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구간: 양수역-팔당댐-덕소역
탐방일자: 2026. 2. 28일(토)
탐방코스: 양수역-능내역-다산생태공원-팔당댐-팔당2리면포제빵소
-팔당대교 –강북아리수정수센터-덕소역
탐방시간: 9시25분- 16시43분(7시간18분)
동행 : 나 홀로

강줄기를 따라 걸으며 알게 된 것은 하천의 유역(流域)입니다. 유역이란 강물이나 빗물이 한데 모여 특정 하천이나 호수로 흘러드는 범위를 이릅니다. 유역의 범위는 대체로 하천을 둘러싸고 있는 산줄기로 정해집니다. 왜냐하면 산줄기는 물줄기를 가르는 분수계(分水界)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제껏 유역을 가르는 산줄기를 편의상 둘레산줄기라 불러왔습니다.
한강을 따라 걷는 길에 양평의 두물머리를 들러 북한강과 남한강의 합류를 지켜본 것은 지난주의 일입니다. 북한 땅 금강산에서 발원해 두물머리에서 남한강과 합류하는 북한강은 강 길이가 약317Km인 한강의 제1지류입니다. 남한 땅 태백산의 검룡소에서 발원해 두물머리에서 북한강과 합류하는 남한강은 강길이가 약410Km에 달하는 한강의 본류입니다. 북한강과 남한강은 두물머리에서 만나 약84Km를 한줄기로 흘러 한강하구인 김포의 유도에 이릅니다.
남한강 따라 걷기를 마치고 한 주 만에 한줄기로 흐르는 한강본류에 첫 발을 들이면서 남한강을 둘러싸서 물을 대주는 둘레산줄기를 언급하는 것은 남한강 유역의 개념을 보다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입니다. 남한강 둘레산줄기는 남한강을 둘러싸고 있는 산줄기로 처음부터 끝까지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능선을 이릅니다. 남한강 둘레산줄기는 양평의 양수리에서 시작해 오대산 두로봉에 이르는 한강기맥, 오대산의 두로봉에서 속리산의 천황봉에 이르는 백두대간. 속리산의 천황봉에서 한남정맥의 문수봉으로 이어지는 한남금북정맥과 한남정맥, 문수봉에서 정암산을 거쳐 한강 앞 종여울에서 끝나는 한남앵자지맥을 잇는 산줄기를 이릅니다. 남한강은 둘레산줄기가 약750Km에 이르고, 유역면적은 약12천Km2으로 강 길이가 거의 같은 금강의 약10천Km2보다 조금 더 넓습니다. 지난주 두물머리에 도착함으로써 저는 약410Km의 남한강의 물줄기와 750Km의 남한강 둘레산줄기 등 총 1,160Km의 산줄기와 물줄기를 모두 따라 걸었습니다. 참고로 한강의 둘레산줄기는 그 길이가 약 1,185Km에 달하는데, 이중 북한 땅의 260Km를 제외한 나머지 한강의 둘레산줄기는 1대간9정맥을 종주하는 길에 모두 다 밟았습니다.
제가 남한강의 강줄기와 둘레산줄기를 모두 다 걷고 깨달은 것은 산은 강의 어머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강이 산에서 발원하며, 산에서 발원한 강이 하구에 이르기까지 쉬지 않고 물을 대주는 것이 바로 산이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공자께서 인자(仁者)는 산을 좋아하고 지자(智者)는 강을 좋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공자께서 강에 물을 대주는 산의 인자함과, 온갖 난관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종점인 하구에 이르는 강줄기의 지혜로움을 높이 평가해 말씀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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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기온이 섭씨 15도를 약간 웃돌 만큼 날씨가 풀려 오랜 시간 걷기에 좋았습니다. 겨우 내내 쉬지 않고 불던 강바람도 숨을 고르느라 미동도 하지 않아 봄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온기가 며칠 더 지속된다면 나무들도 머지않아 새싹을 돋우고 봄꽃을 피울 것입니다.
