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강줄기 따라걷기/낙동강 따라 걷기

낙동강 따라 걷기29(이방정류장-합천창녕보-적포교)

시인마뇽 2024. 11. 27. 09:27

탐방구간: 이방정류장-합천창녕보-적포교

탐방일자: 20241121()

탐방코스: 이방정류장-합천창녕보-청덕교-하적포정류장-적포교-적교장모텔

탐방시간: 1045-1623(5시간38)

동행       : 나 홀로

 

 

 

  이번처럼 택시가 고맙고 KTX고속열차가 밉살스러운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광명역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집을 나선 후에야 스마트폰의 알람을 잘못 설정해 1시간 늦게 일어난 것을 알았습니다. 택시를 잡아타 광명역으로 빨리 가자고 부탁하자 기사분이 신호등이 거의 없는 고속도로로 내달려 다음 열차인 6시52분에 출발하는 동대구행 열차를 탈 수 있었습니다. 예정보다 30분 늦게 출발했지만, 동대구역에 정시에 도착한다면 9시10분에 대구서부정류장을 출발하는 이방행 시외버스를 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ktx 10분 늦은 8시36분에 도착해 당혹스러웠습니다. 전철로 열두 역을 이동해 도착한 서부정류장에서 무인기로 발권해 버스 승강장으로 뛰어가 막 출발한 버스기사분에 손을 흔들고 소리쳤습니다. 다행히 기사분이 차를 세워 줘 이방으로 가는 버스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제가 강을 따라 걷기 위해 주로 이용하는 교통편은 기차입니다. 요즘 걷고 있는 강줄기는 낙동강으로 재작년 10월에 강원도 태백시의 너덜샘을 출발해 이번에 경남창녕군에 발을 들이기까지 모두 28회 이 강을 따라 걸었습니다. 그중 7회는 버스 편을 이용했고 나머지 21회는 열차를 타고 낙동강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로 이동했습니다. 이러한 열차 이용은 섬진강, 영산강이나 금강을 따라 걸었을 때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섬진강은 15회 모두 전라선 열차를 이용했고, 영산강은 9회 모두 호남선을 타고 이동했으며, 금강은 30회 중 25회를 전라선, 경부선과 호남선을 이용했습니다.

 

  제가 그동안 주로 이용한 열차는 무궁화호입니다. 무궁화호는 요금이 옛날의 새마을호 격인 itx열차의 1/2수준이고 고속철도인 ktx열차의 1/3 수준으로 저렴해 나이 들어 급할 것이 별로 없는 저 같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무궁화호는 중소도시의 기차역도 정차해, 강을 따라 걷기 위해 가까운 도시로 이동하는 데는 최적의 교통편이라 생각합니다.

 

  낙동강을 따라 걷기 위해 ktx를 이용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ktx는 요금이 비싼 데다 정차역이 대도시로 한정되어 있어 무궁화호만큼 두루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요금이 비싼 만큼 다른 열차보다 훨씬 빠르다는 편익은 분명히 크지만, 그 밖의 편익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어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굳이 ktx를 타지 않습니다. 이번에 광명역에서 동대구역까지 ktx를 타고 간 것은 그리하지 않고는 대구서부정류장에서 아침 9시10분에 출발하는 이방 행 시외버스를 탈 수 없어서였습니다. 이 버스를 놓치면 2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그리하다가는 정작 몇 시간 밖에  강을 따라 걷지 못하고 마쳐야 해 어쩔 수 없이 ktx를 타고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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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 10시를 조금 지나 창녕군의 이방정류장에 도착해,  택시로 3Km 남짓 떨어진 산토끼노래동산을 다녀왔습니다. 어렸을 때 즐겨 불렀던 산토끼노래가 창녕군 이방초등학교의 이일래(李一來, 1903-1979) 선생께서 가사와 곡을 지었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동요 산토끼1938년에 발간된 <이일래 조선동요작곡집>에 실린 21곡 중 하나로, 일제 강점기와 해방, 6 . 25전쟁 등 혼란한 사회 분위기로 인해 한동안 잊혀졌다고 합니다. 그 후 많은 국민들이 교과서에 작사, 작곡 미상으로 실린 이 노래를 애창했고, 저 또한 그리했습니다. 선생이 돌아가시기 4년 전인 1975년 어느 날 이 동요집 1부가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세상에 나타났습니다. 젊은 날 선생이 연모했던 소학교 여선생에게 1권을 몰래 빼서 줬던 책이 그해 영인본(복사본)으로 발간되면서 이일래 동요는 뒤늦게 빛을 보게 되었다고 인터넷 매체 오마이뉴스는 동요 산토끼가 오랫동안 작사작곡가 미상이었던 이유를 위와 같이 보도했습니다.

