉘어집니다.

 

  우리나라 내륙에서는 동서 고압대 형태의 일기배치를 보이는 안정한 대기 구조에서 기온이 떨어지면서 가을철에 안개가 가장 자주 발생합니다. 이번에 만난 안개가 복사안개(radiation fog) 라고 생각되는 것은 이 가을에 강가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안개가 바로 복사안개이어서입니다. 복사안개는 고기압권에서 바람이 약하고 지상에서 925hPa 부근까지, 혹은 그 이상의 고도까지 역전층이 형성될 경우 발생한다고 합니다. 전날 비가 내리거나 눈이 쌓인 후 녹았다면, 지표에 수증기가 풍부하여 안개가 발생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는 복사안개는 도심보다는 기온이 크게 떨어질 수 있는 도심 외곽 지역에서 더 자주 발생하며, 주변에 강이나 호수가 있다면 수증기 공급이 더해지면서 발생 가능성이 더욱 증가합니다. 이번에 만난 안개가 복사안개인 것이 틀림없다는 것은 이 떄문입니다.

 

 

....................................................................................................................................

 

 

  낙동강 우안에서 가까운 모텔에서 숙박한 덕분에 낙동강 따라 걷기를 일찍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아침 7시에 문을 연 숙소 인근의 한 식당에서 조반을 든 후 적교장모텔을 나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적포교 앞으로 이동했습니다.

 

  아침 747분 적포교를 출발했습니다. 적포교에서 남동쪽으로 이어지는 적포제 위 자전거길로 들어서자 안개가 짙게 끼어 10m(?) 앞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날 차도를 따라 걷다가는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사고를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안전한 제방길이 고마웠습니다. 얼마간 걸어가자 해가 보였지만 안개에 묻혀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했습니다. 우곡배수장을 지나 합천 땅에 발을 들인 후 이내 신반천의 상포교를 건넜습니다. 상포마을을 지나 낙서2제로 올라서자 안개가 조금씩 가시기 시작했습니다.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자 낙동강이 제 모습을 드러내 반가웠습니다. 제가 낙동강을 보고 반가워한 것은 수려한 강변 풍광을 다시 볼 수 있어서만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반가워한 또 하나의 이유는 낙동강의 수위가 올라가 이곳 주민들이 양상추 배추 농사를 마음 놓고 지을 수 있겠다 싶어서였습니다. 인터넷 신문인 오마이뉴스의 20171217일 자 기사 창녕함안보 수문개방 때문에 양상추 농사 망쳤다에 따르면 함안창녕보의 방류로 수위가 내려가 이곳 합천군 청덕면 앙진리 논에서 비닐하우스로 배추와 양상추 등을 재배하는 농민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며 정부에 대책 수립을 촉구한 일이 있었습니다. 정부는 4대강사업 보 모니터링을 위해 20171113일부터 창녕함안보 수위를 5m(관리수위)에서 2.2m(개방수위, 수위차 2.8m)로 낮추었다고 합니다. 겨울철 기온이 내려가면 농민들은 비닐하우스 안에 온도를 높이기 위해 주로 관정을 뚫어 지하수를 끌어올려 쓰는 수막재배를 하는데 지하수의 수위가 내려가 온도가 높은 지하수를 끌어올리지 못해 양상추 농사를 망쳤다는 것이 오마이뉴스 기사의 요지였습니다.

 

  934분 감곡마을을 지났습니다. 차도와 나란히 나 있는 자전거 길을 따라 강변의 언덕에 오르자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적포교가 다시 보였습니다. 낙동강을 가득 채웠던 안개가 강변 너머 넓은 들판으로 서서히 물러나는 모습이 참으로 질서정연해 잠시 멈춰서서 지켜보았습니다.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는 고즈넉한 강변 길을 걷노라니 바로 이 순간에 이토록 황홀한 풍광을 완상할 수 있도록 건각을 물려주신 부모님이 더 할 수 없이 고마웠습니다.

 

  내곡배수장을 지나고 나지막한 고개를 넘어 감곡마을로 내려갔습니다. 감을 훔쳐 먹으려고 마을로 내려와 감나무 밭을 쑥대밭으로 만든 호랑이 부부를 물리쳤다는 전설 상의 임비장군이태어난 마을이 감곡마을이라는 것은 안내판을 보고 알았습니다. 감곡마을을 지나 고갯마루에 오르자 미니 공연장인 야시뱅이킴스클럽과 정자 여의정이 마주 보고 있어 잠시 쉬어 갔습니다.