오전9시25분 양수역을 출발했습니다. 양수역에서 팔당으로 이어지는 자전길로 들어서 지금은 열차가 다니지 않아 인도교로 바뀐 연장 564m의 북한강철교를 건넜습니다. 이 다리를 건너는 길에 강 건너 운길산과 이 산 중턱의 수종사를 사진 찍으면서 운길산-예봉산-예빈산을 연계해 종주했던 50-60대의 산행을 회상했습니다. 그때는 없었던 예봉산 정상의 백색의 원형건물이 천문대가 아니고 강우레이더관측소라는 것은 AI에게 물어 알았습니다. 새파란 북한강 위에 놓인 북한강철교를 건너자 한강하구 전방84Km 지점을 일리는 표지봉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한강의 총길이가 494Km인데, 하구까지 84Km 남았다 하니, 검룡소에서 여기 양수리에 이르는 남한강의 길이는 대략 410Km가 되는 셈입니다.
북한강철교를 건너 왼쪽으로 이어지는 남한강자전거길로 들어섰습니다. 진중삼거리에 이르기 얼마 전에 길가에 세워진 ‘도로입양(Adopt-a-Roadway)’ 안내판을 보았습니다. ‘남양주고려대명품아카데미총원우회’에서 ‘20212년7월’부터 ‘조안면사무소-진중삼거리(약2.0Km)’ 구간의 도로를 입양했음을 알리는 안내판을 보고 ‘도로입양’이 무슨 뜻인지 몰라 답답했습니다. 이 또한 AI에게 물어 ‘도로입양“이란 ”시민이나 민간단체가 특정도로 구간을 입양하여 자발적으로 청소하고 관리하는 환경정화봉사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11시정각 폐역인 능내역을 지났습니다. 조안2리를 지나 다다른 능내역은 폐역으로 복원한 역사(驛舍)가 작아 한창때에는 역사가 붐볐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1956년에 간이역으로 출발한 능내역은 1967년 보통역으로 승격되었다가 2008년에 폐지된 것은 청량리역-지평역 구간이 전철화되면서 운길산역을 신설해서였습니다. 이제는 열차가 다니지 않아 승객들은 찾아볼 수 없지만 대신에 자전거애호가들이 쉬어 가기 좋은 곳으로 새로 단장해 자전거역으로 활용되고 있다 합니다.
능내역에서 남한강자전거길을 벗어난 것은 마재성지를 둘러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마재성지는 두 가지를 기념하는 곳으로 마재성지 홈피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성가정 성지입니다. 가족이 성인 (유선임 체첼리아. 정하상 바로로, 정정혜 열리사벳)과 목자(정약종 아우구스티노 정철상 가롤로)로 시복시성되어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성지입니다. 둘째는 한국천주교회의 요람이자 못자리입니다. 정약종. 정약전 형제가 천진암 강학회에 참석한 후 삶의 터전인 이곳 마재에서 참 신앙인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한국천주교의 요람지인 마재성지에서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현판이 걸린 6칸(?) 단층의 한옥성당인 도마성전,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성모마리아상, 순교현양비 등을 둘러본 후 다산생태공원으로 향했습니다.
12시26분 다산생태공원에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마재성지를 출발해 나지막한 고개를 넘어 다산생태공원에 다다르자 2017년 가을 혼자서 이곳을 다녀간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때는 강 건너를 바라보면서 여기 다산생태공원에서 조망하는 한강이 두물머리에서 바라보는 한강보다 조금 더 넓다 하면서도 그 까닭을 잘 몰랐는데, 이번에 다시 보고서야 강 건너에서 한강의 제1지류인 경안천이 여기 한강으로 흘러들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선형의 소내나루전망대에 올라 강 건너 높은 산들을 보고, 2009년 여름 한남앵자지맥을 종주할 때 올랐던 해협산과 정암산을 찾아보았으나, 그 산이 그 산 같아서 특정하지 못했습니다.