 

  1045분 이방정류장을 출발했습니다. 정류장 사거리에서 이방대합로를 따라 동진해 짧은 시가지를 벗어났습니다. 반듯한 한옥이 자리한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합천창녕보로 가는 길에 두 개의 비석을 보았습니다. 하나는 얼음 위를 걷다가 물에 빠진 아버지를 구하고자 물속으로 들어가 동네 사람들이 던져준 장대를 받쳐 아버지를 살리고 자신은 물속에서 얼어 죽은 아들의 효심을 기리기 위해 세운 창녕현옥야면 십이세초동 한아지 순효지비(殉孝志碑)이고, 다른 하나는 배가 전복되어 물에 빠진 남편을 찾으려 물속에 들어갔다가 같이 죽은 열부의 행적을 기리는 임유인 김정렬 부행적비(婦行蹟碑)였습니다.  이 지방의 특산물인 마늘이 잘 자라고 있어 가을걷이가 끝난 밭이 여전히 푸르렀습니다.

 

  1140분 합천창녕보에 도착했습니다.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건설된 창녕합천보는 가동보 3, 고정보 2, 전장 675m의 공도교, 어도, 그리고 5kw를 발전할 수 있는 소수력발전소가 갖춰져 있습니다.

 

  4대강에 설치된 16개 보가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과제는 수질개선일 것입니다. 2023년 한국환경분석학회의 학술발표자료에 따르면 전반적으로 수질이 개선되었다고 합니다. 4대강 사업 전 10년간의 수질 변화를 알 수 있는 생물화학적산소요구량(BOD)64%, 총인(TP)94%, 부유물질은 73%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환경부에서 발간한 4대강사업바로알기전단에 기재되어 있습니다. 반가운 소식 임에 틀림없지만, 때가 되면 어김없이 발생하는 녹조 문제는 서둘러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공도교를 건너 합천 땅에 발을 들였습니다. 합천창녕보그린생태공원을 지나 낙동강 우안의 외삼학제에 낸 자전거길을 따라 걷다가 뒤를 돌아보자 외관이 날렵한 5개의 보가 주변 풍광과 잘 어울려 사진을 찍었습니다. 곧게 뻗어나간 외삼학제 제방이 황강이 낙동강에 흘러드는 합류점에 이르러 오른쪽으로 휘어 이어졌습니다.

 

  1337분 청덕교에 다다랐습니다. 황강/낙동강 합류점에서 얼마간 황강을 거슬러 올라가 창덕교를 건너다 잠시 멈춰 다리 아래로 흐르는 황강을 조망했습니다. 황강은 경남거창군에 자리한 해발 1,254m의 삼봉산에서 발원해 거창군과 합천강을 흘러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낙동강의 제1지류로 강 길이는 무려 111Km에 달합니다. 합천 해인사와 합천댐의 건설로 합천호가 만들어져 많은 여행인들이 합천을 찾는 다고 합니다. 황강의 기를 받은  합천 출신의 인물 중  으뜸인 분은  전두환(全斗煥, 1931-2021) 전 대통령이 아닌가 합니다.  

 

  창덕교를 건너 파크골프장이 들어선 창덕수변공원으로 내려섰습니다. 골프장을 지나 만난 하식애가 화원유원지에서 본 것과 다른 점은 절벽이 평면이 아니고 곡면이라는 것입니다.  수변공원을 지나 적포제로 올라섰습니다. 적포제 왼쪽 아래 강변에는 엄청 넓은 숲이 이어져 낙동강 정화에 한 몫하고 있지 않겠나 싶었고, 오른쪽 아래 밭에서는 마늘이 자라고 있어 온 들판이 파릇파릇했습니다.