 

  115분 의령낙동대교 공사장을 지났습니다. 여의정에서 여의마을로 내려가 꽤 긴 여의제 제방길로 올라섰습니다. 시계방향으로 반원을 이어지는 여의제는 전장이 약 6Km로 꽤 길었고, 강변의 공터도 엄청 넓었습니다. 이런 공터가 도시 옆에 있다면 파크골프장 뿐만 아니라 공설운동장이 들어서도 될 만큼 엄청 넓었습니다. 하상부지만 넓은 것이 아니고 제방 건너 들판도 역시 넓어 논밭과  낙동강홍수 방제 스테이션⌟ 이 함께 들어섰습니다. 올해 처음 구축된 홍수 방재 스테이션은 수해가 발생했을 때 빠른 복구가 가능하도록 약 3의 부지에 흙, 톤 마대, PE방호벽 등 공사용 물품을 마련한 공간을 이르는 것으로 올해 처음 이 스테이션이 구축되었다고 합니다. 대구지방환경청이 관리하는 낙동강 하천구간에서 유일하게 홍수방재스테이션이 설립된 곳은 여기 경남의령군낙서면여의리694번지 일원에 여의제 바로 아래입니다. 얼핏 보면 임시로 지은 것 같은 10평 정도 됨직한 건물과 울타리를 쳐 놓은 넓은 공터가 전부로 허술해 보이는 여기 방재스테이션이 의미 있는 홍수방재에 필요한 자재들을 현장과 가까운 곳에 비축해 놓아 재빨리 대응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제가 여의제를 걸으며 놀란 것은 의령낙동대교 공사 현장을 보고 나서였습니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높이 솟은 것이 뭔지 몰랐는데 가까이 가보니 그것은 공사 중인 의령낙동대교의 미완성 사장교였습니다. 강 양안에서 마주 보고 공사를 해가는 이 다리는 아직 연결이 되지 않아 가운데가 잘린 것처럼 보였습니다. 제가 보기에 난공사였을 사장교 부분은 거의 다 완성되어 이제 두 사장교를 연결만 해주면 될 것 같았습니다. 공사 중인 다리 밑을 지나면서 승용차 여러 대가 작업장인 공중의 상판에 주차해 있는 아슬아슬한(?) 장면을 목도했습니다. 이는 아마도 작업원들이 작업현장까지 승용차를 타고 접근했음을 뜻하는 것인데, 저는 올려다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1313분 박진고개 고갯마루에 올라섰습니다. 여의제 제방길을 걷느라 들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 마을은 여의마을, 당지마을, 신기마을, 정곡마을 등입니다. 여기에 안개 속에 지나친 상포마을과 감곡마을을 더하면 의령군낙서면의 연화동 권역마을을 먼발치로나마 다 본 셈입니다. 여의제가 끝나는 정곡리의 자전거쉼터에서 햄버그를 꺼내 들면서 산불감시요원 두 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안내판에  이 지역의 특산물이 찰옥수수, 양상치, 단감과 마늘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고, 2017년 환경부의 수문개방 조치에 이 지역 농민들이 항의한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점심식사를 끝내고 부곡마을입구를 지나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올 들어 낙동강을 따라 걸으며 단풍다운 단풍은 박진고개를 오르며 처음 보았습니다. 단풍은 노랗게 들었는데 색상은 다른 해 만큼 곱지 않았습니다. 올 단풍은 예년보다 훨씬 늦게 들어 조만간 눈이라도 내리면 그나마도 유지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제법 가파른 꼬부랑 고갯길을 걸어 고갯마루에 다다르자  새빨간 자전거길종주 구름재인증센터⌟ 박스가 자리하고 있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해발고도가  2m가량 되는 고갯마루에서 저 아래 낙동강공사 중인 의령낙동대교,  그 뒤 먼발치의 비슬산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왔는데, 조망이 일품이었습니다. 박진고개를 넘어 다다른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진행해 박진교에 다다른 시각은 146분이었습니다.

 

  1551분 영아지마을 입구 삼거리에 도착해 하루 여정을 마무리했습니다. 경남의령군부림면과 창녕군남지읍을 이어주는 박진교를 건너 반포제 제방길로 들어섰습니다. 박진로와 나란히 뻗어 나가는 반포제를 따라 걷다가 대곡배수장 앞에서 잠시 제방을 벗어난 것은 그 아래 미니슈퍼를 들러 음료를 사 마시면서 쉬어가기 위햐서였습니다. 다시 제방길로 돌아가 낙동강을 따라 남동쪽으로 진행했습니다. 낙동강하구 117Km 전방지점을 지나 이번 탐방을 마치기로 한 반포보건지소에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습니다. 내친 김에 조금 더 걸어 영아지마을회관까지 진행하기로 하고 발걸음을 서둘렀습니다. 박진로는 왼쪽으로 휘어 북쪽으로 이어졌고 자전거길은 오른 쪽으로 꺾여 낙동강을 따라 이어졌습니다. 황아지마을입구를 지나 조망한 낙동강의 강변풍경이 더할 수 없이 평온해보였습니다. 해가 많이 짧아져서인지 오후 4시가 채 안 됐는데도 햇살에서 저녁 기운이 감지되었습니다. 강변의 영아지마을입구 삼거리에서 하루 여정을 마무리하고 택시를 불러 남지공영버스터미널로 이동해 1640분에 출발하는 대구행 버스에 승차했습니다.