다산생태공원 벤치에 앉아 준비해 간 샌드위치로 요기를 한 후 남한강자전거길로 복귀했습니다. 이번에 다산생태공원을 둘러보면서도 지근거리의 다산생가나 실학박물관을 들르지 않은 것은 2016년과 2017년에 이미 들러 탐방기를 남긴 바가 있어서 그렇게 했습니다. 이 공원의 서쪽 끝머리에 위치한 연꽃단지를 지나 조류생태습지에 이르자 남한강자전거도로로 이어지는 산길은 오른쪽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길을 따라 고개를 넘어 오전에 지났던 마재성지입구에 다다랐습니다. 마재성지정류장을 지나 조안스튜디오 앞 삼거리에서 남한강자전거길로 들어섰습니다.
13시35분 팔당댐을 지났습니다. 한강하구 전방78Km지점을 지나자 팔당댐과 검단산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자전거길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 들르지 못한 봉암교회를 소개하는 안내문을 읽고서,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마라“는 명언을 남긴 김용기장로가 봉안교회일원들과 뜻을 모아 봉안이상촌을 이룩하였고 뒤이어 가나안농군학교로 발전시켜 박정희대통령이 주도한 새마을운동의 롤모델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봉안터널을 지나 뒤쪽에서 팔당댐과 공도교를 살펴보았습니다. 제가 걷고 있는 자전거길에서 바로 아래 팔당댐에 이르는 길이 없어 사진만 찍고 그냥 지나쳐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팔당댐이 한강을 탐방하며 보았던 강천보, 여주보와 이포보와 다른 점은 팔당댐은 보(洑)가 아니고 댐(dam)이라는 것입니다. 댐이나 보는 모두 하천이나 계곡을 가로막아 물을 가두고 흐름을 조절하기 위해 만든 인공구조물을 말하는데, 그 높이가 15m이상 되면 댐이라 부르고, 미만은 보라 칭합니다.
팔당댐이 중요한 것은 이 댐의 건설로 조성된 팔당호가 수도권의 2,500만명이 이용하는 상수도원이기 때문입니다. 1973년 준공된 이 댐의 주 기능은 상수원수 공급과 발전입니다. 매일 7,828백만톤의 상수원수를 공급하고 연간 378백만Kw를 공급할 수 있는 설비능력을 갖춘 팔당댐의 총저수량은 244백만톤으로 소양강댐의 29,000백만톤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이포보의 3.6백만톤보다는 훨씬 많습니다.
팔당댐을 지나자 맨발로 건너갈 수 있겠다고 착각할 정도로 수량이 줄어들어 물속의 바위가 드러나 보이기도 했습니다. 팔당대교를 지나 하류로 갈수록 한강의 강물이 많아지는 것은 왕숙천, 중량천, 탄천, 안양천 등의 지류의 물이 흘러들고, 잠실과 신곡에 수중보를 설치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14시53분 팔당대교를 지났습니다. 팔당댐을 지나 팔당2리의 교차로에 이르기까지 남한강자전거길은 인도가 따로 나 있어 안심하고 걸었습니다. 쌩쌩 달리는 자전거라이더를 보자 중학교2학년 때인 1963년 봄 한 달여 화물용 자전거를 끌고 30여리 길을 통학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때에 에 비하면 도로도 잘 포장되고 성능이 엄청 좋아져 자전거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7곳의 다산쉼터를 지나 면포제빵소 앞에서 건널목을 건너 강변에 바짝 붙여 낸 자전거전용도로로 들어서자 건설 중인 다리와 그 뒤로 팔당대교가 가까이 보였습니다. 새 다리 아래 놓은 작은 다리는 잠수교로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다리 공사를 위해 임시로 놓은 다리인 것 같았습니다. 남양주시 와부읍과 하남시 창우동을 이어주는 팔당대교를 지나 한강 우안의 자전거도로를 따라 걸으면서 도봉산과 백운대를 이어주는 한북정맥이 확연하게 눈에 들어와 반가웠습니다.