 

  154분 하적포정류장을 지났습니다. 적포제로 들어서 자전거길을 따라 걷다가 길 위에서 죽음을 맞이한 사마귀를 보았습니다. 색상이 녹색에서 갈색으로 바뀐 것을 빼고는 살아 있을 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저도 모르게 경건한 마음이 일었습니다. 적포3배수문을 지나 하적포정류장에서 이르자 길 건너 마을 입구에 단풍이 노랗게 곱게 든 노거수 느티나무가 의젓해 보여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제방 길이 끝나고 차도 옆 강변 길로 들어서자 여기서부터 자전거길 관리기관은 진주국토관리사무소입니다.”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안내판을 보고 자전거길 관리기관이 낙동강유역횐경청에서 진주국토관리사무소로 바뀐 것은 알았지만 왜 관리기관이 바뀌어야 하는가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왼쪽으로 완만하게 휘어져 흐르는 낙동강을 따라 얼마 걷지 않아 저 멀리 다리 하나가 희미하게 보여, 지도에서 확인해본즉 그 다리는 이번 탐방의 끝점인 적포교였습니다. 적포교를 향해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 강변의 정경도 눈길을 끌었지만 강물에 투영된 흰 구름의 몸놀림도 그에 못지않게 고혹적이었습니다.

 

  1621분 적포교에 다다랐습니다. 대부배수장을 지나자 경남창녕의 이방면과 합천군의 창덕면을 이어주는 적포교가 아주 가깝게 보였습니다. 소부마을을 지나 낙동강은 왼쪽으로 휘어 흐르고 자전거길은 나지막한 언덕으로 이어졌습니다. 조그마한 양수장을 지나 다다른 소나무밭 쉼터에서 이제껏 걸어온 낙동강을 뒤돌아보자 10Km 가량 떨어진 합천창녕보가 보여 반가웠습니다. 이쯤에서 이제껏 살아온 긴 여정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 것은 저도 벌써 나이가 80세를 몇 년 앞두었을 만큼 들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언덕을 넘어 따라 걸은 강변의 자전거길은 적포교와 만나는 적포삼거리로 이어졌습니다. 적포삼거리에서 바로 앞 적포교교를 사진 찍은 후 100m 떨어진 적교장 모텔을 찾아가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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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차여행 덕분에 제 삶의 지평이 얼마간 넓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난생처음으로 기차를 타고 장거리 여행길에 올랐던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인 1964년 가을이었습니다. 제가 태어난 경기도를 벗어나 천 리 넘게 떨어진 경상북도의 경주로 수학여행을 다녀왔는데, 그때 단체로 타고 간 열차는 중앙선 열차였습니다. 교과서에서 보았던 불국사와 석굴암 등 신라의 유적을 현지에서 직접 보고 나자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천 몇 백년 전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수도를 돌아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경주여행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제 삶의 지평을 넓히는 본격적인 여행이 그렇게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를 다니면서는 입시준비로 쉬었던 기차여행을 다시 시작한 것은 대학에 들어간 1968년 여름 방학부터였습니다. 서울을 출발하는 것으로써 시작된 78일간의 동해안 여행은 속초로 갈 때는 버스 편을 이용했지만, 삼척에서 돌아올 때는 기차를 타고 귀경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바닷가를 걸었고 설악산의 울산바위와 토왕성 폭포를 다녀왔습니다. 그 후 기차여행은 대개가 등산을 위한 것으로 완행열차를 타고 다녔습니다. 1969년 여름 한라산을 등반하고 서울로 돌아온 1011일 간의 긴 기차를 타고 여행한 구간은 용산역-영동역, 광주역-목포역, 부산역-서울역 구간이었습니다. 국내 명산들을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한 1970년부터 여행이 잦아짐에 따라 기차여행도 빈번했습니다. 이때의 기차여행은 국내의 명산들을 오르기 위한 단순한 장소의 이동만이 아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낭만은 거의 다가 젊은 시절 뜻을 같이하는 친구들과 함께 떠난 기차여행을 통해 생산하고 축적해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넘쳐흐르는 낭만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저는 집사람과 결혼했고, 기차를 타고 신혼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기차여행 덕분에 저의 삶의 공간은 남한 땅 전역으로 넓어졌고, 사유의 시간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신라의 수도 경주는 수차례 다녀왔고 백제의 수도 공주와 부여는 몇 년 전 금강을 따라 걷는 길에 몇 곳을 탐방했었습니다. 한반도 북쪽과 만주지역의 맹주인 고구려 땅의 답사는 충청도 일대의 중원지역에 국한될 수밖에 없어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낙남정맥을 종주하고 낙동강을 따라 걸으면서 우리나라 역사가들이 거의 주목하지 않는 가야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혀갈 수 있었던 것도 기차여행 덕분이었습니다. 낙동강 따라 걷기를 마치면 한강도 마저  걸을 계획이어서 저의 기차여행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탐방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