 

....................................................................................................................................

 

 

  안개는 대기 중의 상대습도가 순간적으로 100%를 넘어 과포화상태일 때 수증기가 응결되어 물방울로 바뀌면서 생기는 자연현상입니다. 해가 뜨고 햇살이 퍼지면 기온이 올라가 상대습도가 100% 미만인 불포화상태로 변화하면서 안개는 흩어져 사라집니다.

 

  17년 전 저는 금남정맥을 종주하는 길에 충남 부여군의 한 산줄기에서 안개와 햇빛이 치열하게 싸우는 것을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그 전투를 보고 제 블로그에 아래와 같이 글을 남겼습니다.

 

  “산자락을 가득히 메운 안개와 동녘 하늘에 솟은 아침 해가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금남정맥의 산 능선을 차지하겠다고 벌이는 싸움이 참 볼만했습니다. 원래부터 햇살과 안개는 상극이라는 것은 진작 알았지만 능선을 뺏고 뺏기는 치열한 혼전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지켜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아무리 비가 많이 내려도 비행기가 못 뜨는 일은 없지만 안개가 좀 많이 끼었다하면 이륙이 불허되는 것은 햇빛이 안개를 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햇빛을 막아내는 데는 굵은 빗줄기보다 훨씬 강한 안개도 실은 햇빛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지면 생명을 다하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습니다. 밤새 기온이 내려가 상대습도가 100%를 넘게 되면 과포화상태의 수증기가 응결해 안개를 만들기에 안개가 생성되고 소멸되는 것은 공기의 온도에 달려있는데 이 공기를 데우는 것이 바로 햇빛이기에 말입니다. 중천에 높이 뜬 아침 해가 햇살을 뿌려 능선의 안개를 증발시켜버렸는가 했는데 어느새 골짜기의 안개가 골바람의 도움을 받아 다시 능선 길을 먹어 삼켜 가시거리가 20미터도 안되게 만드는 등 십수회의 거듭된 밀고 밀리는 혼전은 아침 9시반경에 시작하여 12시까지 계속됐습니다. 햇빛의 승리로 돌아간 혼전의 현장을 살펴본 후 저는 이 싸움이 이 산에 봄을 불러들이기 위한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음을 확인하고 놀랐습니다. 당연 패자인 안개의 시체가 즐비해야 하고 처참해야 할 능선 길에 벌써 사라졌어야 할 안개가 물방울로 변신해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있었습니다. 그리고 남중한 정오의 태양이 이 나무들에 따뜻한 햇빛을 쪼여주고 있었습니다. 뿌리로 빨아올리는 수분만으로 봄을 맞이하기가 아직은 때 이른 나무들에 이런 방법으로 필요한 물과 햇빛을 공급한다고 생각하자 안개의 패배로 끝이 날 것이 뻔한 이 싸움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본 제가 참 멍청했구나 싶었습니다. 이 들의 만남을 햇빛이라는 창과 안개라는 방패의 다툼으로만 보고 봄을 만드는 창조적 생명행위로 인식하지 못한 저의 단견이 부끄러웠습니다.”

 

  이번에 만난 강 안개는 17년 전의 산안개와 달랐습니다. 이번에 만난 강() 안개가 17년 전에 만난 산() 안개보다 훨씬 짙었고, 안개가 흩어져 사라지는데 걸리는 소산(消散) 시간은이 산 안개보다 한참 짧았습니다. 무엇보다 달랐던 것은 17년 전에는 산 안개가 햇빛과 손을 잡고 화전(和戰)으로 끝을 맺었는데, 이번에는 강 안개가 확실하게 승리한 것 같았습니다. 아침 9시가 조금 넘자 강 위를 가득히 채웠던 안개가 서서히 사라지는 것이 마치  군대가 전장(戰場)을 평정한 후 질서 있게 퇴각하는 것처럼 위풍당당하고 의기양양해 보여서 하는 말입니다.

 

  다음에는 어떤 종류의 안개를 만나고 그 안개가 어떻게 햇빛과 싸워나갈지 자못 궁금합니다.

 

 

<탐방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