16시43분 덕소역에 도착해 29차 한강따라걷기를 마쳤습니다. 한강 우안의 한강북자전거길을 따라 걸으며 강변의 벤치에 앉아 쉬어 가곤 한 것은 강 건너 하남시를 조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한강 좌안의 강변에 자리한 미사리조정호는 보이지 않았지만 강 건너 제방과 크고 작은 하중도가 보였습니다. 하남시와 남양주시 사이의 한강 한 가운데에 자리한 하중도 중 가장 큰 섬은 당정섬입니다. 1915년 일제가 측량을 할 때는 사람들이 살았던 이 섬에서 섬 주민 전체가 퇴거를 당한 것은 1989년 한강종합개발사업을 시행하면서부터라 합니다. 당정동이라는 어엿한 법정명을 가진 이 섬에는 사람들은 살지 않지만, 천연기념물 제201-2호로 지정된 큰고니, 즉 백조가 도래해 살고 있다고 하니 다행이다 싶습니다.
강변의 버드나무들에 봄이 찾아온 후 머리 위로 고가도로가 지나는 강변 길을 걸었더라면 덜 단조로웠을 것입니다. 모처럼의 따뜻한 주말에 한강을 찾아 나선 주민들이 산책도 하고 자전거도 타면서 즐기는 모습을 보자 홀로 걷는 저도 활기가 느껴졌습니다. 서울시민에 보다 위생적이고 깨끗한 물을 골급하고자 세운 한강아리수정수센터가 덕소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정수센터를 지나 월문천과 한강이 만나는 합류점에서 자전거길을 벗어나 덕소역으로 향했습니다. 한강/월문천의 합류점에서 덕소역까지는 멀지 않아 카카오맵이 가리키는 대로 따라가 길을 잘못 드는 일은 없었습니다. 덕소역에서 전철을 타고 이동해 산본역에 도착하기까지 2시간 남짓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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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강 따라 걷기는 북한강철교를 건넌 후부터 한치도 남양주시를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남양주시가 다산 정약용을 기리는 것은 단양군에서 온달을 기리는 것이나 영월군에서 단종을 기리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남양주시의 조안면은 다산 정약용이 태어나 자라고 묻힌 곳이어서 남양주시에서 다산 정약용 기리는 것은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다재다능한 분으로 여러 방면에서 훌륭한 족적을 많이 남기셨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소개된 다산 정약용의 면모는 이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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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은 조선후기 『경세유표』, 『흠흠신서』, 『목민심서』 등을 저술한 유학자이자 실학자이다. 1762년(영조 38)에 태어나 1836년(헌종 2)에 사망했다. 남인 가문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성호 이익의 학문을 접하면서 개혁사상의 세례를 받았다. 정조 재위기에는 관료로 봉사하면서 과학자로서의 면모도 보였다. 이 시기에 천주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장기간의 유배생활을 했다. 유배 중에 당시 사회의 피폐상을 직접 확인하면서 그에 대한 개혁안을 정리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사상을 포괄하는 거대한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
윗글에서 빠진 것은 다산 정약용이 우리나라 강을 체계적으로 소개한 『대동수경(大東水經)의 저자라는 것입니다. 제가 읽은 책은 북한과학원에서 번역한 것을 한국의 여강출판사에서 출판한 『역주 대동수경(譯註 大東水經)』입니다. 『대동수경(大東水經)』은 정약용이 강진 유배 중 지은 지리서로 우리나라 주요 하천의 자연지리, 역사, 풍속 및 물산 등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습니다. 정약용이 이 책에서 다룬 강은 압록강(淥水), 두만강(滿水), 청천강(薩水), 대동강(浿水), 예성강(猪水), 임진강(帶水) 등 북쪽의 6대 강입니다. 정약용이 남쪽의 한강, 금강, 섬진강, 영산강, 낙동강 등 주요 강을 다루지 못하고 여생을 마친 것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정약용의 『대동수경(大東水經)에 필적할 만한 조선시대 역작은 신경준(申景濬, 1712~1781)의 『산경표(山經表)』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정약용의 『대동수경(大東水經)』이 우리나라 북부의 주요 물줄기를 체계적으로 다룬 지리서라면, 신경준의 『산경표(山經表)』는 우리나라 전역의 산줄기를 도표로 체계화한 지리서라 하겠습니다. 다산 정약용과 여암 신경준 같은 학자들의 저술 덕분에 제가 우리나라 산수를 여행하고 탐방기를 남길 수 있다 싶어 두 분께 감사 말씀 올립니다.
<탐방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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